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106화
-며칠째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 진짜. 홍보팀 김 대리는 시키는 대로 했는데, 개인 SNS 계정은 털릴 대로 털리고 팀장은 책임지고 사표 쓰랬대.
-정말? 미친 거 아님?
-그 팀장이 대표 조카 맞지?
-그 있잖아. 홍보팀 미친X.
효주는 휴게실에 앉아 단톡방에 올라오는 글들을 쭉 읽고 있었다.
정한 한방병원 동기들이 병원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쉬쉬하며 단톡방에서만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언젠가 터질 일이었어. 나는 우리 병원 너튜브 알고리즘에 뜨는 것도 꼴 보기 싫더라니까.
-맞아. 그 홍보팀장 약혼자인가 하는 한의사만 계속 출연하면서 띄워주기 하고.
언젠가는 터질 일들이었다며 오히려 잘 되었다는 듯 이야기를 하는 동기들의 말에 잠자코 있던 효주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래도 그만둘 것도 아닌 데 조용하게 넘어가는 게 낫지 않아?
-어? 효주 언니다! 언니 오래간만이야. 언니 그때 그만두길 잘했지. 요즘 환자들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와서도 우리 불신하는 눈치고. 죽겠어.
-조용하게 넘어가기는 밝혀질 건 밝혀야지. 그래야 재발 방지가 되지. 괜한 직원만 자르면 재발 방지인가. 뭐.
어제 올린 박상도의 사과문에도 환자들은 물론 정한 한방병원 직원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언니는 어때? 언니네 한의원은 괜찮아?
-그래. 효주야, 오래간만에 네가 다니는 한의원은 어떤지 말 좀 해봐. 대형 한방병원 다닌다고 조용했는데 이렇게 뒤가 구린 줄 알았으면 안 다녔을 거야. 이제 어디 가서 정한 다닌다고 말도 못 하겠어.
동기들은 정한 한방병원에서 작은 한의원으로 이직을 하는 효주가 의아했지만, 지금으로서는 나은 선택이었다는 듯 물어왔다.
효주는 얼떨결에 떠밀려서 정한 한방병원에서 명의 한의원으로 왔지만 한 번도 후회를 한 적이 없었다.
더구나 박연아에게 괜한 꼬투리를 잡혀 끌려다녔던 것을 생각하면 그때 연락을 끊은 것이 훨씬 나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했다.
“효주 쌤. 점심 안 드세요?”
점심시간이 시작되었지만, 밥을 먹으러 가지도 않고 효주가 휴게실에서 나오지 않자 한의사인 이정우가 노크를 하고 고개를 빼꼼 들이밀었다.
전 직장 동료들의 단톡을 읽느라 점심도 먹지 않는 것을 들킨 것이 민망하기라도 한 듯 효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는 좀 생각이 없어서…….”
“에이. 정말요? 우리 밥 먹으러 가는데 같이 가요. 좀 들어야 오후에도 일하죠. 물리치료도 체력 많이 필요하잖아요.”
정우는 점심을 먹지 않고 넘기려는 효주에게 같이 가자고 설득했다.
효주는 정우가 자신처럼 정한 한방병원에서 퇴사를 하고 명의 한의원으로 옮겼고, 지난번 양심선언을 한 뒤로 쭉 마음에 찝찝함을 가지고 있었다.
“저기…… 이정우 선생님.”
“네?”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효주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정우를 불러 세웠다.
“지난번에 정한 한방병원 너튜브 조작에 대해서 인터뷰하셨어요?”
“아, 그거 인터뷰는 했는데…… 기자님 이야기 들어보니 어제 박상도 대표가 발표하면서 일단은 영상 올라가는 건 보류라고 하더라고요. 왜요?”
“아, 전 동기들 단톡방 이야기 들어보니 홍보팀 직원이 사표 냈다고 하더라고요.”
효주는 자신이 단톡방에서 들은 이야기가 마음에 걸리는지, 자신도 모르게 정우에게 털어놓았다.
“정말요? 홍보팀장이 그만둔 게 아니고요? 해당 직원 징계하고 재발 방지한다더니, 제 식구는 감싸고 괜한 직원만 자른 거네요?”
효주에게 홍보팀 김 대리의 소식을 들은 이정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정작 잘못을 한 사람은 처벌받지 않고 애꿎은 직원만 자른 모양이었다.
“혹시 인터뷰하셨던 김 기자라는 분, 연락처 받을 수 있을까요?”
“김 기자님이요?”
효주는 박연아의 압박에 정한 한방병원을 그만둔 사실을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지나갔다.
자신만 조용히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었지만, 자신 말고도 다른 직원도 박연아의 갑질에 회사를 그만둔 사실을 알게 되자 지금이라도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는 똑같은 일들이 분명 반복될 것 같았다.
* * *
시청 문화재팀 회의실.
몇 차례 명의 한의원 문화재 지정 담당인 강지영 주임과 미팅을 했던 일들이 이제야 마무리되었다.
지영의 손에는 주민 동의서와 문화재 지정 서류들이 들려 있었고, 무엇보다도 소중한지 지영은 한참을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원장님. 상인회장님.”
“별말씀을요. 저희 상인들 위해서 강 주임님이 힘써주셔서 상인들 동의도 빠르게 받을 수 있었죠. 감사합니다.”
문화재과의 강지영 주임과 명의 한의원 이재마 원장. 그리고 해인동 시장 골목 상인회장 윤 사장이 모여서 명의 한의원 문화재 지정을 위한 주민 동의서를 완성시키자, 지영은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지난번 간담회를 했을 때는 이대로 물거품이 되나 싶어 앞이 막막했는데, 다행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실타래가 풀렸다.
“상인회장님이 중립적인 입장을 굳건히 해주셔서 저희도 공무처리를 하면서 편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시장님도 감사하다는 말씀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에이. 나야 뭐. 해인동 시장 골목도 잘 되고, 우리 동네 오랫동안 지켜준 명의 한의원도 잘 되면 좋고 해서 그런 거지. 이번 일 하면서 우리 골목에 대해에서도 배운 것도 많고 명의 한의원 역사도 알게 된 것 같아 좋습니다. 상인들도 똑같이 말해요.”
윤 사장은 칭찬을 받는 것이 민망한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가장 힘들었던 주민 동의서가 완성되었으니 문화재 지정에 필요한 서류들은 모두 완성되었습니다. 원장님도 수고하셨어요. 현수막이 해결되니 상인들 마음도 금세 움직였고요.”
상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는 문화재 지정에 반대하는 현수막을 철거하는 것도 한몫했다.
현수막을 철거하며 반대에 강경했던 안 사장을 비롯해 다른 상인들도 의견을 수렴할 의지를 보였다.
더구나 상인들의 마음이 냉전 상황이었던 상황에서도 이재마는 신경 쓰지 않고 안 사장을 치료하기 위해 정육점으로 달려왔던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제 할 일을 한 건데요.”
재마는 항상 똑같이 상인과 환자들을 대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요즘 언론이 떠들썩하기는 하더라고요. 정한 한방병원에서 일반인에게 공개한 ‘병합경훈’은 문화재 지정하면서 기자회견도 하고 했는데……. 명의 한의원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지영은 명의 한의원이 문화재 지정이 되도록 애썼는데, 언론에 공개도 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게 아닌가 아쉬운 모양인지 입술을 씰룩였다.
몇 개월을 고생해서 준비한 문화재 지정이 잠잠하게 지나가면 명의 한의원도 아쉬울 테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한 지영과 팀원들도 서운했다.
“요즘 명의 한의원도 피해 받지 않나요? 한의학 불신이다 아니다 말이 많던데.”
“저희는 해인동 단골 환자들이 많은 편이라…… 멀리서 오시는 환자분들이 조금 줄기는 했지만 괜찮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한방병원에서 그런 일을 저질렀으니, 사실 문화재팀 내부에서도 말이 많아요.”
지영은 재마에게 목소리를 낮춰 자신이 팀원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수군거렸다.
“정한 한방병원에서 내놓은 ‘경합병훈’이 원래 정한 한방병원 대표가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소리가 있어요.”
“네?”
재마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들은 터라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던 고서가 공개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 원주인과 가족들이 공개에 반대를 해서 오래 걸렸는데 그 설득을 한 게 정한 한방병원이라고는 하더라고요. 그런데 기자회견에서는 마치, 정한 한방병원에서 보유하고 있던 문화재를 공개한 것처럼 밝혀져서…….”
“아…….”
재마는 무슨 소리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적으로는 뭐, 저희 문화재팀에서는 오랜 숙원사업을 끝낸 거라 좋긴 하지만 정한 한방병원에서는 병원 이미지를 만들려고 조작을 한 거니, 조작이다 아니다 말이 나오고 있죠. 사실 정한 한방병원이 지난번 기자회견을 하고 나서 직접적으로 매출로 연결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지영은 문화재 팀에서 하는 일은 문화재 지정이지만 문화재를 가지고 기업의 홍보수단으로 이용을 한 사실이 씁쓸한 모양이었다.
* * *
“박 대표, 홍보팀에 해당하는 직원은 사표 수리 되었고 박 대표가 발표한 사과문 덕분에 그래도 인정하는 모습이 대단하다, 앞으로 잘못이 반복되지만 않으면 된다, 하는 반응이니 이번 일은 이대로 지나가자고.”
박상철은 박상도의 대표실로 찾아와 눈치를 봐가며 입을 열었다.
지난번 김 기자가 찾아왔을 때 자신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영상이 게재되는 것을 막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한동안은 형님도, 연아도 조용히 계세요.”
“조용히 있기는 무슨 그런 섭한 말을 하나. 정한 한방병원을 위해서 한시라도 쉴 새가 없는데.”
“제발 가만히 좀 계시라고요.”
박상도는 이번 일로 정한 한방병원 이미지에 타격을 받은 것이 계속 신경이 쓰이는지 관자놀이 쪽을 꾹꾹 눌렀다.
박상철과 박연아가 또 무슨 일을 꾸미지는 않을지 신경까지 써야 하냐는 듯 신경질적으로 제발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해당하는 직원 사표 수리만 하면 됩니까? 해당하는 직원에는 연아도 포함인데요. 그럼 연아도 홍보팀장에서 물러나야 하는데 물러났나요?”
“아니, 그거야…… 그래도 연아가 박 대표 하나뿐인 조카인데.”
“그러니까요. 잠깐이라도 조용히 있어야 여론이 줄어들 것 아닙니까.”
박상도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박연아를 내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으로 알라는 듯 압박했다.
“박 대표.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한의사 협회를 조금 움직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한의사들이 지금 그 영상 하나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잖아. 한의학이 이대로 불신으로 자리 잡혀서도 안 되고. 자네가 협회장한테 이야기를 해서…….”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형님.”
박상도는 제 옆에서 또다시 자신과, 자신 딸의 잘못도 인정하지 않고 입을 놀리는 박상철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당분간 외부 일에는 신경 쓰지 마시고 내부 직원들 입단속이나 제대로 시키세요. 사표 냈다는 직원 입단속도 시키시고요.”
“아…… 알았네. 알았어.”
상철은 자신에게 잠자코 있기나 하라는 동생에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박상도는 어제 장창천을 움직여 협회 공식 발표를 했지만,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었다.
상철의 생각대로 한의사들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번에도 자신이 직접 움직이기보다는 판을 자신이 만들고 움직이는 것은 한의사들이어야 했다.
그때, 상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유 비서, 원로 한의사 명단 좀 뽑아와 봐.”
생각을 하던 박상도는 비서에게 원로 한의사 명단을 뽑아오라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