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59화
“김성자 님, 이제는 허리 쪽은 괜찮으시죠?”
명의 한의원에서 첫 진료를 봤던 성자가 오래간만에 명의 한의원을 찾았다.
이번에는 손목이 아파 찾아온 성자의 손목을 치료 전에 찜질을 했던 곳을 살피는 재마였다.
“그럼요. 선생님 덕에 정말 좋아졌어요.”
“그래도 한 번 다치셨던 몸은 항상 조심하셔야 해요.”
“네. 선생님이 알려주신 스트레칭도 하고 꾸준히 하고 있고, 걷기 운동도 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허리가 약하다고 몸만 사렸는데, 운동을 하니까 한결 났더라고요.”
처음 명의 한의원에 왔을 때는 원래 있던 구 원장이 아니라, 생전 처음 보는 젊은 의사라 의심이 많았던 그녀였지만, 한결같이 처음처럼 세심하게 아픈 환부를 챙기는 재마의 모습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성자는 이재마 원장 덕에 허리 통증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생각에 그의 말이라면 찰떡같이 새겨들었다.
“허리도 문제지만 이 손목도 한 번 다치면 고치기 힘든 부위예요. 다치면 휴식을 할 시간을 줘야 하는데, 손을 움직이지 않을 수도 없고 힘들죠.”
이번에는 손목이 문제여서 한의원을 찾은 성자에게 걱정스러운 얼굴로 재마가 침을 놓았다.
보통 환자들은 목이나 허리가 다치는 것보다는 손목과 발목은 가볍게 치료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인대 손상의 경우도 디스크 못지않게 고질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은 재마는 성자에게 설명했다.
“50년을 넘게 썼으니 여기저기 고장 날 만도 해요. 손목을 워낙 혹사 시켰어야죠.”
젊은 시절부터 쉴 틈이 없이 공장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일을 하던 성자는 이제는 고생할 만큼 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손목의 통증이 하루 이틀 동안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파스로도 도통 낫지 않는 탓에 겨우겨우 찾아온 한의원이었다.
“그래도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어야 하니, 참지 마시고 꾸준히 한의원 내원해 주세요. 바쁘시더라도 물리치료까지 꼭 받으시고요. 저희 한의원에 이제는 실력 있으신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오셨거든요. 침 치료만 하는 것보다 물리치료까지 받으시면 효과가 더 좋을 겁니다.”
“그러잖아도 옆집 찬우 엄마도 얼마 전에 물리치료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성자는 옆집에 사는 오랜 이웃사촌인 찬우 엄마가 허리를 다쳤다는 말에 다른 곳 갈 것 없이 환자가 많아도 꼭 명의 한의원을 가라고 신신당부를 해놨었다.
명의 한의원에 다녀간 그녀는 젊은 원장의 치료는 물론 물리치료도 시원해서 다친 허리가 한결 나았다며 성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었다.
명의 한의원에서 물리치료 선생까지 새로 왔다는 소식을 그제야 전해 들은 성자는 궁금한 마음에 시장을 오갈 때마다 명의 한의원의 소식을 물어보곤 했다.
시장 골목 사이에서 칭찬이 자자한 명의 한의원 소식과 함께 새로 온 물리치료사에 대한 소문도 꽤 쏠쏠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이미 해인동에는 명의 한의원이 젊은 원장으로 바뀌더니 대형 한방병원에서 물리치료사도 뽑아 오고, 너튜브도 하면서 사업을 확장하는 건 아니냐는 기대와 함께 새로운 물리치료사에 대한 소문이 파다했다.
“만족하신다 하시죠?”
“그 선생님도 정한 한방병원에서 오셨다면서요. 정육점 여자 사장님은 큰 병원에서 왔으면 실력이 출중하거나, 아니면 조금 떨어져서 작은 한의원으로 왔거나 둘 중에 하나라던데…….”
성자는 옆자리에서 듣기라도 할까, 목소리를 낮췄다.
이미 소문은 났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서였다.
“하하. 전 직장하고는 상관없이 면접과 실력을 뽑고 모신 선생님이시니까 실력은 걱정하지 마세요.”
재마는 새로운 물리치료사인 효주가 실력보다는 전 직장의 타이틀로 이슈몰이를 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
“침 15분 맞으시고 물리치료 받으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침을 모두 놓은 재마는 성자에게 인사를 건네고 처치실을 나왔다.
찜찜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은 재마의 얼굴을 본 정 실장이 걱정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원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아…… 정 실장님 잠깐 이야기 좀 하실까요?”
재마와 함께 진료실로 들어온 정 실장은 재마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긴장으로 인해 살짝 상기된 얼굴이었다.
“다른 건 아니고, 이효주 선생님이요.”
“네. 이 선생님이 문제라도 있으세요?”
“환자분들께서 이 선생님 전 직장에 대한 이야기로 아무래도 색안경을 끼실 것 같아서요.”
“아, 그 부분은 저도 잘 인지하고 있어요. 동네한의원 특성상 어르신들이 선생님들의 개인정보에 관심이 많으시죠. 자연스럽게 새로 오신 이 선생님한테 경력을 물어보기도 하다가 알게 된 분이 많은 모양이에요. 이 선생님도 본의 아니게 난처하신 상황이 많으신 것 같더라고요.”
재마는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더 듣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 된 그였다.
동네한의원의 특성상 환자들은 새로운 직원에 대한 궁금증을 끝없이 품었고, 친절한 대답을 원하는 환자들에게 실망을 안기지는 않을까 대답을 한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는 격이었다.
정한 한방병원에서는 겪지 못했던 난처한 상황에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한 효주가 난감했을 상황을 생각하니 미리 챙기지 못한 재마는 제 탓인 것 같았다.
“정 실장님은 혹시 이 선생님이 근무하시기에 불편한 상황이 생기거나 하시면 제게 꼭 말씀해 주세요.”
작은 한의원이었지만, 원장에게는 근무환경에 대한 불편함을 직원이 티 내기 쉽지 않으니 정 실장에게 챙겨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 그였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앞으로의 불미스러운 상황은 최대한 막을 생각이었다.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정 실장도 잘 알아들었다는 듯, 안도의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 * *
저녁 진료까지 마친 재마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시간을 내 소화기내과가 있는 아성 대학병원 암 병동을 찾았다.
늦은 시간, 면회를 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분위기라 재마는 발걸음을 재촉해 1107호 앞에 섰다.
병실 문 앞에는 지순정 어르신의 이름이 써 있었다.
이미 재마의 눈에는 지순정 어르신의 병이 보인 상태였지만, 소화기 내과에서 검사 결과는 달랐으면 마음먹었던 재마의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원장님!”
꿈속 요양원이 아닌, 서울 아성 대학병원에서 재마를 만난 것이 반가운 나머지 철산은 입원실 문이 열리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반겼다.
자신의 한의원 환자들을 돌보는 것도 정신이 없을 텐데 진료를 마치고 찾아오겠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어머니의 검사 결과를 듣고 막막하던 가운데 작은 힘을 느낀 철산이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 상태의 지순정 어르신을 바라본 재마는 꿈속 요양원에서보다 더욱 야위신 것 같아 걱정이 앞섰다.
고령의 암 환자에게는 서울까지 전원 자체도 큰 무리가 될 수 있었다.
“지순정 어르신은 좀 괜찮으십니까?”
“아무래도 서울에서 생활이 고단하신지 내리 잠만 주무시네요.”
노모를 살피고 있던 며느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재마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래도 원장님 덕에 이렇게 서울까지 와서 검사도 받고 결과도 듣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담도암이 찾기 힘들어서 오래 걸리면 한 달 이상 검사만 하다가 시간만 가기도 한다던데…… 모두 원장님 덕입니다.”
“제 덕이긴요. 그래도 늦지 않게 결단을 내려주신 보호자 분들께서 수고하셨습니다.”
담당 교수에게 불행 중 다행이라는 소리를 듣고 철산 부부는 속으로 몇 번이고 재마에게 감사를 드렸다.
재마에게 허리 굽혀 감사의 인사를 하는 철산의 손을 맞잡은 재마 또한 고개를 숙였다.
“형제분들과 대화는 좀 해보셨나요.”
“아무래도 쉽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연세도 많고 치매 환자에 당뇨 지병까지 있는 상태에서의 수술은 쉽지 않다는 병원 반응도 있고요.”
철산에게는 노모의 치료를 위해 병원을 옮기는 일이 형제를 설득하는 일인 만큼 그녀를 받아주는 병원을 찾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재마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으로 이제 곧 공개될 너튜브 영상이 형제들에게 자극적으로 받아들여져 철산에게 더욱 큰 어려움을 안기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어르신 영상은 조금 있으면 밤 10시에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시면 지금이라도 말씀해 주세요.”
“아닙니다. 저희는 원장님께 말씀드렸을 때 이미 결정 내렸습니다. 마음이 바뀌지는 않아요.”
어려운 결정을 큰맘을 먹고 내렸다는 듯, 철산과 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형제들에게 원망을 듣는 한이 있어도, 노모의 치료를 끝까지 진행하고 싶다는 마음은 꺾이지 않을 단단한 마음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업로드 후, 영상 주소는 다시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재마는 영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허락을 한 보호자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했다.
* * *
이른 아침, 재마가 정신도 차리기 전에 명의 한의원의 유선 전화벨이 울려댔다.
보통 한의원으로 걸려오는 전화는 진료시간에 맞춰 오는 편이라 이른 아침 적막을 깨는 전화벨 소리에 재마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심상치 않은 신호였다.
“여보세요. 명의 한의원입니다.”
-당신이 뭐라도 돼!
다짜고짜 반발로 시작되는 고함에 재마는 목을 가다듬었다.
“누구시죠.”
-누구냐고? 당신이 전국에 우리 엄마 팔리게 만들었으면 그 자식 정도는 알아야 되는 거 아니야?
재마가 예상하고 큰마음을 먹었던 대로 영상이 올라가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철산의 동생이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영상은 형님이신 박철산 님의 동의하에 올라간 영상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핏대를 세워가며 생전 처음 들었을지 모르는 한의원에 전화를 거는 지순정 어르신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철산 부부의 마음 또한 모르지 않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형 동의만 받으면 다야? 우리 엄마 동의는. 우리 엄마도 영상 올리는 데 동의했어? 전국에 있는 사람들이 치매 노인네 시골 요양원에 처박아 놓고 중병에 걸리게 했다고 아들 욕하는 꼴, 우리 엄마가 허락했다는 거야?
어제 ‘환자를 읽는 한의사’ 채널에 영상이 올라가자마자 형인 철산에게 링크를 건네받은 진상은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당뇨에 치매까지 걸려서 정신도 차리지 못하는 노인을 끝까지 형 부부가 책임지지 못하고 시골 요양원에 모시는 것도 탐탁지 않았는데 이제는 아프다고 전국에 소문까지 낼 모양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얼굴 팔면 뭐, 돈이라도 주는 거야?
대뜸 고함과 반말로 통화를 시작한 진상은 영상 업로드의 대가로 돈이라도 주는 것이냐 핏대를 다시 한번 올렸다.
-듣자 하니, 너튜브로 돈도 쏠쏠하게 벌린다는 데 이렇게 자극적인 영상 올리고 얼마나 끌어모을 생각인 거야? 우리 엄마 얼굴을 당신네 돈벌이로 썼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재마는 이마를 짚고 자신의 예상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지순정 어르신 보호자의 반응에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