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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98화 (98/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98화

안 사장이 강산과 함께 구급차에 실려 가는 모습까지 본 재마는 다시 명의 한의원으로 돌아왔다.

대기실에서 재마가 오기를 기다렸던 환자들은 재마가 돌아오자 곧 진료가 재개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급한 환자가 있다고 해서…….”

“아니에요. 급한 환자가 있으면 당연히 다녀오셔야죠.”

“원래 긴 대기, 조금 더 길어진다고 큰 문제야 있겠어요?”

재마가 대기실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을 환자들에게 죄송하다는 인사를 하자 환자들은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어수선한 한의원을 수습하던 정 실장은 재마가 돌아오자 반색을 했다.

“원장님, 다녀오셨어요? 안 사장님은…….”

“네. 마미증후군 같아 보여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마미증후군이요?”

“네. 그리고 추운 냉동창고에 오래 계시는 사고가 나서 저체온 증상도 보였고요.”

정 실장은 마미증후군이 얼마나 괴로운지 알기에 미간이 구겨졌다.

상황 설명을 하는 재마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그래도 강산 쌤이 일찍 발견하셔서 다행이네요. 그동안에 목이랑 어깨 치료 꾸준히 받으셨었는데…… 최근에 오지 않으셔서…….”

그간, 정육점 안 사장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었던 재마는 시장 골목 상인들과 편치 않은 관계가 된 것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 정도였다.

강산이 그 시간에 정육점을 가지 않았다면 정말 안 사장이 냉동창고 안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었을지 알 수 없었다.

“내 정신 좀 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원장님 진료 바로 시작하실 거죠?”

정 실장은 안 사장의 걱정을 하느라 잠시 놓고 있던 정신을 다잡았는지, 재마에게 진료를 시작하겠냐 물었다.

“네. 그러시죠.”

재마는 자신의 손에 안 사장이 쥐여줬던 구겨진 명함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주)정한이라고 써 있는 박상철의 명함.

분명히 박연아, 그리고 정한 한방병원 대표인 박상도의 형의 명함일 것이었다.

그가 어떻게 해인동 골목의 상인들과 접점이 있는 걸까 잠시 고민에 빠졌다.

“김명숙 환자 안으로 들어가실 게요.”

정 실장의 노크와 함께 재마의 진료가 재개되었다.

* * *

재마의 저녁 진료가 끝날 때쯤, 안 사장과 함께 병원을 갔던 강산이 명의 한의원 문을 들어섰다.

“강산 쌤 오셨어요?”

“네.”

정 실장은 몇 시간 사이에 수척해진 강산을 바라봤다.

“안 사장님 상태는 어떠세요?”

“재마가 예상했던 것처럼 마미증후군 맞고요…… 사장님 아드님 오실 때까지 제가 검사 받으시는 것 다 지켜보고 왔습니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간호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강산은 새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더구나 마미증후군인 안 사장은 심각한 하체 통증과 마비 증상으로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괴로울 정도였다.

“수고 많으셨어요.”

정 실장이 몇 시간 동안 보호자 역할을 하고 온 강산이 대견한 듯, 어깨를 다독였다.

“강산아, 안에서 좀 보자.”

강산이 한의원에 돌아왔다는 소리에 진료실 안에 있던 재마가 강산에게 단둘이 할 이야기가 있다는 듯 그를 불렀다.

“나?”

“그래. 너.”

“후, 정말 이 해인동은 내가 없으면 일이 안 되나 봐.”

강산은 자신이 돌아오자마자 찾는 재마의 부름에 한껏 심취되어 진료실 안으로 들어섰다.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으로 만회하려는 강산의 성격에 정 실장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무슨 일이야? 보고 싶었냐. 내가 오자마자 찾고?”

강산은 진료실에 들어서서도 심각한 표정의 재마에게 농담을 건넸다.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니야.”

“뭐? 무슨 일인데?”

재마는 자신의 책상 위에 있던 명함을 강산에게 건넸다.

강산은 재마가 건넨 명함을 받아 들고는 의아한 눈이 점점 더 커졌다.

정한 한방병원 대표의 형이자, 박연아 아버지의 명함이 어떻게 재마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일까.

“뭐야. 이거?”

“아까 안 사장님이 구급차에 타시기 전에 나한테 주셨어. 이쪽으로 연락하면 골목에 있는 현수막 해결될 거라면서 주셨어.”

강산은 어이가 없다는 듯 탄식을 내뱉었다.

“지금 내가 과한 생각을 하는 거 아니겠지?”

강산은 머릿속이 복잡한 얼굴이었다.

설마 이 모든 일이 정한 한방병원과 엮였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정한 한방병원, 그리고 박상철. 박연아 아버지 아니야?”

“맞아.”

“솔직히 우리가 지난번 꿈속 요양원 일도 그렇고 찝찝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강산은 지금까지 재마가 일을 키우지 않으려고 가만히 있던 것을 생각해 잠자코 있었는데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양팔을 걷어붙였다.

요양원 일부터 시작해, 해인동에서 한의원을 하며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하는 상인들과의 사이까지 멀어지게 한 것이 모두 정한의 소행이라는 퍼즐이 딱딱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언제까지 가만히 당하고 있을 거야?”

강산은 재마에게 언제까지 가만히 있을 것이냐 물었다.

재마는 지금까지 확실한 근거가 없어 참았지만, 박상철의 명함만큼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일단 상인회장님이랑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 상인들 입장에서 걸린 현수막이니까.”

재마는 자신의 손에 박상철의 명함이 들어온 만큼 확실하게 처리를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어.”

“그럼 방법이라도 있어?”

“이왕이면 확실하게 지금까지 그쪽에서 벌인 일들을 그대로 갚아줘야지.”

재마는 앞으로 그들이 벌인 소행들을 모두 갚아주겠다는 생각을 했다.

* * *

상철은 정한 한방병원 자신의 사무실에서 따뜻하게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었다.

얼마 만에 느끼는 여유인지 모를 정도로 오늘따라 커피 맛도 좋고 날도 좋고 자신의 사무실에서 내려다보는 풍광도 좋게 느껴졌다.

오늘 해인동 시장 골목 상인들이 방송국에 제보를 해서 인터뷰를 한다던 날이었다.

인터뷰 날까지 잡혔고, 아까 정육점 안 사장과 전화통화까지 나눴으니 일이 척척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 다음 주 월요일 방송만 나간다면 명의 한의원이 문화재 지정은 물 건너간 것이 될 것이었다.

반면, 정한 한방병원은 최근 몇 년간 서울시에서 문화재 지정을 놓고 힘썼던 ‘병합경훈’을 문화재 지정을 할 수 있도록 내놓았으니 이미지가 상승할 것이었다.

이미 기자회견과 함께 홍보용 기사를 배포한 상태지만, 명의 한의원이 추락하는 날 다시 한번 화려하게 기사를 내보낼 생각에 들떠 있었다.

-무리한 문화재 지정으로 생계가 달린 상인들의 개발은 나 몰라라 하는 서울시 문화재. 과연 정당한가?

-공개되지 않던 ‘병합경훈’을 대중에게 공개하기로 한 착한 기업, 그곳은 어디인가? 정한 한방병원, 창업주의 뜻을 이어가다.

두 가지 타이틀이 비교가 되게 한날한시, 공개를 한다면 그보다 완벽한 상황은 없을 것이었다.

“나도 한다면 하는 사람이란 말이지. 어디 한번 지켜보자고, 내가 짓밟은 명의 한의원이 어떻게 되는지.”

상철은 콧노래가 절로 나올 것 같은 기분으로 발끝까지 까딱까딱거렸다.

명의 한의원의 이미지를 제대로 망가뜨리면, 요즘 젊은 사람들이 한참 난리라는 너튜브인지 뭔지에서도 자신의 딸인 연아가 맡고 있는 채널도 영향을 받을 것이었다.

자신이 노고로 인해 이번 일의 결과가 일타 몇 피가 될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축포를 터뜨릴 수 있을 것이었다.

“아빠.”

상철이 기분 좋게 햇살을 받고 있을 때, 상철의 사무실 문을 노크도 없이 연아가 찾아 들어왔다.

행복한 생각만 하며 들떠 있는 상철은 책상 위에 얹고 까딱이던 발을 내렸다.

정한 한방병원에서 자신의 사무실 문을 노크도 없이 들어 올 사람은 동생이자, 정한 한방병원의 대표인 박상도와 딸 연아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야, 딸.”

연아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두 손을 활짝 벌려 반겼다.

“아빠. 이거 너튜브 언제까지 해야 해? 제대로 댓글도 안 달리고 그렇다고 구독자가 눈에 띄게 느는 것도 아니고. 나 이거 이재마랑 경쟁하는 것 같아서 더 이상 하기 싫어. 진짜.”

맡고 있는 일이라고는 너튜브 채널 운영 하나뿐인 딸이지만 골머리를 썩이게 하는 것이 안타까운 상철이었다. 명품백을 소파에 집어 던지며 투정을 부리는 연아의 표정에 따라 상철의 얼굴도 울상이 되었다.

“으이구. 어디 비교할 데를 비교해야지. 걱정하지마. 내가 우리 딸 당한 것까지 철저히 복수해 주려고 하니까. 이제 다 왔어.”

하나뿐인 딸이 울상을 걷어버리고 행복한 웃음만 지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정말?”

“그래. 조금만 더 버텨. 아빠가 이것만 터뜨리면 아마 ‘환자를 읽는 한의사’? 어디서 약을 팔려고 그래. 거기도 구독자 다 떨어져 나갈 거야.”

상철은 딸에게 호언장담을 하며 달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이라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요즘 아주 힘들어 죽겠어. 지난번 요양원 형제들 때 댓글 알바 쓴 것도 작은 아빠가 댓글 알바 결제를 안 해줘서. 요즘은 팀원들이 하고 있단 말이야. 그걸로 나를 직원들이 얼마나 눈치를 주는 줄 알아?”

“눈치를 줘? 너를?”

“고작 키보드나 두들기게 하냐는 거겠지. 아무튼 아빠, 이번에 일 잘되면 작은 아빠한테 잘 좀 말해줘. 홍보가 되려면 적당히 MSG도 뿌려야 하는 거잖아.”

연아는 자신의 아빠에게 찰싹 붙어 상도에게 잘 이야기해 달라고 아양을 부렸다.

“알았어. 내가 네 작은 아빠한테 확실히 말할게. 큰일을 벌이려면 그만큼 투자를 해야지.”

“아빠 최고.”

“우리 딸. 그러니까 기분 상하지 말고. 이 카드로 백화점이나 다녀와.”

“정말? 힝. 아빠 고마워.”

연아는 상철이 꺼낸 카드를 받아 들고 그의 뺨에 쪽 소리 나게 입맞춤을 했다.

이제 일의 고지도 눈앞에 보이겠다, 평소에도 연아가 원하는 것이라면 다 이뤄주는 상철이었지만 오늘은 기분을 더 내었다.

“그나저나 최중기 그 녀석은 어떻게 할 거야?”

“어떡하기는 뭘 어떻게 해. 그냥 끝이지. 쫑 났어. 출세 하나 바라보고 정한 한방병원 사위 되려고 했으면 자존심을 버려야지. 자존심이나 세우고. 아, 아빠 그 얘기는 왜 해. 기분 나쁘게.”

연아는 결국 정리를 하게 된 최중기의 이야기가 나오자, 기분이 나쁜 듯 인상을 구겼다.

며칠째 무단결근을 하고 있는 최중기 때문에 그가 일하고 있는 과에서 연아에게 연락을 온 것도 여러 번이었다.

헤어지면 헤어지는 것이지 이렇게 자신을 망신을 주다니, 참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사람을 잘 봐야 하는 거야. 집안도 봐야 하고. 이번 일 잘 끝나면 아빠가 작은 아빠한테 이야기해서 괜찮은 집, 괜찮은 녀석으로 한번 알아봐 달라고 할 테니까 잠자코 있어.”

“알았어요. 아빠.”

상철은 이번 일만 잘되면 자신의 딸이 정한 한방병원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싹수부터 괜찮은 녀석으로 골라 옆에 붙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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