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61화
“이효주 선생님?”
“네?”
“혹시?”
혹시, 라는 물음에 효주는 침을 꼴깍 삼켰다.
설마 자신의 속마음이 들킨 건 아닐까 긴장이 되어 조마조마했다.
“근무하시는 데 불편하신 건 없으신가요? 아무래도 대형 병원에 계시다가 오셔서 불편하신 게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네? 아, 네. 괜찮아요. 정 실장님도 최 실장님도 신경 많이 써주셔서…….”
효주는 자신이 괜히 지레 놀란 모습이 민망해 재마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에 정 실장이 환경이 많이 바뀌어 힘들지 않냐고 물었었는데, 아무래도 이 원장도 형식적인 물음인가 싶었다.
‘난 또, 들킨 줄 알았네.’
효주는 자신이 속마음이 재마에게 들킬 리가 없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 실장은 환자들이 불편한 질문을 하면 웃음으로 무마시키고 넘겨도 된다고 했는데, 사실 크게 문제로 와닿지는 않았다.
그보다도 시시때때로 전화를 해서 명의 한의원의 상황을 묻는 박연아의 전화가 더욱 불편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몇 달만 다닐 생각으로 명의 한의원으로 이직을 했지만, 앞으로 다시 정한 한방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원장님, 그런데 전화…….”
“아, 제가 깜빡했네요. 그럼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재마는 효주에게 오늘도 수고해 달라며 고개를 숙였다.
얼떨결에 고개를 숙였다 드는 효주의 눈치까지 살핀 재마는 몸을 돌렸다.
‘확실히 무언가 이상해…….’
재마는 데스크 쪽으로 향하면서 효주의 생각을 읽었던 것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단순한 혼잣말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찜찜함이 가시질 않았다.
‘혹시 무슨 일을 꾸민 건 아니겠지?’
도대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누가, 무엇을 꾸며서 어떤 일이 벌어졌다는 뜻일까.
보상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게는 되었지만, 그 속뜻까지는 알 수 없으니 더욱 답답할 지경이었다.
“전화 바꿨습니다. 명의 한의원 이재마 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한의사 협회 한의 신문 국장입니다.
“네. 이른 시간부터 무슨 일이시죠?”
지금까지 한의사 협회에서 직접 연락받을 일이 없었던 재마는 무슨 일인지 전혀 추측할 수 없었다.
더구나 신문사 국장이 직접 전화를 걸었다니.
-다름 아니라, 한의 신문 쪽에서 원장님 인터뷰를 가능하실까 여쭤 보려고 연락드렸습니다. 한의 신문에 대해서는 잘 아시죠?
“한의 신문이요?”
재마는 한의 신문이라는 말에 데스크 위에 올려져 있는 협회에서 온 신문을 집어 들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격주로 한 번, 협회에서 오는 한의 신문은 협회에서 직접 제작하는 신문이었다.
한의학 지식이나 실무, 정보, 소식 등을 접하고 있어 전국에 있는 모든 한의사들에게 전달되었다.
-요즘 너튜브에서 행보가 대단하셔서 협회 쪽에서도 눈여겨 보고 계십니다. 다소 보수적일 것이라 생각하는 한의사 쪽에서 진보적인 행보를 보이고 계시니 당연히 이슈가 되실 만합니다.
“아, 그렇군요.”
한의사로서 보수적인 적도, 진보적인 행보를 간 적도 없는 재마였지만 일단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 가능하다고 하시면 저희 신문사 기자분이 약속 잡고 찾아뵙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너튜브 채널이 승승장구한 덕에 하게 된 인터뷰지만 명의 한의원 원장으로서 하는 인터뷰를 하게 되다니 기분이 묘했다.
이 또한 명의 한의원을 알리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미션이 아니어도 한의원부터 생각하는 저 자신의 모습에 재마는 피식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재마는 한의 신문 측과 인터뷰를 하기로 하고 전화를 마쳤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오늘 출근하면서 어제 올라간 영상 봤더니 조회수가 장난 아니던걸요?”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정 실장은 그저 조회수와 구독자수가 갑자기 늘어났다는 것에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 실장이 운영하는 채널도 아니지만, 정 실장 주변에서도 영상이 올라올 때마다 영상을 확인하고 댓글과 좋아요를 잊지 않았다는 연락을 꾸준히 해왔다.
“네. 이번에 영상이 잘 되길 내심 바랐는데 기대 이상의 반응인 것 같습니다.”
재마는 지순정 어르신의 영상이 좋은 뜻으로 비치길 간절히 바랐기에 좋은 영향으로 비치길 바랐다.
“에고…… 저도 아침에 봤어요. 그럼 그 환자는 검사는 다시 하셨어요?”
이미 공개된 내용만으로는 지금 현재 상태가 궁금한 건지 정 실장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순정 어르신의 검사 결과를 물었다.
재마의 진료 결과를 누구보다도 신뢰하는 정 실장은 담도암을 의심하는 재마의 진료에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네. 그렇지 않아도 어제 아성 대학병원에 가서 얼굴 뵙고 왔습니다.”
“아, 어제 퇴근하자마자 가실 데가 있다고 하시더니 병문안 다녀오셨구나. 원장님, 정말 대단하세요. 옆에서 지켜보는 저도 놀랄 정도인데 댓글들도 하나같이 대단하다는 반응이더라고요.”
정 실장은 이런 재마와 함께 일을 하는 것이 영광스럽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구 원장과 20년 가까이 함께 일을 하며 그를 존경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의 손주인 재마의 행보에 매번 감탄하고 존경할 따름이었다.
“대단한 반응을 얻으려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뿌듯하네요.”
재마는 칭찬에 부끄러웠다.
“그럼 진료 시작할까요. 원장님? 오래간만에 또 한의원 떠들썩하겠는데요?”
정 실장은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곧 9시가 되는 것을 확인했다.
이미 명의 한의원 밖은 시끌시끌했다.
너튜브를 시작하고 떠들썩했던 한의원이 조금 진정될 만하자, 다시 한번 대박이 터졌기에 환자들의 반응은 진료가 시작되지 않아도 예상될 정도였다.
“네. 정 실장님이 오늘 바쁘시겠네요.”
“제 일인걸요. 원장님, 파이팅!”
정 실장은 자신에게 미안한 듯, 바쁘겠다는 말을 하는 재마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이 원장님, 진료 보시러 가십니까.”
재마가 전화를 받으러 간 사이 댓글을 쭉 훑은 강산은 그에게 할 말이라도 있는 듯 다가왔다.
“댓글 반응입니다.”
재마는 테블릿을 건네받아 쭉 내려가며 훑었다.
걱정했던 것보다 영상을 보고 너무 자극적이라거나, 요양원과 환자 보호자에 대한 악플은 적었다.
모두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난다거나, 한참 찾아뵙지 못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전화 한 통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정말 눈살 찌푸려질 정도의 악플은 삭제될 수 있다는 내용 고지한 후에 삭제 중이야. 야, 근데 진짜 조회수가 늘고 댓글이 느니까 일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네.”
강산은 잠깐 사이에 쭉쭉 늘어나는 댓글에 정신이 아찔할 정도였다.
등하교와 출근 시간인 9시 정도가 되자, 조회수는 더욱 늘었다.
인기 급상승 카테고리에 올라간 것도 한 몫 톡톡히 하는 것 같았다.
지금 보고를 하는 순간에도 새로운 댓글이 10초에 서너 개씩은 달리고 있었다.
“늘어나는 댓글 관리 같은 거는 유정 씨가 조언 주기로 했으니까 다음 회의 때 이야기하자.”
“그래. 근데 두통이 아직도 있어? 표정이 안 좋은데?”
강산은 진료를 시작하기 전에 재마의 표정이 좋지 않은 걸 또다시 짚어냈다.
“아니, 그건 아니고…… 강산아, 이효주 선생님 있잖아.”
“어, 이 선생님 왜?”
“지난번에 사무실 앞에서 마주치고, 그다음에는 또 다른 이상한 눈치 못 느꼈어?”
“이상한 눈치? 아니, 뭐 특별한 건 없었는데, 우리 너튜브에 관심이 많더라. 우리 다음 브이로그에는 새로운 물리치료사 선생님 소개도 할 겸, 이효주 쌤 브이로그 찍는 건 어떠냐?”
“뭐?”
강산은 지난번에도 이효주의 눈치가 심상치 않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그녀와 브이로그를 찍어보겠다며 가까워질 심산을 내비쳤다.
“지난번에 너튜브에 대해서 물어보더라고. 관심 있냐고 하니까 얼굴이 빨개지면서…… 아무래도 너튜브보다는 나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아. 브이로그 찍으면서 하루 종일 같이 있어 보면 좀 가까워지고, 친해지고 좋을 것 같아서.”
“이 선생님 불편하게 하지 마. 경고했다.”
재마는 혹여 직원들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강산에게 절대 안 된다고 톡톡히 경고를 했다.
“아이고. 알았다. 인마. 근데 명의 한의원 직원이랑 ‘환자를 읽는 한의사’ 채널 직원이랑 좋은 관계가 되면 사내 연애가 되는 거냐?”
“뭐? 너, 확.”
가뜩이나 머리가 복잡한데 강산의 김칫국에 재마는 화가 나서 손이 올라갈 뻔했다.
“알았어. 알았어. 우리 원장님은 사내 연애 안 좋아하시는구나. 잘 알겠습니다.”
강산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 * *
“뭐? 인기 급상승 동영상?”
“네. 명의 한의원 채널이 인기 급상승 동영상 1위를 하면서 구독자 수도 조회수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최근 영상이 뭔데.”
연아는 너튜브 채널 보고를 하러 들어온 홍보팀 직원의 말에 사색이 되었다.
갑자기 인기 급상승 동영상이라니…….
연애할 때는 재미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남자가 하는 채널이 뭐가 그렇게 인기가 있는 건지,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직원이 건넨 태블릿을 건네받은 연아의 눈에는 100만 회를 찍은 조회수가 눈에 들어왔다.
“김 대리. 우리 조회수 최고가 몇이지?”
“72만 회입니다.”
“100만 회도 안 돼?”
“100만 회는 그야말로 조회수가 터진거죠…….”
올린 지 1년이 넘어가는 영상의 누적 조회수라 그나마 70회가 넘어갔다.
한국에서 제일간다는 대형 한방병원의 너튜브 채널에서 전달하는 한의학 지식 영상이니 그나마 비등비등하게 비교를 할 수 있는 것이지, 연아가 새롭게 진행하는 브이로그의 조회수의 결과는 처참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왜 조회수를 못 터뜨리냐고 정한 한방병원인데. 이 타이틀로 모자란 거야? 뭐가 더 필요해?”
연아는 태블릿을 거칠게 내려놓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PD랑 작가는 뭐래.”
“그렇지 않아도 긴급소집은 해뒀습니다. 팀장님이 찾으실 것 같아서요.”
“여기는 지금 PD 작가도 없이 편집자 하나 두고 하는 채널이야. 근데 그걸 못 따라가? 우리는 홍보팀에 PD, 작가 월급 나가는 게 얼만데. 김 대리 그런 것 다 계산해 봤어?”
“아…… 아뇨. 제가 그런 것까지 계산할…….”
“후…… 그냥 이번 주 영상 하나 때우면 그만이다 식이면 그만둬.”
“네?”
연아는 도무지 분이 풀리지 않는지, 괜한 김 대리에게 막말을 퍼부었다.
“일단 열 받아서 백화점 다녀와야겠으니까 연락할 때까지 연락하지 말고. 이따가 호출하면 PD랑 작가 불러놓고.”
그렇지 않아도 작은 동네한의원에 너튜브를 제대로 발려놨으니 PD와 작가는 물론 자신까지 깨져도 제대로 깨질 것이라 예상했던 김 대리는 백화점을 간다는 연아의 말에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