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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74화 (74/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74화

강산이 준비해 준 추가 진료 봉사팀을 위한 지원자와 봉사를 와달라는 요청 건은 재마가 혼자 감당하기 힘들 만큼 벅찬 양이었다.

결국 재마는 봉사 지원자들을 하루에 두 명 정도씩 면접을 보고, 다섯 명의 한의사를 뽑은 후 회의를 통해 봉사 활동지를 결정할 생각이었다.

명의 한의원의 정상진료를 봐가며 두 명씩 면접을 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책 한 권은 족히 나올 것 같은 지원서 양을 보니 두 명이 아니라 서너 명씩으로 늘려야 하나. 라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비록 동문은 아니지만 같은 뜻을 가지고 진료 봉사를 참여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네. 그렇죠. 꼭 저희 동문들끼리 진료 봉사를 할 생각은 아닙니다.”

“정말이죠? 참 다행이네요.”

-후, 면접 합격만 하면 원장님한테 연봉 협상을 다시 하자고 해야겠어.

현재 올라온 진료 봉사 브이로그에는 모두 재마의 동기들로 구성된 것을 보고 걱정했던 지원자는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첫 봉사는 재마의 동기들로 소소하게 떠난 진료 봉사였지만, 이번 봉사팀을 꾸리는 것은 요청지가 많은 상황이라 동기라는 제약을 두지 않고 지원자를 모집했다.

지원자의 속마음을 들으려고 하면 들을 수 있는 재마였지만, 이왕이면 속마음을 듣기보다 자신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하는지 듣고 결정할 생각이었다.

속마음을 듣지 않기 위해 면접자와의 대화에 집중하려 했지만, 이렇게 툭툭 속마음이 들리고는 했다.

‘연봉 협상?’

진료 봉사와 연봉이 무슨 연관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재마는 펜으로 지원자의 서류에 끄적이며 다시 집중했다.

“아시다시피 저희는 진료 중심의 봉사가 우선입니다. 혹시 너튜브 촬영에 대한 부담감은 안 하셔도 됩니다.”

“혹시 봉사 브이로그는 몇 편으로 올라가나요? 다섯 명의 한의사면 편집이 많이 되겠죠?”

-다섯 명이면 분량 챙기기 치열하겠는데?

알고 싶지 않았지만 한번 들린 지원자의 속마음이 재마에게 계속 들리기 시작했다.

재마도 사람인지라 한번 시작된 속마음은 계속 듣고 싶은 마음이 커지기도 했다.

진료 봉사로 지원을 한 지원자였지만, 이미 너튜브에서 성공궤도를 달리고 있는 ‘환자를 읽는 한의사’ 채널 출연에 관심이 많은 지원자들이 많았다.

면접을 오는 지원자 대부분의 속마음에는 너튜브에 대한 욕심이 컸다.

“혹시 저희 한의원 가운 입고 봉사활동을 가도 되나요?”

“네?”

“저희 원장님이 진료 봉사하게 되면 꼭 한의원 가운 입고 가라며 벌써 기대를 하셔서…….”

-한의원 마트가 크게 그려진 가운으로 다시 맞추고 홍보 효과를 톡톡히 낼 테니 연봉도 바짝 끌어올리는 거야.

“아…….”

재마는 봉사자로 뽑히게 되면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한의원의 홍보가 될 수 있도록 한의원 가운을 입겠다는 지원자 앞에서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의 속마음이 재마에게 훤히 보이는 줄 모르고 지원자는 재마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니, 오너의 제안을 쉽게 거절을 하지 못하고 면접 자리에서 묻는 것이 분명할 것이었으니 딱 잘라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럼 오늘 진료는 모두 마치시고 오셨나요?”

지원서를 확인하니 해인동에서 편도로 두 시간이나 걸리는 한의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의사였다.

“아뇨. 오늘은 대표 원장님이 면접 보고 오라고 반차 내 주셨어요. 한의원 사활이 걸렸으니 최선을 다하라고 하시면서…….”

“아, 네…….”

재마는 지원자의 뜻을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면접을 마쳤다.

“오늘 먼 곳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결과는 빠른 시일 내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재마는 약소하지만 미리 준비한 면접비를 지원자에게 건넸다.

편도 두 시간 거리인 서울 해인동까지 직접 온 지원자에게 다른 지원자들과 동일하게 소정의 면접비를 주는 것이 맞는 것일까 고민을 했지만, 그렇다고 더 줄 수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잘 좀 부탁드릴게요. 원장님이 꼭 붙고 오라고 부담을 주셔서…….”

-연봉 협상의 희망이니, 제발!

지원자의 속마음은 연봉 협상의 희망이 될 너튜브 출연에 욕심을 냈다.

명의 한의원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지원자는 원장님의 관심을 받고 싶다며 부담감을 재마에게 전가시켰다.

“어땠어? 나이는 지금 있는 동기들이랑 비슷해서 같이 어울려서 봉사 다니기에는 좋을 것 같은데……?”

면접에는 참여를 하지 못한 강산은 면접 결과가 궁금한지 목을 빼놓고 면접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지원자가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속마음을 들었다는 것을 강산에게 그대로 전할 수 없으니 재마는 홀로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렇기는 한데,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다섯 명을 고른다는 것이 쉬운 게 아니네.”

“원장님이 너무 생각이 많으신 건 아니세요?”

재마와 강산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 실장이 재마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듯 물었다.

차라리 속마음이 들리지 않았으면 오히려 선택이 쉬울 것 같다는 마음도 들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이왕이면 너튜브보다는 어르신들 진료에 더 관심이 있는 분이었으면 좋을 것 같고…….”

“다음 면접은 몇 분 뒤야?”

“10분 뒤.”

야간 진료 없이 7시 정상진료만 하고 면접을 보고 있지만, 두 사람의 면접을 보고 나면 야근을 한 것과 다른 없는 시간이 되었다.

8시 면접을 보기로 한 한의사가 오기 전까지 10분이 남아 몸이라도 좀 풀 생각에 재마는 기지개를 쫙 켰다.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명의 한의원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정우야?”

문을 등지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재마 뒤로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강산의 얼굴이 굳었다.

정한 한방병원을 그만두고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이후로는 동기들과 한참 동안 연락도 하지 않고 두문불출했던 정우였다.

그가 연락도 없이 명의 한의원을 직접 찾아왔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 강산이도 있었구나?”

조심스럽게 한의원 문을 연 정우는 강산도 함께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자신을 보고 놀라는 모습을 보니 어설픈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한의원까지 무슨 일이야?”

강산이 놀란 만큼 재마도 놀라 뒤를 돌아봤다.

지난번 동기 모임에서 그대로 헤어진 탓에 마음이 쓰였던 정우였지만, 직접 한의원까지 찾아온 모습을 보니 그동안 마음고생을 한 것인지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오늘 진료 봉사 면접 있다는 연락받고 왔는데…….”

-설마 내가 오는 걸 모르고 있었나? 후, 괜히 온 걸까.

“뭐? 오늘 면접 보는 한의사가 너였다고?”

강산과 재마 둘 다 정우가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해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원자가 너무 많은 통에 지원서를 직접 다 확인하지 못한 강산과 재마였다.

거기에다 면접 일정과 연락은 정 실장에게 부탁을 했으니 더욱이 정우가 온다는 것을 알지 못한 두 사람이었다.

지난번 정우의 마음이 들렸던 것처럼 오늘도 정우가 들어오자마자 그의 속마음이 재마에게 들렸다.

민망한 웃음 뒤로 한의원에 들어서기까지 많은 고민을 하고, 심호흡한 것이 재마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내가 괜히 왔나? 하긴 정한 한방병원 출신이라 서로 불편하긴 하지.”

정우는 어설프게 웃으며 한의원에 들어서지도, 나서지도 못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정 실장님 진료실로 쌍화차 두 잔 준비해 주시겠어요?”

재마는 이도 저도 못 하는 정우에게 성큼 다가가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럼. 여기까지 왔는데 면접은 보고 가야지. 그렇죠? 원장님? 면접실로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강산도 나서서 정우를 끌고 진료실로 향했다.

명의 한의원을 들어서기까지 수없이 고민했던 정우는 얼떨결에 떠밀리듯 재마의 진료실로 들어섰다.

“자, 여기 앉으시고. 원장님 이번 면접은 같이 보면 안 되겠죠?”

“형평성에 어긋납니다.”

정우에게 힘이라도 되어 주겠다는 듯 강산이 면접을 함께 보겠다 말을 했지만, 재마는 택도 없다는 듯 딱 잘라 말을 했다.

정 실장이 뒤이어 두 잔의 쌍화차를 들여왔고, 재마와 정우 옆에 내려놓았다.

정 실장이 진료실을 나가자 정우와 재마 두 사람만이 진료실에 남았다.

“음, 이정우 님?”

“네.”

동기인 정우를 면접을 보게 되다니 잠시 고민을 하던 재마는 정우의 이름을 불렀다.

“3개월 전 정한 한방병원을 그만두셨네요. 그 뒤로는 어떻게…….”

재마는 마지막 경력으로 적혀 있는 정한 한방병원이라는 글자 뒤로 붙어 있는 퇴사라는 단어를 짚으며 정우에게 물었다.

이미 그가 퇴사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뒤로 어떻게 지내는 지도 궁금했다.

“네. 퇴사한 뒤로는 다른 한의원에서 진료를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 면허를 취득한 지 1년이 되지 않아 퇴사 이후 곧장 이직하시는 것이 경력에 문제가 안 생길 텐데요.”

사실 진료 봉사자를 뽑는 면접에는 그의 경력을 걱정하는 질문을 할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사적인 감정이 들어간 재마였다.

“너무 먼 거리에서 근무를 했던 탓에 쉬고 싶었던 탓도 있었고…….”

정우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내며 침을 삼켰다.

-정한 한방병원을 퇴사했다는 이유로 이직이 힘들다는 건 재마가 모르나 보군.

정우가 차마 입에 올리지 않은 속마음이 재마에게 고스란히 들렸다.

“쉬고 싶은 이유가 컸습니다. 이제 적당히 쉬었다고 생각해서 이왕이면 시작을 진료 봉사로 하고 싶었습니다.”

-재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이렇게라도 풀지 않으면 점점 숨기만 할 것 같아 용기를 냈다.

이번에도 정우가 말하지 못하는 속마음이 재마에게 들렸다.

“음. 네. 왜 저희 봉사팀에 지원을 하셨는지, 잘 알겠네요. 혹시 봉사 말고 다른 한의원에 취업을 하실 생각은 아직 없으신가요?”

정우는 꽤 많은 지원자들이 지원했다는 공지를 너튜브를 통해 알고 있었다.

당연히 면접의 당락은 재마의 결정에 따르겠지만 많은 지원자가 있다면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혹시 현업에 있어야 진료 봉사가 가능한 건가요?”

정우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마에게 물었다.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저희 명의 한의원에서 함께 근무해 보시는 건 어떤가 하고 여쭸습니다. 이왕이면 저희와 뜻이 맞는 선생님을 모시고 싶어서 지금까지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왔거든요.”

“네? 아니, 뭐? 명의 한의원에서 같이 일하자고?”

정우는 재마의 뜻밖의 제안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난번 재마와 껄끄러운 만남을 하고 앞으로 그를 어떻게 봐야 할까 걱정을 했던 정우였지만, 진료 봉사 면접에서 취업 제안까지 들을 줄은 몰랐다.

“이정우 선생님 실력이야. 제가 이미 알고 있고요.”

실력뿐 아니라 그의 한의대학 성적까지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재마는 정우에게 함께 일하는 것이 어떻냐는 듯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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