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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68화 (68/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68화

“원장님, 제가 너무 오래간만에 찾아왔나요?”

진료가 한창인 시간, 문을 두드리고 고개를 내민 사람은 지난번 시청에서 명의 한의원 건물을 문화재 지정 계획 소식을 들고 왔던 강지영이었다.

쉴 틈 없는 재마였지만 간간이 문화재 지정에 대한 소식이 궁금한 터였다.

“강 주사님. 오래간만이시네요.”

“네. 좋은 소식 전해드리며 찾아오려고 조금 시간이 걸렸네요. 와, 여전히 환자들이 인산인해네요. 제가 진료시간에 찾아와서 진료에 방해되는 건 아니겠죠?”

업무차 명의 한의원을 방문한 강지영에게는 진료시간이 그녀의 업무시간이니 어쩔 수 없었다.

“바쁘긴 하지만, 잠깐은 괜찮습니다.”

다행히 점심시간을 앞두고 있어 재마는 요령껏 시간을 이용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 전 환자들의 진료는 어느 정도 끝났으니, 처치실에서 이효주가 물리치료를 하면 잠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다행이에요.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쁘시니 그럼 빠르게 이야기 전달하고 가겠습니다. 저희 팀에서는 지난번에 와서 말씀드렸듯, 명의 한의원을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하려는 의견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이제 시 문화재보호 조례에 의거해서 시장님의 지정하면 문화재 등록이 가능합니다.”

지영은 그동안 서울시 문화재청에서 명의 한의원에 대해 조사한 자료를 재마에게 건넸다.

갑작스럽게 명의 한의원을 물려받아 명의 한의원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던 재마였지만, 한눈에 봐도 상당한 양의 자료들이었다. 그동안 명의 한의원이 이 자리에서 얼마나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지, 많은 환자들이 병을 고쳐 나갔는지 알 수 있었다.

수많은 흑백사진과 명의 한의원이 적혀 있는 고문서들의 복사본들이 보였다.

“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문화재 지정 전, 아무래도 난관이 하나 남아 있기는 합니다.”

“난관이요?”

“네. 아무래도 문화재가 지정되면 반경 500미터 정도를 문화재청에서 관리하게 됩니다. 문화재의 미관에 해칠 건물이라거나…….”

지영은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이라도 하듯 얼굴은 난색을 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문화재 관리를 위해 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조금 걱정되는 것은 해인동이 개발 예정지라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개발을 기대하고 계시는 주민분들이 많겠죠?”

당연한 물음을 하는 것이 실례인 양, 지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후, 내가 너무 뻔한 이야기를 물었나.

지영은 자신이 질문하고서도 당연한 질문이었나 하는 속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명의 한의원을 문화재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더딘 것이 문화재청에서는 해인동 개발 지역인 것을 제일 변수로 두고 있었다.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진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느 정도 반발은 감수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어쩌면 생존권이 달린 일일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재마도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을 하고 있는 강 주사의 속마음을 읽으니 마음이 썩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만 해도 명의 한의원을 처음 왔을 때는 개발 구역이라는 것이 그나마 맘에 드는 부분 중 하나였다.

개발 하나를 마음에 품고 이 지역에 오랫동안 머물며 하루하루를 지냈을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었다.

“그 부분은 주민 간담회를 통해서 주민분들을 설득해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문화재를 지정하는 것보다 조금 힘들기는 하겠네요.”

지영은 자신이 가져왔던 자료들을 다시 정리하며 앞으로 할 일이 많다는 듯 얕은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혹시 도움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시고요.”

재마는 명의 한의원의 일에 자신이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듯 이야기했다.

“나중에 주민 간담회 때 조금 힘드시겠지만, 힘 보태주세요. 바쁘실 텐데 저는 가보겠습니다.”

지영은 바쁜 재마의 시간을 더 뺏지 않겠다는 듯 할 말을 전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문화재청 공무원인 강지영의 방문은 술술 풀리던 재마의 결정들과 달리 난관의 시작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재마야, 이재마!”

다시 시청으로 복귀하는 지영을 배웅한 이후, 재마를 급하게 찾는 강산의 목소리가 명의 한의원을 울렸다.

한의원 안에 있던 환자들이 강산의 목소리에 동요했다.

“이재마면 원장님 아닌겨?”

“저짝 청년이랑 친구래.”

재마는 친구인 강남의 다급한 목소리에 의아한 얼굴로 진료실을 나왔다.

“무슨 일인데 난리야?”

“야, 아주 큰일 났다. 일이 꼬여도 제대로 꼬였어.”

“왜?”

“너튜브에 아주 난리야.”

강산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한 10분 전부터 이런 채널에 우리 채널 이야기가 올라왔는데…….”

강산은 태블릿을 재마에게 건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무래도 박철산 씨 동생들이 다른 곳이랑 인터뷰한 모양이야.”

“인터뷰?”

“응. 우리가 가족 동의도 없이 지순정 할머니 영상 올렸다는 내용.”

어느 정도 재마가 예상은 하고 있었던 일이었지만, 그 일이 이렇게 크게 터질 줄은 몰랐다.

강산의 말처럼 연예인들이나 인기 너튜버의 루머를 양산하는 채널에서 대놓고 서울 모 한의원 원장 이재마와 그 채널에 대해 고발한다는 영상을 올린 상태였다.

그 이후, 10분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치 물어뜯을 먹이를 발견한 것인 양 이리저리 공격하는 댓글들이 쉴새 없이 달렸다.

“이거 빨리 대응하지 않으면 큰일 나게 생겼는데.”

강산의 말에 재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님, 전화 받아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무슨 전화죠?”

“정선 일보래요. 원장님이랑 이야기하고 싶다고…”

“일단 전화 돌려주세요.”

재마는 진료실로 들어가 자신을 찾는 정선 일보의 전화를 건네받았다.

-이재마 원장님 되시죠?

“네. 맞습니다.”

-지금 너튜브에서 떠도는 이야기가 다 맞습니까? 병든 노모를 돈벌이로 이용하고 모든 이득은 원장님이 취했다는 이야기던데요.

재마는 기자의 물음에 숨이 턱하고 막히는 것 같았다.

“사실이 아닙니다. 곧 저희 쪽 대응을 하겠습니다.”

-원장님, 잠시만요. 그냥 이렇게 끊으실 게 아니라 대응하실 거면 저희 쪽이랑 대화를 좀 해주세요. 반박 기사 내드릴게요.

“아직 사실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요. 죄송합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만 말해주면 된다니까 그러네.

재마는 지금 너튜브에 올라온 이야기에 대한 사실 파악과 박철산과 연락을 한 이후 대응을 해야겠다 생각을 했다.

재마가 전화를 끊으려 하자 기자는 재마의 행동이 탐탁지 않은지 한숨을 내쉬었다.

“재마야. 밖에 전화 오고 난리야.”

“한의원으로 오는 전화는 일단 받지 말고, 후…….”

재마는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 같았다.

“오후 진료는 어떡하지?”

“어떻게 하긴 환자들이 찾아올 텐데 해야지.”

정신이 아찔해지는 기분이 드는 재마였지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자신의 진료를 보러 멀리서 오는 환자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후. 이럴 때 쓸 수 있는 능력은 없는 거야?’

재마는 자신이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한탄스러웠다.

“지난주에 찍어 놓은 영상은 편집 어떻게 됐어?”

재마는 지난주, 철산 부부와 만나 병원에서 너튜브 수익금을 전달하는 영상을 찍었던 것을 생각해 냈다.

조용히 진행할 예정인 일이었지만, 유경의 제안으로 영상으로 남겨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거 편집 좀 남았는데…… 지금 악플들도 난리라…….”

강산은 ‘환자를 읽는 한의사’ 채널에 올라오는 댓글들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것도 벅찬 모양이었다.

“원장님! 강산 님! 댓글은 제가 확인할게요.”

그때,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온 물리치료사 효주가 나섰다.

“이 효주 선생님?”

“편집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편집 얼른 하시고, 저는 여기 앉아서 말도 안 되는 악플들 삭제하고. 그럼 되는 거죠?”

자신의 업무도 아닌 일을 나서서 하겠다며 모니터 앞에 앉는 효주를 강산도 재마도 말릴 수 없었다.

“뭐 하세요? 지금 1분 1초가 급한 상황인데?”

효주는 얼떨떨한 나머지 자신을 바라만 보고 있는 두 사람을 올려다보며 얼른 서두르라 채근했다.

“산아, 편집 완료되자마자 영상 보고 없이 그냥 올리고. 그리고 정산 내역하고 진료비 정산 내역 파일로 나한테 보내주고.”

“알았다.”

정신을 차린 재마는 강산에게 편집을 지시하고, 영상이 올라감과 동시에 채널에 공지를 띄울 생각이었다.

“원장님, 다른 전화는 다 거절 했는데…… 한의 신문 측에서도 연락이 와서요. 김성은 기자라는 데, 칼럼 담당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면 알 거라고.”

정 실장은 정신없어 보이는 재마의 진료실에 고개를 내밀고, 한의 신문 김성은의 전화가 왔음을 밝혔다.

“네. 받으러 가겠습니다.”

재마는 다른 사람은 아니어도 김성은은 명의 한의원 편에 서서 자신에게 조언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화 바꿨습니다.”

-원장님,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에요?

“저희도 당황스럽지만, 아무래도 보호자 형제분들이 인터뷰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럼 이 이야기가 다 사실이란 뜻이에요?

성은은 보호자라는 말에 이 상황이 퍽 꼬여 있다는 듯 물었다.

“사실은 아닙니다. 채널에 영상이 올라간 이후 이득을 본 건 맞지만 모두 지순정 환자 치료비로 기부를 했습니다.”

-기부요?

성은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물었다.

“네. 보호자들에게 보상을 해주는 건 의미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원장님은 이 일을 예상하고 계셨던 거예요?

성은은 이 상황을 재마가 이미 예상하고 보호자에게 돈을 전달하지 않고 병원비를 정산했다는 이야기에 놀란 모양이었다.

“이 정도 파급이 있을 것은 예상 못 했지만, 어느 정도는요?”

-하, 이 일은 저 두 형제가 나서서 일어난 일이 아니에요. 다른 세력이 있었겠죠.

“세력이요?”

-뭐 원장님이 요즘 승승장구하는 게 못마땅한 경쟁 한의원이라던지…… 아니면 너튜브 채널 중에서도 급상승하는 너튜브만 골라서 뒤를 캐는 채널도 있으니까요. 일단은 모든 자료 증명하실 수 있는 거죠?

성은은 복잡한 상황에서 자신이 재마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네. 영상도 준비되어 있고, 자료도 있습니다.”

-그럼 공식적으로 영상 올라가고, 공식 인터뷰도 하시는 게 났겠어요.

지금 30분도 안 되었는데 인터넷 뉴스에는 난리거든요.

성은은 눈으로는 인터넷 뉴스를 확인하고 있었다.

-제가 신문사에서 일하는 선배 소개해 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단독으로 원장님 인터뷰 따가라고 해도 괜찮으시죠?

“물론이죠.”

-제가 원장님 도와드리는 거예요. 저희 칼럼 꼭 도와주셔야 합니다.

성은은 이번 일에 자신이 큰 힘이 되어줄 테니, 한의 신문 칼럼 자리를 거절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일단 큰불부터 해결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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