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69화
“선배. 잘 부탁해. 응?”
“글쎄 모르겠다. 네가 나오라고 해서 나왔는데 유명인도 아니고 너튜버들 싸움을 단독보도를 한다는 게…….”
“단독이라니까. 단독?”
“야, 연예부라고 단독 막 다는 것 같냐. 안 그래도 아무 기사에나 단독 단다고 요즘은 욕먹어.”
“에이. 아무 기사 아니야. 아무 기삿거리면 내가 선배한테 부탁했겠어?”
성은은 대학 선배인 서진 일보 연예부 인규에게 잘 부탁한다며 재마와 명의 한의원으로 향했다.
연예부에 있지만 기자로서 사명감이 투철한 인규는 자신의 사전에 기레기라는 단어는 취급하지 않았다.
명백하게 제 눈으로 확인한 이야기들만 기사화시켰다.
그 결과 연예부 14년 차였지만, 인터넷 신문사 팔로우 수가 가장 많은 기자였다.
그의 기사라면 믿고 보는 소위 팔로워들이 많은 것이었다.
“팔로우 장사하는 건, 너튜버나. 선배나 뭐.”
“팔로우 장사라니 인마, 아무리 요즘 잘나가는 게 클릭 수로 수치화한다지만, 나는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이야. 어그로 끌고 그런 것 질색이라고.”
“어그로 끌기 위한 기사 부탁 안 할 테니까 일단 가봐요. 응?”
인규가 기사만 잘 써서 이번 일을 해결만 한다면 한의 신문 칼럼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달라며 재마에게 강하게 푸시할 생각이었다.
“원장님, 안녕하셨어요?”
진료 시간에는 환자로 꽉 들어찼을 명의 한의원이 진료시간이 끝나자 한산했다.
이런 한산한 명의 한의원을 보는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기자님, 안녕하세요. 하. 이런 일도 다 있네요.”
재마가 나서기 전에 강산이 먼저 나서서 성은과 인규를 반겼다.
오후 내내 밀고 올라오는 댓글들과 신문사의 문의 전화, 또 환자들의 끊임 없는 질문으로 정신이 아찔했던 강산은 김성은을 보자 다리가 턱 풀리는 것 같았다.
“이쪽이 신문사 기자님?”
“네. 서진 일보 연예부 이인규입니다.”
“아이고.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명의 한의원 공식 채널을 맡고 있는 강산이라고 합니다.”
“아…… 원장님이 아니시고요.”
인규는 성은과 자신을 반기길래 당연히 이재마 원장인 줄 알았던 탓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뒤늦게 탕약실에서 나온 재마가 손을 털며 이인규와 성은 쪽으로 다가왔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진료시간이 끝나면 탕약부터 준비해야 해서요. 명의 한의원 원장 이재마입니다.”
“안녕하세요. 서진 일보 연예부 이인규입니다.”
늦게 나타난 재마가 탐탁지 않았지만, 인규는 재마의 악수를 받아들였다.
-원장이면 원장이지. 지금 똥줄 탄 사람이 누구인데 늦게 나와. 탕약이 중요해? 지금 명예가 날아갈 판인데?
못마땅한 인규의 속마음이 재마에게 고스란히 들리는 줄 모르고, 인규는 명의 한의원을 둘러보았다.
“서울에서 이런 한의원이 있었다니 몰랐네요.”
“대부분 처음에는 모르고 오십니다. 그래도 제가 명의 한의원을 맡으면서 꽤 많이 알리게 되었죠.”
-아이고, 요즘은 한의원도 먹고살려고 홍보에 기를 쓰는구만. 한 우물만 파도 성공하기 힘든 세상에…… 그러니까 소문도 나지.
인규는 티는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너튜브를 운영하는 재마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안쪽으로 들어가서 말씀하실까요?”
재마는 강산의 사무실 쪽으로 인규와 성은을 안내했다.
“우와. 원장님, 이쪽에서 채널 준비하시는 거였군요?”
지난번에 진료실에서 인터뷰만 했던 성은은 신기한 듯, 너튜브 편집을 위한 편집실을 둘러보았다.
요즘 너튜브가 하도 핫 하니 성은도 너튜브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한의 신문 기자다 보니 인터뷰를 할 기회는 많았지만 너튜브 스타를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정말 유명 너튜버의 편집실에 온 기분이었다.
“네. 이쪽에서 제 동기인 강산이 너튜브를 전담해서 맡고 있습니다.”
“동기요? 그럼 한의학과 나오신 분이세요?”
인규가 편집실을 이곳저곳 탐탁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동안 성은은 한의학과를 나와서 한의사가 아닌 너튜브 편집자가 된 강산이 신기한 듯 놀랐다.
“하하. 저희 채널이 생각보다 고품격, 전문 채널이거든요. 앞으로 좀 더 커지면 편집자를 더 뽑을 수는 있겠지만, 한의학과를 나온 편집자를 구하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이 녀석이 복 받았죠.”
강산은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의 이력을 뽐냈다.
“자자. 지금 채널 홍보하러 제가 온 게 아니니까요.”
인규는 편집실을 둘러보더니 더 이상 잡담은 하지 말고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듯,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았다.
“네. 기자님. 그러시죠.”
이미 자신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재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규의 맞은편에 앉았다.
* * *
“그러니까 원장님 말씀은, 환자의 첫째 아들 부부의 동의를 받고 환자의 영상을 올리셨다는 거네요.”
편집실에 마주 앉은 네 사람은 이미 너튜브에 올라간 영상들을 함께 확인한 이후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 탐탁지 않은 눈으로 그저 절친한 후배인 성은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인터뷰에 응하던 인규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영상의 내용, 그리고 재마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볍게 너튜버 사이에 루머문제를 바로 잡기 위한 반대편 쪽 항변을 들어주는 인터뷰가 될 것 같다는 어설펐던 자신의 예상이 정확히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이야. 그래도 원장님이 처음부터 영상으로 촬영을 해두시기를 잘하셨네요.”
편집 내용 이후 영상뿐 아니라 편집 이전 영상 원본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환자를 읽는 한의사’ 의 재마와 편집자 강산이 대단해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불미스러운 일들을 위해 형제들과의 통화 내용도 모두 녹음되어 있었다.
-전국에 있는 사람들이 치매 노인네 시골 요양원에 처박아 놓고 중병에 걸리게 했다고 아들 욕하는 꼴, 우리 엄마가 허락했다는 거야?
-그렇게 얼굴 팔면 뭐, 돈이라도 주는 거야?
동의 없는 통화녹음을 공개할 수는 없겠지만 불가피한 상황에는 이 내용이 그들에게 큰 힘이 될 수도 있었다. 너튜브 수익 부분을 기부한 내역과 영상 또한 준비되어 있었다.
이들 내용에 의하면 너튜브에서 보호자의 동의 없이 올린 영상으로 그 들이 취한 부당 이득에 내용은 모두 허위사실이었다.
“처음부터 둘째 아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통화 녹음만 해두신 것은 잘하신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치료비를 기부하네 어쩌네, 설명을 해도 현금을 요구할 사람들이거든요.”
인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녹음된 통화 내용을 간단히 적었다.
“통화 녹음까지 공개할 정도로 최악으로 상황이 치닫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이 채널 운영하는 너튜버는 박철산 씨를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을 어떻게 만난 걸까요?”
“그렇죠. 저도 그게 궁금하다니까요.”
강산은 오늘 한나절 동안 상황을 되짚어 보며 도대체 어떻게 이들이 정상, 영상 형제와 만나 인터뷰를 했는지, 악마의 편집도 이렇게 악랄하게 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인규의 날카로운 질문에 속이 뻥 뚫리기라도 한 것처럼 무릎을 탁 치는 강산이었다.
타깃을 이재마로 삼고 그를 망가뜨리려고 그에 대해 조사를 하지 않고는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실례되는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인규는 기자로서 자신의 촉을 믿는 편이었는 데, 종종 그 촉이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도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원장님이 혹시 원한을 둔 사람이라도 계신 건 아닌가요?”
“에이. 선배. 너무 예의에 어긋난 질문 아니에요?”
성은은 자신이 소개한 이재마가 그런 사람은 절대 아닐 거라며 손사래를 쳤다.
한 시간 넘는 동안 인터뷰를 진행한 이재마라는 사람을 봐서는 특별히 원한을 둘 사람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마음을 모른다는 것이 14년간 기자를 하며 가장 뼈에 사무치도록 느낀 이인규였다.
“글쎄요. 제가 한의원을 운영하거나 너튜브를 운영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 있었다면, 큰 고민을 하고 결단을 내렸을 겁니다. 지금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재마는 있는 속마음 그대로 기자에게 전달될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솔직히 전달했다.
이인규는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강산에게 건네받은 영상, 그리고 재마의 인터뷰. 이 정도면 반박 기사를 내기 충분했다.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인규는 자리에서 일어나 재마에게 악수를 청했다.
처음 한의원에 도착했을 때와는 다른 마음의 악수였다.
부디 자신의 기사가 독자들에게 전달이 잘 되어 이재마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진심으로 우러러 나왔다.
* * *
“안 돼.”
“국장님.”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사무실로 복귀한 인규는 빠르게 기사를 완성했다.
이미 ‘환자를 읽는 한의사’에 대한 루머가 쉴 새 없이 양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입장에서 선 기사가 나와야 하지만, 아직까지 단 한 개의 기사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겁니까?”
“그냥 그거 너튜버들 끼리 가십이야. 너 경력이 몇 년인데 가십에 휩쓸리려고 해? 그런 건 저기 막내한테나 주고, 다른 취잿거리나 찾아봐.”
국장은 인규의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번에 기사를 퇴짜를 놓았다.
보통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인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 언제는 단독 하나만 박으면 그만이라면서 너튜버 뒤라도 따라 다니라면서요. 너튜버들끼리 열애설이라도 찾아내라면서. 제가 일반인 열애설도 기삿거리냐고 할 때는 너튜버도 공인이라면서요.”
“그거야.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남녀의 연애 이야기고, 이렇게 별 트집 잡아 싸우는 게 기사야?”
“트집이라뇨. 그리고 국장님 사람들이 연애 이야기보다 더 좋아하는 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돈 가지고 싸우는 이야깁니다. 사실 이쪽은 싸울 이야깃거리도 안될 정도로 루머일 뿐이지만. 한 사람이 억울하게 당하고 있다고요.”
“그럼 그 억울한 이야기 연예부에 풀지 말고 사회부 가져다줘. 일단, 기사 못 내. 알았어?”
국장은 인규가 가져온 기사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자리를 피했다.
인규는 이야기도 더 들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국장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인규는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 전화를 꺼내 성은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은아, 이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선배, 쉽지 않다니. 무슨 세력이라도 있단 소리예요?
“아무래도 이거 단단하게 기획한 일이야.”
-그럼 기사는요. 이재마 원장님 채널에는 일단 반박 입장문이랑 영상은 올라갔어요.
“내가 기사를 못 내게 한다고 내 글 하드에 썩히는 꼴 봤냐.”
-그럼?
“기다려. 인터넷 기사보다도 더 파급력 있게 띄울 테니까.”
인규는 자신의 집요한 성질을 건드린 국장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러고는 또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