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93화
“원장님, 이제는 해인동에서만 유명한 것이 아니고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으니까, 우리 솔직허게 말해봐유.”
“네?”
재마가 단골인 정숙의 허리에 침을 놓기 위해 처치실로 들어왔을 때, 정숙은 치료를 받을 허리를 내놓고는 물었다.
“요즘 동네도 흉흉허고, 한의원 앞이고 시장 골목이고 한의원 잘되는 꼴 보기 배 아프다고 해놓은 현수막 보고 맘에 안 들죠?”
“아니요. 괜찮습니다. 상인분들도 피해 안 가시는 쪽으로 결정을 하셔야 하고 목소리도 내셔야 하니까요.”
재마는 요즘 하루에도 수없이 비슷한 질문을 받고는 했다.
너튜브로 유명해진 후 동네 환자들뿐 아니라 치료를 받으러 오기에는 다소 먼 곳에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환자들이 있어 대기 손님은 여전했지만 명의 한의원을 자주 찾아오던 상인들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특히 정육점 안 사장은 어깨가 좋지 않았는데 억지로 참고 버티고 있는 것인지 다른 병원에 다니고는 있는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골목을 지나다니며 안 사장과 마주칠 만도 하는 데 일부러 재마와 직원들을 피하는지, 마주치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이구…… 사람 좋은 소리만 허시네. 이게 진심인지, 아니면 그냥 저도 환자니까 그렇게 말허시는 건지…….”
“진심입니다.”
재마는 자신의 말을 환자들이 어디까지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매번 똑같은 대답을 하고 있었다.
진심이라는 말에도 정숙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재마를 슬쩍 올려다보았다.
듣자 하니 원장의 외조부인 구 원장도 그렇게 환자들밖에 몰랐다더니 젊은 원장도 그런 모양이었다.
사람이라면 자신이 잘 돼가는 꼴을 못 보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어찌 좋아하랴.
하지만 슬쩍 본 정숙의 눈에도 재마는 한 치의 미움도 갖지 않은 것 같았다.
‘보살이여. 뭐여.’
“저희야, 해인동이 좀 멀어도 원장님 실력 하나 보고 여기까지 오는 거라 한의원이 해인동에 있든, 강남에 있든. 문화재 지정이 되든 이사를 가시든 상관은 없는데… 동네 사람들은 그것도 아닌가 봐요.”
“아무래도 주민분들은 문화재 지정이 되면 한의원을 치료를 받기 위해 오시는 분들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을 테고 여러 장단점이 있으시겠죠. 저희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려요?”
정숙은 그제야 궁금한 것이 조금은 해결됐는지, 편안한 마음으로 허리를 내놓았다.
재마가 정숙의 치료를 마치고 커튼을 걷었을 때, 정 실장이 처치실 밖에서 재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장님, 손님이 찾아오셨는데요.”
“손님이요?”
“안녕하십니까. 투데이 아침쇼 입니다.
재마를 기다리고 있었던 손님이라는 사람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그 뒤로 건넨 명함에는 SBO 방송국 소속을 알리는 내용이 써 있었다.
“요즘 한참 주민분들하고 갈등을 겪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취재차 찾아왔습니다.”
“아닙니다. 저희는 취재에 응할 생각이 없습니다.”
재마는 지금까지 몇 차례 찾아온 방송국의 인터뷰를 모두 거절하고 있었다.
“아뇨. 원장님, 저희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주시죠.”
“괜찮습니다. 저희 오해는 저희들끼리 풀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섣불리 상인들과의 갈등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가 오히려 일을 키우게 될까 노심초사 걱정을 하고 있던 재마는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방송에 나오면 너튜브를 통해 유명세를 탄 원장님이 훨씬 유리한 여론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유명세를 이용할 생각도 없고 유리한 여론 몰이를 할 생각도 없습니다.”
재마에게 이 기회를 이용해 여론 몰이나 해보자 꾀하는 PD나 작가들도 있었지만 재마는 한사코 거절했다.
“실장님, 솔직히 인터뷰, 잘 이용하면 효과 있는 일 아닐까요? 기사도 나오고 댓글도 달리면 상인분들도 생각을 바꾸실 수도 있는 데. 그럼 우리도 좀 덜 피곤하고요.”
재마가 이번에도 거절을 하는 모습을 본 미정이 목소리를 낮춰 정 실장에게 물었다.
매번 비슷한 질문에 비슷한 대답을 하는 것에 미정이 피로를 느낄 만도 했다.
“가뜩이나 환자들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수군수군하는 데 원장님이 일을 키우실라고? 윤 사장님도 상인분들 설득 중이라니까 조금 기다려 보자고. 혹시 계속해서 환자들이 똑같은 질문 하면 나한테 넘기고요.”
정 실장도 미정의 피곤을 이해하는지, 환자들이 과한 질문을 한다면 자신에게 넘기라고 이야기를 했다.
미정은 괜한 이야기를 했나, 싶은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자신을 한의원 직원들 중 가장 이해를 많이 해주는 사람이 정 실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 실장은 미정이 이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고 있자,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기다려 보자며 눈을 찡긋거렸다.
원장인 이재마나 한의원을 전반적으로 살피고 있는 정 실장이 방송국에서 나온 PD에게도 인터뷰를 할 생각이 없어 보이자 박 PD는 김이 샜다.
아침 방송에는 자극적인 소재가 제일이라 동네 주민과 한참 유명세를 탄 너튜버 한의사와 갈등을 빚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 큰 관심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에 소식을 접하자마자 명의 한의원을 직접 찾아왔는데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반응들이었다.
이대로는 돌아가기 아쉬워 대기실에 털썩 앉은 박 PD는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엄니, 지난번에 약 드시고 많이 좋아졌지?”
노모를 모시고 온 아들로 보이는 중년은 어머니를 향해 어머니의 상태를 물었고 그 어머니는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신통방통하다니께. 한마디 말하지도 않고 약을 지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찰떡같이 약을 지었는지. 멀어도 다시 한번 오자는 말에 엄니가 이렇게 따라나서시니 나도 기분이 좋네.”
태천은 경상도에서 서울까지 오는 거리가 결코 가깝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명의 한의원의 약을 드시고는 기력이 좋아지시는 것이 눈에 보여 이곳을 다시 찾을 수밖에 없었다.
보통은 거리가 멀어 아들이 고생할 것 같거나, 돈이 들 것 같으면 한사코 나서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는 어머니가 쉽게 따라나서니 먼 길도 한달음에 올 수 있었다.
박 PD는 어머니와 의사소통이 쉬워 보이지는 않는 태천과 노모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경상도 사투리를 투박하게 쓰는 중년 아들과 노모…….
아침 방송에 내보내기에 제격인 소재였다.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라 이렇게 밖에 나와서 시간을 때우려고 멍하니 있을 때도 사람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박 PD였다.
잠자코 이재마 원장을 다시 설득할 기회가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겠다 싶었던 그였지만 가만히 기다리기에는 뭔가 시간도 아깝고 흥미가 생긴 노모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박 PD는 선뜻 두 사람에게 나서지는 못하고 정 실장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실장님.”
“네. PD님”
재마가 분명히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을 했는데 한의원을 떠나지 않고 있던 PD가 다가서자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었다.
“필요한 것 있으세요? 쌍화차 좀 드릴까요?”
“아, 네. 감사합니다. 다른 게 아니고요. 저기 대기하시는 두 분…… 이 동네 분은 아니신가 봐요?”
박 PD가 필요한 것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환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묻는 질문에 정 실장은 섣불리 대답하기 힘들어 빙긋 웃을 뿐이었다.
“아, 실장님…… 동네 주민들하고 갈등에 대한 이야기 아니니까 대답해 주실 수 있잖아요.”
“환자분들의 사생활이시니까 그 부분은 더 예민하죠……. PD님도 아실 것 같은데…….”
많은 사람들을 접하는 건 정 실장이나, 박 PD와 비슷한 상황이니 사생활 보호를 보호해야 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럼 제가 직접 환자분이랑 아드님한테 가서 여쭤보는 건 괜찮은 거죠?”
박 PD는 정 실장에게 혹시 한의원에서 실례되는 일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물었다.
정 실장은 어깨를 으쓱였다.
만약 환자와 보호자가 동의를 하지 않는다면 박 PD도 어쩔 수 없을 테니 시도를 해보라는 뜻이었다.
박 PD는 정 실장의 제스처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환자와 보호자 옆으로 슬쩍 걸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네? 저요?”
“아, 네. 저는 SBO TV에서 나왔는데요.”
“아이고. 방송국에서 한의원을 우째 오셨데요.”
방송국에서 나왔다는 말에 태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박 PD는 아까 재마에게 건넸던 것과 같은 명함을 태천에게 건넸다.
“다름 아니라 제가 다른 인터뷰 때문에 한의원에 왔는데 선생님이 어머님을 모시고 멀리서 오신 것 같아서요.”
“아이구. 서울 슨생님헌티 티가 났나 보네요. 네. 경상도에서 왔습니더.”
태천은 자신의 사투리가 티가 난 것이 민망한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실례가 아니면 어디서 오셨는 지…….”
“경상도 김천에서 왔씁니다.”
태천은 자신의 사투리를 조금이라도 표준어와 비슷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김천이요? 진짜 멀리서 오셨네요. 서울까지 한의원을 다 오시고.”
“여기 원장님 맹키로 우리 엄니 잘 봐주시는 분도 없으니 오지요.”
“김천에서 서울까지 오실 정도로 여기 원장님 실력이 출중하신가요?”
박 PD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안경을 고쳐 썼다.
사실 요즘 너튜브나 별스타그램으로 유명세를 치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보 통신의 발달의 한 부분으로 봐야 할지, 유명세를 타며 입소문이 타면 전국 어디에 있어도 유명인의 팬이 되고는 한데 경상도에서부터 서울까지 올 정도면 이재마 원장의 팬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사실 동네에서 적어도 서너 개의 한의원이 있을 정도로 전국의 한의사 수는 엄청났다.
그중에서 튀려고 어떻게든 노력하려고 너튜브도 하고, 서울시 문화재 지정을 하려고 원장이 노력은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원래 요란한 잔칫집에 먹을 것이 없듯 그 속내는 어떨지 박 PD도 알 수 없었다.
그런 것 때문에도 직접 명의 한의원을 찾은 것이었는 데 김천에서 이곳까지 노모를 직접 모시고 오는 사람이 있으니 그 실력이 더 궁금해진 그였다.
‘과연 먼 거리에서 올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걸까?’
태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재마를 의심하는 박 PD는 태천을 향해 잠시 고개를 숙이며 제안을 한 가지 했다.
“선생님 괜찮으시면 원장님 동의하에 진료하시는 것을 관전할 수 있을까요?”
“관전이요?”
“아, 네. 카메라도 없고. 그냥 옆에서 조용히 볼 수만 있으면 됩니다. 원장님께는 제가 직접 여쭤보겠습니다.”
박 PD는 태천이 거절이라도 할까 간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즈이야, 뭐. 원장님이 괜찮다 하시면 괜찮응께. 그건 선생님이 알아서 하셔요.”
태천은 쿨하게 더는 묻지 않고는 승낙했다.
“엄니, 저짝 선생님이 엄니 진료하시는 거 보겄다는디, 괜찮쥬?”
태천이 허락을 하자 간난도 특별히 거절 의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 PD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정 실장을 향해 빙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