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65화
박연아의 지시대로 꿈속 요양원과 지순정 할머니의 주소지로 조사를 하자, 지순정 할머니에게는 아들 셋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김 대리는 세 아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두 아들은 만남을 요청하는 김 대리의 전화에 옳다구나 약속을 잡았다.
억울한 마음을 어디에라도 호소하겠다는 뜻이었다.
박연아의 계획대로 일이 술술 풀리자, 약속장소로 나가는 연아의 기분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오늘 일만 제대로 하면, ‘환자를 읽는 한의사’인지 뭔지 하는 채널을 영원히 날려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괜한 관심을 두고 있는 작은아버지의 관심도 사라질 테고, 그 공은 모두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었다.
연아는 자신의 차 키를 김 대리에게 건네며 운전을 맡으라 지시했다.
고가의 외제차를 처음 몰아보는 김 대리는 이 상황이 얼떨떨했지만, 팀장인 박연아의 지시를 거절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운전대를 잡았다.
기사라도 둔 듯, 뒷좌석에 올라탄 박연아는 오늘 만날 두 형제에 대해 김 대리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병원비며 요양원비는 첫째 형이 부담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거지? 그런데 그 형이랑은 연락이 안 되고.”
“네. 아무래도 그 형이라는 사람은 이재마 원장하고 각별한 사이라서 그런지 한 번 연락을 한 이후로는 연락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재마 원장님에 대해서 할 말이 없다고요.”
“그런데 지금 만나는 사람들은?”
“둘째, 셋째 아들입니다. 이 두 사람은 처음부터 치료도 거부했고, 너튜브 공개를 허락한 적도 없다고 합니다. 더구나 이재마 원장에게 직접 연락을 해서 내리라고 말을 했는데도 들어주지 않았다더라고요.”
“오케이. 이따가 그 부분 내가 질문할 테니까 영상 잘 찍어.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박연아의 차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김 대리는 연아의 당부에 고개를 끄덕였다.
운전에만 정신을 쏟아도 긴장이 되는 데 계속해서 말을 거니 혼란스러운 김 대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번 일만 잘 터뜨리면 이재마? 개천에서 용 난 척 하고 있는 이재마 코를 바짝 눌러줄 수 있을 거야.”
어떻게 해서든 이재마에게 흠집을 내고 싶어 하는 박연아가 김칫국을 마시는 이야기에 김 대리는 별다른 호응을 할 수 없었다.
백미러로 뒷좌석의 김연아를 보니 무슨 원수에게 복수라도 하는 날인 것처럼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도대체 전생에 무슨 원수 사이였기에 이렇게까지 하나 싶지만, 인사과의 동기들 말로는 이재마가 박연아의 전 연인이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 김 대리였다.
무슨 연유로 두 사람이 헤어진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박연아 성격에 전 연인이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채널보다 더 잘나가는 꼴은 죽어도 못 볼 터였다.
더구나 전 연인도 한의사, 현 연인도 한의사 비교 아닌 비교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더더욱이 전 연인에게 경쟁심을 갖고 있는 모양이었다.
왜 일을 공적인 감정이 아닌 사적인 감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박연아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생각이 없는 김 대리는 그저 박연아의 비유를 맞출 뿐이었다.
제 능력으로 끌어가는 채널은 아니었지만, 정한 한방병원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고 있는 그녀에게는 너튜브 채널 운영이 자존심이자 존재의 이유였다.
“김 대리, 약속 시간이 언제랬지?”
한참 강남대로를 빠져나와 약속장소까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그제야 연아는 약속 시간을 물었다.
분명 어제 보고했음에도 크게 생각을 안 한 모양이었다.
“네. 두 시에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지금, 20분 전인데 카페까지 5분이면 도착하네요. 저희가 먼저 도착할 수 있겠어요.”
“뭐?”
김 대리는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말을 건넸지만 그 한마디가 연아에게는 거슬렸는지 미간이 찌푸려졌다.
김 대리는 긴장을 하고 운전을 하느라 자신이 혹시 말실수라도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은 특별하게 말실수를 한 것 같지 않았다.
백미러로 연아의 표정을 확인한 김 대리는 자신을 노려보는 박연아의 표정에 오금이 저렸다.
그렇지 않아도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우리가 굳이 먼저 가서 기다릴 만큼 중요한 사람이야?”
“아뇨…… 뭐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희가 먼저 부탁을 해서 만남을…….”
김 대리는 상식적으로 생각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김 대리.”
“네.”
“비즈니스를 하려면 불필요하게 고개 숙이는 법 고쳐. 상대방이랑 기 싸움을 해서 이길 생각을 해야지.”
“네?”
박연아는 김 대리가 뭘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두 시 약속이면 5분 정도 늦게 들어가. 늦게 도착한 것에 미안한 마음으로 사죄는 하되, 일이 많아 어쩔 수 없었다는 상황을 어필해야지. 우리가 한가한 사람처럼 미리 가서 기다리고, 굽신거리면 한도 끝도 없이 지는 거라고.”
김 대리는 박연아의 논리에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페에 도착한 김 대리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박연아가 카페에 들어가기까지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 논리를 한참이나 펼치던 연아는 정확히 2시가 넘어서야 자신이 보고 있던 너튜브를 끄고 카페로 들어갈 채비를 했다.
“아까 분명히 말했다. 이 판은 내가 끌고 가. 김 대리는 쓸데없이 끼어들지 말고 촬영이나 잘해. 알았지?”
“네. 팀장님.”
* * *
연일 너튜브에서 어머니가 등장한 영상이 떠들썩하다는 소리를 아들에게 들은 정상은 명의 한의원 원장이라는 이재마에게 직접 연락을 했다가 본전도 찾지 못했다.
물론 영상에는 어머니의 얼굴이 직접적으로 나온다거나 신변이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가족이 본다면 그 환자가 자신의 어머니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다 늙어 병든 어머니가 불쌍하지만, 첫째 형도 포기하고 시골 요양원에 모신 어머니를 굳이 서울로 모셔 어렵다는 암 치료를 시작한다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정상이었다.
“그러니까 어머니 치료는 무슨 돈으로 하냐고. 형 말처럼 너튜브? 영상인지 뭔지 올린 의사가 치료비를 대줄 것도 아니고. 땅 파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
막내인 영상은 혹여 어머니를 맡고 있는 첫째 형이 병원비를 부담하자는 이야기라도 할까 벌벌거리며 흥분을 했다.
영상을 공개한 것이 치료를 반대하면 전국에 불효자로 낙인이라도 찍힐 것 같은 상황에 막내아들인 영상은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다고 했다.
처음에 영상이 올라갔을 때는 자신의 허락도 없이 어머니의 영상을 올린 의사에게 돈이라도 받을 생각이었지만, 연락을 했더니 찔러도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태세였다.
“준영이가 그러는 데 이 정도면 광고 더 안 붙여도 돈 엄청나게 들어온대.”
“그래?”
“벌써 100만 뷰가 넘었잖아. 거기에다 어머니 영상 올라간 뒤로 구독자 수도 늘고 다른 영상들도 뷰 수 올라가는 게 눈에 보인다는 걸. 아마 우리 엄마 영상 하나로도 한몫 제대로 챙겼을 거야.”
“흠.”
“그러니까 우리도 가만히 있으면 안 돼.”
정상은 자신의 몫을 꼭 주장이라도 할 것처럼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안녕하세요. 박정상 씨 되시나요?”
두 형제가 카페 안에서 핏대를 높여가며 집안 이야기를 하는 탓에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두 사람이 영상 속 주인공의 아들이라는 걸 연아는 단박에 알아챘다.
“아, 네네. 안녕하세요.”
정상과 영상은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정한 한방병원 홍보팀장 박연아라고 합니다.”
연아는 자신의 명함을 두 사람에게 건넸다.
“저희가 좀 늦었습니다. 일이 보통 바쁜 게 아니라서요.”
“아이고. 괜찮습니다. 일이 바쁘시면 그러실 수 있죠. 저희도 방금, 방금 왔습니다.”
세련된 정장을 차려입은 연아의 등장에 조금 전까지 핏대를 높여 이야기하던 영상은 고개까지 깊숙이 숙이며 명함을 받았다.
서울에서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유명한 한방병원 직원이 나온다더니, 마치 연예인이 나타난 줄 안 영상과 정상은 명함을 받아들고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저희 조부께서 정한 한방병원 창립자이십니다. 어쩌면 홍보팀장이라는 직책보다 한의학에 깊이 몸담고 있는 집안의 한사람으로서 찾아온 거니까 너무 큰 부담은 갖지 마시고 오늘 이야기 들려주시면 됩니다.”
박연아는 자신이 홍보팀장이자 정한 한방병원의 빼놓을 수 없는 구성원이라는 걸 강조했다.
“아이고.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대단하신 분이시네요. 그냥 직원분이 찾아오시는 줄 알았는데.”
명함만 들여다보던 정상은 연아의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대단하다고까지 말씀하시면 제가 너무 부끄럽고요. 요즘 항간에 이슈가 되고 있는 영상 속 주인공이 두 분 어머님이시다는 이야기를 직원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혹시 이재마 원장이 어떻게 해서 어머님을 진료하게 되었고, 요양원에서 나와 서울까지 모시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정확히 알고 계신가요?”
“아뇨. 저희는 일절 몰랐습니다. 형에게 어머니가 암 진단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만 별안간에 들었죠.”
“아, 예상도 못 하셨다는 말씀이네요.”
“네. 주말에 늦은 시간에 전화가 와서 한의사가 진료를 했는데 큰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봐라. 확실하다 했다더군요.”
“확실하다고요?”
“네. 솔직히 CT를 찍은 것도 아니고 무엇을 가지고 그렇게 확실하다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연세가 90 가까이 되는 노인네를 구급차로 서울까지 전원한다는 게 보통 일입니까.”
“그렇죠.”
연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 대리를 바라봤다. 지시대로 영상을 잘 찍고 있냐는 뜻이었다.
연아의 눈짓에 김 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구나 정말 암 진단을 받아버리면 고령의 노인이 암 치료를 해야 한다는 건데 돈을 떠나서 젊은 사람들도 뻥뻥 나가떨어지는 치료과정을…… 아들로서는 속단할 수 없는 결정이죠.”
“네. 그 마음 잘 압니다. 영상 공개된 이후에는 어떻게 하셨나요.”
“영상도 말입니다. 허락을 구할 거면 아들 셋 모두에게 구해야지. 큰 형한테만 허락을 받았어요. 그럼 치료를 반대하는 우리는 전국에 불효자식으로 낙인을 찍는 건데. 이래도 되는 겁니까?”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영상은 기가 막힌다는 듯, 핏대를 세웠다.
그의 목소리에 김 대리는 화면을 돌려 영상을 집중적으로 촬영했다.
“그리고 너튜브로 이익을 보는 게 한두 푼도 아닐 텐데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없고, 둘째 형한테 돈은 절대 줄 수 없다고 했다는군요. 말이나 됩니까? 우리 엄마 영상으로 돈 벌어서 누구 배를 채우라는 겁니까?”
한번 흥분을 한 영상은 삿대질까지 해가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연아는 영상이 꽤나 흥분했지만, 그 흥분을 말릴 생각은 없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 영상이 공개만 되면 이재마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도 남으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