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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66화 (66/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66화

-원장님, 잘 지내셨어요?

점심시간을 틈타 잠시 눈을 붙이려던 재마의 휴대 전화가 울리고, 수화기 너머로 한의 신문 기자 성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기자님. 잘 지냈습니다.”

-인터뷰는 잘 보셨죠? 연락이 통 없으셔서…….

성은은 자신이 정성껏 취재하고 쓴 기사를 보고 재마에게 다시 연락이라도 오기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아쉬운 목소리를 내었다.

“아, 죄송합니다. 요즘 신규 환자가 늘어서 제가 정신이 없었네요.”

재마는 자신이 눈치도 없이 자신의 기사를 잘 써준 성은에게 연락 한번 못 한 것이 실례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괜찮습니다. 아쉬움이 있어야, 또 기회가 있죠.

“네?”

-지난번에 궁금한 점 있으면 알려주시기로 하셨죠? 혹시 제가 원장님 도움이 필요한데 도와주실 수 있나요?

지난번 인터뷰를 마치고, 인사차 했던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있던 성은이 재마에게 다시 전화를 건 것이었다.

“아, 네. 뭐 제가 도울 일 있으면 도와드리면 좋죠. 무슨 일 있으십니까?”

-다른 게 아니라, 저희 회사에서 칼럼 자리가 하나 비어서요. 원장님도 아실 것 같은데…… 예전에 박상도 원장님이 진행하시던 칼럼 꼭지예요.

“박상도 원장님이요?”

-지금은 정한 한방병원 대표시죠. 현직에 계실 때 꽤 오래 칼럼을 이어가시면서 인기가 있었는데, 현직에서 물러나시고 경영을 하시면서 자연스럽게 몇몇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셨어요. 그런데 그 뒤로는 도통 인기 칼럼이 되지 못했네요.

“아…….”

성은은 이번에 이재마의 인기를 힘입어 다시 한번 인기 칼럼 꼭지를 만들어보자는 국장의 말에 자신이 직접 연락을 해보겠다며 자신감을 내보인 터였다.

-혹시 격주로 짧은 칼럼 준비해 주시면 되는데 가능하신가요?

재마는 선뜻 하겠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미 너튜브로도 일을 상당히 벌여 놓은 상황에서 격주였지만 정기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고민은 좀 해봐야겠습니다. 제가 벌여 놓은 일도 있고, 아무래도 오랫동안 이어온 칼럼을 햇병아리나 다름없는 제가 이어서 한다는 것도 부담이고요.”

재마는 솔직한 속마음을 비쳤다.

-아무래도 원장님뿐 아니라 몇몇 후보자들은 있지만, 국장님은 원장님이 해주시길 바라더라고요. 네. 그럼 저희 측도 원장님 생각은 잘 알고 있을게요. 대신 고민해 보시고 좋은 방향으로 결정해 주시길 부탁드려요.

성은은 재마가 에둘러 거절한 제안을 끝까지, 좋은 방향으로 끌고 싶은 마음을 전했다.

한의 신문의 기자인 성은과의 짧은 통화였지만, 잠이 싹 달아난 재마는 편집을 하고 있을 강산을 찾아갔다.

“강산.”

“어, 점심도 안 먹고 잔다더니 안 잤냐?”

지순정 어르신의 영상을 3탄까지 올린 강산은 요즘 명의 한의원에서 누구보다도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물리치료사인 이효주 선생의 근무환경을 브이로그로 찍겠다는 말은 쏙 들어간 상태였다.

“오늘 첫 영상 얼마나 정산되는지 알 수 있는 날이지?”

“어. 안 그래도 아까 뽑아놨다. 이어지는 영상들이 있어서 총 정산을 따지기에는 이번 달 정산만 취합해서는 안 될 것 같더라. 그래도 장난 아냐.”

첫 시작에는 이렇게 영상이 대박이 터질 줄 몰랐던 강산과 재마는 의외로 터진 영상으로 너튜브 정산금이 10배 가까이 늘어난 것에 서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환자도 또 늘었잖아.”

“그렇지. 이번 주 신규 환자만 70명 가까이 되니까…… 이 정도면 어르신 치료비 전달하는 데는 문제는 없겠다.”

재마는 지난번 유경과 이야기했던 대로 정산금을 투명하게 정리해서 영상을 만들고 보호자에게 전달을 할 예정이었다.

“근데 너 정산금 다 어르신 치료비로 들어가도 아깝지 않겠냐?”

“정산금뿐이냐, 어르신 영상 덕에 늘어난 환자로 얻은 이익도 생각해야지.”

재마에게 정산금을 모두 지정순 어르신의 치료비로 드리는 것이 아깝지 않냐는 말에 정색한 재마는 어르신으로 인한 이익금도 정리를 할 뜻을 내비쳤다.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조선 시대였으면 임금님한테 상이라도 받았을 거다.”

강산은 재마의 계획에 혀를 내둘렀다.

“일은 열 배로 늘었는데 직원 뽑아 달라는 말은 하지도 못하겠네.”

강산은 재마처럼 대단한 사람은 못 봤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지난번에 치료실 브이로그 찍고 싶다더니 그 이야기는 왜 쏙 들어갔어?”

재마는 지난번 영상 계획을 내놓았던 강산이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모습에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아, 치료실 브이로그? 아무래도 이 선생님이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왜. 너튜브에 관심 많으신 것 같다더니.”

“몰라. 그렇다고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이제는 관심 없어졌다고 딱 자르시던걸.”

이미 한 번 이효주 선생에게 영상 이야기를 꺼냈다가 퇴짜를 받았는지 강산은 금세 시무룩해졌다.

“그래?”

지난번 이효주 선생과 마주치고 그녀의 속마음을 듣고 찜찜했던 재마는 의아할 뿐이었다.

그다음부터는 그녀의 속마음을 들어볼 만한 기회가 없었다.

“아, 맞다. 오늘 저녁에 동기 모임인 거 안 까먹었지? 너 오래간만에 데려오라고 난리다. 오늘 전체 다 모인데. 그리고 내가 정우 녀석도 꼭 나오라고 했다. 배신자 녀석. 우리 봉사 모임에는 안 나오다가 정한 한방병원 F4가 돼?”

강산은 지난번 정한 한방병원 요양원 봉사 브이로그에 참여했던 정우를 벼르고 있다는 듯 이야기했다.

* * *

“야, 오래간만에 모였는데 건배 한번 하자.”

“그래. 건배하자. 다 모여.”

6개월 만에 동기들의 모임에 나온 재마는 자신도 모르게 밀려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성격상 과 대표는 한 적이 없었지만, 항상 과 수석은 놓치지 않았던 재마는 동기들 사이에서 항상 한걸음 앞서 있었다.

“재마야. 네가 건배사 한번 해라.”

“건배사?”

“그래. 요즘 우리 동기 중에 제일 잘 나가는 게 너기도 하고, 오래간만에 모임에 나왔잖아.”

다들 사회 초년생 아니랄까 봐 한의원 회식에서 하던 건배사를 하라며 부추겼다.

“다른 건 없고, 오래간만에 만나서 반갑다. 건배!”

“건배!”

“건배!”

약간 싱거운 건배사였지만, 그래도 재마의 건배에 동기들이 잔을 치켜들며 건배를 외쳤다.

“저 녀석이 싱거워.”

“싱겁기만 하냐. 맹탕이지.”

“그래도 우리 중에는 제일 낫잖냐.”

재마가 싱겁고 맹탕이라는 말에 강산은 뼈를 찌르는 한마디를 했다.

“당연한 말을.”

동기 중 아무도 강산의 말에 반박할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야, 재마야. 요즘 잘나가는 이야기 좀 해줘라. 어쩜 학교 다닐 때는 한 마디도 없다가 면허 따고 졸업하자마자 훨훨 나는 거냐?”

테이블 저 끝에 앉은 조정훈은 벌써 취기가 올라오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재마를 큰 소리로 물었다.

그의 질문에 다른 동기들도 궁금한 듯, 이목이 쏠렸다.

모두들 그가 정한 한방병원의 사위가 될 줄만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우연한 기회였어. 명의 한의원 원장을 맡고 계시는 분에게 초대를 받아서 한의원으로 가게 되었고.”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재마는 어디에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명의 한의원을 처음 방문한 날부터 떠올렸다.

“아니. 나도 모르고 지내던 외할아버지셨지. 실제로 어머니랑 할아버지는 30년간 사정상 연락도 안 하셨었어.”

“이야. 드라마네. 드라마.”

“뭐, 그렇게 얼떨결에 물려받은 한의원에서 고군분투한 일이지, 특별한 건 없었어.”

재마는 대수로운 일은 없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명의 한의원을 물려받으며 생긴 능력을 설명해 봤자 동기들이 믿을 리가 없었다.

“이 녀석은 뭘 해도 될 줄 알았다니까. 아마 서울이 아니라 지방 산골짜기에 한의원에 데려다 놨어도 성공시켰을 놈이야.”

“그러니까 맹탕 같은데 아주 독한 놈이라니까.”

“아 맞다. 시골 요양원 영상으로 대박 한 번 더 쳤으니 대단한 놈은 대단한 놈이지.”

동기들은 재마가 더 말을 하지 않아도 그의 근황을 너튜브를 통해 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너튜브는 볼 시간도 없고, 잘 몰랐는데 한의 신문에 저 녀석 나온 거 보고 진짜 놀랐다. 한의사 3대째 집안인 우리 집에서도 한의 신문에서 인터뷰 나왔던 사람은 경력 30년 우리 아버지밖에 없는데.”

가업을 이어 한의사가 된 정철은 얼마 전 한의 신문에서 본 재마의 기사를 본 이야기를 했다.

“맞다. 너 칼럼 제안도 받지 않았어?”

오늘 한의 신문 기자인 성은에게 제안을 받은 이야기를 어떻게 알았는지, 정한 한방병원에서 근무를 하는 장성훈이 그제야 생각이 낫다는 듯 물었다.

“이야. 진짜? 그 정도면 대형 한방병원 원장님들한테나 가는 거 아니냐?”

“사수로 있는 원장님이 지금 칼럼 쓰시잖냐. 이제 슬슬 물러날까 하는 데 한의 신문 쪽에서 차기 주자로 재마 찍어 놨다고 하시던데.”

재마가 거절도, 승낙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차기 주자로 소문까지 난 상황이라 재마는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무튼 대단하다 대단해. 정한 한방병원 너튜브가 쏙 들어갈 정도로 너튜브 대박 치지를 않나. 대형한방병원 원장님들만 제안받는 칼럼 자리도 제안받지 않나.”

“야야. 너희들 그러면 우리 이 원장님 부담스러워서 다음에 모임 못 나온다.”

강산이 적당히 이야기를 끊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손사래를 쳤다.

“그래. 야,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해야지. 저 녀석은 못 따라잡아.”

정수도 강산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며 술잔을 들이켰다.

그렇게 동기들의 이야기가 주제가 다른 곳으로 옮겨 갈 것이라 생각한 재마에게 뜻밖의 속마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후, 진짜 이 자리 불편해 죽겠네. 강산이 녀석이 꼭 나오라고 해서 나오기는 했지만.

한쪽 구석에서 맥주만 연달아 들이켜는 정우의 모습이 재마에게 들어왔다.

아까 술집으로 들어오며 정우의 얼굴을 보고 인사는 했지만, 그때부터 표정이 좋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불편하다는 건지 재마는 알 수 없었다.

평소 성격이었다면 맨 구석 자리가 아닌 가운데에서 강산 못지않게 분위기를 띄웠을 정우였다.

그러고 보니 금요일이긴 했지만, 8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부산에서 근무한 정우가 벌써 모임에 참석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재마는 어찌 된 일인지 정우에게 안부라도 물을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우 쪽으로 몸을 틀어 움직이자, 눈치를 보며 술잔을 들이켜던 정우의 시선에도 재마의 모습이 보인 모양이었다.

-재마는 또 왜 이쪽으로 오는 거야. 설마 나 알아보고 오는 거 아니겠지.

정우는 재마를 피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혼자 마시던 술잔을 옆에 있는 동기에게 들이밀었다.

재마는 정우의 행동에 찜찜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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