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107화
정한 한방병원 비서실의 연락을 받고 오래간만에 집 밖을 나와 모인 원로들이 서로를 반기면서도 요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에잉. 요즘 흉흉해서 원. 집에만 앉아 있을 수 있어야지.”
“너튜브고 뭐고. 그게 뭐라고 다 이 난리인 겨. 한의학은 근본이 있는 학문인데 몇 마디에 그렇게 흔들리는 게 말이여. 방구여.”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둘러앉아 요즘 뉴스를 떠들썩하게 달구고 있는 대형 한방병원 스캔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혀끝을 내찼다.
“솔직허게. 우리 박상도 대표가 아니었으면 한의원이 동네 의원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정형외과 안 가고 찾아오고 하겄어?”
“그러니께. 항상 케케 묵은 병원으로만 생각하고 거 뭐여. 트렌드. 트렌드가 생겼잖어. 깔끔하고 번듯하게 건물 올리고 디스크에도 수술 안 하고 비수술 방식으로다가…….”
똑똑.
입에 침이 마르도록 박상도를 칭찬하던 어르신들은 노크 소리와 함께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자신들을 불러준 주인공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우리 박 원장 왔어.”
“박 원장은 박 대표가 된 지가 언젠데. 박 대표. 요즘 신경 쓸 일이 많재? 그렇게 신경 쓸 일이 많은 데 우리꺼지 챙길라고 이렇게 불러주고 고마우이.”
박상도가 모임 장소로 들어오자, 박상도를 칭찬하던 원로 한의사들은 너도나도 박상도를 위로하는 한마디를 건넸다.
“아닙니다. 원장님들께 심려를 끼친 것 같아 한 분씩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것이 예의인데, 그러지 못해서 이렇게 자리를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상도는 원로 원장들을 볼 낯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박 대표. 고개 들어. 박 대표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다 아래에서 진행했던 일이라면서.”
“아닙니다. 대표로서, 그리고 한의사로서 많은 분들께 죄송한 마음입니다.”
“하이고. 아서요. 아서. 이렇게까지 할 일 아닝게.”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는 사죄를 하자, 원로들은 손사래를 쳤다.
“이런 일 가지고 큰일 하는 사람이 고개 숙이고 하는 거 아니요. 이번 일은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한번 방법을 모색해 봅시다.”
“그려 그려. 우리도 거들어야지. 뒷방으로 밀려났다고 잠자코 구경만 헐 수는 없으니까.”
원로들은 자신들이 할 일을 찾겠다는 듯 방법을 모색할 궁리를 했다.
“아닙니다. 오늘만큼은 제가 사죄의 의미로 모신 거니까 다른 걱정하지 마시고 편하게 드시고, 담소도 나누다 가세요.”
“박 대표나 걱정일랑 하지 마, 아주 얼굴이 까칠하고 안되었어.”
모두들 박상도가 한의학의 미래라도 되듯, 그를 다독였다.
* * *
“김 기자님이 오랫동안 준비한 일인데, 첫 영상만 올라가고 이렇게 되어서 참 안타깝습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저희 팀도 이제 힘이 쭉 빠져서요. 이렇게 정한에 뒤통수를 맞을 줄이야.”
김성은은 명의 한의원에 찾아와 재마가 건넨 쌍화차를 마치 술을 마시듯 캬 소리를 내며 마셨다.
두 번째 영상 공개가 무산되면서 이틀을 내리 쉬었지만, 쉬는 것이 쉬는 게 아니었던 성은은 속이 허한 느낌마저 들었다.
점심시간에 한의원을 찾아 빈속에 쌍화차를 마시니, 낮술이라도 하는 듯 속 안까지 뜨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하. 죄송해요. 제가 쌍화차를 너무 술처럼 마셨죠?”
성은은 민망한지 자신도 모르게 낸 소리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재마는 조금 전 성은과 눈을 마주치고, 그녀의 건강상태를 읽었을 때 평소와 다르게 피로 누적으로 몸이 쇠해진 상태인 것을 확인했다.
스트레스로 쇠해진 몸에 하루 종일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뇌가 쉽사리 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근데 안색이 많이 안 좋으시네요.”
“아, 제 안색이요? 요즘 잠을 좀 못 자서요. 원장님이 보시기에도 티 나시죠?”
성은은 괜히 민망한지, 양 볼을 마른세수로 문질렀다.
기자로서 이런 일이 한두 번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실망감과 패배감이 밀려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여기, 아마 이 탕약 드시면 잠도 잘 오고, 수면의 질도 올라갈 겁니다.”
“어머, 이렇게 받아도 되나요?”
재마는 자신이 달여 놓았던 수면에 좋은 ‘신조인탕’ 한 재를 성은의 앞으로 밀어놓았다.
쇠해진 기력을 더해주고 복잡한 마음을 진정시켜 줘 밤잠을 설치는 것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것이었다.
“저희 한의원을 위해서 직접 발로 뛰어주시는 데 이 정도는 해드려야죠. 잠은 인체에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뇌를 쉬게 하면서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라 꼭 질 좋게 유지해야 합니다. 아셨죠?”
재마는 잠이 보약이라는 듯, 잠을 잘 자야 한다며 성은에게 이야기를 했다.
“네. 감사합니다. 요즘 그렇지 않아도 뇌를 너무 많이 썼어요. 머리에 쥐 나는 것 같은데 이것도 잠을 못 자서 그렇죠?”
성은은 자신의 푸석푸석한 얼굴이 민망한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자신까지 챙겨주는 재마의 마음이 고마운지, 한약이 든 쇼핑백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원장님, 지난번에 인터뷰하셨던 이정우 선생님이요.”
“네.”
“인터뷰 요청 한 번 더 할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상황이 바뀌었으니 조금 더 구체적인 증언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재마는 양심고백을 한 정우에게 인터뷰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한 번 더 부탁해 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좀, 좀 더 구체적으로 홍보팀이 아니라 박연아가 움직인 정황을 알았으면 좋겠는데……. 박상도가 정한 한방병원 임원들과는 관계없다고 꼬리를 자르지 못하게요.”
“음…….”
재마는 고민스러운 얼굴로 정우에게 연락을 했고, 정우는 곧장 원장실로 찾아오겠다 대답을 했다.
잠시 후, 정우가 원장실로 들어섰다.
“이정우 선생님 안녕하세요.”
성은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추가 인터뷰가 가능하다는 정우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 뒤로 들어오는 다른 인영에 눈을 번쩍 떴다.
“이쪽은 저희 한의원 물리치료사이신 이효주 선생님입니다.”
정우는 자신을 뒤따라 오는 이효주를 소개했다.
효주는 김 기자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자기소개를 했다.
“정한 한방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근무하다 명의한의원으로 온 이효주입니다.”
“정한 한방병원에서 근무하셨다고요?”
정은은 뜻밖의 인물을 만난 탓에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네. 저도 인터뷰를 하고 싶어서요.”
“혹시 무슨 일이라도, 뭐 오너가의 갑질이라던가 그런?”
성은은 갑작스럽게 증언을 하겠다는 효주의 등장에 반갑기도 했지만, 그 이유가 궁금해 미치겠다는 얼굴이었다.
“박연아가 저를 명의 한의원으로 보냈습니다.”
“네?”
성은은 자신이 듣고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잠깐만요. 이효주 선생님이 이직하신 것이 본인의 뜻이 아니라 박연아의 뜻이었다고요?”
성은의 물음에 효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자신이 하는 지금의 고백이 명의한의원의 원장인 이재마, 그리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큰 실망을 안기는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기회가 영영 없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자신을 이렇게까지 하게 만든 박연아는 제 잘못이 없는 듯 지금처럼 제 세상인 양 살아갈 것이었다.
“네. 제게 명의 한의원으로 취업을 해서 이재마 원장을 지켜보고 보고하라고 사주했습니다.”
효주의 담담한 고백에 성은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허!’하고 탄식을 했다.
“제가 이직을 한 후, 매일같이 전화를 해서 이재마 원장의 동향을 보고해야 했고, 너튜브 채널 팀에 접근해서 그 과정을 보고해야 했어요.”
“그러니까 이재마 원장, 명의 한의원, 너튜브 채널까지 견제를 하려고 스파이를 심은 거네요?”
“네. 하지만 저는 박연아의 반복되는 연락에 괴로웠고 곧 불응했습니다. 제가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잘했어요. 아마 이효주 선생님이 계속해서 박연아에게 정보를 줬어도 좋은 꼴은 못 봤을 거에요. 일이 생기면 이효주 선생님에게 모두 뒤집어씌우려고 했겠죠.”
성은은 박연아가 하는 짓이 뻔하다는 듯 이야기를 했다.
“원장님, 이 인터뷰 나가려면 어쩔 수 없이 명의 한의원과 채널까지 공개가 될 수도 있는 데 괜찮으시겠어요?”
성은은 지난번 구독자들이 댓글로 정한 한방병원으로 좁혀가는 상황을 보아 이제 너튜브 세상에 익명으로 숨기는 쉽지 않다는 듯 말을 했다.
아마 이번에도 영상이 올라가면 밝혀진 정한 한방병원뿐 아니라 견제 대상이었던 명의 한의원도 찾기 위해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괜찮습니다.”
재마는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영상에는 박상철이 명의한의원 문화재 지정 방해에 직접 참여했다는 걸 밝혀야 할 것 같은데……. 상인분들 인터뷰도 가능할까요?”
직접 연관이 없는 상인들이 인터뷰해 줄지 모르겠다는 듯, 성은은 자신 없는 목소리를 내었다.
* * *
“이재마 원장님 도와드릴 수 있는 건, 내가 도와드려야죠. 무슨 일이어도.”
아직 병실에 입원을 해 있는 안 사장은 움직이기 힘든 허리에 힘을 줘,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려 애를 썼다.
그 모습에 성은은 괜찮다며 다시 안 사장이 편히 누워 있을 수 있게 도움을 줬다.
“근데 몸이 많이 편찮으신가 봐요.”
“그래도 이러기를 천만다행이죠. 이재마 원장님이 오셔서 바로 병원으로 옮겨주지 않았으면 부작용도 아주 호되게 찾아왔을 거래요.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안 사장은 이렇게 병원에 입원은 해 있지만, 자신이 최소한의 부작용 걱정만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듯 빙긋 웃어 보였다.
“사실 우리가 박상철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부추기는 것에 넘어가서 그 사람이 직접 다는 현수막에 아무 말도 하지 않기도 했고.
간담회장을 사람들 써서 뒤집어 놓아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 꾹 닫고 모른 체하고 있었는 데. 우리가 미울 만도 한데도 이재마 원장님은 안 그런가 보더라고요.”
“그래요?”
“기자님이 생각해 봐요. 기자님 집앞에 기자님 기사 반대한다면서 현수막 걸고 매일같이 보이콧한다고 입 꾹 닫고 있는 이웃들 보면 그 사람들한테 색안경 끼지 않고 행동할 수 있어요?”
안 사장은 그동안 이재마가 상인들을 어떻게 대해 줬는지, 성은에게 알려주었다.
“근데 원장님은 그런 게 하나도 없어. 그냥. 우리를 이웃, 그리고 사람으로 대해줄 뿐이지. 아니다. 환자. 원장님에게는 환자 그 이상도 아니라고 하셨어요.”
환자는 환자로 볼 뿐 개인적인 감정을 섞지 않게 제 본분을 다한 이재마 원장의 칭찬을 안 사장은 늘어놓았다.
“그러니까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건 도와드려야지. 내 인터뷰도 하고 해인동 상인들한테도 전화 넣어둘 테니까 가서 또 해요. 알았죠?”
안 사장은 자기만 믿으라는 듯, 성은에게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간 박상철이 자신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와 통화 목록을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