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52화
“오래간만에 해인동 빠져나오니 어때?”
“그러게. 진짜 오래간만인 것 같네.”
강산과 함께 차를 타고 오래간만에 서울 시내를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타자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어느새 재마의 일상은 해인동, 명의 한의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감사하게도 너튜브 채널이 관심을 가질수록 환자 수가 늘어났다.
초반에는 정말 폭발적으로 느는 바람에 토요일에도 진료시간을 늦춰가면서 진료를 볼 정도였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운영이 가능했다.
처음 너튜브에서 관심을 받을 때처럼 환자들이 넘쳐 명의 한의원 담장 밖까지 환자들이 대기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명의 한의원을 꾸준히 찾아주는 환자 수는 확실히 늘었다.
처치실 간호조무사와 물리치료사까지 추가 채용을 하니 직원들도 과다 업무에 시달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네가 토요일에 시간을 내서 요양원 갈 날이 오기는 온다?”
강산은 한의원에 신경을 쏟느라 함께 못했던 재마가 두 달 만에 함께 홍천을 내려갈 수 있는 상황이 신기한 듯 이야기했다.
운전대를 잡은 강산은 이제 11인승 카니발을 제법 익숙하게 몰았다.
한 달 전, 재마가 명의 한의원 상황에 집중을 하고 있는 동안 동기들과 조를 짜서 꿈속 요양원 봉사를 도맡아 하던 강산의 부탁이 있었다.
동기들과 함께 이동을 하기 위해 중고차라도 마련을 했으면 했다.
이왕이면 자신이 신경 못 쓰는 부분까지도 나서서 도움을 주는 동기들을 위해 번듯한 새 차를 뽑고 싶었지만 아직 그럴 여유가 되지 않는 재마는 상태 좋은 카니발을 뽑았다.
“차는 어때?”
“중고차치고는 괜찮네.”
항상 해인동 한의원 안에서만 지내니 중고차 출고를 한 이후에 처음 차를 탄 재마였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야. 그래도 이 녀석이라도 생기니 애들하고 요양원까지 내려가는 게 수월하지. 차라도 없었으면 저 녀석들 다 도망갔을 거다.”
강산은 중고차라도 상태도 좋고 장정 여럿을 싣고 홍천까지 다녀오기에는 충분하다고 칭찬 일색을 늘어놨다.
강산이 가리키는 뒷좌석에는 그들의 동기인 정우와 수완이 서울 시내를 빠져나가기도 전에 잠이 들어 있었다.
대형 병원에 근무하는 동기들은 주 5일 진료를 보고 있었지만, 초년생들이라 퇴근을 하고도 긴장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동기들끼리 모여 봉사를 가는 시간이 오히려 마음이 편한 모양이었다.
“너도 피곤하면 자. 운전은 내가 맡아서 하면 되니까.”
“피곤하면 교대해야지.”
“아이고, 원장님. 제가 감히 원장님께 운전대를 넘기겠습니까.”
강산은 자신이 운전을 할 테니 걱정 말고 쉬라며 재마를 재촉했다.
듬직하게 운전대를 모는 강산을 믿기로 한 재마는 잠시 눈을 감기로 했다.
* * *
“아이고 원장님.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다는 것이 두 시간 반을 꼬박 잠들어 있었던 재마는 꿈속 요양원에 도착하는지도 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진 주임은 눈에 익숙한 카니발이 요양원 정문에 들어서는 걸 보자마자 버선발로 뛰어나와 재마 일행을 반겼다.
특히나 명의 한의원 일이 많아 한동안 내려오지 못했던 재마를 보자마자 두 손을 맞잡으며 반가워했다.
“제가 너무 오래간만에 내려왔죠?”
“아이고. 바쁘신 분이시니 이렇게 다시 찾아와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주임님, 이제 이 원장 없이 저희만 있어도 어르신들 건강은 걱정 안 하셔도 되지 않습니까?”
격주로 얼굴을 비치고 있는 강산은 진 주임과 이제는 농담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물론 선생님들이 계셔서 든든하지만……. 이 원장님은 오래간만에 얼굴을 뵙는 거니까.”
진 주임은 강산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눈을 찡긋거렸다.
“어르신들 건강에 큰 문제 있으신 분은 없으시죠?”
강산에게 지난 두 달간 진료 봉사를 한 내용을 보고 받은 재마였지만, 다시 한번 진 주임에게 물었다.
“정석아! 오늘 정석이 오는 날이었구만. 아이고 우리 막둥이 이래와서 엄니 얼굴 좀 한번 보자.”
2주에 한 번 찾아오는 강산을 애타게 찾는 김 여사 말고는 큰 문제가 없는 요양원이었다.
김 여사는 창문을 내다보다가 강산이 도착한 걸 확인하고 맨발로 뛰어나와 강산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엄니. 그동안 식사 안 거르고 잘하셨죠?”
“그럼. 잘했지. 이놈아. 너는 밖에서 굶고 돌아댕기는 거여? 왜 이렇게 살이 또 내려왔어. 안 되겠다. 주방에 김포댁한테 닭이라도 잡자고 해야지.”
김 여사는 강산을 아들 정석으로 여기고 살뜰히 챙겼다.
“엄니, 서울에 맛난 게 얼마나 많은데요. 잘 먹고 댕겨요. 내 걱정은 하지 마요.”
강산은 살이 빠진 것 같다며 걱정을 하는 김 여사의 두 손을 잡고 안심시켰다.
“나는 내려올 때마다 적응이 안 돼. 강산 저 녀석이 저런다는 게.”
수완은 강산과 김 여사의 모습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었지만, 강산의 연극 아닌 연극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는 한의사 되려면 멀었다. 환자 마음을 읽어야지.”
“너는 그러면 어르신이 너한테 저러면 다 받아드릴 수 있어?”
“음…… 뭐. 최선을 다해야지.”
정우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카니발에 실린 짐을 내려 자리를 피했다.
동기들이 봐도 강산의 행동은 대단해 보였다.
“으아, 이번 한 주 마무리도 시작해 볼까.”
어느새 수완은 정신없는 서울에서의 한 주를 마무리하고 홍천으로 내려온 주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산골에 있어서 이틀을 어찌 보내나 걱정스러웠지만, 정 많은 요양원 어르신들과 직원들. 그리고 공기 좋은 환경까지 이곳이 한 주를 힐링으로 마무리하는 데 제격이었다.
“이번 주는 3층 어르신들부터 뵙도록 하죠.”
3층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계셨다.
진료를 보는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거동이 가능해서 진료를 보고 있는 진료실까지 내려오셔서 진료를 봐왔었다.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은 진료실로 오는 어르신들의 진료를 다 보고 난 이후에야 잠깐씩 진료를 볼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진료를 보는 시간이 촉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아쉬워하던 진 주임과 강산은 이번 주에는 3층부터 진료를 시작하기로 했다.
매번 진료를 짧게 보느라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었던 어르신들을 위한 방안이었다.
“아시다시피 3층 어르신들은 중증 치매라 거동은 물론 의사소통도 어려우신 경우가 대다수에요. 아마 선생님들이 더욱 신경을 써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진 주임은 오늘 고생을 할 세 명의 한의사에게 잘 부탁드린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한테는 환자를 읽는 한의사가 있지 않습니까.”
수완은 재마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의 채널명을 이야기했다.
“이 원장님 너튜브는 저도 잘 보고 있습니다. 반응이 좋던걸요.”
“진 주임님께 칭찬받으니 조금 부끄럽네요.”
“오늘도 잘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자 그럼. 오늘도 최선을 다해서 어르신들 잘 모시고 갑시다.”
강산의 구호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3층 병실 안쪽으로 들어섰다.
Vlog 촬영을 담당하는 강산은 세 한의사 뒤에서 진료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촬영을 하기로 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오늘 진료 봐드릴 이재마라고 합니다.”
의사소통과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지만 재마는 예의를 다해 본인을 소개하고 어르신의 손목을 짚었다.
의사소통은 힘들다고 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오래간만에 방문한 낯선 이를 향해 빙긋 웃는 어르신이었다.
“어르신, 제 눈 좀 봐주시겠어요? 네. 좋습니다.”
재마는 동공을 확인하기 위해 어르신과 눈을 마주쳤다.
“저는 이 원장님이 환자들 눈을 꼭 마주치며 진료를 보시는 게 참 마음에 와닿더라고요.”
병실 문 안쪽에서 진료를 시작한 한의사들을 지켜보던 은정은 진 주임에게 목소리를 낮춰 말을 했다.
“왜, 진짜 환자를 읽는 모습이라?”
“아뇨.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하시는 어르신들이어도 소통하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잖아요. 저기 봐요. 대화는 전혀 안 되는 지순정 어르신 표정 봐요. 소통이라도 되는 것처럼 환하게 웃으시잖아요.”
중증 치매에 다다르면 의사소통이 힘들어 다소 거칠 때도 있었다.
몸은 노쇠한 어른의 몸이었지만, 어린아이로 퇴화한 정신은 떼를 쓰는 어린 아기와도 같았다.
매일 그들과 마주하는 복지사들도 힘들어하는 3층 어르신들이었는데, 진심으로 다가온 재마의 모습에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진료에 응하고 있었다.
은정의 말을 들으니 정말 재마에게 무슨 능력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진 주임이었다.
“진 주임님, 잠시만요.”
진료를 보던 재마는 병실 문 앞에 서 있던 정준을 불렀다.
“네. 원장님.”
“지순정 어르신 검진 날짜가 어떻게 되죠?”
“아, 지순정 어르신 검진 날짜가…….”
정준은 태블릿 PC를 꺼내 일정을 확인했다.
어르신들의 건강검진은 각자 스케줄이 달랐다.
보통 보호자들이 시내나 다른 지역까지 이동해 규모가 큰 병원으로 이동을 해 검진을 하고는 했다.
“지난달에 검진을 한 번 다녀오셨는데, 문제라도 있습니까?”
정준은 검진 일정을 묻는 재마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검진을 마치고 결과까지 통보를 받았던 지순정 어르신에게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병원에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나요?”
“네. 기존에 당뇨 증세가 있으셔서 식단 관리를 더 신경 써달라는 것 말고는 없었습니다.”
“그렇습니까?”
재마는 탐탁지 않은 얼굴로 턱을 매만지며 자신을 바라보며 빙긋 웃는 지순정 어르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의사소통이 힘들어 본인이 어디가 아픈지 표현을 못 하시는 분이시기에 마음이 더욱 쓰였다.
“혹시 지순정 어르신 식사 이후 특이 반응을 보이시거나 하지는 않으신가요?”
“아무래도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은 유동식 중심으로 드십니다. 활동량이 거의 없으시니 소화가 편해야 하니까요.”
“소화는 잘하시나요?”
진 주임은 최선을 다해서 어르신에 대한 정보를 재마에게 제공했다.
“3층에 계시는 어르신들은 유동식으로 드려도 소화를 제대로 못 하고 힘들어하시는 경우가 다소 있으십니다.”
“음…….”
재마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지순정 환자의 명치에 꽉 막혀 보이는 검붉은 섬광이 신경이 쓰였다.
[이름 : 지 순정]
나이 : 89세
2형 당뇨, 중증 허증 치매.
담낭 음성 용종.
그리고 그의 눈에 비치는 환자의 정보가 재마의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다.
통증이 심한 담낭암이 진행 중이라면 표현을 하지 못할 뿐 그 통증이 엄청 날 수도 있었다.
지금은 낯선 재마에게 방긋이 웃고 계시지만 음식물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기만 해도 찢어질 듯한 통증에 괴로워하실 터였다.
“어르신들 식사 시간이 어떻게 되죠?”
“3층 어르신들은 11시 반에 점심을 드시고 3시 반 정도에 간식 드십니다.”
“그럼 간식 드실 때, 제가 다시 한번 지순정 어르신 진료 봐도 되겠습니까?”
지순정 어르신 상태를 크게 신경 쓰고 있는 재마의 모습에 진 주임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