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80화
정우는 지수가 침을 다 맞고 물리치료 받는 것까지 지켜보았다.
처음에 봉침을 맞기 전 잔뜩 겁에 질렸던 지수였지만, 침에 집중하지 않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시술했더니 침을 놓는 줄도 몰랐다는 우스갯소리까지 하는 지수였다.
덩치는 다 큰 성인만 해서 침을 무서워하는 것이 영락없는 아이 같아 귀여우면서도 능청을 부릴 때는 혀를 내두른 정우였다.
이렇게 말도 곧잘 하면서 한의원을 오자는 어머니에게는 왜 그렇게 툴툴댔는지, 정말 중2병이라는 것이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때.”
물리치료까지 마치고 베드에서 내려오는 정우를 부축한 정우는 그의 상태를 물었다.
“음, 어제보다 침을 맞고 나니 좀 당기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아마 오늘은 봉침을 맞아서 그럴 거야. 약효 나타나느라 그러니까 오늘은 농구 하지 말고 일찍 집으로 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능청을 부리던 지수의 얼굴에 그늘이 순식간에 지어졌다.
그렇게나 농구가 좋은 건지, 아니면 공부가 싫어서 돌파구를 찾고 있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정우였다.
“정말 안 돼요?”
“응. 정말.”
정우는 절대 오늘은 뛰면 안 된다고 지수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자신과의 약속을 정말 지킬지 알 수는 없었지만, 오늘 한의원을 오겠다는 약속은 지켰던 지수니까 그를 믿어보기로 했다.
“내일 보자. 점심시간에 못 와도 되니까 천천히 와.”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지수 하나를 위해서 야근을 불사하고 야간진료를 보기로 한 정우는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한번 꺼낸 이야기이니 지킬 예정이었다.
“지수 왔었다며?”
오전 진료를 마친 재마가 지수를 배웅하는 정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미 마지막 환자를 보낼 때 정 실장이 말해준 덕에 지수가 스스로 찾아와서 정우에게 봉침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재마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정우의 속마음을 들었을 때는 침 치료가 겁이 나기도 하고, 치료를 받으면 농구를 쉬어야 할까 하는 걱정이 섞여 있어 그를 한의원으로 끌어들이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던 그였다.
“응. 오늘은 뛰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어쩔지 모르겠네.”
지수를 믿어보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내심 걱정이 되는 정우는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 나 부탁할 게 있는데.”
“부탁?”
정우는 지수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명의 한의원 원장인 재마에게 허락을 구해야 했다.
“지수 치료하는 동안은 내가 좀 늦게 퇴근해서 치료를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야간진료를 보겠다는 소리야?”
야간진료라는 것이 한의사 한 명만 남는다면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물리치료를 하게 된다면 물리치료사도 남아야 할 것이었다.
“물리치료는 야간으로 오지 않을 때만 하고, 야간으로 할 때는 내가 혼자 남아서 찜질 정도만 해야겠지.”
“그래? 음…….”
재마는 선뜻 허락은 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저 녀석 무슨 꿍꿍이인지 친구들 모르게 점심시간 통해서 외출해서 치료를 받는 거더라고. 친구들한테 알려지면 안 될 이유라도 있나.”
“아무래도 반 대항으로 게임을 하려면 부상 선수부터 제외하니까.”
정우는 자신이 야간진료를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를 넌지시 꺼냈다.
“까짓거 농구 몇 번 빠지면 되지. 아픈 것보다 게임이 중요해?”
재마의 추측에 정우는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었다.
“물론 자기 건강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저 때는 친구들과의 관계도 중요하지.”
“나 참, 중2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네. 당분간은 힘들겠지만 이 선생이 고생해야지.”
자신의 허락은 당연하고, 남아야 할 정우가 고생을 하겠다는 듯 재마는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정우는 원장인 정우의 허락이 떨어졌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알다가도 모를 희열을 느꼈다.
“원장님,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이 선생님이야말로 환자 생각이 각별하시네요.”
서로 주거니 받거니 칭찬을 한 두 사람은 나란히 걸어 명의 한의원으로 걸어 들어갔다.
정우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오늘 점심은 어떻게 할 것이냐며 재마에게 바짝 붙어 물었다.
* * *
“선배, 사무실 차렸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사무실치고 누추하지?”
성은이 정한 한방병원을 나오고 유 국장에게 사직서를 내던지자마자 생각이 난 직장 선배 박귀남.
귀남은 한의 신문에서 7년이나 일하고선 지난달 한의 신문을 떠나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한다고 떠났다.
“선배 너튜브 채널 준비한다는 건 알았는데 무슨 채널 준비하시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채널 준비하면서 궁금한 게 있어서 연락했던 거야.”
“뭔데요?”
성은은 자신보다 많이 알면 알고 있을 귀남이 자신에게 직접 무엇인가 물어올 것이란 건 생각지도 못했다.
“내가 정한 한방병원 뒤를 좀 캐고 있는데…….”
“정한 한방병원이요?”
그렇지 않아도 정한 한방병원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는 성은이기에 관심이 있는 듯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몇 가지 자료는 찾아놨는데…… 최근에 있었던 한의사 너튜브 사건 있잖아. 좋은 뜻으로 요양원 진료 봉사를 했는데 보호자 측에서 인터뷰 한 사건.”
“네. 그 부분이야 제가 잘 알고 있죠.”
“나는 그 배후에 정한 한방병원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왜요? 선배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그렇지 않아도 찜찜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닌 성은은 자기 말고도 다른 기자가 의심을 품었다는 것에 흥미로운 눈치였다.
“정한 한방병원이 미심쩍은 부분이 많은데 그중의 하나가 그 역사야. 정한 한방병원은 자신들이 3대째 이어오는 한의사 집안이라는 것을 브랜드화했잖아.”
“그렇죠. 그렇게 해서 아침방송에도 나오고 다큐멘터리도 찍으면서 유명해졌죠.”
“근데 실은 그런 것 같지 않아. 어디서부터 조작이 됐는지 알 수는 없지만…….”
“조작이요?”
성은은 조심스럽게 정한 한방병원에 대한 의심을 이야기한 귀남의 목소리와 달리 소스라치게 놀랐다.
귀남은 자신의 사무실에 성은과 단둘밖에 없었지만, 누가 들을세라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방송에 나와서 1대 한의사가 지었던 기록본이라고 공개했던 책자가 실은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것을 비싼 돈 주고 구매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그 정도면 사기 아니에요? 아니,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 치는 거죠. 방송에 나와서 공개한 이후, 한의원이 인산인해를 이뤘고 그 이후에 강남에 대형 한방병원을 차리면서 전국으로 뻗어 나간 거잖아요.”
물론 한 지역의 한의원에서 전국의 한방병원으로 뻗어 나가는 것은 대표의 사업수완이 두둑했기 때문에 그의 능력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능력 외에 조작된 과거를 가지고 홍보를 해왔다면 그건 명백히 사기나 다름없었다.
공개가 된다면 지금까지 그가 쌓아왔던 신뢰가 무너질 것은 물론 오랫동안 한의 신문에 칼럼을 연재해 온 만큼 한의 신문에 대한 신뢰도 무너질 것이었다.
특히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명예와 권력을 가지고 한의 신문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위치였다.
자신이 칼럼 연재를 그만둔 이후에도 쭉 자신의 후임은 정한 한방병원 출신 한의사들뿐이었다.
전국에 있는 모든 한의사들을 상대로 편 가르기와 정치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게 문제지. 아마 이게 밝혀지면 파장이 클 거야. 그래서 더욱 신중한 거고.”
“선배는 그래서 그 증거들을 모으고 있는 거고요?”
“응. 그 와중에 지난번 인터뷰 사건의 인터뷰가 공개한 채널의 인터뷰가 아니란 걸 알게 됐지.”
“그럼요? 누가 했다는 거예요?”
“정한 한방병원 측에서 섭외부터 인터뷰 진행까지 모두 한 것 같아.”
“정한 한방병원에서요?”
“너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동네 작은 한의원이자 아직 면허 딴 지 1년밖에 안 된 한의사가 관심을 받는 걸 견제한 거겠지.”
“허. 아무리 그렇다 해도…….”
성은은 기업이나 다름없는 정한 한방병원에서 명의 한의원을 견제해 악의적인 인터뷰를 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거기다가 겹치잖아. 4대째 전통을 이어온 한의원과 3대째 한의원을 해오고 있다는 명성을 가지고 성장한 한방병원.”
“그렇네요.”
“거기에다 자신들은 조작된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명의 한의원은 4대째 한 자리에서 전통을 이어오고 있고. 지금은 비록 작은 동네 한의원이겠지만 너튜브로 이슈를 얻게 되면 순식간에 정한 한방병원을 위협하겠지.”
흩어져 있던 퍼즐들이 하나씩 맞춰져 가는 것 같은 생각에 성은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데 선배가 너튜브 채널을 시작한다고 해도 무명의 너튜버가 의혹을 품는다고 이슈가 될 수 있을까요?”
너튜브가 여론을 움직이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지난번에도 깨달았던 성은이었지만, 이슈가 되려면 너튜브가 어느 정도 성장세에 있어야 했다.
“음, 그렇지 이제 시작이긴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비리에 묻힌 진실들을 밝혀내는 채널을 운영하고 싶은 마음이니까. 내가 밝혀낼 비리 중 하나인 것뿐이지. 밝히는 날까지 정보를 많이 모아야 하고.”
“선배. 대단하네요. 아무리 불의를 보고도 쉬쉬 넘어가는 기자들도 많은데…….”
성은도 기자로 일하고 있었지만, 그런 기자정신을 잊고 사는 기자들을 너무 많이 봐온 탓에 씁쓸한 쓴 침을 삼켰다.
“그래서 말인데…… 성은이 네가 우리 회사에서 같이 좀 일해 줬으면 좋겠는데…….”
귀남은 성은에게 연락을 했던 이유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지난번 이재마 원장을 인터뷰한 이후로 칼럼니스트에 그를 추천했다가 물먹었다는 이야기를 건너 건너 들었던 그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의 신문의 임원들이 개입했고 국장과 성은의 트러블이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평소 한의 신문에서 후배인 성은을 눈여겨봤던 그였기에 성은이 함께한다면 지금껏 모아온 정보와 성은의 열정이 더해져 더 큰 시너지 효과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한의 신문을 그만뒀다고 해도 다른 신문사를 찾겠지……. 이런 누추한 곳에서 일하기는 그렇지?”
자신이 제안을 하고 있으면서도 성은이 자신과 함께 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듯 미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는 귀남이었다.
“선배.”
“응. 김 기자.”
자신을 부르는 성은의 목소리에 귀남은 침을 꼴깍 삼켰다.
“저 꼭 하고 싶어요. 진짜 한의사 협회가 자기 협회인 것 마냥 쥐락펴락하는 꼴도 보기 싫고, 이제 보니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는데 제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응?”
“진짜 선배야말로 기자 중의 기자예요. 존경합니다.”
성은은 귀남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일단 지난번 명의 한의원에 대해 인터뷰를 했던 보호자 가족들부터 제가 직접 찾아갈게요. 이재마 원장님도 만나봐야 할 것 같고…….”
성은은 정한 한방병원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는 것에 의욕을 불태우겠다는 듯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