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105화
평소보다도 일찌감치 대표실로 나온 박상도를 보자마자 비서는 밤새 준비한 자료들과 박상도가 출근하며 지시한 내용을 보고했다.
“대표님, 이제 대형 한방병원에 대해 너튜브에서뿐만이 아니라 공중파 방송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에 제대로 색출할 모양입니다. 색출하여 직접 네티즌의 손으로 퇴출시키자는 여론몰이들도 있습니다.”
“아주 꼬투리 하나 잡으면 정의를 위해 뭐든 하는 뭐라도 되는 것처럼 굴지. 현실에서는 방구석에서 키보드들만 두드리면서. 협회장이랑 연락은 시도해봤어?”
“네. 근데 외부 일정이 많아서 식사하실 시간도 없다고…….”
듣도 보도 못한 너튜브 채널에서 대형 한방병원을 고발하는 영상이 나간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영상이 올라간 이후 물밀듯 올라오는 기사들과 한방병원의 배신이라며 해당 병원을 색출하겠다 밀려드는 댓글들이 상당했다.
모두들 지금까지 무조건 수술을 강요하는 병원보다는 비수술을 할 수 있다면 최대한 비수술로 상태를 호전시키는 한방병원을 가는 것이 낫다고 칭찬을 할 때는 언제고 결국엔 다 사기였다는 듯 몰아가고 있었다.
“일단 차 빼 오라고 해. 내가 직접 찾아갈 테니까.”
“협회로요?”
“이 시간에 협회장 출근도 하지 않았어. 집으로 갈 거야.”
박상도는 자신이 추천해서 협회장직을 연임까지 하고 있는 한의학협회장 장창선을 직접 찾아갈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지금 온 국민이 찾아내려고 혈안을 띄고 있는 대형 한방병원이 정한 한방병원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건 한순간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전에 정한 한방병원이 무너진다면 자신만 무너지지 않고 협회까지 흔들린다는 것을 장창선에게 알릴 생각이었다.
이대로 혼자만 죽을 수는 없었다.
한의사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아버지의 인맥으로 알게 된 장창선은 박상도와 똑같이 한의사 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한의학 면허만 간신히 따내고 한의원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던 인물이었다.
환자를 직접 만나기보다는 그저 아버지가 물려줄 한의원에만 관심이 있었던 그는 일찌감치 자신이 물려받은 한의원을 박상도에게 넘겨 정한 한방병원이 네트워크로 뻗어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줬던 인물이었다.
지금은 한의사 협회장직을 맡고 있지만 이미 임상에서 떠난 지 오래고, 명예로운 한량 자리에만 관심이 있던 터라 지금까지 박상도가 움직이는 대로 잘 따라와 주었다.
하지만 정작 어려움이 있을 때 연락을 피하는 모습을 보니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상도였다.
서초동 장창천의 아파트에 다다라 주차장에 오자, 처음 장창천이 아파트를 장만했을 때를 박상도는 떠올렸다.
-이야, 진짜 상도 네 덕이다. 내가 언제 이런 아파트에서 살아볼 줄 알았겠냐. 그냥 다 쓰러져 가는 2층 건물에서 한의원이나 하면서 위층에 살 줄 알았지.
-이게 다 정한 한방병원의 지점들이 뻗어 나갈 수 있게 밑거름이 되어준 너와 너희 아버지 덕이니까 부담 갖지 말고 잘 살아라.
-덕이라니, 덕은 내가 보는 거지. 제가 우리 대표 원장님 덕에 한의사 세 명이나 둔 원장이 될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하.
상도는 다 쓰러져 가는 빌딩에서 하루 종일 침이나 놓을 녀석을 원장 자리에 앉혀 한의사들에게 원장 소리 듣게 해주고, 결국에는 협회장까지 만들어 놓았다.
그랬더니 이제 와서 안면몰수 할 생각을 하는 창천을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주차장에서 창천이 몰고 다니는 외제 세단 앞에 차를 대놓고 기다리고 있던 상도는 곧 주차장 문이 열리고, 나타난 창천 앞에 제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차를 가로막은 검은 세단을 보자마자 인상을 구겼던 창천은 그 안에서 상도가 나오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이게 무슨. 박 대표. 이 아침부터 이렇게 찾아오면 어떡하나.”
“협회장이 바쁘다고 하니, 내가 직접 찾아와야지 어쩌겠어. 근데 바쁜 것 치고는 출근이 늦은 것 아닌가?”
협회장직을 맡고도 좀처럼 게으름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는 창천은 출근을 10시에 맞춰서 했다.
직접 발로 뛰며 한의원에서 한방병원, 대한민국 최고의 한방병원 네트워크를 이룩한 박상도와는 전혀 다른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아니, 뭐. 내가 바쁘기는 자네만 하겠나.”
“협회장님 비서가 협회장이 바빠서 날 만나줄 시간도 없다고 했다길래.”
상도는 퍽 서운했다는 듯, 창천에게 티를 냈다.
“아니, 우리 사이에 무슨 비서를 통해 연락을 다 하나 직접 연락하지 그랬어.”
창천은 손사래를 치며, 자신에게 직접 연락을 했다면 그럴 일은 없었을 거라면서 상도의 손을 잡았다.
“이렇게 집 앞까지 올 필요가 뭐 있나. 협회실에서 만나면 되지.”
“내가 지금 마음이 급해서 말이야.”
상도는 자신의 손을 와락 잡은 창천을 보아하니, 아직까지 자신이 창천을 손에 넣고 굴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당장 출근을 하자마자, 공식 발표 하나 해주게.”
“고…… 공식 발표?”
공식 발표를 부탁하는 상도의 말에 창천은 말을 더듬었다.
그렇지 않아도, 창천에게 어제저녁 보고를 한 비서가 정한 한방병원과의 관계에 있어 신중을 기할 것을 부탁받은 그였다.
“한의학을 모함하려는 세력의 루머로 한의사들이 고통받고 있으며 협회에서는 지켜만 보고 있지 않고 강력 대응을 하겠다고 말이야.”
“강력 대응?”
“법적 대응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도 빼먹지 말고.”
상도는 정한 한방병원이라는 것이 밝혀지기 전에 한의사 협회에서 박귀남의 채널을 고소할 것을 부탁했다.
“아니면 협회장으로서 한의사들이 사기꾼으로 몰려가는 걸 그대로 지켜만 보고 있을 텐가?”
“아니, 그건 절대 안 되지. 사기꾼은 무슨.”
“그 뒤로는 우리 한방병원 일은 우리가 알아서 처리하겠네.”
“그게 가능하겠나? 이미 많이 추려진 것 같던데…….”
창천은 정한 한방병원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쳐 나갈 생각인지, 상도를 떠볼 생각으로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어쩌겠나. 자를 것은 잘라야지. 내가 이대로 죽을 수는 없지 않나. 내가 죽으면 자네는 어쩌고.”
창천의 어깨를 꽉 쥐며 자신의 손에 달렸다는 듯 상도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 * *
첫 번째 영상을 만들면서 3일을 내리 밤을 새우고, 어제도 두 시간 잔 이후 계속 모니터만 보고 있던 성은이 뻑뻑해진 눈에 인공눈물을 집어넣었다.
눈을 껌뻑여 보였지만, 눈 안에 모래라도 들어간 듯 꺼끌거렸다.
눈을 좀 붙여야 나아질 것 같은 데 영상이 대박이 나면서 생각보다 빠르게 영상 속 대형 한방병원이 어느 병원인지 특정되고 있었다.
정한 한방병원이 밝혀지기 전에 영상을 올릴 생각인 성은이 마음이 조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성은이 눈을 비비고 난 후에 다시 안경을 쓰자, 철호가 다가왔다.
“한의사 협회에서 공식발표를 내놨는데요?”
철호는 자신의 휴대전화 속 기사를 들이밀었다.
한의사 협회장인 장창천이 직접 공식 발표를 한 기사였다.
-최근 무분별하게 양산되고 있는 한방병원 고발 영상과 루머로 한의학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된 국민분들과 그로 인한 오해로 고통받고 있는 많은 한의사분들에게 유감을 표합니다.
대한 한의사 협회에서는 이 일이 해결될 때까지, 근거 없는 쏟아지고 있는 소문들과 후속으로 제작되는 영상들까지 모두 협회가 직접 나서서 확인하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근거 없는 루머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도 불사할 것을…….
이미 창천이 박상도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성은은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당연히 협회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협회의 이름으로 공식 보도 및 직접 법적 대응을 한다고 나올 줄은 몰랐다.
박상도가 마음이 급한지, 한의사들의 여론을 이용할 새도 없이 강력 대응이라는 칼을 뽑아낸 것이었다.
“걱정하지 마. 우리가 근거 없이 움직이는 건 아니니까.”
“근데 협회에서 고소하면 최소 1년까지 법원에 들락날락하셔야 하잖아요. 대표님이든, 기자님이든. 우리 회사에 달랑 직원이 세 명뿐인데 다른 영상들은 어쩌고요.”
“어쩌기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밥을 먹어야 살지. 내가 밤새워서라도 영상은 만들고 법원 출석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 네가 다니는 회사 안 망하게 할 테니까.”
성은은 경험이 부족한 철호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 휴대전화를 돌려주고 다시 모니터에 눈을 돌렸다.
“어?”
“또 왜?”
“이번에는 정한 한방병원에서 직접 공식 발표했어요.”
“뭐?”
이번에는 그저 웃음으로 넘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성은은 편집하던 영상을 내쳐두고 정한 한방병원의 공식 발표를 찾아보았다.
-최근 ‘한방병원의 배신, 두 얼굴의 한방병원’ 등으로 올라오는 기사와 영상들로 고통받고 있는 정한 한방병원의 한의사와 그 외에도 매일같이 환자들을 마주하고 계시는 한의사분들에게 정한 한방병원 대표로서 고개 숙여 사죄합니다.
저희 정한 한방병원에서는 해당하는 영상 속 조작으로 몰리고 있는 인터뷰 제작자의 기획의도와, 기획의도와 다르게 비친 결과물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재발 방지를 위해 앞으로 대표인 제가 직접 모든 상황을 모니터링 할 수 있도록 약속드립니다.
한의학의 발전과 정한 한방병원을 찾아주시는 환자분들의 기대에 저버리지 않으려 밤낮으로 애써주시는 한의사분들, 그리고 믿음 하나로 저희 정한 한방병원을 찾아주시는 환자분들께 죄송합니다.
해당하는 담당자는 징계를 할 예정이며, 앞으로도 병원 이미지와 한의학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후속 영상을 준비하고 있던 성은은 기가 찰 지경이었다.
한쪽 팔로는 강력 대응의 칼을 뽑고 한쪽 팔로는 사죄를 한다라…….
아직 정한 한방병원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도 아닌데 미리 정한 한방병원이 선수를 쳐, 이 모든 것이 직원의 실수로 일어난 이미지 실추로 결론을 지어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된다면 정한 한방병원의 대표인 박상도는 관련이 없고, 해당하는 직원만 징계로 끝난 것이었다.
더구나 자신의 형인 박상철과 박연아에 대한 언급도 일절 없었다.
후속 영상을 만들 자료들이 줄줄이 있는 성은에게는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아마 성은이 이번 영상 하나로 끝을 내지는 않으리라는 것도 이미 박상도에게 읽힌 모양이었다.
“기자님, 지금까지 만들고 있는 영상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영상?”
“이렇게 자신들이 다 밝혀 버렸으니, 후속 영상을 이대로 올릴 수는 없잖아요. 사람들이 정한 한방병원 타깃인 건 다 알았고…….”
철호는 첫 번째 영상이 대박이 난 후, 잠시 쉴 틈도 없이 지난 몇 달간 준비해둔 자료로 후속 영상을 만드느라 사무실에서 밤을 새운 성은과 그녀의 모니터를 바라보며 어쩌냐는 듯 물었다.
“하, 그러게 말이다. 이거 박상도한테 한 방 먹은 기분인데?”
성은은 머리가 하얗게 되면서 손가락을 까딱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