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85화
처치실 2로 안 사장의 진료를 보러 들어 온 재마는 커튼을 젖히자마자 안 사장의 속마음이 고스란히 들렸다.
온돌이 있는 처치실이 아닌 베드에 자리를 잡은 것만으로도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불편한지 알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안 사장은 속으로 끙끙 앓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속마음은 몸에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평소에도 어깨가 좋지 않았는데 잔뜩 뭉쳐져 짙은 회식 섬광이 돌덩이 같이 뭉쳐 있었다.
재마는 어깨부터 침을 놓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의 스트레스가 상권의 존폐 문제 때문이라 자신과는 적대관계라 믿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재마까지 그녀를 등질 생각은 없었다.
그의 침이 돌덩이 같은 어깨를 얼마나 풀어줄지 모르겠지만, 재마는 최선을 다했다.
“오늘은 어깨가 더 불편하신가 봐요. 소화도 안 되시는 것 같고…….”
진맥을 하지 않아도 그녀의 안 좋은 몸 구석구석이 재마의 눈에는 섬광으로 보였다.
“매일 똑같죠. 뭐. 이제 쓸 만큼 쓴 어깨라 그런가…….”
안 사장은 재마의 목소리에도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등을 진 채 주로 치료를 하는 어깨만 들이밀고 있었다.
“요즘 신경 쓰시는 일 많으신가 봐요.”
“뭐, 장사하는 사람이 매출 신경 쓰랴, 자식 놈들 키우니 자식 신경 쓰느라 그렇죠. 원장님은 요즘 환자도 많으시고 신경 쓰실 자식도 없고. 좋으시죠?”
안 사장은 자신이 신경 쓸 것이 많아 몸이 안 좋다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톡 쏘아붙이는 듯한 말이 나왔다.
자칫 잘못 들으면 싸우자 드는 것 같다는 말투를 그녀도 잘 알고 있어 조심한다 했지만, 어쩌랴 지금 마음이 비꼬여 있는 것을…….
아차 싶은 생각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크. 차라리 말이나 말걸.’
자신이 말해 놓고도 금세 후회를 하는 속마음에 재마는 그녀를 미워할 수도 없었다.
“세상 사는 데 신경 쓸 부분이 한두 가지인가요. 하지만 스트레스 받는 것을 모두 감당하시려고 하면 다 몸으로 티가 납니다. 안 사장님.”
재마는 안 사장이 편하게 생각할 수 있게 느긋한 목소리로 침을 놓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고민에 쌓여 있을 때, 옆에서 그 고민을 이해해 주는 것만으로도 걱정이 풀릴 때가 있었다.
“스트레스가 커질수록 소화도 힘드실 거고.”
“꺼억. 어머.”
소화기관을 뚫어주는 혈자리에 침을 놓자, 안 사장도 모르게 트림이 꺼억 하고 나왔다.
그러잖아도 한의원이 문화재 지정을 코앞에 뒀다는 소리를 들은 이후로는 소화가 잘되지 않아 밥을 넘기기 힘들었다.
“소화가 안 되는 게 정체되면 머리도 아프고요.”
“요즘 머리도 무겁더라고요.”
안 사장은 자신도 모르게 요즘 좋지 않은 몸 상태를 술술 불었다.
“모든 일에는 순리라는 것이 있으니 조금만 여유를 두고 지켜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재마는 마지막 침을 놓고는 안 사장의 손목을 짚어 진맥을 한 번 더 하고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목을 내려놓았다.
“원장님 감사해요. 그래도 몸 안 좋던 게 침이 들어가자마자 조금은 나아졌나 봐요.”
안 사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그녀의 마음, 그리고 통증까지 다루는 재마의 실력에 다른 한의원은 찾기 힘들 것 같았다.
아쉬운 마음에 침을 맞는 동안에도 쓴 침만 넘어가는 안 사장이었다.
진료를 마친 안 사장은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어딜 가도 이재마 원장처럼 자신의 몸을 구석구석 아는 한의사는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어쩌겠어. 불편해도 올 곳은 여기뿐이지.’
안 사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해인동 시장 골목에서 20년 가까이 장사를 하지만 않았어도 명의 한의원이 문화재 지정되는 일에 경사라며 나서서 축하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해인동이 개발된다는 말만 없었어도 사람도 별로 다니지 않던 골목에 명의 한의원에 새 원장이 온 이후로 활기를 찾았으니 이런 은혜가 더 없을 것이란 생각을 했을지도 몰랐다.
이재마 원장을 찾는 환자들이 늘어 유동인구가 늘면서 매출이 올라간 것도 사실이니까.
좋은 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없는 고통이 이렇게 괴롭다는 걸 50 평생에 처음 느끼는 안 사장이었다.
한의원을 나와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다시 자신의 가게로 왔을 때, 가게 앞에 시커먼 외제 차가 세워져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조금 전 한의원에서 마음도 몸도 조금 풀고 온 상황에서 가게를 턱하고 막고 있는 차에 다시 스트레스가 확 밀려오는 것 같았다.
“아니, 누가 남의 가게 앞에 차를 이렇게 세워놔?”
안 사장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안 사장은 외제 차를 잘 모르기는 했지만 해인동 골목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비싸기로 유명한 외제 차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나 참, 좋은 차 끌고 다니면 다인가. 견인도 못 해갈 걸 알고 저렇게 매너 없이 세워 놨겠지? 전화번호도 없고 말이야.”
혼잣말을 하며 가게로 들어온 안 사장은 아들에게 맡긴 정육점 안에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 둘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
둘의 모습이 해인동 골목에서 처음 보는 모습에 단박에 차 주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 엄마.”
아들은 손님에게 믹스 커피를 대접한 건지, 손에는 쟁반을 들고 어버버한 표정이었다.
“아이고, 손님 차였나 보네. 제가 몰라봤어요. 동네에서 저런 차를 본 적이 없어서.”
“안녕하십니까.”
손님 앞에 대고 흉을 본 거나 다름없는 안 사장은 민망함에 헛웃음을 하며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 사장이 인사를 하자, 중년의 사내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명함이 하나 들려 있었다.
명함을 받으면 자신의 명함을 줘야 하는데, 정육점을 하는 안 사장의 명함은 없어 빈손으로 명함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박상철이라고 합니다.”
“아, 네네. 저는 명함이 없어서…….”
“괜찮습니다. 해인 정육점 사장님인 걸 알고 찾아왔으니까요.”
안 사장의 어색한 웃음에도 박상철은 여전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근데 저희 정육점에는 고기를 사러 오신 것 같지는 않고, 무슨 일로……”
“아, 해인동에 특별한 소식이 들려서 겸사겸사 들렸습니다.”
박상철은 미소를 지으며 바깥에 걸린 ‘문화재 지정 간담회’ 현수막을 가리켰다.
“시청에서 오신 건 아닌 것 같은데…….”
시청 명함이 아닌 걸 이미 확인한 안 사장은 의문의 사내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문화재 지정은 명의 한의원에서 되는 건데, 정육점에 굳이 손님이 찾아올 리가 없었다.
“음…… 해인동에 제가 관심이 많았거든요. 개발을 코앞에 두고 있어서 몇 번이고 직접 오고 자리가 좋은 걸 확인했는데…….”
박상철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한눈에 봐도 번지르르한 정장에 비싼 외제 차까지…….
안 사장의 머릿속에서는 들어보기나 했던 투자자가 찾아왔다는 걸 직감했다.
“아, 소식 들으셨구나. 곧 주민 간담회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안 사장도 그러잖아도 자신의 가장 관심사인 명의 한의원 이야기에 씁쓸한 듯 마른 침을 삼켰다.
부동산 김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투자자들이 해인동에 관심을 갖다가도 문화재 지정 이야기에 발을 빼는 건지, 부동산 근처에는 개미 한 마리도 안 지나간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상인분들 생각은 어떤가 하고 와봤습니다. 상인들 사이에서 정육점 사장님이 정보통이라는 걸 저도 입수했거든요.”
“상인들이 좋아할 리가 있나요. 지금 개발이 코앞인데, 문화재 지정 잘못됐다간 여기도 옛 골목 그대로 유지하라며 개발은 엎어질 수도 있는걸요. 투자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이미 아시겠죠?”
“음…… 투자에 일가견이 있는 제 소견으로 봐도 그렇습니다. 요즘 옛 골목 상권 유지 명목으로 시에서 어설픈 투자를 하며 기존 상인들은 길바닥에 나앉고는 하니까요.”
박상철은 상인들이 진심으로 걱정되는 것처럼 이야기를 했다.
“상인들이 길바닥으로 나앉아요?”
안 사장은 처음 듣는 소리였지만, 투자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는 낯선 사내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설픈 투자만 해놓고 유명해지면 건물주들은 터무니없는 땅값을 요구하잖아요. 언리단길, 항리단길 다 그런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박상철은 안 사장의 표정이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점점 더 찌푸려지는 걸 확인했다.
언리단길이고, 항리단길이고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안 사장의 머릿속에는 해인동 상권의 개발이 급선무였다.
“조금만 사람들 관심만 있다 싶으면 여기저기 무턱대고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도 문제고요.”
“그래요? 아이고. 투자를 많이 하시는 분이 그렇다고 그러니 걱정이 확 되네요.”
안 사장은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20년을 한곳에서 장사를 하며 터를 잡았는데,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길바닥으로 쫓겨나는 상상을 하니 앞이 막막했다.
더구나 개발이 되어 상가가 싹 지어지면, 취업이 힘들다고 징징대는 아들에게 정육점을 물려주고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한 자신은 물러날 생각이었다.
가게에서 내쫓기게 되면 그마저도 이룰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럴 때일수록 상인들이 뭉쳐야죠.”
“그렇죠. 그렇고말고요.”
상철의 말에 안 사장은 마음을 굳혔다는 듯,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
“다른 상인들 반응은 어떻습니까?”
“에휴. 다들 뭐, 문화재면 좋은 줄 알고 있다가 이런 이야기 들으면 뒤늦게 걱정을 하죠. 간담회다 뭐다, 한다고는 하는데 거기 간다고 우리 이야기 들어주겠어요?”
안 사장은 상철을 처음 보지만, 자신을 이해해 주고 있다는 생각에 맘속에 있던 말을 저도 모르게 모두 털어놓았다.
그가 이야기를 하니 걱정이 더 밀려오는 것도 사실이었다.
“안 들어주죠.”
상철은 미소를 지으며 시청에서 이야기를 들어 줄 리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죠? 아이고. 큰일이네. 큰일이야.”
“그래서 말인데요…….”
상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안 사장의 귀에 대고 귓속말을 시작했다.
상철의 이야기를 한참 들은 안 사장은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안 사장님만 잘해주시면, 해인동의 미래가 밝다며 악수를 하고 정육점을 떠나는 상철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이렇게 직접 찾아주시고, 저희 상인들 마음 이해까지 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에요.”
“앞으로 잘 해주십쇼. 상인분들이 힘내셔야 합니다.”
“그럼요. 그럼요.”
안 사장은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박상철을 배웅했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안 사장의 아들은 미심쩍은 눈으로 박상철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엄마, 근데 저 사람 좀 사기꾼 같지 않아?”
“사기꾼은 무슨. 귀티만 잘잘 흐르는구만.”
미심쩍어하는 아들에게 모르는 소리 말라는 듯, 쯧 소리를 내는 안 사장은 이제 앞으로 박상철이 힌트를 준 대로 움직이면 해인동 상권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