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112화
처치실 2로 안내 받은 페트릭은 커튼 안쪽 베드에 누웠고, 곧 처치를 할 원장인 재마가 들어왔다.
막상 한의학을 경험해 보겠다고 한의원까지 찾아왔지만 외국인으로서 낯선 타국의 의학을 경험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패트릭은 진료실보다 조금 긴장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패트릭,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습니다.”
외국인이었지만, 한국에서 직장을 다닌 지 꽤 되었는지 꽤 능숙한 한국어로 재마와 소통했다.
낯선 곳을 통역 없이 찾아온 것만 봐도 한국어에 얼마나 능한지 예상할 수 있었다.
“침, 맞아 보신 적 있습니까?”
낯설어하는 외국인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긴장을 풀 수 있도록 재마는 차근차근 진행을 하기로 했다.
설명 없이 침술을 진행했다가 갑작스러운 치료에 당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놉, 처음입니다.”
패트릭은 어색하고 당황한 미소를 지으며 재마의 손에 들려 있는 침을 바라봤다.
“제가 패트릭의 증상에 자극이 필요한 혈 자리에 침을 놓고 순환이 원활하게 되도록 할 겁니다. 경험하기 전에는 겁이 날 수 있지만 생각보다 아프지 않으니 힘 빼셔도 됩니다.”
재마는 긴장을 해서 잔뜩 움츠린 패트릭의 어깨에 힘을 뺄 수 있도록 했다.
“하하. 예스. 힘을 빼 보겠습니다. 미리 Mr. Jeong에게 이야기를 듣고 충분히 이미지 메이킹 하고 왔는데, 쉽지 않습니다.”
패트릭은 긴장한 마음이 좀처럼 마음처럼 되지 않는지 어색한 웃음소리를 내며 어깨를 털었다.
한의학을 처음 경험할 상사에게 침술에 대해 영원이 설명을 한 모양이었다.
좀처럼 쉽게 경험하기 힘든 치료이기에 재마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겠습니다.”
재마는 먼저 패트릭의 어제혈(魚際穴)에 침을 놓았다.
“괜찮습니까?”
긴장을 한 패트릭에게 가장 먼저 들어간 침이 괜찮은지 물었다.
두 눈을 질끈 감았던 패트릭은 막상 침이 들어갔지만 생각만큼 강한 통증이 없는 상황에 안도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습니다. 좋아요.”
“네. 그럼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상완근이 위축되어 있을 때 자극이 필요한 혈 자리를 자극하며 상완 이두근까지 침을 놓자 패트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손에 힘이 빠지거나 힘이 들어가지 않아 가장 고민이 되었던 그는 침이 들어간 것만으로도 벌써 힘이 들어가는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재마는 침술과 동시에 근에너지 기법(MET)으로 근위측 증상을 완화 시킬 수 있도록 임시로 근육을 풀었다.
“패트릭, 오늘 치료는 상완근 상체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불편할 때 진행하는 치료를 했습니다. 이 치료는 보통 세 번 정도 했을 때 효과가 나타나는데 임시적인 방법일 수 있으니 꾸준히 진행하셔야 합니다.”
재마의 설명에 패트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긴장하고 겁을 먹었지만 왠지 모를 좋은 기분에 앞으로 치료가 기대되는 느낌이었다.
재마도 서양인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처음이었지만, 평소 자신이 치료해 온 환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치료에 임하려고 했다.
물론 서양인과 동양인인 한국인의 체격도, 체질도 다른 만큼 같은 병이어도 진행속도나 나타나는 양상이 다른 것도 충분히 이해해야 했다.
재마는 자신이 다른 한의사와 달리, 진맥뿐 아니라 동공으로도 환자의 병을 읽을 수 있다는 재능이 있는 만큼 더 정확히 패트릭의 병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앞으로 자신의 눈이 읽은 패트릭의 상태를 어떻게 호전시키는지는 재마에게 달려 있었다.
“패트릭. 치료가 끝나면 간호사가 와서 침을 제거해 줄 겁니다. 그 이후 물리치료까지 받으면 오늘 치료는 끝납니다.”
침술을 마친 재마는 직접 탕약실로 자리를 옮겼다.
명의 한의원을 운영하며 바쁘지만 탕약만큼은 아직까지도 자신이 홀로 신경 쓰고 있었다.
탕약실에 들어오자마자, 재마는 단삼을 찾았다.
-단삼 : 간병변을 개선하며, 간이상 요인 증가를 억제. 붉은 탄사논은 혈전을 없애며 혈액 순환에 도움.
단삼뿐 아니라 재마는 작약, 감초, 정제부자, 강황, 청마 등 한약 재료를 차례대로 준비했다.
보통 퇴행성 뇌 질환 치료로 사용하는 탕약에 들어가는 재료들이었다.
9가지의 재료들이 만나 신경세포 보호와 활성산소 생성을 억제하는데 효과만 제대로 낸다면 뇌 질환의 속도를 늦추고 증산을 개선시키는 데 충분할 것이었다.
재마는 모든 약재들을 패트릭의 체질에 맞게 계산 후, 탕약기에 얹었다.
자신을 믿고 찾아온 환자인 만큼 책임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 * *
MBX 방송국 회의실.
새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회의를 진행하는 CP와 PD들, 그리고 구성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지금까지 전작 의학 예능들이 꽤 높은 시청률을 가지고 있는 건 모두들 알 겁니다. 그만큼 국장님도 새 프로그램에 기대가 커요.”
CP는 앞으로 프로그램을 함께 이끌어갈 구성원들 앞에서 입을 열었다.
새 프로그램을 들어간다는 건, 새로 시작하며 기대와 설렘도 컸지만 그만큼 부담을 갖게 하는 순간이었다.
처음 모인 구성원들이 첫 회의인 만큼 첫 단추를 잘 껴보고자 긴장한 얼굴들이었다.
“네. 저희 작가들도 새 프로그램을 구성하면서 부담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번에 새로운 얼굴을 캐스팅하는 건 어떨까요?”
메인 작가인 김솔미는 지난번 작가 회의에서 나온 인물들을 CP에게 제안할 생각이었다.
프로그램의 취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어떤 인물을 섭외하냐였다.
앞으로 프로그램의 얼굴이 될 인물들이니 후보군들을 몇몇 뽑아 충분히 회의를 거쳐서 온 작가들이었다.
“SNS에서 핫한 젊은 의사들이 몇몇 있습니다.”
SNS에서 핫한 의사들이라는 말에 CP는 큰 기대감이 없는 듯 안경을 벗고 일단 이야기해 보라는 제스처를 했다.
“별스타그램에서 40만 팔로우를 가지고 있는 성형외과 전문의 양세훈, 너튜브에서 의학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강형진, 한의학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이재마. 정도로 추려봤습니다.”
“아, 저도 알아요. 양세훈 팔로우 했어요.”
막내 PD인 지정은은 반가운 듯 손을 번쩍 들었다.
별스타그램에서 수려한 외모에 대한민국 최고의 학벌, 거기에다 의사라는 직업까지 꽤 많은 여자들의 선망의 대상인 양세훈을 팔로우하고 있었다.
스케줄에 쫓겨 잠도 푹 자지 못하는 정은이었지만 별스타그램을 들어갈 때마다 세훈의 인스타를 보는 것은 빠뜨리지 않았다.
“거, 지난번에 꽃중년이네 뭐네. 방송 시작하자마자 팬클럽까지 만들어졌던 내과 의사 기억 안 납니까? 한참 프로그램 시청률 올라가고 안정적이게 되었을 때 불륜 스캔들 터져서 프로그램 하차, 폐지 운동을 하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밑에서 근무하는 정은이 눈치도 없이 잘생겼다는 이유로 반기는 상황에 CP는 그녀를 섬뜩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얼굴에 미소를 한가득 가지고 있던 정은이 손을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CP는 못마땅한 얼굴로 펜대를 돌렸다.
“그건 인터뷰해 보면서 충분히 검증해 보면 되지 않을까요?”
“사회적으로 물의 일으키는 사람들이 스스로 나 문제 있다 하는 것 봤습니까? 인터뷰하면서도 철저히 숨기면 힘듭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르는 게 이쪽 일이니까.”
십수 년 방송일을 하며 지나친 사람들을 생각하니 고개가 절로 가로 지어지는 CP였다.
이미 사람들에게 당할 대로 당해봤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 한의학 채널 있잖아요.”
“이재마 원장이요?”
작가들이 뽑아본 인물 중 궁금한 인물이 있는지 PD 한 명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이번엔 또 무슨 소리를 할 거냐는 듯 CP가 그를 바라봤지만, 김 PD는 자신의 뜻을 이어 말했다.
“저도 그 채널 잘 보고 있는데, 그분은 이번에 아침 방송에도 출연하시고 너튜브에서도 악플보다는 선플도 많고 출연 제안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김 PD는 정세훈이 악플이 많을 것 같다는 CP의 추측에 안 된다면, 이재마는 문제가 없다는 뜻이었다.
“한의사는 정해졌어.”
“네?”
CP는 작가들과 PD들 앞에서 미리 준비한 스크립트를 훑으며 무심히 말을 했다.
“아니, 저희랑 상의도 없이 출연자 결정이 되었다고요?”
메인 작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정한 한방병원 대표 있잖아. 박상도. 그 사람이 출연할 거야.”
CP는 이미 정해진 출연자이니 토 달지 말라는 듯 못을 박았다.
“CP님 안 돼요. 그분 지금 이슈도 있는 한방병원 대표인데 프로그램 첫 시작부터 악플 대동할 일 있어요? 안 됩니다.”
“안 되기는. 위에서 하라고 하면 해야지. 위에서 이미 결정해서 내려온 지시사항이니까…….”
CP는 막무가내로 진행하라고 미리 지시를 했던 국장의 지시에 생각을 바꿀 뜻이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프로그램 만들 사람들은 저희인데 그렇게 결정하시고 통보하셔서는 안 되죠.”
메인 작가는 물러설 수 없다는 듯 대답했고, 그 옆에 있는 작가들도 자신의 수장인 메인 작가의 뜻을 따르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박상도만큼 인증된 인물이 어디 있나? 그 정도 스캔들은 경쟁 병원에서 일부러 흘린 걸 수도 있고.”
조금 전 이슈가 있는 인물은 안 된다고 못 박았던 것과는 다른 행태를 하는 CP였다.
메인 작가는 PD들을 향해서도 얼른 거들라는 듯 눈짓을 했지만 PD들은 자신의 직속 선배인 CP의 뜻을 쉽게 거스를 수 없는지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죠. 다른 출연진도 몇몇 추려서 인터뷰하고 결정하는 거로.”
“거 참, 한의학 쪽은 박상도가 나오기로 했는데 굳이 경쟁을 시키겠다는 거야? 박상도 그 양반이 다른 젊은 한의사랑 경쟁 구도로 결정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
“그럼 지금 한의학의 신뢰가 떨어졌다고 말할 정도인 이슈의 중심에 있는 인물 출연시킨다고 첫 시작부터 폐지 요구 나오면 어쩌시려고 그러세요?”
강하게 주장하는 메인 PD의 행동에 CP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인터뷰 준비하고. 인터뷰 후 결정하는 거로 해.”
메인 작가 없이 프로그램 시작을 할 수 없으니, 일단 그들이 바라는 대로 인터뷰는 진행해야겠다는 뜻을 국장에게 전할 생각이었다.
CP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빠져나가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작가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정한 한방병원 이슈, 잠잠히 지나가는 것 같기는 한데 또 몰라요. 다른 쪽에서 다른 거 터지면 뒤에 무엇이 있을지.”
“맞아요. 한의학 협회에서 정한 한방병원을 밀어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시청자들 여론은 그렇지 못할 테니까요.”
작가들은 PD들을 향해, 어떻게든 박상도의 출연을 막아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PD들은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방송국 내부에서 돌아가는 생태를 이미 잘 알기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