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자를 읽는 한의사-100화 (100/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100화

‘[효심왕 아들과 들꽃 어머니]

경상북도 김천에서 서울까지 어머니를 모시고 이른 아침 KTX를 타는 김태천 씨, 그리고 그 아들을 미안하게 바라보는 이간난 씨.

두 모자의 감동적인 스토리, 월요일 오전 8시 40분 SBO.’

“형님, 이 이야기 들으셨습니까?”

방송 준비를 하며 홍보용 꼭지를 어디서 손에 구했는지 상철을 향해 던지듯 툭 하고 내려놓았다.

소파에 앉아 있던 상철은 동생이 내던진 A4용지가 무엇인지 모른 채, 미간을 구기고 확인을 위해 손을 뻗었다.

지금 이보다 해인동 시장골목 반대 인터뷰가 방송이 되냐 마냐 하는 판국에 다른 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이게 뭡니까. 동생? 상대 방송국 같은 시간 방송 꼭지인가 보네. 걱정 마. 이 형님이 잘 알아서 하고 있으니까. 이런 잔잔한 스토리보다 자극적인 해인동 이야기가 더 시청률 잘 나올 거야.”

무작정 동생이 건넨 종잇장을 들고 동생의 걱정을 풀어줄 생각인 상철이, 지금 눈앞에 닥친 일은 모른 채 사근한 목소리를 내었다.

“형님, 형님은 이런 정보를 아예 못 들으시는 겁니까?”

상도는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이야기, 경상도에서부터 효자가 노모 모시고 서울까지 와서 명의 한의원 찾아가는 이야기랍니다.”

“뭐?”

같은 시간대에 같은 한의원에 대한 이야기라니, 상철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명의 한의원이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을 거라던데 그렇다고 시청자들이 모르겠습니까? 검색어 몇 번 치면 명의 한의원에 대한 정보 다 나올 겁니다.”

“그…… 그렇지.”

“형님이 말씀하신 방송. 방송에 차질 없는 건 맞습니까?”

상철의 계획을 모두 보고 받은 상도는 두 이야기가 방송을 탔을 때, 시청자들은 누구의 손을 들어 줄지 불안한 모양이었다.

“혹시 방송 일정을 당길 수는 없다고 하던가요?”

정면으로 두 방송이 붙었을 때보다 하루라도 먼저 방송이 되어 먼저 여론을 선점하는 것이 유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형인 상철에게 물었다.

“방송 일정? 아, 그거…… 월요일 방송인데 더 당기기는 그렇지…… 이제 목요일이고.”

방송 일정을 당길 수 없냐는 상도의 말에 상철은 말을 더듬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간 상대 방송국에서 명의 한의원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계획한 방송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는 말은 꺼낼 수가 없었다.

띠링.

분위기를 깨고 상철의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박 이사님,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차선으로라도 인터뷰 다시 해 둬야 해요.

정 PD의 문자였다.

혼자였다면 휴대전화를 내던져 버릴 뻔했지만, 동생인 상도 앞에서 티 낼 수 없는 상철은 어설픈 연기를 했다.

“하하. 이 녀석들. 고등학교 동문 친구들 이번 주 주말에 등산이나 가자고 하네. 다음 주에 방송이 나올 거라 주말에는 집에서 있으려고 했는데.”

어설픈 연기를 하며, 또 어떤 메시지가 와 상도가 눈치채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휴대전화 전원을 아예 꺼버렸다.

* * *

“원장님이 이렇게 먼저 연락 주실 줄은 몰랐는데요.”

성은은 오래간만에 온 명의 한의원을 둘러보며 먼저 연락을 준 재마에게 감사하다는 듯 반색을 표했다.

“그런데 바깥 분위기가 묘하네요.”

“기자님도 잘 지내셨죠? 한의신문에서 나오셨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먼저 연락을 못 드렸네요.”

재마는 오래간만에 연락을 하자마자 한의원으로 찾아온 성은에게 고맙다며 쌍화차를 내왔다.

지난번 요양원 사건 이후, 성은이 정한 한방병원과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재마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한 증거 없이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던 재마는 자신의 손에 증거가 들어올 때까지 김 기자와 연락을 하지 않았던 그였다.

이제 그에게 증거가 들어온 만큼, 더 이상 묵과할 수는 없었다.

성은의 도움을 받아 진실을 파헤칠 방법을 찾을 생각이었다.

“음, 전 이 쌍화차 향이 종종 그립더라고요. 그리고 명의 한의원은 탕전실도 뒷마당에 있어서 조금만 둘러봐도 그 향이 온몸을 찌르르하게 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한의원을 가도 한약 냄새 맡기 힘들잖아요.”

성은은 한의신문 기자답게 요즘 한의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요즘 한의원들은 깨끗한 건물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한약 냄새를 건물 1층까지 풍기는 게 어려워 한의원 내부에 탕약실을 둔 한의원은 드물었다.

명의 한의원은 이 자리에서 5대가 하고 있으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은처럼 명의 한의원에 오면 한약 냄새가 나서 좋다고 말하는 어르신 환자분들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연락을 주신 이유가 뭐예요?”

한의 신문에서 나온 성은은 선배가 하는 너튜브 채널로 자리를 옮겼다.

아직 작은 채널이기는 했지만, 일종의 고발들을 주제로 하는 채널이라 마니아 층도 있고 일종의 후원들을 종종 받고 있어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밖에 현수막 보셨죠?”

“네. 한의원 문화재 지정을 상인들이 반대를 하는 것 같은데…….”

성은은 한의원을 들어오며 눈에 띄었던 현수막을 기억했다.

개발을 앞두고 종종 양측이 대립하며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기자로서 약간의 흥미만 갖고 있을 뿐이었다.

“외력이 있는 것 같아서요.”

“외력이요?”

성은의 기자로서 호기심이 조금 더 발동했다.

손에 들고 있던 쌍화차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상체를 앞으로 깊이 숙였다.

조금 더 이야기를 해달라는 뜻이었다.

반짝이는 성은의 호기심 어린 눈을 보니, 김 기자라면 자신에게 확실히 힘이 되어줄 조력자라 재마는 확신했다.

“물론 상인분들도 문화재 지정에 반대 의견을 가질 수는 있지만…… 문제는 저 현수막들을 직접 제작해서 단 것이 아니라는 거죠.”

재마는 서랍에서 안 사장에게 받았던 명함을 꺼냈다.

정한 한방병원, 박상철의 이름이 적혀 있는 명함이니 제아무리 박상철이라도 이번 일만큼은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었다.

“박상철? 정한 한방병원 박상도 대표 형, 맞죠?”

역시 하나를 주면 몇 가지 조각을 꿰맞추는 성은이었다.

재마가 설명하지 않아도 그녀의 머릿속은 이미 흩어진 조각들을 맞추고 있을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심 찜찜해서 이쪽으로 좀 파 보고 있었거든요.”

성은은 자신이 한의 신문에 있으며 느꼈던 의심들을 놓치지 않고 조사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다행히 자신의 사수 격인 선배도 심상치 않다는 의견으로 성은은 마음 놓고 조사를 할 수 있어 자료를 꽤나 모은 상태였다.

성은이 명의 한의원에 들어올 때, 자신의 어깨에 들려 있던 큼직한 가방 안에서 몇 가지를 꺼내어 재마 앞에 늘어놓았다.

그동안 자신이 모아 놓은 자료였다.

“사실 제가 계속해서 알아보고 있었는데, 요양원 형제 너튜브 인터뷰, 정한 한방병원 측에서 촬영, 편집 모두 한 거더라고요. 제보 채널 몇 군데에 직접 준비한 영상 돌리고 후속 영상 내용까지 자신들이 기획해서 내보낸 거예요.”

재마는 성은이 꺼낸 자료들을 말없이 바라봤다.

이 모든 것이 정한 한방병원 홍보팀에서 준비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다음, 정한 한방병원 채널에 달리는 댓글들과 원장님 채널에 악의적으로 반복적인 악플을 달았던 IP가 동일해요.”

이번에는 성은이 파헤친 IP주소들이 나열된 자료들이었다.

확인하기 쉽게 정한 한방병원 채널에 반복적인 댓글을 다는 구독자 몇 명과 환자를 읽는 한의사 채널에 댓글을 달았던 악플러 몇 명의 IP에 형광펜으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때를 기다리며 얼마나 집중적으로 정한 한방병원의 진실을 파내고 있었는지 재마에게 와닿을 정도였다.

“이 정도만으로도 솔직히 사이버 수사대에 의뢰하면 처벌이 가능할 정도예요.”

“처벌이요?”

“실제로 반복적인 악플을 달게 회사를 운영한 일당이 잡혀서 법정구속을 당한 경우도 있고요.”

재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정우의 의견과 김 기자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명의 한의원에 악의적인 악플을 달도록 지시한 사람은 정한 한방병원 홍보팀장인 박연아일 것이다.

“거기에다 현재 투자를 한 조합원 상태도 아닌 박상철이 주도적으로 명의 한의원 앞에 악의적인 현수막을 달았다? 여기까지만 퍼즐을 맞춰도 정한 한방병원이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 거예요.”

정우가 정한 한방병원 너튜브 채널의 진실을 밝히겠다고 나서지 않아도 이미 충분할 정도였다.

적어도 박연아와 박상철은 악의적으로 명의 한의원을 망가뜨리기 위해 철저하게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밝힐 수 있을 것이었다.

“사실 저희 측이 준비한 것도 없지 않습니다.”

“또 있어요?”

성은이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뜨릴 정도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차고 넘쳐 시리즈 영상을 찍어야 할 정도였는데, 재마가 가지고 있는 증거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어쩌면 이 일의 시작이 되는 일일지도 모르죠. 정한 한방병원 채널에 올라간 영상이 조작이라는 제보입니다.”

“영상 조작이요? 허, 진짜 이 사람들 너튜브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 거야……. 제대로 된 게 없네요.”

성은은 자신의 태블릿으로 정한 한방병원의 채널에 접촉했다.

너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너튜브의 순기능뿐 아니라 역기능도 익히 알고 있는 그녀였지만 인터뷰 조작에 조작 홍보영상까지.

까면 깔수록 양파 같은 정한 한방병원의 실체가 낱낱이 밝혀지고 있었다.

“인터뷰가 필요하다면 이 영상 촬영에 참여한 당사자와 연결시켜 드릴 수 있습니다.”

“저희 측에서도 회의를 하기는 해야 해요. 이미 조사한 내용도 차고 넘칠 지경이네요. 조작 방송에 대한 영상을 만들려면 당사자 인터뷰가 중요할 거예요.”

성은은 앞으로 자신이 그려나갈 영상들의 내용들이 머릿속에 꽉 들어차 무엇부터 꺼내야 하나 고민이 될 정도였다.

“이렇게 구린내가 폴폴 풍기다 못해 넘쳐 흐르는 한방병원이 대한민국 제1의 한방병원이라고요……. 사람들이 알면 난리 나겠는데요? 아마 협회 측에서 방송을 막을 수도 있겠어요.”

성은은 일이 술술 풀리는 것 같으면서도 약간의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한의원도 아니고 정한 한방병원이었다.

어쩌면 대한민국 한의학계의 한 획을 긋고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 정한 한방병원의 뒷모습이 대국민 사기극의 온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한의학 쪽의 이미지 손상도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도움을 드릴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도와드리겠습니다.”

재마는 이 시작이 자신과 명의 한의원인 만큼, 성은의 보도에 적극 협조를 할 생각이었다.

“그럼요. 지금까지 당해 온 것만으로도 가장 피해자는 원장님과 한의원인데요. 근데 당장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을 것 같네요. 박상철까지 움직인 정도면 여기서 끝날 것 같지는 않거든요.”

성은은 자신의 다이어리에 무엇인가를 적어가며 고민에 빠진 얼굴이었다.

증거는 충분했다.

하지만 명의 한의원을 포함한 다른 한의원들의 피해는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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