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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102화 (102/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102화

-아, 글쎄 할 말 더 없습니다. 너튜브인지 뭔지 올라간다는 말도 없이 영상 찍고, 녹취하고 그것도 악마의 편집으로 올려서 나랑, 동생이랑 얼마나 불효막심한 놈이 된 줄 알아요?

-물론 그때야 서로 이야기가 안 되서 우리가 오해를 좀 한 게 있긴 하죠. 근데 그런 건 딱 잘라먹고 우리가 돈 바라는 불효자나 된 낙인이 찍혀서 원…….

사내 둘의 목소리가 녹음기에서 흘러나왔다.

상철과 상도는 처음 듣는 목소리였지만 그 내용만으로도 지난번 ‘환자를 읽는 한의사’ 채널을 저격한 인터뷰에 응했던 환자의 아들들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박연아가 인터뷰할 때는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자신의 어머니가 한의원 너튜브 구독자 수와 좋아요 수를 늘리는 데 일조한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이번에는 그런 말을 한 것이 모두 옆에서 부추겼다는 듯 한탄을 했다.

그 뒤로 성은이 몇 가지 질문을 더 했지만, 그 대답에도 모두 박연아의 뜻이었다는 대답만 나올 뿐이었다.

“혹시 오해가 있으실까 봐. 저는 이 녹음을 허락하에 하였고, 편집은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성은은 상철과 상도가 들으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흐음.”

상도는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그저 목을 가다듬었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핑계처럼 들릴 수 있었다.

정한 한방병원의 대표를 맡고 있으면서 일개 신문사도 아니고, 고작 너튜브 채널의 직원으로 들어갔다는 성은에게 핑계처럼 들릴 만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 이걸로 뭘 어쩌자는 거요?”

상철은 동생과 성은의 눈치를 번갈아 가며 보며 따져 물었다.

동생이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으니, 그 상황이 더 두려울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가만히 있는지 알 수 없는 상철이었다.

김 기자가 형제들을 직접 만났다면 그 인터뷰를 한 사람이 자신의 딸인 연아라는 걸 이미 성은이 알고 왔다는 건데, 바라는 것이 정한 한방병원의 대표 조카인 연아냐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성은은 명인 한의원이 있는 해인동 골목을 직접 찍은 사진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상철은 이번에도 단번에 사진 속 그곳이 해인동이고 이번 타깃은 자신이라는 걸 정확히 알았다.

상인들의 뜻인 것처럼 적어 놓은 자극적인 문구의 현수막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현수막들도 해인동 시장 골목 상인들 그 어떤 분도 제작하지 않으셨다는데……. 박상도 대표님은 누가 하신 줄 알고 계신가요?”

성은은 상철도 바라보지 않고, 정한 한방병원의 대표인 박상도에게 직접 물었다.

“아니, 우리 대표님이 이런 너저분하고 오래된 골목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찌 압니까? 그렇게 한가한 분인 줄 알아요? 한의 신문에서 일했다면서요. 우리 대표님이 얼마나 협회 일도 많이 하시는데!”

형인 상철이 나서서 소리치며 성은이 꺼내 놓은 사진을 어떻게든 처리하려고 양손으로 잡아 모았다.

정한 한방병원의 대표는 이 일에 전혀 관련이 없다는 뜻이었다.

“정한 한방병원과 관련 없는 일치고는 박 이사님이 꽤 적극적으로 해결하시네요.”

성은은 피식 웃으며 상철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이거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우리 정한 한방병원에 이름으로 먹칠을 하려고 하니까 그렇지! 이거 봐요. 좋은 말 할 때, 대표실에서 썩 나가요. 안 그러면 경호 부를 테니까.”

상철은 성은과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자신이 끌어모은 사진을 품에 안고 자리에서 일어나 삿대질을 했다.

상철은 얼른 이 상황을 마무리하고 기자라는 젊은 여자를 정한 한방병원 건물에서 내쫓고 싶었다.

“박 이사님, 자리에 일단 앉으시죠.”

자신의 눈앞에서 이뤄지는 소란을 소리 없이 지켜보고 있던 박상도는 자신의 형이 흥분한 모습에 진정을 시켰다.

두 눈을 질끈 감은 관자놀이에 주름이 지어질 지경이었다.

“김 기자님.”

“네. 박. 상. 도 대표님.”

성은을 부르는 목소리에, 성은은 지지 않고 그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렀다.

상도가 자신이 준비한 자료에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지금 가져오신 자료들이 정한 한방병원과 연관 있다고 하신 건, 책임지실 수 있는 건가요?”

“네. 제가 몇 개월간 준비한 자료라 충분히 자신 있습니다. 이 목소리의 주인들도 원한다면 추가 인터뷰도 하시겠다 하셨고요. 그리고 뭐, 해인동 상인분들도 자극적으로 방영될 뻔한 인터뷰 방송이 있는 데 가처분 소송으로 극적으로 방영이 되지 않았다며 안심을 하시더라고요. 누. 군. 가에게 홀린 것 같다고 후회하신다면서.”

성은의 말에 상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할 뿐이었다.

동생이 이야기를 하는데 자신이 그 어떤 대답도, 핑계도 댈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할 뿐이었다.

“김 기자님 말씀은 잘 알았습니다. 제가 저희 한방병원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는 것보다 기자님이 더 잘 아신다니, 참 대표로서 면목이 없네요.”

상도의 말에 성은이 그를 쏘아봤다.

자신의 한방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몰랐다고 회피를 하는 대답이었다.

순순히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대답을 직접 듣고 나니 황당할 뿐이었다.

“그 말씀은…….”

“아무래도 저희 한방병원 홍보팀장으로 있는 박연아 씨의 실수인 것 같네요.”

“실수요? 그럼 이렇게 매번 영상이 올라가고 댓글 알바를 고용하는 것도 실수로 고용한 건가요?”

내부 직원이 뒤로 빼돌린 것이 분명한 통장 사본을 꺼낸 성은의 모습에 박상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정한 한방병원의 통장에서 댓글 알바 업체로 나간 돈이 수많은 횟수가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이걸 인정하지 않으면 공식적인 돈이 아닌, 박연아가 횡령을 해 사적으로 사용했다는 뜻이 되어 버릴 상황이었다.

아무리 꼬리 자르기를 하려고 해도 쉽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원하는 게 뭡니까? 돈 필요해요? 한의 신문에서 나와서 지금 그게 안타까워서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한방병원 뒤에서 파서 좀 돈 받아볼까, 이 생각입니까?”

상철은 보다 못해 다시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가만히 있기에는 자신과 자신 딸의 앞날이 달려 있는 일이었다.

더구나 두 눈을 질끈 감고 듣기 싫은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생의 눈치를 보아하니 어떤 처분이 떨어질지 감도 오지 않았다.

“박 이사님, 이제 나가보시죠. 김 기자와 제가 할 이야기만 남은 것 같은데.”

눈을 감고 상도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형인 상철을 내보내려 했다.

“아니, 지금 내가 어떻게 나갑니까. 대표님 지금 우리 따…….”

“그렇죠. 박연아 팀장님이라는 분이 박상철 이사님 따님이시죠. 그럼 박 이사님은 이 일에 대해 자세히 아시겠네요.”

성은은 상철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을 놓치지 않았다.

제 입으로 딸이라고 인정을 했으니, 정한 한방병원과의 연관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나가라고 했습니다. 제발 그 입 좀 다물고!”

지금까지 차분히 이야기했던 박상도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형을 내쫓아 버렸다.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 온 모든 것들이 삐걱거리는 기분이 드는 박상도였다.

* * *

“정 실장. 어제 방송 나왔던 거 방송국에서 후속 방송도 찍는다매?”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이 정 실장에게 물었다.

이미 노인정에는 김천의 효자 이야기로 어르신들이 한바탕 이야기꽃을 피운 후였다.

“글쎄요. 저희는 잘…….”

“왜 몰러, 한의원도 또 나오는 거 아녀?”

계속되는 질문에 정 실장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명의 한의원과 관련된 일이 아닌데도 정 실장에게 묻는 일이 다반사였다.

“후, 정말 어르신들 질문은 끊임이 없는 것 같아요. 이거 하나 지나가면 또 저거 물으시고, 저게 지나가면 또 다음 질문이 쏟아지겠죠?”

미정은 피곤하다는 듯, 데스크에 턱을 괴면서 정 실장을 바라봤다.

이미 오전에 미정도 방송에 대한 이야기를 몇 바탕 듣고 또 들은 상황이었다.

“어르신들이 정보에 뒤처지기 싫으셔서, 다른 사람들이 아는 이야기는 다 알고 싶으셔서 그래. 어쩌겠어.”

“그럼 그걸 다 친절히 말씀드려야 해요? 매번?”

“그러니까 답변하기 곤란하면 그냥 ‘실장님께 여쭤보세요. 저는 잘 몰라서요.’ 하라니까.”

정 실장은 미정의 고단함을 조금 덜어 주려 질문은 자신에게 넘기라는 듯 이야기했다.

그래도 어르신들과 오래 봐온 정 실장이 어려운 대답도 답변을 능숙하게 넘길 수 있었다.

“매번 어떻게 그래요. 실장님은 저보다 더 바쁘신데.”

미정은 정 실장이 명의 한의원 안에서 못해도 이재마 원장만큼은 바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바빠도 내가 맡을 테니까, 요 예쁜 이마에 주름 만들지 말라고.”

정 실장은 미정의 이마를 가볍게 톡하고 쳤다.

그러자 미정은 입술을 씰룩거렸다.

“근데 그나저나 어제 방송 짧게 나왔는데 진짜 궁금한 사람들 많은가 봐요. 한의원은 어디냐, 그 뒷이야기는 없냐. 조금 더 알고 싶다. 후속 편성해 달라. 요구하는 글이 쇄도한대요.”

“그래? 잘 되었네. 정말 효자 맞으시잖아.”

“그렇죠. 김천에서 서울까지 올라오시고.”

정 실장과 미정의 이야기를 들은 건지, 데스크로 성큼성큼 다가온 갑순은 대수롭지 않게 김치통을 턱 하니 올려놨다.

“이게 다 명의 한의원 터가 좋아서 그런 거야. 자손 잘돼, 이곳에 오는 환자들 잘돼.”

“하하, 맞나봐요. 진갑순 님.”

미정은 툭툭 말을 내뱉는 갑순에게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라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를 피해 다시 처치실로 쏙하고 들어갔다.

“갑순 님, 원장님이 이런 거 이제 그만해 오셔도 된다고 하셨어요.”

데스크에 올려진 김치통을 내려놓으며 정 실장은 지난번 재마가 했던 이야기를 전했다.

“젊은 원장님 드시라고 해오는 거 아니라고 해요. 구 원장님이 좋아하시는 알타리 실해서 생각나서 담갔으니까. 그리고 아주 밤에 잠도 잘 안 오게 쌩쌩하게 몸을 고쳐놓으니까 이 노인네가 할 게 뭐 있겠어. 김치도 담그고, 음식도 하고 하는 거지. 이것도 못 하면 또 병난다고 해.”

“말씀은 전할게요. 진료 보실 거죠?”

“아냐 아냐. 오늘은 막내아들네 가기로 했어요.”

갑순은 매번 하루도 빠짐없이 진료를 받았지만, 오늘은 바쁜 듯 진료도 받지 않고 손을 흔들고 한의원을 나섰다.

“진갑순 님 가셨어요?”

갑순이 나가길 기다렸던 미정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응. 지방에 있는 아드님 댁에 가시나 봐. 갈 엄두가 안 난다고 하시더니, 체력이 좋아지셨나 아드님 댁까지 가시네.”

“성격 봐서는 어디 아픈 곳 하나 없이 무병장수하시게 생겼는데.”

미정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정말?”

“병들도 무서워서 도망가게 생겼잖아요.”

미정은 다른 사람이 들을라 큭큭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정 실장은 어른을 놀리면 안 된다는 듯 옆구리를 쿡 하고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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