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81화
“하이고야. 여기가 딱 환자 얼굴만 봐도 온몸에 있는 병 싹 알아봐 준다 카더니, 사람이 윽시로 많네.”
진순은 5분 떨어진 버스 정거장에서 버스에서 내려 아픈 다리를 끌다시피 천천히 걸어와 간신히 명의 한의원에 다다랐다.
활짝 열려 있는 대문 앞에 서서는 안쪽에 대기하는 환자들의 수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다섯 칸의 계단 앞에서 오르지도 못하고 멈춰선 진순은 굽은 허리를 살살 펴가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손녀인 정인에게 해인동에 환자를 잘 보는 한의원이 있다고 몇 번을 이야기했다. 진순은 명의 한의원에 대한 소문을 들고 한 시간 가까이 걸려 찾아왔는데 대기 환자 수를 보니 아찔했다.
한의사가 잘 보면 얼마나 잘 보겠냐며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넘겼지만, 어젯밤 소화가 잘되지 않아 정인이에게 등 좀 두드려 달라 부탁했더니, 손녀는 또다시 해인동 한의원을 이야기했다.
내일은 꼭 가보마, 하고 손녀와 약속을 한 탓에 먼 길을 찾아왔는데 대기할 의자도 없는 상태에 다시 돌아가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어르신, 자리가 필요하세요?”
한의원을 마주 보고 있는 과일 가게 사장이 진순에게 말을 건네왔다.
대기 환자를 보고 들어가지 못하고 놀란 환자들을 보는 것이 익숙한 것인 양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가게를 나왔다.
“하이고, 감사합니더.”
윤 사장은 가게 안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를 들고 와 한의원 대문 안쪽으로 자리를 잡고 진순의 손을 잡고 부축을 했다.
늘어선 환자 수만큼이나 아찔하게 느껴졌던 다섯 계단을 윤 사장 덕에 오를 수 있는 진순은 고개를 연달아 숙이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그가 보기에도 골목을 걸어오는 진순의 걸음걸이가 무릎이 좋지 않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던 탓이었다.
“이쪽에서 쉬고 계세요. 아마 정 실장님이 오셔서 접수해 주실 겁니다.”
윤 사장의 행동이 한두 번 해본 일이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윤 사장이 한의원 안쪽에 있는 직원에게 몇 마디를 하니, 한의원 직원이 쌍화차를 들고 진순에게 다가왔다.
진순이 나서지 않아도 직원까지 불러 주고 이렇게 친절한 이웃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저희 한의원 처음 오셨죠?”
“아이고. 예예. 처음 왔습니더. 근데 사람이 이래 많아서…….”
“네. 저희가 대기가 좀 길기는 해요.”
“한 시간이나 걸려왔는데, 다시 돌아가기도 그렇고로……”
“멀리서 오셨으니까, 대기하시다가 진료 보고 가세요.”
“하이고…….”
진순은 고민이 되는지 한숨을 푹 내쉬며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기석 없이 마당을 가득 메운 대기 환자들 사이에 자리를 마련한 윤 사장은 뿌듯한 마음으로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윤 사장이 한의원에서 나오는 걸 지켜보던 그의 안사람은 그가 돌아오자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한의원에 다녀와요?”
미숙은 밖으로 새어 나갈까 목소리를 낮춰 캐물었다.
“응. 의자가 모자라서 할머니 한 분이 안쪽으로 못 들어가시잖아.”
과일 가게에 있는 플라스틱 간이의자란 간이의자는 모두 한의원에 들어가 있었다.
미숙은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과일 가게이긴 했지만 단골손님이 오면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믹스 커피를 대접하기도 하는데 간이의자가 다 한의원으로 가 있으니 요새는 그러지도 못했다.
“아니, 그걸 왜 당신이 신경을 써요.”
미숙은 답답한지, 미간을 찌푸리며 윤 사장을 향해 아쉬운 소리를 내었다.
한의원 환자들이 늘면서 마주 보고 있는 과일 가게인 윤 사장의 과일 가게 매출도 늘기는 했지만, 요즘 들어서는 느는 환자 수가 반갑지만은 않았다.
“뭐, 못할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이웃끼리 부족한 게 있으면 나누고 하는 거지. 그리고 환자들 가시면 최 실장이 의자들 싹 걷어다 다시 가져다주는 데 그게 아까워서 그래?”
“아니, 누가 의자가 아까워서 그래요?”
미숙은 답답한 마음에 제 가슴을 콩콩 찧었다.
동네 사람들이 한의원을 향해 수군거리는 걸 윤 사장만 모르는 것 같았다.
“시장 골목 사람들이 안 좋게 보잖아요.”
“아니, 왜 안 좋게 봐?”
윤 사장은 안 좋게 본다는 소리에 도대체 무엇이 안 좋게 보이냐는 듯 두 눈을 크게 뜨며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시장 골목 사람들 사이에서 무슨 소문이 돌고 있는 줄 알아요?”
“뭔데?”
윤 사장은 정말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한 건지 의아한 얼굴을 했다.
“한의원이 잘되면서 오가는 사람들이 늘었잖아요.”
“아니, 유동인구가 늘고 손님이 늘면 좋은 거지 그걸 왜. 안 좋게 생각해? 그렇지 않아도 건너편 개발되면서 손님 발길 뚝 끊겼다고 한숨 쉴 때들은 언제고.”
“지금 개발 예정지로 묶여 있어서 이제나 저제나 언제 개발되나 기다리고 있는데 다시 활기를 띠는 게 좋기만 하겠어요? 개발 예정지에서 우리 시장 골목이 빠져나가면 어쩌려고 그래요?”
“에이. 설마.”
윤 사장은 시장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개발 예정지에서 시장 골목이 빠져나가는 일은 없을 거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정육점 강현이 엄마가 그러는 데 한의원에 시청 직원들도 종종 온대요. 그게 무슨 소리겠어요.”
“시청 사람들이 오는 거랑 뭔 상관이야?”
미숙이 하는 이야기를 도통 못 알아듣는 윤 사장이었다.
“한의원을 문화재로 지정한대요.”
“그래에? 그럼 좋은 거 아니야? 우리 시장 앞에 떡 하니 문화재가 있고.”
“아이고, 이 답답한 사람.”
윤 사장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며 얼굴에 화색을 피웠다.
그러잖아도 동네에 오래된 한의원이 있는 것이 윤 사장의 자랑이나 다름없었는데 문화재 지정까지 되면 여기저기 자랑을 하고 다녀도 될 것 같았다.
미숙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윤 사장 때문에 답답한 듯 발을 동동거렸다.
“한의원이 문화재 지정이 되면 그 근방은 개발이 되기 힘들단 말이에요.”
“에엥? 그런 게 있어?”
윤 사장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그제야 놀란 모습이었다.
“당신, 비 오면 맨날 과일 들여놓느라 바쁘고, 여기저기 물세서 그곳은 또 피해서 과일 옮기고…… 당신도 빨리 싹 밀고 주상복합으로 들어가면 번듯한 가게가 될 거라고 좋아했잖아요.”
“그렇긴 그렇지…….”
“근데 다 된 상황에서 갑자기 한의원이 잘되면서 문화재 지정되고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코앞에 있는 우리 가게부터 개발 예정지에서 떨궈 나오면 어쩌려고 그래요?”
윤 사장은 맞는 말만 쏙쏙 하는 미숙의 말에 더 이상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이 자리에서 20년 가까이 과일 가게를 하며 구 원장의 도움을 받았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구 원장뿐 아니라 그의 손자인 이 원장이 한의원을 맡으면서도 시장 골목 사람들이 불편한 곳이 없는지 때때로 물어가며 동네 주치의인 양 도움을 줘서 항상 감사한 마음에 무엇이라도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아내인 미숙의 이야기를 들으니 앞으로 한의원이 잘 안 되길 바라야 하나…….
의자가 없어 대기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어르신들을 그저 지켜만 봐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럼 대기 못 하고 다시 되돌아가는 환자들을 바라만 보란 소리야?”
“그걸 우리가 왜 신경을 써요. 우리 가게 걱정이나 해야지. 아무튼 시장 골목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가게만 혹시 한의원에서 뭐 받는 게 있는 거 아니냐는 소리 돌고 있으니까 행동 조심해요. 받는 것도 없으면서 괜히 오해 사지나 말고.”
미숙은 남편인 윤 사장의 옆구리를 찌르고는 조금 전 손님에게 팔고 비어 있는 사과를 채워 넣었다.
* * *
“안녕하세요. 사장님.”
강산은 재마의 진료를 마친 후 동기 몇몇과 함께 명의 한의원에서 모여 삼겹살을 구워 먹기로 했다.
정우와 재마, 다른 친구들은 진료를 보고 있을 테니 삼겹살 파티는 당연히 강산의 몫이었다.
평소 사교성이 좋은 강산은 ‘환자를 읽는 한의사’ 채널의 일을 맡아 하면서 해인동 시장 골목 상인들과 꽤 가까운 사이가 되어 있었다.
특히 시장 골목에서 마당발로 유명한 정육점 안 사장과는 더욱 가까웠는데, 삼겹살 3인분을 사면 200그램 이상 더 얹어주기도 할 정도였다.
“어? 어…… 총각 왔어?”
평소에는 한의원 총각 왔냐면서 하던 일도 멈추고 반겼던 정육점 안 사장이었지만, 오늘은 도통 무슨 일인지 강산을 보고도 시큰둥했다.
정육점 안 사장은 강산을 보고 괜스레 피하는 것처럼 냉동창고로 들어가 제 몸만 한 고깃덩어리를 들고 왔다.
“아이고 아이고, 사장님. 좀 들어드려요?”
강산은 바라만 보고 있는 게 민망한지 도와주겠다며 정육점 안쪽으로 들어와 양팔을 걷어붙였다.
“아녀아녀. 도와주기는 옷 배려. 왜, 뭐 줄까? 삼겹살? 등심?”
큰 고깃덩어리를 도마 위에 쿵 하고 얹은 안 사장은 그제야 강산을 바라봤다.
“오늘 한의원 마당에서 고기 파티 하려고 하거든요. 열 명 정도가 먹으려면 얼마나 사가야 할까요? 그리고 오늘 이 원장이 쏘는 거니까 삼겹살 말고도 비싸고 맛있는 부위로 추천 좀 해주세요.”
강산은 오래간만에 대량으로 고기를 사갈 생각에 어깨를 으쓱이며 맛있는 부위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안 사장은 강산의 당부대로 맛있는 부위를 주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냉동창고를 이리저리 다니며 다섯 군데의 부위를 야무지게 썰었다.
“근데 오늘 사장님 분위기 이상하네?”
“내가 뭐얼.”
“아니, 내가 오면 아들 온 것처럼 반기고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묻던 분이 오늘은 이상~하게 조용하시니까 내가 무슨 분위기인가 생각하게 되잖아요.”
“무슨 분위기는, 별일 없어. 자, 열 명에서 넉넉히 먹을 수 있을 거야.”
강산은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이면서 재마에게 받아온 카드를 내밀었다.
“할부는?”
“이 원장 카드니까 쿨하게 일시불로 긁어주세요.”
“그려. 에휴. 한의원은 이사 안 나가?”
“네?”
안 사장은 아무래도 속마음에 담고 있었던 말을 더 이상 못 참겠는지 강산에게 물었다.
“아니, 여기 환경도 그렇잖어. 길 건너는 개발한다고 난리지, 이쪽도 언제 될지 모르고 개발한다고 분위기도 어수선하고. 젊은 원장님 오신 다음에 환자도 많은데 해인동처럼 오래된 동네 말고 다들 성공하면 강남으로 가잖어. 강 건너가면 손님도 더 많을 텐데…….”
“에이 그래도 명의 한의원이 여기 있었던 전통이 있는데 어디를 가요.”
“아휴. 이사를 가야지. 여기 개발돼서 싹 밀어버리지.”
정육점 안 사장은 답답하다는 듯 계산된 고기를 강산에게 건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총각이 젊은 원장님한테 이제 돈 웬만큼 벌었으면 강남 새 건물로 이사 가자고 좀 옆구리 좀 찔러봐 봐.”
“으흠. 오늘 사장님 진짜 이상하네.”
“이상하기는 뭐가 이상해! 그리고 서비스로 주먹고기 좀 더 넣었으니까 맛보고 맛있으면 또 오고.”
안 사장은 이상할 것 없다는 듯 강산을 등 떠밀어 내보냈다.
평소에도 시장 골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고, 그런 이야기를 넌지시 이야기해 주던 안 사장이었는 데 오늘은 왜인지 분위기가 이상한 느낌이었다.
강산은 싸한 기분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