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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123화 (123/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123화

정심은 이른 아침 검진이 있는 병원으로 입원 준비를 했다.

준비를 마치고 나올 때, 아들인 강산도 따라나서는 모습에 손사래를 쳤다.

“우리가 차 타고 병원까지 가면 되는 데 네가 굳이 뭘 나서. 지난주에도 공부 못했으면서.”

괜스레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자신 때문에 시간을 뺏은 건 아닐지 정심은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는 나한테 공부가 엄마보다 소중한 줄 알아?”

강산은 병원까지 부모님을 모실 생각에 일찌감치 서둘러 자취방을 나섰다.

어제 늦은 밤, 친구이자 명의 한의원 원장인 재마와의 대화 이후 잠이 싹 달아난 강산은 밤새 뒤척이느라 잠을 설쳤지만 피곤함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 아침, 부모님이 준비하는 사이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아버지 건강검진을 추가할 수 있는지 문의를 넣어놓은 강산이었다.

“지금 너한테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을 해야지.”

좀처럼 강산에게 잔소리조차 하지 않던 강원장이 무심히 이야기했고, 평소에는 아버지의 들릴 듯 말 듯 한 혼잣말에 대답을 잘하지 않던 강산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대답을 했다.

“걱정 마세요.”

강산의 한마디에, 더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낡은 구두를 신는 아버지는 ‘흠.’하고 목을 가다듬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어떻게 걱정을 안 해. 작년에도 그래도 하나 있는 아들 큰 시험 본다고 전날 잠도 못 주무시더라.”

지금껏 작년 한의사 시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정심도 강산의 손에서 자신의 짐을 뺏으며 이야기를 했다.

따라나서지 말라는 뜻이었다.

“엄마, 건강검진 끝나고 내려가시는 것까지 다 보고 공부해도 괜찮아요. 뭐든 다 때가 있잖아요. 어머니, 아버지가 항상 서울에 올라오시는 것도 아니고.”

강산은 다시 어머니의 손에서 입원 가방을 빼앗아 들으며 먼저 앞장서서 강 원장의 차 앞으로 걸어갔다.

말릴 새가 없이 나서는 아들의 뒷모습을 따를 수밖에 없는 정심과 강 원장이었다.

강산의 자취방 앞, 오래된 아버지의 차가 서 있었다.

한때 국민차라고 많이 팔렸던 차였는데, 이제는 도로에서 마주치기도 힘든 차였다.

“후.”

강산은 한때 잘 나가던 신차가, 이제는 사람들이 굴러가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게 볼 정도로 낡고 허름해진 차를 보자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님 너무 피곤해? 너 어제 장거리 운전하고 와서 몸도 피곤한 것 같은데 정말 우리는 괜찮아. 우리끼리 가도. 아빠도 오셨는데 엄마가 무슨 걱정이 된다고 그래.”

엄마는 차 앞에서 문도 열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는 아들의 등 뒤에서 걱정스럽게 물었다.

까칠한 아들의 얼굴이 괜히 자신의 탓인 것 같아 마음이 아려오는 정심이었다.

아들을 위해서라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누가 뭐래도 자신의 건강부터 챙겨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그녀였다.

강산은 차오르는 눈물을 꿀꺽 삼키며 엄마를 바라보고는 괜찮다고 빙긋 웃고 차 뒷좌석 문을 열었다.

“아니에요. 얼른 타세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휴진을 하지 않고, 환자만 보고 달려왔던 강 원장은 오늘만큼은 환자 생각 없이 아들이 운전하는 자신의 낡고 허름해진 차 뒷좌석에 올라탔다.

* * *

귀남은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성은을 찾았다.

이어지는 철야로 제대로 씻지 못했던 귀남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사우나에 가서 목욕 재개를 했다.

철호는 귀남이 깨끗한 모습으로 들어오자 놀란 눈을 했다.

입사 이후 귀남이 가장 깔끔한 모습이었다.

“대표님, 오늘 무슨 날이예요?”

“야 인마. 그럼 오늘 같은 날도 꾀죄죄하게 김성은처럼 있어야 하냐? 김성은이, 준비 다 됐어?”

“네. 어제 밤새 편집해서 준비 다 됐습니다.”

“좋았어.”

성은이 오늘도 철야를 한 꾀죄죄한 얼굴로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성은은 귀남이 자신에게 꾀죄죄하다고 한 것이 찔리는지, 마른세수를 했다.

손에 걸리는 눈곱이 민망한지, 옷에 손을 쓱쓱 문질렀다.

“선배, 목욕을 갈 거면 미리 말 좀 하시지. 혼자 때 빼고 광내고 오셨어요?”

“너랑 나랑 같이 들어갈 것도 아닌데 내가 너한테 보고해야 하냐?”

“그래도 그렇죠. 혼자 씻고 오고 나한테 꾀죄죄하다 하고.”

성은은 입술을 비죽거리며,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아까 잠깐 눈을 붙인다고 엎드려 잤더니 옷에 있는 단추 자국이 관자놀이에 적나라하게 찍혀 있었다.

이대로 안 되겠는 지, 성은은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준비된 영상은 예약을 걸어놨으니 앞으로 두 시간 반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철호야. 나도 사우나 다녀올 테니까 잘 지켜보다가 영상 업로드에 문제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만약에 안 받으면 대표님한테 SOS치고.”

성은은 사우나를 갈 때 특별하게 챙길 건 없지만 기초화장품이 있는 파우치를 손에 들었다.

“근데 선배님, 이거 정한 한방병원 측에 미리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외출을 하려는 선배 성은에게 철호는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했다.

성은은 나서려던 발을 멈추고 철호를 바라봤다.

까마득한 철호가 귀엽게 보이는 성은은 피식 웃었다. 자신을 보고 좀처럼 웃지 않는 성은이 웃자 철호는 얼떨떨했다.

“야, 너는 전쟁하기 전에 우리 총알 9,999만 개, 포탄 5,898개 가지고 있다. 하고 다 까발리고 할 거냐?”

“그야 그렇긴 하지만.”

“정한 한방병원은 미리 언질을 주면 안 돼. 그럼 조직적으로 움직이거든.”

“조직적으로요?”

“아마 지금도 일이 터지면 어떻게 움직일지 조직적으로 다 계획이 되어 있을 거야. 지난번에 명의 한의원이랑 요양원일 밝혀지고선도 봐. 꼬리 자를 것 꼬리 자르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뻔뻔하게 지나갔잖아.”

지금까지 성은이 정한 한방병원을 중심으로 인터뷰와 조사를 할 때 몇 번을 따라나섰던 철호는 성은의 말에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 요양원 영상의 형제들을 찾아갔을 때도 형제들은 자신들도 문제가 있지만 정한 한방병원 측도 확실히 이상하다는 듯 이야기를 했다.

그뿐 아니었다.

정한 한방병원의 일이라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움직이는 박상철, 그리고 홍보팀의 박연아를 중심으로 댓글 조작업체부터 시작해 조직적인 움직임이 분명히 있었다.

사람들에게 알려진 한방병원 계 1위인 이미지와 다르게 뒤에서는 온갖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곳이 정한 한방병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성은이 박상철 박연아 모녀가 관련된 사건뿐 아니라 박상도가 드물게 직접 움직인 사건까지 확보해 놓은 상황이었다.

“이번에도 그러면 어떻게 하시게요?”

“뭐, 그야…….”

성은은 기지개를 쭉 폈다.

사우나를 갈 생각을 했더니 얼른 가서 뜨끈한 한증막에 몸을 지지고 싶었다.

지난번은 박상도 대표의 형인 박상철의 딸, 박연아까지 연관이 되어 있어 홍보팀 직원의 사직서로 일이 일단락 되어 지나간 정한 한방병원이었다.

이번에는 성은도 단단히 준비를 한 상태였다.

아무리 꼬리를 자르고 싶어도 박상도가 직접 움직인 사건은 빼도 박도 못할 것이라 장담했다.

“일단 오늘 영상 풀고, 다음 총알 풀어야지.”

아직 성은이나 대표인 귀남에 비해서는 한참 경험이 없는 철호는 정한 한방병원을 상대로 작은 사무실 하나 꾸려가고 있는 회사가 과연 성공가능성이 있는지, 가능성도 없이 무모하게 덤비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직도 모르겠다는 철호를 뒤로하고, 성은은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몇 달간 준비한 것을 풀기 위해 단단히 준비한 성은과 귀남은 밤샘 작업을 한 이후였어도 평소와 다르게 생기가 도는 모습이었다.

* * *

MBX 예능국 회의실.

신생 프로그램을 꾸려나갈 때 회의실에 국장까지 참석하는 일은 드물었지만, 이번 의학 예능은 국장의 간섭이 쉴 새 없이 들어왔다.

CP도, PD들도.

경력이 한참 되는 메인 작가를 포함한 새끼 작가들까지도 부담스러운 국장의 관심에 회의실에서도 잠자코 할 이야기만 할 뿐이었다.

결국엔 캐스팅 막바지 회의까지 국장이 참석한 상황이었다.

“어느 정도 캐스팅은 마무리된 거지?”

“네. 이제 한의학 쪽만 남았네요.”

CP는 평소 같았으면 자신이 정중앙에 앉아 프로그램 지휘를 하면 그만이었을 텐데 회의 때마다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국장에게 슬슬 화가 날 지경이었다.

결국 모든 패널들의 인터뷰, 그리고 스탭 회의까지 모두 참석한 국장은 캐스팅 하나하나 관여를 했다.

“나야 뭐. 이왕이면 인지도도 있고, 경력도 화려하고. 실력도 있는 박상도 대표가 나왔으면 하는데.”

듣지 않아도 뻔한 이야기를 하는 국장의 이야기에 대답 없이 스텝들은 펜을 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국장님, 국장님도 인터뷰 때 보셨겠지만 이 원장도 박상도 대표에 경력만 밀릴 뿐이지 절대 밀리는 분은 아닙니다. 인지도 상승률을 보면 최근 몇 개월 새에 박상도 대표도 따라올 수 없고요.”

입을 꾹 닫고 있는 CP와 PD들을 빤히 바라보며 메인 작가는 자신의 할 말을 국장에게 내놓았다.

아무리 윗선에서 압박이 들어와도 6개월 이상 준비한 새 프로그램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꺾이고 갈 수는 없었다.

아무 말도 못 하는 PD들 쪽을 보며,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작가들도 할 말을 하는 메인 작가의 말에 슬금슬금 입꼬리가 올라갔다.

메인 작가가 불을 지펴놨으니, 이제 CP나 적어도 막내 PD라도 나서서 거들면 국장이 무엇이라 할지 알 수 없었다.

작가들은 PD들 쪽을 바라보며 보채기라도 하듯 펜대를 굴렸다.

하지만 아무도 총대를 멜 사람이 없어 보였다.

그때, 타 프로그램 PD가 급하게 회의실 문을 두드리고 대답도 하기 전에 안으로 들어왔다.

“국장님, 보셔야 할 게 있는 데요?”

“뭐야?”

웬만하면 타 프로그램 회의에 끼어드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을 알만한 사람이 회의실로 뛰쳐 들듯 들어오자 국장도, CP도 모두 놀란 눈이었다.

“지금 너튜브에 올라온 영상인데요.”

PD의 말에 최 PD와 메인 작가 이 작가, 다른 작가들은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를 꺼내 너튜브부터 확인했다.

“이게 뭐야!”

국장은 PD의 휴대전화를 받아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회의실을 빠져나가며 어디론가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야, 최 PD 너희도 박 대표 쪽으로 연락할 방법 찾아봐봐.”

국장은 박상도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자 안달이 나는지 다시 회의실 쪽으로 들어와 박 대표와 연락을 하라며 소리쳤다.

“작가님, 전화 해봐야 되요?”

올라온 영상을 보고 있는 이 작가에게 막내 작가가 조금 전 국장이 지시한 것을 어쩌냐는 듯 물었다.

“전화를 해서는 뭐해. 이 정도면 잠잠히 지나가지 않을 것 같은데. 국장님이 하시던 말 있잖아. 프로그램 시작부터 구설수 오를 거냐고. 우리야 구설수 오를 만한 패널은 거르고 들어가야지.”

이 작가는 생각보다 실랑이 없이 이재마 원장으로 패널이 확정된 상황에 어깨를 으쓱이며 막내 작가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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