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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114화 (114/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114화

“엄마!”

강산은 고향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으로 달려갔다.

어머니가 입원해 계시는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를 외치며 문을 여는 강산의 눈에 그 새에 더 늙고,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엄마가 침상에 누워 있었다.

“여기까지 올 필요 없대도. 공부하느라 요즘 바쁘잖아.”

거의 1년 만에 얼굴을 보는 아들이라 어머니의 표정은 뭐하러 왔냐는 이야기와 다르게 화색이 되었다.

문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좋지 못한 컨디션에 하얗게 질려 수액을 맞고 있던 그녀였지만 금세 생기가 돌았다.

“공부가 대수야?”

“대수지, 그럼. 작년에 떨어졌으면 올해는 붙어야 할 것 아니야. 아버지도 말은 안 하셔서 그렇지 걱정하셔.”

어머니는 먼 길을 뭐 하러 내려왔냐고 이야기를 하시면서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강산의 손이며, 얼굴을 매만지셨다.

올해도 시험이 끝날 때까지 얼굴 한번 못 보고 지나치나 했던 아들인지라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외아들인 강산이 서울로 한의학과를 가면서 종강을 해도 한의학 수련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마음껏 눈에 담기도 힘들었던 시간들이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는 어디 계셔요?”

“어디 계시기는 한의원에 계실 시간인데…… 아, 나도 이러고 여기 누워 있을 게 아니라 오늘도 해야 할 일이 천지인데 큰일이다…….”

어머니는 출근을 하자마자 자신이 쓰러져서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온 것이 마음에 쓰이는지, 얼굴이 어두워졌다.

당장 한의원에 직원도 간호조무사 한 명뿐이다. 둘이 하던 일을 홀로 하느라 진땀 꽤나 빼고 있을 것이 눈에 훤했다.

몸이 편치 않아 병원에 누워 수액을 맞으면서도 마음은 한의원에 가 있는 정심이었다.

“지금 시골 코딱지만 한 한의원이 문제야? 엄마가 아픈데? 검사는? 다 받았어요?”

한평생 가족보다 작은 마을에 개원한 한의원 운영에 몰두를 했던 아버지였다.

자신이 뒷전인 것도 참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매일 아버지보다 일찍 출근을 하고 더 늦게 퇴근하는 어머니가 쓰러졌는데도 병원에도 함께 오지 않고 진료를 보고 있다는 말에 강산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네 아버지 성정 모르니, 자신이 하나하나 진료 보시고 신경 쓰셔야 하는걸. 그리고 오늘도 엄마가 한의원 출근도 하기 전에 벌써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었어. 그런 분들 댁으로 돌아가시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메는 아버지가 한의원에서 정상 진료를 하는 것이 당연하고, 본인도 마음이 편하시다 이야기를 했다.

“쓰러져서 받아야 할 검사는 다 받았어. 이제 결과만 기다리고 퇴원하면 돼.”

정심은 아들의 흥분한 목소리에 그를 진정시키듯 차분하게 대답을 했다.

자신의 아들이었지만 자주 보지 못하는 아들인지라 화를 내면 어쩔 줄을 모르는 어머니었다.

“퇴원은 무슨, 며칠 한의원 출근 하지 말고 병원에서 푹 쉬세요.”

“푹 쉴 일이 뭐 있어. 얼른 가야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정심이 없으면 환자 접수부터 청소, 강 원장의 식사 해결, 그리고 많게는 가끔 들어오는 탕약 제조부터 약재 발주까지 한의원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버지도. 지금 한의원이 문제예요? 엄마가 쓰러졌는데, 보호자 한 명 없이. 나도 안 왔으면 정말 보호자도 없이 병실에 엄마 혼자 있는 거잖아.”

강산은 화가 나서 화를 내고 싶었지만, 그 순간에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별일이 아니라는 듯 눈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엄마의 시선에 화도 내지 못했다.

직접 어머니의 상태를 들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내가 주치의 만나고 올게요. 여기 계세요.”

강산은 엄마에게 주치의를 만나고 오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병실을 빠져나왔다.

병실을 나온 강산은 나오자마자 병원 복도에 몸을 기대었다.

초라해진 어머니의 모습도, 작은 한의원을 운영하며 제 가족 하나 돌보지 못하는 아버지도, 그런 아버지처럼 되기 싫다고 한의사라는 직업을 목전에 앞두고 방황을 했던 자신도 모두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문에 있는 작은 창으로 비치는 어머니의 가녀린 어깨를 보니 당분간 서울로 올라가는 것은 미루고 어머니가 걱정하는 한의원 일을 본인이 돌봐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자신과 맞지 않는 아버지와 함께하는 그 시간들이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쉬실 수 있게 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을 것 같았다.

* * *

“원장님, 안녕하세요. MBX에서 의학 예능을 맡게 된 PD, 장성호입니다.”

성호는 작가들이 출연자 후보로 두고 있는 해인동 명의 한의원을 찾아왔다.

총 6명의 패널들을 출연시키기로 한 제작진들은 과별로 2~3명의 후보를 두고 인터뷰를 할 계획이었다.

직접 후보들을 만나보고 출연 의사를 물을 생각인 장 PD는 가장 먼저 명의 한의원 이재마를 찾아왔다.

작가들이 후보로 선정한 이후 너튜브 채널을 둘러보니 가장 호기심이 가는 인물이었다.

젊은 나이, 5대째 이어오며 최근 문화재로 지정된 한의원을 운영, 정기적인 봉사 모임을 운영해 오는 것. 무엇하나 빠질 것이 없는 모든 환자들이 원하는 한의사가 바로 이재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네. 안녕하십니까.”

미리 찾아오겠다는 연락을 받았던 재마는 진료실로 들어서는 성호를 자리에서 일어나 반겼다.

언론에 소개된 것보다 실제로 만나보니 더욱 젊어 보이는 재마의 외모에 장 PD는 흠칫했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성호는 지난번 아침방송 촬영을 하고 갔던 정성주 PD만큼이나 스트레스를 받고 수면이 부족한 상태라는 것이 동공을 읽기 전부터 재마의 눈에 들어왔다.

“지난번 아침방송에 나온 명의 한의원 이야기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 한의원 소개를 담당 PD님께서 워낙 잘해주셔서요.”

방송 이후, 방송을 잘 봤다고 인사를 받는 경우가 많아 재마는 정 PD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급하게 촬영하고 편집을 하느라 시간이 없었을 텐데, 많은 사람들에게 명의 한의원을 더 알리는 좋은 기회였다.

타 방송국이었지만, 재마에 대한 것은 모두 찾아본 성호가 최근 방송된 방송을 안 봤을 리가 없었다.

최근 한방병원과 한의원들의 불미스러운 일들을 저지 시킨 것이 명의 한의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늘은 다름 아니라, 저희가 새로운 의학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는데 원장님을 패널로 모시고 싶어서 직접 찾아왔습니다.”

“패널로요?”

“네. 2주에 한 번 정도 스튜디오 촬영이 있습니다. 출연하시면 원장님께서 5대째 이어오는 한의학에 대한 소신과 철학을 더욱 시청자들께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제안드리고 싶습니다.”

‘환자를 읽는 한의사’ 채널을 잠깐 둘러만 보아도 젊은 한의사로서의 책임감과 소신이 고스란히 담긴 영상이라는 것을 장 PD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가장 호기심이 가는 인물이 이재마였다.

앞으로 이번에 구상 중인 의학 예능뿐 아니라 다른 프로그램을 통해서라도 이재마의 소신과 철학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의욕이 생길 정도였다.

“철학과 소신이라 말씀하시니 조금 거창하네요.”

“아니요. 원장님의 채널로 충분히 철학과 소신이 있는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저 서울의 작은 한의원을 운영하는 한의사일 뿐입니다. 사실 저희 외가에서 4대째 운영하신 한의원이었지만, 제가 운 좋게 물려받았을 뿐입니다.”

재마는 숨김없이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원장님과 이야기를 하면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꽤 나오겠는데요. 한의원을 맡게 되신 과정이라던가…….”

“저희 한의원 대기실에 잠깐 앉아 계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감사하게도 발걸음해 주시는 매일 보는 환자들과 가끔 새롭게 찾아주시는 환자들을 진료를 보며 지내고 있습니다. 여기 오시는 분들도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고요.”

“사실 의학 예능도 대단한 분들을 모시는 건 아닙니다. 저희 프로그램을 시청해 주시는 분들도 평범한 소시민이시니까요.”

장 PD는 자신의 끓어오르는 의욕에 재마가 부담을 느꼈을까 봐 잠시 얼굴을 붉혔다.

의욕이 앞서면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동시에 겉 포장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이재마라는 사람의 본 성격이라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앞으로 그와 함께하려면 그뿐 아니라 다른 제작진들도 알아둬야 할 중요한 부분이었다.

“음…….”

재마는 자신에게 충분히 좋은 제안인 것은 알고 있지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지금 재마가 진행하고 있는 봉사활동을 격주로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매 회차 참여를 못 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곧 2호점을 내겠다는 이야기도 직원들에게 해놓은 상태였다.

모든 것을 해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스케줄이었다.

“아, 한 가지 알아두실 점이 있다면…….”

장 PD는 자신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혹여 실례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국장이 미리 내정해 둔 박상도의 이야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출연 확정 전에 저희 PD들, 국장님과 함께 인터뷰 진행을 한 번 하셔야 합니다.”

“후보가 있나 보네요?”

재마는 방송국에서 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기까지 얼마나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기에 물었다.

“네. 저희도 아무래도 방송을 시청자들에게 내놓기까지 출연자들에 대한 검증을 수차례 해야 하거든요. 사실 검증을 한다고 해도 잡음이 있게 마련이지만요.”

“혹시 다른 후보는 어떤 분이신지…….”

“한의학 쪽으로 패널 한 명은 모실 예정이고요. 한의사 후보로는…….”

장 PD는 잠시 뜸을 들였다. 박상도의 이름이 재마에게 충분히 부담으로 느껴질 만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한 한방병원 박상도 대표님이십니다.”

“아…….”

재마는 박상도의 이름이 나오자, 재마는 그저 아, 하고 짧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혹시 두 분이 친분이 있으십니까? 아무래도 이것도 경쟁이라 두 분이 친분이 있으시면 불편하실 수도…….”

장 PD는 혹시라도 있을 일을 미리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박상도와 이재마의 관계를 물어볼 필요를 느꼈다.

“괜찮습니다. 없습니다.”

친분은커녕 오히려 불편한 사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사이인지라 재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좋습니다. 원장님만 결정 주시면 되겠군요. 저희 PD들과 작가들도 이재마 원장님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 팬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예요.”

“감사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재마는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박상도와의 만남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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