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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70화 (70/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70화

“이번 소식은 허, 너튜브에서 아주 특이한 일로 싸움이 일어났네요? 지병철 변호사님, 소식 좀 전해주시겠어요?”

오후 시간,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앵커가 작가가 건네준 대본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연예인들의 팬들이 댓글 전쟁을 하는 건 익히 봐왔지만, 이 내용이 뉴스에 보도될 정도인가 싶었다.

하지만 정확히 코너 내용을 보니 너튜버들의 상반된 입장으로 댓글 전쟁이 일어난 것이었다.

더구나 그 내용은 더욱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네. 어제 오후, 너튜브 B 채널에서 A 채널을 겨냥한듯한 영상이 올라온 이후 일어난 이야기인데요. 이 이야기의 시작은 3주 전 정도로 올라갑니다.”

지 변호사의 간단한 설명이 이어지고, 곧이어 편집된 영상이 흘러나왔다.

지 변호사가 이야기했던 A 채널, ‘환자를 읽는 한의사’에 올라왔던 영상의 일부를 흐리게 블러 처리된 영상이었지만, 영상에 입힌 내레이션은 그대로 흘러나와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한의학 전문 채널을 운영하는 C 씨는 지난 3개월간 정기적인 요양원 진료 봉사를 진행해 왔습니다. 진료 봉사 과정은 브이로그로 채널에 소개되어 많은 구독자들에게 관심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구독자들은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눈시울을 붉혔다는 댓글을 남겼습니다. 그러던 중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환자의 상태를 보고 이상함을 느낍니다. 바로 담도암이 의심되었고, 곧장 보호자와 환자를 서울로 전원해 건강검진을 시행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담도암 의심환자는 담도암이 맞았습니까?”

앵커는 건강검진의 결과가 궁금한지 안경까지 고쳐 쓰며 물었다.

“네. 담도암이 맞았습니다.”

“이야. 한의사가 진료 봉사를 갔다가 노모의 담도암을 알아챘다. 이건 천운 아닙니까?”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앵커는 흥분했다.

재마의 활약에 놀랍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대본 안에 써 있는 ‘환자를 읽는 한의사’ 채널에 펜으로 밑줄을 그었다.

지금까지 너튜브의 많은 영상들을 보며 한의학 채널은 본 적이 없었는데 생방송이 끝나면 들어가서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었다.

“하지만 보호자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평소 노모의 요양원 비용을 책임지고 있던 첫째 아들은 노모를 서울로 전원해 치료하기를 바랐지만, 다른 아들들은 반대했습니다.”

“아…… 경제적인 부분이 다른 아들들의 발목을 잡았군요. 참 이게 힘든 결정입니다. 연세도 많은 분에게 암 치료를 시작하라고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요.”

앵커는 자신의 일처럼 이해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병철은 준비된 대본을 계속 이어 읽어 내려갔다.

“큰아들은 결정을 합니다. 한의사 C 씨가 촬영한 영상을 너튜브에 공개를 하고 자신의 결정을 형제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큰아들은 강경했군요.”

“네. 형제들은 어머니의 영상을 한의사 C 씨가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 공개했다고, B 채널의 운영자를 만나 인터뷰를 했고, 그 이야기가 어제 공개가 된 겁니다.”

“오호라. 그럴 수도 있겠군요? 형제들의 동의를 다 구하지 않고 영상을 공개했지만, 그 영상으로 구독자가 늘어나고, 채널 클릭 수가 늘어나면 수익은 C 씨에게로 돌아가니까요?”

“네. 하지만 곧장 C 씨는 강경 대응을 했습니다. C 씨가 얻은 경제적인 이득은 모두 담도암 환자의 치료비로 기부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너튜브 이익 그 이상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C 씨가 너튜브 수익 그 이상을 기부했다는 말에 앵커는 펜을 내려놓으며 허, 하며 감탄을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그 영상으로 자신의 한의원에 신규 환자가 늘어난 만큼 환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 C 씨의 생각이었습니다.”

“이야. 저는 감히 참의사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하지만 댓글들의 반응은 양쪽 채널의 입장을 지지하며 싸움이 이어지고 있고요. 이들의 영상을 RT한 트윗은 5만 건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키보드 전쟁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준비된 내용을 다 읽자 앵커는 가장 궁금한 법적인 이야기를 물을 차례였다.

지 변호사가 시사 채널에 나오면 꼭 짚고 넘어가는 부분이었다.

“지 변호사님은 어떻게 보세요. 이 일이 첫째를 제외한 형제들의 말처럼 다른 형제들의 동의가 없이 이뤄진 일이라 법적인 책임을 C 씨에게 물을 수 있나요?”

“글쎄요. C 씨 입장에서는 선의를 위한 공개였고 첫째 아들의 결단으로 이뤄진 일이었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물론 두 아들이 가처분 소송을 해서 영상을 내릴 수는 있겠지만, 영상의 수익금이 노모에게 쓰인 것은 사실이니 가처분 소송이 패소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봅니다.”

“하하. 그렇군요. 지 변호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키보드 전쟁, 이 일은 어떻게 보십니까?”

“댓글을 무분별하게 달게 되면 악플이 양산되기 십상입니다. 그럴 경우 명예훼손으로 고소가 가능하니, 이 부분은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의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악플러로 고소당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군요?”

“물론 한의사 C 씨가 법적으로 대응할 경우입니다. 아직까지는 그런 이야기는 없습니다.”

“좋은 얘기 감사합니다.”

지병철의 법적인 이야기까지 시사 프로그램의 한 코너가 마무리되었다.

잠시 광고가 흘러나오고 앵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끝을 내 찼다.

“변호사님, 오늘 준비하신 내용 좋았습니다. 시청자들 자극하기 좋네요. 돈 싸움이 역시 사람들의 이목을 끌거든요.”

“글쎄요. 저는 이런 소식 전할 때마다 씁쓸한 마음은 들기는 합니다. 앵커님이 좋았다 하시니 다행이네요.”

“하하, 다행이긴요. 변호사님의 탁월하신 선택인걸요. 참, 문제예요. 돈 문제로 형제들이 싸우고 이제는 뉴스까지 타고. 당사자들은 지금 무슨 생각이 들까요?”

형제들이 유산 문제로 법적 싸움까지 가고, 물리적인 싸움이 오간다는 내용은 사실 시사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였다.

단골 소재라 지겨울 듯도 하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에 시청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특히 이번 소재는 조금 더 특이했다.

너튜브가 활성화된 만큼 노모의 영상 공개에 동의한 형과 그 반대의 동생들.

거기에다 싸움에 돈까지 끼어 있었다.

분명 동생들은 돈 문제로 일을 키운 것이 분명했다.

“글쎄요.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겠죠. 아마 인터뷰를 할 때만 해도 몰랐을 겁니다.”

근데 이 이야기 소스는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사실 기자인 후배한테 전달받은 내용이에요.”

“기자요? 근데 왜 기사로 안 나가고…….”

기사로 내도 충분히 단독 보도가 가능했을 텐데 이 좋은 소스를 왜 보도하지 않고 시사 프로그램에 제보했는지 의아한 눈치였다.

“국장이 막았다고 하더라고요. 외압이 있는 건지…….”

지 변호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방금 나간 이야기는 대학 동아리 후배인 인규에게 오늘 시사 프로그램에서 꼭 다뤄달라는 부탁을 받은 이야기였다.

국장에게 가로막힌 기사 내용을 생방송 시사 프로그램에서 다뤄달라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온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정말 자신들의 추측대로 외압이 있다면 그 뒷감당은 어찌하려고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물론 자신이 변호사이기에 법적인 문제는 충분히 확인한 상태였지만 인규의 집요함에 두 손 두 발 다 든 상태였다.

대기실로 돌아온 지 변호사는 휴대 전화를 들어 인규의 번호를 눌렀다.

“어때. 방송 맘에 드냐? 하지 말라는 짓은 아주 기를 쓰고 더 하지.”

-선배. 기자가 어떻게 기삿거리를 보고 그냥 넘어가겠습니까. 내가 못 내면 더 큰 마이크를 찾아 떠들어야지. 제가 크게 한턱 쏠게요. 아주 맘에 듭니다.

“너, 근데 국장도 반대했다는 건 외압이 있을 수 있다는 건데 괜찮겠어?”

대학 때부터 정의에 어긋나는 일은 발 벗고 나서서 해결을 하던 인규였다.

분명 외압의 세력을 느낀 후, 그 외압을 이겨 설 수 있는 방법을 찾느라 밤새 머리를 쥐어뜯었을 것이 분명했다.

-외압이 있어 봤자지. 요즘은 비밀이 없는 세상이에요. 괜히 망신당하는 쪽이 어디인지 두고 보라죠.

인규는 외압을 이겨낼 수 있다는 듯, 자신만만이었다.

그 태도는 겁 없던 20대 때나, 이제 마흔을 앞두고 있을 나이일 때나 변함이 없었다.

* * *

늦은 오후 시간.

명의 한의원을 찾은 인규는 자신이 기사를 내지 못한 것을 대신해 다른 방법을 찾았다며 기대하라는 눈치였다.

어제 성은의 전화를 받고 나서는 조금 아쉬웠지만, 채널에 공지를 하고 공식 반박영상을 올린 것에 만족할 생각이었다.

뿐만 아니라 한의 신문에 어떻게든 기사를 싣겠다는 성은의 이야기에 한의 신문라도 억울함을 풀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던 재마와 강산이었다.

오늘 생방송 시사 프로그램을 스트리밍으로 함께 본 세 사람은 재마의 소식이 끝나자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열지 못하고 조용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봐야 한다며 한의원까지 다시 찾은 인규를 강산과 재마는 말없이 바라봤다.

인터넷 기사보다도 파급력 있게 띄운다던 인규가 그야말로 파급력을 제대로 보여준 격이었다.

“어떻습니까. 원장님. 제가 인터뷰 기사는 못 써드렸지만, 그대로 넘어갈 수 없어서 다른 방법을 썼는데요.”

“이야. 기자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야. 재마야. 너 출세했다. 네 이야기를 아주 전국에 생방송으로 내보냈구나.”

강산은 당황스러움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재마의 어깨를 다독였다.

어제 말도 안 되는 영상, 정상 형제의 인터뷰를 봤을 때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들을 망신 주겠다는 생각을 한 강산이었지만, 이렇게 뉴스까지 탈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

아마 동기 단톡방에는 재마가 생방송을 탔다며 또 한 번 떠들썩할 것이 뻔했다.

그 어떤 방법보다 루머를 만들고 있는 너튜버들의 이야기에 반박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거기에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양산하다가는 명예훼손으로 법정대응을 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완벽한 방법이었다.

“이왕이면 좋은 내용으로 뉴스에 소개되었으면 좋았겠지만,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재마는 기사가 막혔을 때, 포기하지 않고 재마를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아 준 인규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누가 뒤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힘내십쇼. 원장님. 저도 알아보기는 하겠지만, 어설픈 힘 쓰다가 큰코다친다는 것 알려줘야 합니다.”

인규는 이번 자신의 기사가 막힌 것이 그의 기자로서의 사명감에 큰 먹칠을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제 일같이 발 벗고 나섰다.

그리고 이번 일에서 그치지 않고 ‘환자를 읽는 한의사’에 대한 루머를 시작한 발원지를 꼭 잡기라도 하겠다는 듯 의지를 활활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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