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51화
“안녕하세요. 물리치료사로 명의 한의원에 오게 된 이효주입니다.”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선생님!”
효주가 명의 한의원에 도착해 환복을 하고, 직원 회의시간에 맞춰 들어와 인사했다. 그러자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이 모두 그녀를 환영했다.
첫 직장은 아니었지만, 효주는 왠지 모르게 긴장을 한 탓에 인사를 하며 미소를 짓는 입꼬리가 떨렸다.
“이쪽은 저희 명의 한의원 내부 사정을 제일 잘 아시는 정 실장님. 근무하시며 문제 있으시면 정 실장님께 여쭤보면 될 겁니다.”
“반가워요. 이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재마가 직원 한 명씩 소개를 이어나갔고, 효주는 소개를 받으며 인사를 이어갔다.
정한 한방병원 홍보팀장이자, 대표 원장의 조카인 박연아의 제안으로 명의 한의원으로 이직을 한 첫날이었다.
솔직히 명의 한의원에 오기까지 자신의 선택이 맞는 지 몇 번이고 자신에게 의문을 던졌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명의 한의원으로 옮기며 박연아는 자신을 위해 아주 조금만 신경을 써주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신경이 조금이 될지 큰일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명의 한의원의 원장을 비롯해 직원들의 첫인상이 좋았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물리치료사 선생님을 모신 적이 없어서 저희 한의원에서 맡으실 업무가 막중하십니다.”
명의 한의원 구석구석 소개를 해주겠다고 나선 최 실장은 효주에게 농담을 건넸다.
“정말요?”
“정한 한방병원에 계셨다고요?”
최 실장의 질문에 효주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누군가의 계략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입사 첫날부터 알아챈 걸까 하는 난감함이었다.
자신의 어색한 웃음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이상해 보일 수도 있었다.
“네. 혹시 문제라도 있나요?”
“어휴. 문제라뇨. 그렇게 큰 병원에서 오셨으니 저희 한의원은 규모가 작아 이 선생님의 실력을 펼치시는 데 답답함이 있지는 않으실까 하는 걱정 때문에 여쭸습니다. 그럴 때는 정 실장님이나 제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치료하시는 데는 불편함이 없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아…….”
나이가 젊은 원장과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고 경력이 많은 직원들이 함께하는 것이 조금 의아했는데 나름대로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며 함께하는 모습이었다.
“큰 병원이 좋기는 하죠?”
최 실장은 효주만 들리도록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뭐 그렇기는 하지만…….”
“큰 병원에서 작은 병원으로 오셔서 답답함이나 아쉬움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명의 한의원도 나름 매력이 가득 찬 곳입니다. 원장님도 좋으시고요. 환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으시지만 직원들도 불만이 없어요. 적응하시는 데 문제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시고요.”
“감사합니다.”
덩치는 해인동 시장 골목에서 가장 클 것 같은 최 실장이었지만 첫 출근을 한 효주가 적응을 할 수 있도록 신경 써주는 모습에 고마울 따름이었다.
진료가 시작되기 전, 혼자 명의 한의원을 둘러보겠다고 발걸음을 떼던 효주가 눈을 번쩍 뜨게 되었다.
“원장님. 도와 드릴까요?”
탕제실 문이 열려 있고 문 안쪽으로 보이는 광경은 한약 박스들을 죽 늘어놓은 재마가 일일이 확인을 하는 모습이었다.
보통 정한 한방병원에서는 실습을 나온 간호사들이나 알바생들이 하는 일이었는데 원장인 재마가 나서서 일을 하고 있다니, 효주가 그 옆으로 가 허리를 굽혀 앉았다.
첫 출근을 한 직원이 눈치껏 나서서 일하겠다는 뜻이었다.
“아닙니다. 이 선생님. 탕약은 제가 맡아서 하고 있어서요.”
“네? 다른 직원분들이 하셔도 될 것 같은데…….”
“탕약 재료부터 탕약기에 넣는 것까지 제가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아 물론 송장이랑 나머지 포장은 정 실장님이 해주실 거고요. 제가 하는 일은 출근해서 이렇게 포장 상자에 넣는 것까지요. 종종 불량으로 나오거나, 탕약이 바뀌는 경우도 있어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있어요.”
효주가 나서서 돕겠다는데도 한사코 거절을 하는 이 원장, 이재마였다.
명의 한의원은 각자 맡은 일만 잘하면 된다고 하더니 탕약까지도 원장인 재마가 맡아서 하고 있었다.
“곧 진료 시작하면 물리치료 환자들도 꽤 오실 겁니다. 선생님이 오시기를 기다렸던 환자분들이 꽤 계시거든요.”
“아, 정말요?”
“아주 바쁜 하루가 되실 수도 있으니 선생님은 가셔서 쉬고 계세요.”
재마는 명의 한의원으로 첫 출근을 한 효주가 부담스럽지 않도록 배려했다.
“후, 오늘 도대체 얼마나 환자가 많이 온다고 다들 그러는 거지.”
효주는 기지개를 켜며 목과 팔을 풀어가며 명의 한의원에서의 첫 진료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 * *
“후, 이게 맞는다고 보는 거야? 연아야?”
“맞지 않으면, 하기 싫다는 거야?”
“근데 이거 너무 티 나는 것 같잖아. 꼭 의식한 것 같고.”
새로운 영상의 콘티를 확인한 최중기는 영 맘에 들지 않는지 콘티를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맘 같아서는 때려 치우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상대는 그의 약혼녀인 박연아였다.
그뿐 아니라 그가 근무하고 있는 정한 한방병원 대표 원장의 조카이니 그녀의 말을 다 들을 수밖에 없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 데, 고작 너튜브 영상 찍는 것이 탐탁지 않다고 직장을 떠나는 것은 물론 약혼녀와의 관계까지 흔들릴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오빠는 이재마가 너튜브에서 인기 급상승 영상에 올랐는데 약 오르지도 않아?”
“뭐?”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한다고 수군거리는 게 중요해? 더 잘 서포트해 주는 데서 더 나은 컨텐츠를 만들면 그만인 거지.”
요즘 연아가 왜 예민했는지, 기획되었던 것들까지 뒤집어가며 난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중기는 그제야 그녀의 마음을 알아챘다.
너튜브 영상에 모든 책임을 맡고 있는 연아의 초점은 인기 급상승 영상에 줄지어 올리고 있는 ‘환자를 읽는 한의사’ 채널 이재마에게 꽂혀 있는 상황이었다.
“오빠 지금 입은 수트, 심지어 구두까지 왜 내가 죄다 명품으로 발라놨는지 몰라?”
중기는 자신의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가며 묻는 연아의 눈을 바라봤다.
“실력이 안 되면 다른 것에서라도 튀어야 할 것 아니야. 이렇게까지 서포트해 주는 데 못 따라오는 거야?”
“연아야…….”
“오빠가 결정해. 할 거야, 말 거야?”
연아와 소개팅으로 만난 중기는 연아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과 동기이자 6년 내내 수석을 놓친 적이 없었던 이재마의 전 여자친구 박연아. 중기도 그녀를 소개 받는 자리가 마냥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헤어진 지도 얼마 안 된 거로 알았는데 소개팅을 나온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꼭 한번 만나보라는 고향 친구의 말에 소개팅을 나선 그였다.
하지만 약속장소에 나타난 연아의 첫 모습을 보고는 그런 찝찝한 마음은 저 멀리 접어두자고 마음먹었다.
어디 가서 구경하기도 쉽지 않은 눈부신 외모에 정한 한방병원이라는 배경까지, 어떻게 해서든 연아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싶었던 중기였다.
다른 사람들이 무어라 한다면 자신은 이런 연아를 놓친 재마를 어리석은 녀석으로 몰아갈 생각이었다.
그런 다짐을 하며 시작한 연아와의 연애, 그녀와 만남을 이어오며 종종 눈살을 찌푸릴 일도 있기는 했지만, 자신이 굽히고 넘어가면 되는 일들이었다.
그 결과 연아와 급속도로 약혼을 했고, 정한 한방병원에 입사하기에는 부족했던 중기의 실력이었지만 정한 한방병원에도 입사 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이제는 정한 한방병원의 너튜브를 맡아 출연하며 정한 한방병원의 얼굴이라는 타이틀까지 생긴 그였다.
이제 와서 모든 것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할게…….”
지금처럼 그녀가 원하는 대로 따라만 준다면 해결될 일들이었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기가 대답을 했지만, 원하는 대답을 들은 것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연아는 중기의 양 볼을 감싸며 말을 이어갔다.
“오빠, 작은 아빠도 너튜브에 관심이 많으시다고. 특히나 요즘에는 다른 채널에 관심도 두시는 것 같은데 오빠가 두각을 나타내야 하지 않겠어?”
중기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아이고 이제 좀 살겄다.”
추나를 받고 물리치료까지 25분 받고 나온 순영은 허리를 쭉 폈다.
“엄마, 나오셨어요?”
“응. 기다리느라 수고 많았어. 이제 가자.”
“엄마 소원이었는 데, 뭐. 내가 와 줘야지. 어때. 40분 버스 타고 올 만해?”
“올 만해, 올 만해. 물리치료 선생님이 새로 오셨다는데, 기대 안 했던 물리치료까지 받고 나니 허리가 깃털 같어.”
“다행이네.”
정 실장은 노모와 노모를 부축하는 중년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는 눈인사를 건넸다.
“치료 잘 받으셨어요?”
“네. 아주 잘 받았어요.”
“멀리서 오셨나 봐요.”
신규 환자들 중 멀리서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 환자들이 한 번 진료를 받고 또 찾아올까 싶었지만 의외로 70프로 이상은 다시 명의 한의원을 찾았다.
30분 이상 걸려서 명의 한의원까지 온다는 한 환자는 주 3회 출근 도장을 꼬박꼬박 찍을 정도였다.
“네. 40분 버스 타고 왔어요. 버스 한 번 갈아타고요.”
“아이고 고생하셨네요.”
“그러게요. 좀 가까운 병원을 찾았으면 좋으련만, 엄마 친구분이 추천하셨다고 하셔서요.”
“연세 있으신 분들은 추천으로도 많이 오세요.”
정 실장은 딸의 걱정이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젊은 사람들은 너튜브를 통해 찾아오기도 했지만,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을 타고 찾아오는 손님도 꽤 늘었다.
이제는 너튜브를 통해 반짝 늘었던 환자 수는 조금 안정적으로 줄어들었다.
“엄마 이쪽으로 또 오실 거야?”
“너도 아까 원장님 진료 볼 때 봤잖아. 완전 족집게신 거. 내 몸을 싹 읽기라도 하듯이 아픈 데 콕콕 짚어주시는 거 못 봤어?”
“그렇긴 한데, 엄마가 오는 게 힘드실까 봐 그렇지.”
딸은 순영이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귀에 딱지가 지도록 어머니의 성치 않은 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는 데, 그런 부분을 콕콕 짚을 때는 순영의 딸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괜찮햐. 지금 허리가 깃털 같다니까.”
“어르신, 그래도 너무 무리해서 오시지는 마세요. 댁 근처에도 괜찮은 원장님들 많으실 거예요.”
“엄마가 원하면 어쩔 수 없지. 송 서방이랑 이야기해 볼게. 병원 오는 날은 모시고 올 수 있을지.”
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머니를 대신해서 결제를 하고 정 실장에게 인사를 한 순영과 그녀의 딸은 팔짱을 끼고 나란히 명의 한의원을 나섰다.
“근데 엄마, 진짜 허리 아픈 거 많이 나았나 봐. 아까는 계단에서 여기 걸을 때도 한참 걸렸는데, 지금은 별로 안 힘들어하시네?”
“그럼 내가 괜히 좋다고 혀? 좋으니까 좋다고 하지.”
두 모녀는 명의 한의원의 명의를 만났다며 미소를 지으며 한의원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