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72화
정한 한방병원 대표실에 마주 앉아 있은 형인 박상철과 조카 박연아를 번갈아 바라본 박상도는 말없이 윤 실장이 준비한 서류와 태블릿을 바라봤다.
분명 상도의 형이었지만, 어느 순간 동생에 밀려 정한 한방병원 경영에서 간신히 자리 보존 정도밖에 하고 있지 않은 박상철은 상도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없이 작아지는 어깨를 곧게 편 박상철은 조용히 상도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다가 못 참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자신뿐 아니라 옆에서 상도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까, 피 말리며 기다리는 딸의 모습을 더 이상 못 지켜보겠다는 뜻이었다.
“박 대표, 아니, 박 대표님. 우리 연아가 그래도 너튜브 채널 잘 운영하고 있잖아. 어느 정도 구독자 수도 봤어? 이야. 저번 달에 40만 찍더니…… 이번 달에는 42만…… 좀 주춤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올랐잖아?”
딸의 자리뿐 아니라 자신의 자리까지 불안한 건지 상철은 입을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억지로 연아의 자리를 정한 한방병원에 만들 때부터 상철은 연아의 칭찬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해왔었다.
오늘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구독자 수 40만을 찍었을 때는 큰소리를 치며 대표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올 정도였다.
아버지의 연이어지는 비굴한 목소리에 연아는 앉아 있는 자리가 불안해 엉덩이를 달싹일 수밖에 없었다.
“홍보팀장. 홍보팀장이 직접 말해봐. 이거 잘 돼가고 있는 거야?”
“네. 대표님. 이번 달에 팔로우 수가 크게 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다음 달에는 눈에 띄게 성장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잠자코 있던 연아에게 상도가 묻자, 연아는 뜸 들일 필요 없이 곧장 대답을 했다.
“다음 달에는 팔로우를 더 사는 건 아니고?”
“네?”
“솔직히 말해봐. 팔로우 수 이거 조작이잖아. 댓글들 사이에 여론 몰이 하는 것도 다 알바잖아.”
“대표님…….”
“그래, 어느 정도 바람잡이를 위한 알바, 돈. 쓸 수 있지. 그래서 결과는?”
상도는 결과만 좋다면 지금까지의 자신이 짚은 문제점들은 눈 감아 줄 수 있다는 듯 말을 했다.
“하루에 검색엔진에 정한 한방병원을 검색하는 환자 수와 경쟁 한방병원의 검색 수 비교해 보면 알잖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경쟁 한방병원과 비교하고 때로는 그래, 따라 할 수도 있어. 하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1위 한방병원이면 다른 병원에서 따라올 수는 없게 만들어야지.”
상도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서류를 잔뜩 구기며 연아를 똑똑히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상철의 얼굴도, 연아의 얼굴도 서류처럼 구겨졌다.
“그래? 안 그래.”
“그…… 그래요.”
연아는 상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더듬었다.
“이 정도로 말했으면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한다.”
상도의 말에 연아는 고개를 재차 끄덕였다.
상도는 이제 자신의 형을 바라봤다.
“형님, 지난번에 말씀드린 방합경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 그…… 그거 말이야. 그게…….”
상철은 상도가 묻고 있는 질문의 요점을 잘 알고 있기에 말을 더듬었다.
“그게 쉽지 않겠어. 처음에는 가격 보고 좋다고 달려들더니, 소유권 이외에 저자 이름을 바꾸는 건…… 안 되겠다고.”
“형님이 확실히 하겠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야 처음에 좋다고 달려들 때 이야기지. 뭐 자기가 쓴 책도 아니고 먼 조상이 쓴 책 저자명 바꾸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생떼처럼 싫다고 하는지.”
“흠.”
“그럼 말이야. 그냥 이렇게 있던 책 저자를 바꾸는 거 말고, 그냥 있음 직하게 새로 써서 만드는 건 어때?”
상철은 자신이 아주 오랫동안 고심한 방법이라는 듯 상도의 눈치를 봐가며 물었다.
“뭐 저자를 바꿔치기 하나, 없던 책을 있던 책으로 새로 만드나 다를 건 없잖아?”
자신이 생각해도 이 방법이 좋겠다는 듯, 혼자 묻고 대답까지 하며 무릎을 탁 하고 치는 상철이었다.
“됐습니다. 이 일은 형님 선에서 처리 못 하시는 거로 알고…”
“에이. 박 대표 왜 그러나. 내가 처리를 못 하다니. 걱정 마시게. 좀 더 힘써볼 테니.”
상도가 더 이상 상철을 믿고 일을 못 시키겠다는 듯 말을 하며 자리를 일어나자 상철이 따라 일어나며 동생의 손을 잡았다.
자신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달라는 듯.
“해결하시기 힘든 일을 더 맡기는 것도 동생의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아니, 우리 사이에 그런 서운한 말이 어딨나. 바쁜 동생이 직접 움직이기 전에 내가 알아서 처리해야지. 이게 다 처리 과정이야.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딨겠나. 곧 마무리 지을 테니 기다려 보게.”
조금 전까지 힘들겠다는 듯 말을 했던 상철은 조금만 있으면 해결을 하겠다는 듯 큰소리를 쳤다.
“그럼 형님 말씀 한 번 더 믿어보겠습니다.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그럼. 아주 중요한 일이지. 우리 집안이 달린 문젠데.”
“최대한 빨리 처리해 주셔야지. 문화재 지정이 가능합니다.”
“그래. 그래, 알았어.”
상철은 자신만 철떡 같이 믿으라며 상도의 손을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명의 한의원의 진료가 시작되기 전, 이른 아침이었지만 명의 한의원에는 손님이 찾아왔다.
매번 병원에서만 만나던 철산 부부가 해인동에 있는 명의 한의원에 직접 찾아왔다.
“원장님, 괜히 저희 때문에 겪지 않으셔도 되는 일을 겪으시고…….”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찾아오시고, 감사합니다.”
철산이 왜 아침부터 자신을 찾아왔는지 묻지 않아도 아는 재마는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철산은 매번 왜 자신보다 한참 젊은 이 젊은이에게 배움을 느끼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과 자신보다 인생을 한참이나 덜 산 그였지만, 그와 그의 동생이 재마의 생각 반절만 따라갔어도 이 사달이 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울 끝에서 끝인 거리인지라 아침 일찍 해인동까지 찾아오는 것이 얼마나 그들에게는 큰일인지 아는 재마는 당황스러움에 맨발로 뛰어나와 그 둘을 반겼다.
철산의 양손에는 사과 한 박스와 꿀 한 통이 들려 있었다.
“이거 저희 친정에서 농사지은 사과하고, 제 동생이 직접 채취한 자연산 밤꿀이에요. 많지는 않지만 원장님이 꼭 드셔주세요.”
미진은 약소하지만 정성이라며 남편의 양손에 들려 있던 짐을 명의 한의원 평상에 내려놓았다.
갑자기 찾아온 손님인 철산 부부를 재마와 함께 맞이했던 정 실장은 미진과 함께 꿀단지를 열어보며 감탄을 했다.
한눈에 보아도 끈적하게 모아진 꿀이 얼마나 농축되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어머, 진짜 귀한 거네요.”
“네. 선생님도 피곤하실 때 한잔 타드세요.”
“아뇨, 아뇨. 제가 왜요. 고생은 원장님이 하시는데요.”
정 실장은 손사래를 치며 자신은 욕심내지 않겠다는 듯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까지 찾아오지 않으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그런 일이 아니어도 저희 어머니를 위해 힘써주신 게 얼마인데 진작에 찾아왔어야죠.”
철산은 재마를 볼 면목이 없다는 듯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저는 괜찮으니 혹여 맘속에 제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계시거든, 거두셔도 됩니다.”
재마는 왜 이른 아침부터 양손에 선물까지 들고 자신을 찾아왔을지 말을 더 하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 철산이 미안한 마음을 갖지 말라며 이야기했다.
“어떻게 그럽니까. 평생 감사해하며 살아도 모자랄망정 동생들이 저지레를 쳐놨는데요.”
“아닙니다. 동생분들도 그런 뜻은 아니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사람 마음이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을 수는 있죠.”
죄송한 마음을 품고 있다는 뜻을 철산이 내비치자, 재마는 철산의 어깨를 맞잡으며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형제들의 마음도 모두 이해한다는 뜻이었다.
사람 마음이 형제라도 모두 한결같을 수는 없었다.
“앞으로 어머니가 언제까지 살아계실지 모르겠지만, 어머니의 목숨은 다 원장님 덕입니다. 아마 한 달 사이에 어떻게 되셨어도 저희는 까맣게 모를 뻔했습니다. 어머니의 목숨을 이어 제 목숨까지도 원장님이 은인이십니다.”
철산은 울음을 삼키며 재마의 손을 맞잡고 감사하다고, 또 감사하다며 인사를 했다.
이제 일터로 향해야 한다는 철산과 지순정 어르신의 간호를 위해 대학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미진이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네고 명의 한의원을 나섰다.
“사과는 정 실장님이랑 이효주 선생님이랑 나눠가세요.”
재마는 미진이 가져온 탐스러운 사과 한 박스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어느새인가 선물이 들어올 때면 직원들과 나눠 먹고 있는 재마였다.
“네. 원장님 것이랑 강산 쌤 것도 잘 챙겨 둘게요.”
지난번 윤 사장이 챙겨 준 복숭아도 직원 네 명이 사이좋게 나눠 먹었었다.
“그리고 그 꿀은…….”
재마는 꿀을 나누기에는 조금 난감하지 않나 라는 생각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원장님이 꼭 드셔야죠. 밤꿀이 피로 회복에 그렇게 좋다는데요? 꿀 드시고 회복하셔서 더 많은 환자들 만나셔야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꿀은 다른 사람이랑 나눌 생각일랑 말라는 듯, 이야기하는 정 실장의 말에 재마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의원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정 실장이 급하게 다가가 받았다.
진료도 시작되기 전부터 한의원을 울리는 전화는 꼭 불안하게만 느껴졌다.
“네. 명의 한의원입니다.”
-안녕하세요. 한의 신문 김성은이에요. 원장님 지금 한의원에 계시죠?
“아, 네 안녕하세요. 네. 계시는데 바꿔드려요?”
-네. 급한 일이라.
재마는 자신을 찾는 전화에 누구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전화부터 받았다.
“네. 명의 한의원…….”
-원장님, 저 김성은이에요. 제가 급하게 회의 들어가기 전에 드리는 전화라…….
성은은 급한 전화라는 듯 다급히 말을 이어갔다.
-그제까지도 한의 칼럼 원장님께 부탁드린 것 어떻게 되었냐고 묻던 국장님 태도가 바뀌었어요.
“네? 무슨 말이십니까?”
-갑자기 칼럼을 다시 정한 한방병원 내에 있는 원장 중에 한 명으로 고르라는 지시예요. 물론 정한 한방병원 대표인 박상도 대표가 오랫동안 칼럼을 이끌었고 인기몰이를 했던 건 맞지만, 갑작스럽게 다시 내정자를 바꾸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아, 그렇습니까.”
-원장님, 혹시 정한 한방병원이랑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엮인 적 있으세요?
성은은 자신이 합리적인 의심을 시작했다는 듯 정한 한방병원과의 관계를 물었다.
재마는 정한 한방병원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지만, 사적인 감정과 이 상황을 연관시키고 싶지 않았다.
“없습니다.”
-참 이상하네요. 그런데 굳이 박상도 대표가 나서서 일을 막다니.
성은은 이번 일이 분명 박상도가 개입했을 것이라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제가 이제 회의 들어가 봐야 해서요. 자세한 이야기랑 결과는 다시 연락 드릴게요.
“저는 괜찮으니 무리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원장님이랑 일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걸요.
성은은 부당하게 내정자를 바꿀 생각은 절대 없다는 듯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