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76화
정우가 명의 한의원에 출근한 지, 이틀째.
어제는 물론 하루가 지난 아직까지도 정우의 진료실을 스스로 찾는 환자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정우에게도 그를 찾는 환자가 생기겠지만, 그 언제가 언제 올지도 알 수도 없었다.
정한 한방병원에 있을 때는 밥 먹고 화장실을 다녀올 틈도 없이 환자들이 밀려들어 기계처럼 침을 놓고 환자들의 상태를 살피느라 그곳에서는 몸이 무척이나 고단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진료도 보지 못하고 진료실에만 갇혀 있는 기분이라 몸은 쉬고 있지만 마음도 몸도 편치 않았다.
“후.”
정우가 책상에 앉아 환자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다 못해 지쳐 멍 때리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네. 들어오세요!”
처음에는 환청이 들리나 했다가 똑똑히 들리는 노크 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선생님? 정지수 환자 오셨습니다.”
“네? 환자요? 아, 네. 어서 오세요.”
갑작스럽게 환자가 왔다는 소리에 정우는 얼떨떨했지만, 환자가 진료를 볼 수 있도록 의자를 가볍게 빼며 손짓을 했다.
명의 한의원에서의 첫 환자라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정 실장이 안내한 정지수라는 환자는 키는 훤칠했지만 아직 얼굴은 앳된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학생이었고, 그 뒤로 들어오기 싫어하는 지수를 억지로 진료실에 밀어 넣기라도 할 기세로 따라 들어오는 그녀의 어머니가 있었다.
“음…… 오늘 무슨 일로 한의원에 찾아오셨나요?”
첫 진료를 맡으면 환자에게 무슨 말로 시작을 해야 할지 환자가 없는 동안 수없이 되뇌었던 정우였지만, 막상 환자가 들어오니 어떻게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말이 툭 튀어 나왔다.
더구나 생각했던 것보다 어린 환자라 어디가 아플지 전혀 예상도 되지 않았다.
환자라는 지수는 입을 꾹 닫은 채로 의자에 앉아서 정우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고, 보다 못한 답답한 어머니가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아휴. 사실 이 녀석이 학생이면서 공부보다 농구를 더 밥 먹듯 하는데요. 한 번 다쳤던 발목이 계속해서 다치는 것 같은데 치료도 받지 않고 파스만 뿌리고 좀 나을 만하면 또 뛰고, 또 농구 한다고 친구들이랑 나가고 해서 좀처럼 낫지를 않아요.”
“아…….”
남중 남고를 나온 정우였으니 남학생들이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때는 공부보다도 운동이, 부모님보다도 친구가 우선일 시기였다.
보고 있는 부모님 속만 타들어 갈 뿐이었다.
정우는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지수의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지수를 바라봤다.
진료실을 들어올 때는 보행에 큰 문제가 없어 보였는데 지속적으로 발목을 아파했다니 확인을 해야 했다.
“정지수 환자, 발목 좀 볼까요?”
“괘…… 괜찮아요. 그냥 살짝 삐끗한 거고 친구들도 다 이 정도는 아파도 경기 뛰어요.”
지수는 엄마 손에 어쩔 수 없이 한의원 끌려오기는 했지만, 상처 부위를 보이고 싶은지 괜찮다며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환자가 나서서 환부를 보여주지 않으니 정우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조금 더 어리면 치료받는 것이 무서워 그럴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여느 성인 남성과 견주어도 비등한 피지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괜찮은가 안 괜찮은가 한의사인 제가 한번 볼게요. 그냥 가볍게 치료가 될 정도면 가볍게 오늘 침 치료받고 물리치료 받고 귀가하면 되는 거고…….”
“괜찮다니까요!”
그래도 아직 나이가 어려 치료에 겁을 낼 수 있으니 가벼운 치료라 안심을 시키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에 지수를 설득하기 시작한 정우.
계속해서 정우가 상처 부위를 보자며 이야기를 하자 지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녀석이 어디서 소리를 지르고 있어! 선생님이 앉으시라면 앉아!”
“아악! 아파! 왜 때려!”
“왜 때려? 치료받으러 와서 선생님한테 소리를 지르고 다친 데도 안 보여 드리는데, 가만히 있어? 한 대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보다 못한 정우의 엄마는 덩치만 컸지 철은 들지 않은 것 같은 아들의 등짝에 스매싱을 꽂았다.
중고등학교 때 엄마에게 등짝 안 맞아본 아들이 어디 있으랴.
지금 상황이 모두 이해가 되며 과거의 자신이 떠오르는 듯 보고 있는 정우의 등짝도 아려오는 것 같았다.
지수는 혈기 왕성하게 벌떡 일어났지만, 시원스럽게 엄마에게 등짝을 맞은 지수는 다시 앉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에게 맞은 등짝도 아팠지만, 지수는 처음 보는 한의사 앞에서 맞은 모습이 더욱 창피했다.
“어…… 어머님? 여기서 이렇게 혼내시지 마시고요. 일단 지수 상처를 보는 게 중요하니까요.”
정한 한방병원 부산점에 있을 때는 대형병원의 특성상 고질병인 디스크를 갖고 있는 환자들이 많이 찾아왔었다.
어떻게 해서든 비수술 방법으로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자신의 병을 고치려고 한 번이라도 더 정우에게 아픈 부위를 보이는 사람은 있었어도 이렇게 지수처럼 치료를 받기 싫어하는 사람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진짜 참을 만하니까 제가 치료를 안 받는 거예요. 전 그럼 치료 안 받을 거니까 일어나겠습니다.”
조금 전 엄마에게 등짝을 시원하게 맞고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던 지수는 이번에는 정우의 눈을 똑똑히 바라보며 자신이 왜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하는지 정확히 말했다.
-사춘기 : 커져 버린 몸만큼 자신의 정신도 커졌다 생각을 하며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싶을 때.
정우는 지수를 보며 자신이 사춘기 때 정의했던 사춘기의 뜻이 다시금 떠올랐다.
지금 지수는 자신이 걱정되어 병원으로 끌고 온 어머니의 마음을 절대 이해할 마음이 없었다. 그저 자기 스스로 결정을 하고 싶을 뿐.
“어휴. 너 진짜 왜 그래, 엄마 속상하게!”
다친 아들이 치료를 받지 않겠다 고집을 부리는 통에 답답하다는 듯 지수의 엄마는 제 가슴을 치며 속상해했다.
지수는 엄마가 속상해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정우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홀로 빠져나갔다.
“어머니, 오늘은 진료 안 받겠다니까 그냥 가시고요. 혹시 많이 절뚝대거나 통증이 심하다 말하면 다시 한의원으로 데려오세요.”
진료실을 환자가 나갔으니 더 이상 진료를 할 수 없는 정우는 당황스러웠지만 표정 관리를 하며 지수의 어머니에게 다음에 다시 오라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이렇게 진료를 받기 싫다고 나간 지수를 어머니가 다시 한의원으로 끌고 온다고 끌려올지도 미지수였다.
그때 진료가 제대로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진료실을 홀로 나온 지수는 엄마가 따라 나와 다시 진료실로 끌려가기 전에 한의원을 빠져나가야겠다는 듯 아픈 다리로 빠르게 움직였다.
자신이 진료를 받지 않겠다고 제 발로 걸어 나왔으니 아픈 티를 전혀 내고 싶지 않았다.
“윽.”
“어이구. 학생 괜찮아요?”
처치실에서 침 치료를 마치고 나오는 재마와 부딪힌 지수는 아픈 발목을 억지로 빠르게 움직이다가 찌릿하고 당기는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윽 소리를 내버렸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아픈 부위의 모든 근육들이 잔뜩 움찔거렸다.
살짝 부딪혔는데 강한 통증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지수의 모습에 재마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재마와 부딪힐 줄 모르고 움직인 탓에 근육이 더욱 놀란 모양이었다.
“어디가 아픈 지 내가 봐도 될까요?”
아파서 바로 움직이지 못하는 지수의 다리 쪽으로 시선을 고정한 재마가 한번 보자고 하는 데도 지수는 괜찮다며 다시 허리를 꼿꼿이 폈다.
조금 전 진료실을 박차고 나왔는데, 이렇게 쉽게 무너지고 치료를 받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괜찮아요. 진짜 괜찮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후, 지금도 연습 가려면 늦었어. 얼른 가야 하는데. 윽.
그의 속마음은 전혀 괜찮지 않게 들렸지만 괜찮다고 손사래를 친 지수는 더 이상 재마의 부름에도 대답도 하지 않고 한의원을 빠져나갔다.
‘연습? 무슨 대단한 연습을 하기에 저렇게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인데 가는 거야?’
속마음을 들은 재마는 그저 빠져나가는 지수를 바라볼 뿐이었다.
“정 실장님, 방금 나간 학생. 한의원 찾아온 환자 맞죠?”
지수의 모습은 누가 봐도 보호자가 아닌 환자의 모습이었다.
“네. 이정우 선생님께 보낸 학생인데 진료도 받지 않고 나간 거예요.”
조금 전 빠져나간 지수의 뒤를 급하게 따라나서는 지수 엄마의 모습을 보며 안타깝게 바라보는 정 실장도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진료도 받지 않고요?”
재마는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되지 않는 듯 되물었다.
“재마야, 너네 환자들 왜 이렇게 진료 한번 보기가 어렵냐.”
진료실 밖으로 나온 정우는 친구로서 재마에게 한탄을 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환자 구경도 하지 못하다가 진료 한번 보나 했더니 그것도 쉽지가 않네.”
정우는 방금 놓쳐 버린 환자가 아쉽다는 듯 양손으로 머리를 헝클었다.
처음 명의 한의원에 왔을 때 재마가 적응을 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었지만, 경력 없이 명의 한의원에 뚝 떨어지듯 했던 자신보다는 정우가 적응을 쉽게 할 것이라 생각했던 재마였다.
하지만 재마의 생각과 달리 정우도 적응하기 위해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는 모양이었다.
대형 한방병원에 있다가 다소 분위기가 다른 동네 한의원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는 걸 잘 아는 재마는 정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야, 진짜 대형 한방병원에서 동네 한의원에 대해 떠드는 한의사들 다 와보라고 하고 싶어. 진짜 여기가 열 배는 힘들다. 힘들어.”
대형 한방병원은 밀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몸이 힘들었지만, 이곳에서는 정신이 힘든 정우는 답답하다는 듯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나저나 아까 네가 놓친 환자, 진료 부위는 어디야?”
“농구를 하도 해서 발목이 안 좋은 것 같다는데 구경도 못 했어. 엄마 손에 이끌려서 억지로 와서는 괜찮다고 보여주지도 않더라.”
정우는 말도 말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도 사춘기를 보냈지만, 아프면서도 아픈 부위를 보여주지 않겠다는 것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 보통 아픈 게 아닌 것 같던데.”
“그렇지? 너랑 부딪히고 한참 발도 못 떼지? 그러면서 왜 치료를 안 받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거야? 나 참, 이해가 안 가네.”
정우가 이해가 안 가는 어려운 숙제에 맞닥뜨렸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따 진료 끝나고 농구나 한판 하러 갈래?”
“농구? 갑자기?”
“그냥. 갑자기 농구나 하러 가고 싶어지네? 답답한 마음 좀 뛰고 나면 시원해지잖아.”
재마는 농구 한판 시원하게 뛰고 스트레스를 날리자는 듯 정우에게 말했다.
“글쎄다. 농구 하다가 다친 환자 진료도 못 봤는데 이 답답한 마음이 농구 좀 한다고 나아질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