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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119화 (119/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119화

“바쁘실 텐데 이렇게 직접 방송국까지 오셔서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CP는 인터뷰를 온 재마에게 악수를 하며, 인사를 했다.

작가들이 패널 후보로 뽑은 이재마에 대해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그의 채널을 보면서 그의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정도라는 걸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던 그였다.

사실 처음에는 경력 1년 차 한의사가 신생프로그램에 어울릴 것인지 고민이 많았지만, 그의 채널을 보고 나서는 마음에 쏙 든 CP였다.

더구나 직접 재마를 만나고 돌아온 후배 PD 성주의 마음에 재마가 쏙 든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제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서요. 불러주셔서 감사하죠.”

겸손한 재마의 대답에 CP는 흐뭇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먼저 도착해 있는 국장의 표정이 밝지는 않은 것이 CP의 눈에 들어왔다.

윗선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 수 없지만, 국장은 지난번부터 박상도를 이야기했으니 당연한 모습일지 몰랐다.

자신도 웬만하면 국장 편을 들어주겠지만, 반복되는 의학 예능에서는 새로운 얼굴을 필요로 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국장님, 먼저 질문하시죠.”

“그럴까?”

예능 국장은 자신이 준비해 둔 질문지를 훑으며 안경을 끌어 올렸다.

“이재마 원장님, 아직 경력이 채 1년이 되지 않았는데, 자신의 실력이 공중파 방송에서 전국적으로 방영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습니까?”

국장의 질문을 들은 정 PD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박상도와 이재마를 견주어 비교할 만한 것이 경력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 국장의 속뜻이 고스란히 읽혔기 때문이었다.

“제가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직접 환자분들을 마주하면서 가장 들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재마는 오히려 국장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젊은 한의사, 그래서 실력도 당연히 부족할 한의사. 내 몸을 진짜 맡겨도 되냐는 소리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말에도 굴하지 않고 지난 6년 동안 수련해 온 경험과 제 자신을 믿고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처음 몇 주간은 당연히 스스로에게 실망도 하고, 제 실력을 저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상태일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곧 기우였다는 것을 제게도, 저를 찾아오는 환자분들에게도 정확히 각인시킬 수 있었습니다.”

재마는 자신이 한의사로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숨기는 마음 없이 털어놓았다.

인터뷰 시작부터 경력으로 그를 뭉개 버리려는 국장의 질문에 답하는 재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 PD도 CP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의학 예능을 시작할 때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에 대해 아시는 분이 늘어나고, 환자도 늘어났지만 분명 저를 모르시는 분들도 많이 보시겠죠. 하지만 저는 방송을 통해서 경력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아니라 제 한의학적 지식과 철학을 가지고 진료를 본다는 것을 각인시켜 드릴 겁니다.”

재마의 대답에 흡족한 얼굴을 한 CP가 입을 열었다.

“한의사 패널 후보로 박상도 대표님이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죠?”

“네.”

“다소 짓궂은 질문이라는 것 알고 있지만, 혹시 대선배님과 비교가 된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재마에게 박상도와 비교가 된다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은 분명할 것이었다.

CP는 이재마와 박상도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지키고 있었지만, 젊은 패기로 가득 찬 이재마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오디션에 왔는지 궁금한 것이 사실이었다.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외조부께서 대를 이어 해인동의 작고 오래된 한의원을 물려받은 이후, 너튜브를 시작할 때도 한의원 이름과 제 이름을 걸고 봉사 활동을 시작할 때도 매번 저 스스로 물었습니다. 누군가와 비교했을 때 작아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무엇인가에 저 자신을, 명의 한의원에 도전할 때만큼은 누군가에게도 뒤처지지 않고 작아지지 않기로 마음을 다졌습니다. 물론 박상도 대표님은 정한 한방병원을 운영하시며 대한민국 최고의 한의사로 거듭나신 분이지만 명의 한의원의 대표원장으로서 저도 그 앞에서는 결코 작지 않은 존재라는 마음을 갖고 있을 겁니다.”

재마의 패기와 열정이 담긴 한마디 한마디가 CP와 정 PD는 물론 예능 국장에게도 와닿았다.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습니다.”

CP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PD 출신인 세 사람과 나란히 앉아 있던 메인 작가가 이제야 자신의 질문 차례가 돌아왔다는 듯, 목을 가다듬고 질문을 시작했다.

“이 원장님이 예능국에 오신 이후에 바쁘셔서 인사를 못 드렸었네요. 새 의학 예능 메인 작가를 맡은 이정은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정은이 입을 열자, 유리 파티션 너머로 이재마의 인터뷰를 지켜보고 있던 작가 팀들이 자신들도 궁금했던 것을 묻고 싶은 양, 귀를 기울였다.

“원장님의 너튜브 채널이 개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꽤 인기를 받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공중파 방송과 너튜브 채널의 운영방식은 차원이 달랐다.

너튜브 채널의 파급력이 세지면서 방송작가나 방송 PD를 해오던 실력 있는 경력자들이 너튜브로 넘어간다 해도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주변만 봐도 새 프로젝트는 너튜브 채널 회사와 계약을 맺고 이직을 하는 작가들도 더러 있었다.

방송국에서 나름 이름을 날리고 시청자들에게도 각인시킬 만한 작품을 해왔다고 하더라도 실패하는 경우도 다수였다.

“글쎄요. 이 부분은 제가 답변하기는 조금 힘드네요. 저는 최선을 다했고 초짜 실력의 편집자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두 사람 머리에서 나온 이야기로 꾸려 나가는 영상들이라서요. 지극히 평범한 환자들과 평범한 한의사의 이야기인데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지극히 평범한 한의사의 이야기이지만, 언론에도 이제 소개도 되고 꽤 유명해지셨어요. 달라지신 점은 없나요?”

재마가 너튜브를 시작했지만 원치 않았던 이유로 시사프로그램에도 언급되었었고, 명의 한의원 스토리로 아침방송에도 소개가 됐었다.

너튜브뿐 아니라 이제는 TV 시청자들에게도 소개가 됐다는 점인데 그의 사생활이나 한의원에 영향이 분명 나타나고 있을 것이었다.

“처음에는 환자도 늘고, 알아보시는 분들도 늘었었습니다. 덕분에 평소에 한의원을 찾아오시는 단골 손님들이 불편을 겪으셨었죠.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호기심에 한의원을 찾아오셨던 분들도 처음에 비해 줄었고, 저를 정말 필요로 하는 환자분들이 오신다는 생각으로 쉴 틈 없이 바쁜 순간에도 한의사인 저도, 직원들도 최선을 다해 진료를 보고 있습니다.”

새 의학 예능을 시작한다면 예전에 겪었던 정신없는 순간을 다시 한번 느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재마뿐 아니라 명의 한의원의 직원들도 한의원을 찾아오는 환자분들 모두 완치를 향한 간절한 마음을 갖고 찾아오신다는 생각에 단 한 가지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최근 진료를 보시며 어려운 순간이 있으셨나요?”

“최근뿐 아니라 한의사를 해오며 어려운 순간은 매번 닥치는 것 같습니다. 그중 가장 최근에는 팔순이 넘은 노부를 모시고 오신 보호자분과의 상담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치료보다도 환자 보호자와의 상담이 가장 어려웠다는 이야기에 앉아 있던 평가자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어 재마를 바라봤다.

“한의원을 찾는 연령층이 높다 보니 환자보다는 보호자와의 상담이 잦습니다. 또 연세가 많은 환자분들은 아무래도 치료 의지가 젊은 환자들에 비해 다소 낮습니다. 세월이 지나오며 점점 예전 같지 않은 건강상태, 치료를 해도 낫지 않은 건강. 점점 자신 스스로가 작아지고, 가둬두게 됩니다. 이런 환자를 보호자와 함께 치료 의지를 북돋아 주는 것이 한의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보다 어렵네요.”

생각지도 못했던 답변에 메인 작가 정은은 안경을 벗고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하지만 노령을 탓으로 환자가 아닌 보호자가 치료를 시도할 자신이 없는 경우 보호자를 설득하는 것도. 치료 의지를 북돋아 주는 것도 모두 한의사의 몫이 됩니다.”

며칠 전 정팔의 병명이 파킨스 병이라는 것을 듣고는 좌절하던 연실의 얼굴을 재마는 떠올렸다.

노령의 아버지를 해인동까지 모시고 온 것도 힘들었는데, 앞으로 파킨스 병인 아버지를 돌보며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에 자신이 없어 하는 연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이미 오십 대 중반이 되어 이미 많은 책임감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연실에게 노부의 치료라는 책임까지 짊어져야 한다고 재마의 입으로 말을 해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던 그였다.

하지만 재마는 최근 자신을 찾았던 외국인 파킨스 병 환자인 페트릭과 파킨스 병인 아버지의 보호자가 된 연실을 통해서 자신이 더욱 의학 예능에 최선을 다해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뿐 아니라 많은 의사, 한의사분들도 느끼실 겁니다. 방송을 통해서 병에 대한 정보, 그리고 치료의 목적을 정확하게 알린다면 저뿐 아니라 같은 처지에 놓인 한의사, 환자, 보호자들이 흔들렸던 마음도 다잡으실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의학 예능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힘들었던 순간의 질문에 재마는 자신의 환자 사례를 통해서 방송에 임하는 자세까지 완벽하게 대답을 해낸 재마의 모습에 국장마저 혀를 내둘렀다.

국장을 제외한 스텝들과 유리 파티션 너머의 다른 직원들까지 모두 재마에게 푹 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국장은 인터뷰를 마친 재마에게 다가가 악수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아직 박상도와의 인터뷰는 남아 있었지만, 스텝들 모두 이재마와 방송을 하길 원한다면 자신이 국장이라도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박상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인터뷰하려고 모셨는데, 저희가 배운 게 많네요.”

CP는 꽤 흡족한 얼굴로 재마와 악수를 했다.

“정말요. 단독으로 원장님과 프로그램 하나 만들고 싶을 정도인데요?”

“어허. 이러다 이 작가 아예 ‘환자를 읽는 한의사’ 채널로 옮긴다는 것 아니야?”

면접 이후, 이재마라는 한의사에게 푹 빠져 있는 듯한 정은의 얼굴을 본 CP는 정말 정은이 이직이라도 할 것 같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물었다.

“정말 그럴까요? 원장님 작가 안 필요하세요?”

정은은 CP의 말에 정말 그러겠다는 듯 물었다.

“아직 저희 채널은 작가님을 모실 정도로 대단한 곳이 아니라서요.”

“에이. 이렇게 대단한 분을 저희가 모시는 만큼, 채널도 승승장구하겠죠. 나중에 기회 되면 채널 이야기도 한번 해주세요.”

“이 작가. 우리 프로그램에도 작가가 꼭 필요해. 알지?”

CP는 자신과 함께할 이정은 작가를 놓치기라도 할 것 같은 불안함에 정은의 손을 와락 잡아끌었다.

“오늘 수고하셨고, 결정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훈훈하게 인터뷰를 마무리한 재마와 스텝들은 서로 인사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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