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자를 읽는 한의사-54화 (54/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54화

진 주임이 병실 밖에서 대기를 하고 있던 담당 복지사를 재마에게 안내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 훤히 알고 있던 복지사는 고개를 푹 숙이고 들지 못했다.

“양 선생님.”

“네.”

“고개 드셔도 됩니다. 어르신 진정제 맞으시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되셨어요.”

정준은 진정제를 맞은 후, 구토를 하던 심각한 상태에서 진정이 되었다며 양 선생을 안심시켰다.

“지순정 어르신 상태가 언제부터 저런 겁니까.”

“음…… 그러신지는 두 달 정도 되신 것 같아요.”

“그런데 아직까지 보고를 안 한 겁니까?”

정준은 자신이 알지 못했던 지순정 여사의 상태를 양 선생에게 다그쳐 물었다.

본인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진 탓에 놀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어르신들이 거동이 불편하시고 활동량이 부족하셔서 드신 음식들을 게우시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유동식을 제공하고 있지만…….”

평소에 지순정 어르신이 계시는 병실을 담당하는 복지사는 어르신의 상태가 악화된 것이 마치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서라는 기분이 드는 탓에 표정이 어두웠다.

큰 소리를 내었던 정준도 그 뜻을 이해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3층 어르신들의 구토는 늘 있는 일이기에 환자복을 갈아입으시는 경우도, 침구를 갈아드리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 탓에 3층 복지사들은 교대 근무를 하지만 온몸에 파스를 붙이고 일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3개월 이상 버티며 일을 해내는 것이 대단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담당자도 자주 바뀌고는 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매번 정리만 해드렸지, 어르신이 많이 힘들어하시는 줄 알았으면 진작에 보고했을 거예요. 어르신도 그다음 식사 시간에도 또 드시고, 또 드시고 오히려 더 달라고 하시니까. 그걸 말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화살이 괜히 복지사가 상태를 악화시켰다며 돌아올까 봐 자신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치매 환자가 아니었다면 본인의 몸 상태에 이상이 있음을 다른 사람보다 먼저 느꼈겠지만, 지순정 어르신은 치매 환자였다.

자신의 상태를 다른 보호자들에게 충분히 설명도 힘들 것이고, 식사를 하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그 또한 금방 잊는 상태였다.

특히 과도한 양의 음식물이 들어갔을 때 그 이후 괴로움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있을 테지만 그것을 잊고 매번 음식을 더 요구하고는 했다.

지순정 어르신이 잣죽을 다 드시고도 더 드시겠다고 떼를 쓰는 모습을 본 재마이니, 복지사의 마음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화도 쉽지 않은 중증 치매 어르신이니 어르신의 행동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죠. 매번 식사를 소화해 내기 힘드셨다면 알아채셨어야 합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할 말이 없네요…….”

“이 원장. 일단, 건강 검진 결과도 별문제 없는 상태로 나왔으니 지켜보도록 합시다. 앞으로 지순정 어르신의 식단과 식사 문제는 더욱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유동식이라도 소화시키시는 데는 무리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담낭암과 담관암은 초음파로도 쉽게 발견되지 않는 암이라…… 건강 검진으로 확인하기 쉽지 않으셨을 겁니다.”

건강 검진의 결과보다도 자신의 눈을 더 믿고 있는 재마는 지순정 환자의 건강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장담했다.

“음…….”

“일단 어르신 보호자께 연락하셔야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죠.”

꿈속 요양원 일의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정준의 얼굴 안색이 어두웠다.

보호자에게 편치 않은 어르신의 상태를 유선상으로 전달하는 일은 익히 있는 일이었지만 매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진 주사님 마음이 편치 않으신 모양입니다.”

다시 1층에 있는 진료실로 내려가는 재마가 정준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는지 넌지시 물었다.

“네. 아무래도 편치 않으신 분들이 계시는 곳이니 하루라도 탈이 안 나는 날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지만, 이렇게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는 일이 생기면 마음이 더욱 좋지 않죠.”

워낙 고령의 어르신들이 있는 곳이니 신경을 쓴다고 신경을 쓴 만큼 그들의 마음이 전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익숙해지려야 익숙해지지 않는 그였다.

“죄송합니다. 오래간만에 저희 요양원을 찾아주셨는데, 좋지 않은 일이 생겨 버렸네요. 담당 복지사인 양 선생님도 일부러 숨기신 건 아닐 겁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정준은 지순정 어르신의 건강상태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제 탓인 양 재마에게 고개를 숙였다.

특히 환자의 상태를 바로바로 확인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욱 무거운 그였다.

“아닙니다. 진 주사님의 마음, 제가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일단 저는 사무실로 돌아가 보호자분들께 연락을 취해봐야겠습니다. 다시 검진도 하셔야 할 거고, 혹시 정말 건강상 더 큰 문제가 있다면 거취문제도 의논해야 하니까요.”

“그러시죠.”

“남은 시간도 잘 부탁드립니다.”

진 주임은 재마에게 남은 진료 봉사 시간도 잘 부탁드린다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진 주임의 축 처진 어깨를 보니 재마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매일같이 건강에 문제가 있어 찾는 사람들과 마주 하고 있는 재마였지만, 특히 요양원 봉사를 올 때마다 양가적인 감정이 들었다.

특히 환자의 건강을 읽는 능력이 생긴 이후 더 크게 느끼는 것 같았다.

자신의 능력은 날이 갈수록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지만, 그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이 원장!”

지순정 어르신의 영상을 모두 찍은 후, 먼저 1층에 내려와 있던 강산이 재마가 보이자 손을 번쩍 들어 아는 체했다.

재마의 표정을 읽고 그의 기분을 알아챈 모양인지 그는 오버스러운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왜 그렇게 얼굴이 어두워? 오늘도 한 건 했잖아. 환자를 읽는 한의사, ‘건강 검진도 피해간 중증 치매 노인의 병을 알아채다.’ 어때, 내가 타이틀 한번 뽑아봤는데.”

“…….”

“이 영상 쓰지 않을 거지?”

강산은 재마가 너튜브에 영상을 올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물었다.

누군가는 너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사용하지 않을 영상을 왜 만드냐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재마는 지금까지 몇 안 되는 영상도 강산과 충분히 상의해 가며 편집점에 꽤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채널 운영자가 아닌 구독자의 입장에서도 영상을 되돌아보며 자극적인 부분은 편집을 추천하고는 했다.

재마는 역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산 또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다운 선택이었다.

“내가 영상을 찍자고 부탁한 건, 만에 하나 있을 사태를 대비해 찍어둔 거야. 보호자 분들께 보여 드려야 할 테니까.”

“나도 알고 있다.”

재마가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강산이 그의 어깨를 감쌌다.

너튜브 영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지는 않겠지만, 보호자분들께 환자의 상태를 전달하는 역할이라면 강산은 충분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순정 어르신의 영상만 편집해서 진 주사님 메일로 보내놨어. 보호자 분들께 보여 드릴 때 사용하시라고.”

먼저 내려와 있던 강산은 벌써 제 할 일을 끝냈다는 듯 말을 했다.

“고맙다.”

“고맙기는, 말하지 않아도 이제 척하면 척이지.”

강산은 재마의 어깨를 툭 하고 치며 피식 웃었다.

“얼른 가서 진료 봐라. 이번 봉사 브이로그에 네 분량 한참 부족해. 벌써 저 수완이랑 정수는 한참 찍어 냈단 말이야.”

지순정 어르신을 신경 쓰느라 시간을 지체한 재마의 출연 분량이 부족하다는 듯 강산이 재촉했다.

재마는 재촉하는 강산의 발걸음에 따라 급하게 진료실을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마 강산이 없었다면, 진 주임처럼 마음이 무거운 상태로 곧장 진료 봉사를 시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이 원장. 왜 이렇게 오래간만에 왔어. 내가 얼마나 기다렸다고.”

진료실에 앉자마자, 부리나케 순서를 기다려 들어온 어르신이 재마의 손을 덥석 잡았다.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그를 찾는 환자들이 많으니 그는 또다시 힘을 낼 수밖에 없었다.

* * *

“후. 하.”

“근데 진료 봉사를 와서 이렇게 나와 있어도 되는 건가.”

“안될 건 뭐야. 그리고 오전에 30분 정도 진료 보고, 오후에 30분 정도 진료 보면 되지. 어차피 브이로그는 20분 안쪽으로 편집할 수밖에 없어. 한 시간이면 넉넉해.”

혹여 요양원 담장 밖으로 나와 그늘에서 쉬고 있는 두 사람을 찾는 직원이 있지는 않을까 마음이 편치 않아, 앉지도 서지도 못한 정우를 바라보며 뭘 모른다는 듯 중기가 피식 웃어댔다.

“내 말 들으래도. 그리고 내 중심으로 편집될 거니까, 영상에 네 모습 없다고 아쉬워하지 말고. 서울에서 이 촌구석까지 봉사활동 올 한의사 구하기 힘들어서 머릿수 채운 거니까.”

“어? 어. 그래 알지. 부산에서 여기 오는 게, 서울에서 오는 것보다 빠르니까. 내가 편하게 왔지.”

부산에서 안동까지 오기에 2시간 40분은 족히 걸린 정우였지만, 고작 머릿수 채우기 위해 불렀다는 말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이렇게 쉬다가 카메라 돌아갈 때 잠깐 가서 침 좀 놓고, 시간 때우다 돌아가도 된다 이 말입니다. 한의사 선생.”

서 있는 정우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자리를 먼저 뜨는 중기였다.

“넌 어디 가는데? 사람들이 찾으면 뭐라고 해?”

“나 잠깐 차에 가서 눈 좀 붙이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부르면 잠깐 배탈 나서 화장실 갔다고 말하고, 전화해. 알았지?”

중기는 자신을 부르는 정우의 목소리에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며 자신이 타고 온 카니발 리무진 쪽으로 향해 걸어갔다.

“아주 연예인 나셨네. 나셨어.”

검게 선팅이 된 카니발에 올라타는 중기의 뒷모습을 보며 정우는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후, 다른 녀석들도 이렇게 진료 봉사 다니나,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재마의 너튜브 채널을 봐왔지만, 그 영상 속의 동기들은 진심을 다해 진료 봉사를 하는 영상이었다.

오전에 영상을 찍을 때만 해도 중기 녀석은 짧은 시간에 어찌나 최선을 다하는 연기를 해대는지, 자신은 영 연기에는 소질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촬영을 하는 감독도 정우에게는 뒤통수 정도만 지나치듯 나올 테니 적당히 ‘하는 척’만 해도 된다고 당부를 할 정도였다.

한의학과를 다니며 자신과 비슷한 성적을 받던 중기는 여자를 잘 만나 정한 한방병원 서울 지점에서 너튜브 영상 찍으러 다니고 있고, 자신은 부산에 처박혀 일주일의 7일이 부족하도록 뛰어다니는 현실이 확연히 느껴졌다.

그뿐이랴, 이제는 머릿수를 채우러 쉬는 날에도 쉬지 못하고 안동까지 올라온 그였다.

“후. 정말 날이 갈수록 답이 안 나온다. 여기는.”

정우는 이미 중기 녀석도 리무진 안으로 쉬러 들어간 상황에 자신이 쉬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 싶어 나무 그늘 벤치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