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60화
지순정 어르신 영상 공개 전, 아성 대학병원.
“원장님!”
지순정 어르신이 깨어계셨다면 더 좋았겠지만, 힘들어하시는 모습만 뵙고 가는 것 같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재마의 뒤로 다급한 철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마는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을 향해 손까지 흔드는 철산을 바라봤다.
“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복도를 걸어 나오는 재마를 따라잡기 위해 허겁지겁 뛰어온 철산을 돌아보며 재마가 그를 바라봤다.
“잠깐 밖에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철산은 병실 안에서는 노모가 잠들어 계시지만 혹여 잠결에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재마를 붙잡아 세운 것이 조금 민망한지, 그는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네. 그러시죠.”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로비까지 내려와서야 철산은 양손을 비벼가며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잠시 후 영상이 올라간 후에 동생들 반응이 편안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괜히 원장님께 영상을 올려달라고 폐만 끼치는 거 아닌가 하고 걱정이 돼서요.”
철산 부부는 어머니의 영상을 직접 찾아와서까지 올려도 되겠냐고 물어봐 주는 재마가 그들의 결정으로 난처한 상황이 생기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괜찮습니다. 저희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습니다.”
재마도 사람 마음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첫째인 철산 부부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영상을 내려달라는 요청이 들어 올 것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산 부부는 용기를 내어 영상을 공개하겠다며 재마에게 부탁했으니, 이 또한 거절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조금 부끄럽지만, 제 동생들이 돈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미리 이야기를 했는데, 대뜸 출연하면서 돈을 얼마나 받기로 했냐고 묻더라고요.”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송구스러운지, 양손을 비비던 철산은 뒷머리를 매만졌다.
“네? 아, 아무래도 병원비며 지금까지 요양원에 계시며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셨으니 그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뇨. 어머니 치료에는 더 이상 신경 쓸 생각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이제 연로하시고 돌아가실 때 되었는데, 깨진 독에 물 붓기라고…….”
철산은 동생이 했던 표현을 제 입에 올리고 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아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하, 이런 집안 이야기까지 원장님께 말씀드려서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리는 철산의 모습에 재마가 손사래를 쳐가며 괜찮다 다독였다.
“일단 무슨 말씀이신지 알고, 돌아가겠습니다. 형제분께 직접 연락 오면 그 또한 제가 적절히 대응하겠습니다.”
“그러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이렇게 어려운 부탁을 드린 것만으로도 죄송스러운 데…….”
“괜찮습니다. 결정을 내려주신 보호자 분께서 후회만 하시지 않으면 저는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동생들은 이제 너무 늦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제가 너무 오랫동안 괴롭고 후회스러울 것 같습니다.”
철산은 이제 늙고 병든 노모였지만, 끝까지 그녀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훗날 밀려오는 죄책감을 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재마는 무슨 뜻인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영상은 다른 가족들 동의도 없이 올려놓고, 이득은 한의사 양반 혼자 싹 챙겨 먹겠다는 것은 아니지?
철산이 어제 재마에게 걱정을 했던 것처럼 박정상은 대뜸 돈 이야기부터 꺼냈다.
-우리 늙고 병들어 불쌍한 엄마를 팔았으면 그만한 계산은 해줘야 할 것 아니야.
“보호자분 말씀 무슨 뜻인지 잘 알았습니다.”
-허허. 똑똑한 양반이라 그런지 말은 빨리 알아듣네.
정상은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재마의 말에 금세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저희 채널에서 금전적으로 이득이 생기는 부분은 지순정 환자의 치료비로 직접 병원에서 전달 드릴 예정입니다.”
-무…… 뭐? 병원에서? 병원비로?
재마의 대답에 어이가 없는지, 정상은 말까지 더듬었다.
“고령의 나이시지만 형님분께서 지순정 어르신의 치료를 힘닿는 데까지 진행하실 생각이십니다. 지순정 어르신의 상황으로 저희 채널에서 이득이 생긴다면 당연히 지순정 어르신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의사 양반, 당신도 우리 엄마 봤을 것 아니야. 오래된 당뇨병 지병에 담도암이 좀 아파? 또 담도암은 고치기도 힘들다며. 늙고 병든 노인네 끝까지 놓지 못하는 것,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해? 우리 엄마 말은 들어봤어? 노인네가 매일 꽂을 곳도 없는 앙상한 팔목에 주삿바늘 꽂아가며 검사받고 그 괴로움을 알기나 해?
정상은 노모의 치료과정이 연로한 환자에게 결코 좋은 결정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핏대 높여 이야기를 했다.
“박철산 보호자께서 결정하신 만큼 저는 그분의 뜻을 지지해 드릴 수밖에 없겠군요. 동생분의 뜻은 잘 알았습니다. 제가 이제 진료 준비를 할 때라서요. 먼저 전화 끊겠습니다.
-뭐? 한의사 양반, 야. 야!
전화를 끊겠다는 재마의 말에 다급히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도 재마는 냉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아침부터 정신없는 상황을 처리하고 나니, 정신이 아찔한 재마였다.
휴대 전화를 내려놓고, 두 눈을 질끈 감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어짜 내도 박정상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재마야, 이재마! 이 원장! 안에 있냐!”
재마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다급한 강산의 목소리가 명의 한의원을 울렸다.
“나 여기 있다.”
“어, 일어났네. 너 너튜브 영상 댓글 봤어? 아니, 너튜브 들어가 봤어?”
“아니, 아직 왜.”
눈을 뜨자마자 박정상의 전화를 받기만 했지 아직 자신의 채널 영상을 확인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왜, 또 문제 있어?”
재마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눌러가며 강산을 바라봤다.
“문제? 문제라면 문제지.”
“또 뭐, 환자 보호자가 악플이라도 잔뜩 달아 놓은 거야?”
“뭐? 너 안색은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그제야 재마의 얼굴을 바라본 강산은 걱정스러운 듯, 그의 안색을 살폈다.
“아니, 두통이 좀 있어서…….”
“너 너무 무리한 것 아니냐? 어제 진료 끝나고 환자 병문안까지 갔다면서. 네 몸도 생각해야지. 한의원 네가 혼자 이끌고 있는 데.”
강산은 제 몸은 돌보지 않고 혹사하는 재마의 행동에 안타까워 말을 잇지 못했다.
“무리해서 그런 건 아니야. 근데 너튜브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 뭐야. 왜 반응들이 안 좋아? 너무 자극적이었다고?”
“아니, 문제는 아니고…….”
강산은 몸이 성치 않은 상태에서도 너튜브 이야기를 꺼내는 재마에게 자신의 휴대 전화로 너튜브를 보여줬다.
‘인기 급상승 1위’
“1위?”
“어, 어제 10시에 올리고 지금까지 60만 회 가까이 사람들이 봤어.”
“뭐? 60만 회? 우리 지금까지 올렸던 동영상들 조회수보다 더 높은 거 아니야?”
“당연히 높지. 그것뿐 아니라 다른 동영상 조회수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어.”
강산은 흥분해서 다른 동영상들의 조회수까지 찾아 재마에게 들이밀었다.
강산의 말처럼 10만 회 안팎을 오가던 조회수도 꽤 많이 올라 전체적으로 조회수가 올라가 있었다.
그뿐 아니라 구독자 수도 10만 명을 웃돌고 있었다.
“대박이야. 진짜.”
강산은 동영상 하나에 구독자 수뿐 아니라 조회수까지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사실에 놀라운 모양이었다.
“아침에 잠결에 확인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니까. 하, 이렇게 대박을 치는구나.”
“수고했다. 다 네 편집 덕분이야.”
“편집 덕분은 네가 고생하고, 네가 결정했는데…….”
“다들 같이 고생했지. 다른 동기들한테도 고맙다고 전화 한 번씩 해야겠다.”
다들 출근 전이었지만, 아침부터 온 신경은 너튜브에 쏠려 있었다.
재마가 지순정 어르신에게 너무 깊이 관여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다는 것이 결국엔 기우였다며 다들 기뻐했다.
-넌 역시 될놈될이다. 인마.
“너희가 아니었으면 안 됐을 거야. 고맙다. 출근 잘하고, 오늘도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
너튜브는 대박이 났지만, 오늘도 한의원에서 환자들과 만나야 하는 그들의 역할은 달라지지 않았다.
-알겠다. 역시 대단한 놈. 이번 주도 파이팅하고, 다음 주에 봉사 가는 날 뒤풀이나 하자.
아침부터 박정상의 재마는 그를 믿고 따라와 준 동기들의 덕에 힘이 났다.
“두통은 괜찮아? 진료 전에 침이라도 좀 놔줘?”
강산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두통이 있다던 재마를 챙겼다.
“면허는 없지만 그래도 침은 좀 놓는 거 너도 알지?”
강산은 어깨를 풀어가는 시늉을 하며 오래간만에 침을 놓아 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 정도는 아니야. 괜찮으니까 걱정 말고. 너튜브 대박 났다고 너무 흥분하기만 하지는 말자. 너도 알다시피 지순정 어르신 영상. 일반인 영상이야. 물론 모자이크도 충분히 들어가고, 개인정보 보호에 힘썼지만 또 모르는 일이야. 만약에 악플이 많이 달리면 진료 중간에라도 전달해 줘.”
철산 부부가 부탁을 해서 올린 영상이었지만, 신경을 쓰지 않을 수는 없었다.
조회수가 폭발한 영상인 만큼 평소 ‘환자를 읽는 한의사’ 채널을 구독하지 않는 신규 유입이 많을 텐데 이럴 때일수록 악플에 대비해야 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지순정 어르신과 그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영상을 내릴 결단까지 생각하고 있는 재마였다.
“무슨 소리인지 잘 알았다.”
강산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주 영상은 올라갔지만, 다음 주에 이어서 올라갈 지순정 어르신의 영상도 신경 써야 했고 오늘은 특히 댓글을 관리하느라 시간을 써야 할 것 같았다.
“원장님, 원장님 찾는 전화가 한의원으로 왔는데요.”
재마가 아직 출근 준비를 끝내지도 못했을 때, 출근해서 진료 준비를 하던 효주가 전화를 받았는지 재마를 찾았다.
“한의사 협회라고 명의 한의원 원장님 바꿔 달라고 하시는데…….”
“한의사 협회요? 아, 네. 전화 받으러 가겠습니다.”
재마는 효주에게 간단하게 목례를 하고, 데스크에 있는 유선전화를 향해 걸어갔다.
‘혹시 무슨 일을 꾸민 건 아니겠지?’
효주와 인사를 하며 그녀의 안색이 평소와 다르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녀의 속마음을 읽은 재마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생각한 사람이 자신을 뜻하는 것인지, 누구인지 지칭할 수는 없지만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건 아닐지 걱정에 찬 속마음이었다.
재마는 뒤를 돌아 처치실로 들어가는 효주를 불러 세웠다.
“이효주 선생님?”
“네?”
“혹시…….”
전화를 받으러 가는 줄 알았던 재마가 자신을 불러 세우자 효주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