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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57화 (57/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57화

“후, 제가 잘한 일일까요?”

먼 거리에 있는 보호자까지 소환을 해서 자신이 짚어낸 병을 알린다는 것은 꽤 예민한 상황이다. 이제야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는 재마였다.

그전까지는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강하게 밀고 나갔지만, 막상 일을 마치고 보니 뒤늦은 걱정이 밀려온 탓이었다.

숙소에서 기다리는 친구들의 걱정도 이제야 이해가 갔다.

철산이 형제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고 하며 어두웠던 얼굴이 계속 재마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잘하신 일입니다. 사실 요양원 원장님과 상주하고 계신 의료팀장님도 걱정은 하셨습니다. 보호자 측에서 요양원에게 관리 소홀 문제로 제기를 걸면 충분히 걸 수 있는 상황이니까요.”

재마의 고집이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걱정보다는 더 뒤늦게 알아 큰일을 치른 다음에 밝혀진 것보다는 낫다는 결론이었습니다. 다음 주에 새로운 병원 가서 검진을 다시 해보신 후, 아무 탈이 없다 해도 괜찮습니다. 어르신의 건강인걸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재마는 자신의 의견에 적극 협조를 해 준 진 주임에게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번 일로 또 한 번, 구 원장님의 손자분이시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네?”

뜻밖의 상황에서 구 원장과 자신이 엮인다는 사실에 놀란 재마였다.

“구 원장님도 건강에 이상이 있는 환자분들은 그냥 넘기시지 못하셨어요. 원장님 덕분에 생각지도 못했던 지병을 알게 되신 분들도 더러 있었고요. 구 원장님 덕에 저희 요양원에서는 예기치 못한 갑작스러운 상황들을 많이 모면했었죠.”

“그렇군요.”

“사실 상주해 계시는 의사도 아니고, 2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오신 분이 알아차리기에는 쉽지 않은 일 아닌가요? 더구나 일을 키우는 상황이 될까 봐 쉬쉬하지, 이렇게 말씀하시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 잘 압니다.”

진 주임은 재마가 걱정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사라지도록 이야기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재마와 진 주임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밖으로 나갔던 철산 부부가 들어왔다.

“저희가 좀 오래 걸렸습니다.”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신중히 선택하실 일이니 대화가 필요하신 것 이해합니다. 혹시 다른 가족분들에게도 전달하셨나요?”

노모의 건강과 앞날이 달린 일인 만큼 철산 부부에게 결정하기 어려운 일임을 진 주임은 잘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둘째 동생이랑 이야기는 해보았는데…….”

철산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웠다.

대화가 잘 안 되었다는 뜻이었다.

“사실 저희 사정이 썩 좋지 못합니다. 형제들도 마찬가지고요. 어머니를 굳이 고향에 있는 먼 꿈속 요양원까지 모신 이유도…….”

철산은 다소 민감한 부분까지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 민망한지 애꿎은 턱을 매만질 뿐이었다.

“그렇죠. 병원으로 어르신을 모시고, 또 새로운 요양원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요양원이 아니라 병원에 입원하시게 된다면 간병인도 따로 둬야 하고…….”

“그래서 말인데요.”

철산이 빙 둘러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 잠자코 있던 철산의 안사람이 더는 안 되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희 어머니 영상, 그리고 저희의 결정에 대해 영상을 만들어주세요.”

“네?”

재마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보통 민감한 영상 같은 경우는 보호자가 나서서 편집을 요구하기도 했다.

“원장님도 그냥 넘길 일이 아니라 생각하셨으니까 저희를 먼 곳까지 부르신 거니까 이 상황, 이 모든 것. 사실 그대로 영상 제작해서 채널에 올려주세요. 다른 형제들도 모든 상황을 빠짐없이 알 수 있도록 이요.”

“그렇긴 하지만…… 형제분들이 반대라도 하시면.”

“그 부분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영상을 만들어 달라고 하기까지 고민을 하다 마음을 굳힌 듯한 철산의 배우자 미진은 자신만 믿으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혼자 결정할 일은 아니고, 영상 담당하고 있는 직원과도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 어느 정도까지 공개할지 결정하겠습니다.”

철산 부분의 의견을 고려하겠다는 말에 두 사람은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먼 곳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먼 곳에 모셔 놓고 항상 마음이 불편했는데, 이런 일이 있다고 지나치지 않으시고 연락을 주시니 저희는 한결 마음이 가볍습니다. 앞으로 상황이 막막하지만…”

철산은 진 주임의 인사에 참고 있던 눈물이 와락 쏟아지는지, 말을 더는 잇지 못했다.

“어머니께서 의사소통은 안 되시지만 꿈속 요양원을 참 좋아하셨어요. 표정도 많이 밝아지시고요. 저희는 이번에도 믿고 돌아가겠습니다. 월요일에 다시 올게요.”

미진은 시어머니의 검진을 위해 다시 월요일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재마와 진 주임을 향해 인사를 했다.

* * *

-이번 영상은 편집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강산은 편집이 완성된 완성본을 재마에게 전달했다는 말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가 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메일을 열어 재마는 영상을 확인했다.

꿈속 요양원 봉사를 다녀온 지, 4일째.

월요일에는 철산 부부에게 직접 연락이 왔었다.

재마가 이야기했던 대로 서울에 있는 소화기 내과 전문 검진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왔더니 검진 결과를 받는 데에는 오래 걸리겠지만, 환자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었다.

재마가 예상한 일이었지만, 철산 부부의 연락을 받으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진 재마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부탁한 영상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현실적으로 어머니를 서울로 모시는 것에 대한 결정과 그 후에 따를 일들에 대한 보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제들은 노모의 건강상태에 곧장 서울로 모시자는 결정을 선뜻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선택을 철산과 그의 안사람인 미진이 결정해야 하겠지만, 그 결과 또한 둘이 책임져야 할 것이었다.

남겨질 영상으로 두 부부가 선택한 선택지가 최선이었음을 나중에라도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산과 영상에 대한 회의를 하며, 다소 자극적인 부분을 어디까지 편집을 하고 남겨둬야 할지 꽤 오래 고민한 영상이었다.

재마는 결코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영상을 검토했다.

그리고 마지막, 재마가 전달하고 싶었던 강산의 진심이 담긴 메시지까지 확인을 하고 영상을 업로드 했다.

-모든 결정은 책임이 따릅니다. 환자의 보호자에게도, 환자 스스로에게도.

더 나은 결정을 하기 위해. 저희는 끝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비단, 중증인 환자와 보호자에게만 전달하는 문구는 아니었다.

재마를 찾아오는 명의 한의원에 모든 환자들, 그리고 재마가 만나는 모든 환자들에게 최선의 결정을 하고 믿고 따라올 수 있도록 신뢰를 주는 역할이 한의사의 역할이라는 것을 재마는 다시금 깨달았다.

업로드를 한 이후, 재마의 머리에 시원한 기운이 도는 것을 느꼈다.

오래간만에 나타난 미션에 대한 보상이었다.

이번 일은 마음이 무겁고, 결정하기 힘들었던 만큼 미션을 성공시켰을지 스스로에게 의심이 가는 상황이었다.

“휴. 쉽지 않은 미션이었어.”

재마는 스스로도 쉽지 않은 미션이었음을 인정했다.

재마는 두 눈을 감고 어려웠던 만큼 큰 보상이 따라오길 바라는 듯 기대를 했다.

재마의 두 눈앞에 메시지를 읽었다.

[‘환자의 신뢰를 얻어라’ 미션 성공]

[보상 스토어에 열린 카드를 열어보세요.]

큰 보상이 따를 것이라 기대한 재마는 지난번 두 장이 함께 열렸던 것과 달리 한 장만 있는 모습에 다소 실망스러웠다.

‘하긴 미션이 어렵긴 했어도, 하나였으니까.’

눈앞에 보이는 금빛 카드를 쥐었다.

[혜안카드1]

‘혜안?’

재마는 카드를 쥐고도 의아한 느낌이었다.

한의사에게 혜안카드가 필요한 것이 맞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상 타임이 끝나고 눈을 뜨자, 아쉬움과 함께 궁금증이 밀려왔다.

“혜안카드가 꼭 필요한가…”

이미 환자의 동공을 읽은 후, 환자의 병에 대한 정확한 병명까지 확인이 가능한 재마는 새로운 능력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하지만 이 또한 재마가 노력을 해서 받은 보상이니 잘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혜안카드가 있다면 요양원에서 있었던 일처럼 어려운 결정과 통보를 해야 할 때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몰랐다.

또 환자들의 마음을 헤아리기도 쉬울 것 같았다.

똑똑.

“원장님, 점심시간 끝났습니다. 오후 진료 시작해도 될까요?”

“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요?”

재마는 점심시간 동안 진료실에서 나서지 않고 강산에게 받은 영상을 확인하고 보상을 받는 데 모두 사용해 버렸다.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아이고, 점심에 삼겹살을 바로 굽다가 왔더니 민망해 죽겠네.]

시장 골목에 불판삼겹살 전문 식당을 하는 사장이 문 앞에서 허리까지 굽히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문을 열자마자 삼겹살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는 들어 오지도 나서지도 못하면서 민망해했다.

아마 진료를 보러 오는 것뿐 아니라 작은 가게를 간다 해도 자신의 옷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민망한 상황을 종종 겪는 모양이었다.

재마는 점심을 미처 챙기지 못한 상황에서 삼겹살 냄새까지 들어오니 뱃속에서는 아우성을 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 앞까지 온 환자를 내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제가 장사를 하다 와서 냄새가 심해서요. 괜찮으실랑가 모르겠네.”

“당연히 괜찮습니다. 불편한 곳이 있으시면 한의원으로 오시는 게 당연하죠.”

“아이고.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삼겹살집 사장은 한달음에 다가와 재마 옆, 진료 의자에 앉았다.

“제가 어제 고깃덩어리 25킬로짜리를 한 번에 들다가 허리를 삐긋했는 디요.”

“어디 한번 보실까요?”

재마는 허리가 아파 어쩔 줄 몰라 하는 그의 상의 옷자락을 올렸다.

보라색 섬광의 그의 척추 쪽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젊었을 때는 25㎏도 한 번에 들고는 했는데, 이제는 몸도 다 써가나…….”

“아마 어제 한 번에 다치신 건 아니고, 누적이 됐을 겁니다. 식당을 오래 하셨나 봐요.”

“그람요. 저짝 자리에서만 15년 했고, 그전에는 요 앞에서도 5년 정도 했어요.”

“오래 하셨구나. 그럼 그만큼 몸도 잘 돌봐줘야 합니다.”

재마는 삼겹살집 사장이 고생한 이야기를 한참을 들어가며, 진료를 봤다.

뱃속에서는 밥 들어올 때가 지났다고 아우성치며 난리가 났어도,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그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쉴 틈도 없이 밀려들어 왔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네. 어서 들어오세요. 어디가 불편하셔서 오셨습니까?”

뱃속 사정은 뒤로 밀어두고, 재마는 환자들의 아픈 곳과 말 못 할 곳까지 읽어내며 진료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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