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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50화 (50/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50화

“구독자들 중에 후원 계좌 묻는 문의가 이번 주에만 서너 번이었어.”

“후원을 받는 건 말도 되지 않아.”

명의 한의원 원장인 재마와 그의 너튜브 채널 ‘환자를 읽는 한의사’ 강산은 생각지도 못한 고민에 빠졌다.

재마와 그의 동기들이 뜻을 모아 정기적으로 홍천에 있는 꿈속 요양원에 봉사를 다니는 Vlog를 올리자, 이제는 후원 계좌를 원하는 구독자들이 생겼다.

그만큼 관심을 받고 있다는 뜻이겠지만, 생각하지 못한 상황에 강산은 물론 재마까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처음부터 너튜브를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개설을 한 게 아니니까, 더구나 우리 영상을 보고 후원 계좌를 여는 건 취지에 맞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재마가 너튜브 첫 시작 취지와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자 강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

진료실 노크 소리가 들리고 명의 한의원에 뉴페이스 진실이 들어왔다.

“원장님, 마감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한 달 정도 수습 기간을 거쳐 명의 한의원에 근무할지 결정을 하기로 한 진실의 안색이 썩 좋지 않았다.

마감을 끝났다는 이야기 말고도 할 말이 또 있는지, 선뜻 문을 닫지 못하는 눈치였다.

“윤 선생님, 하실 말씀이라도…….”

“원장님, 솔직히 처치실에 손이 너무 모자라서요…….”

진실은 근무한 지 고작 2주밖에 되지 않는 자신이 환자가 많다는 이유로 힘들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입을 여는 이 순간에도 20년 가까이 명의 한의원에서 근무하셨다는 정 실장님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정 실장님도 가만히 계시는데 자신이 괜히 나서는 것인가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렇죠. 환자들이 좀 많기는 하죠.”

재마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너튜브를 하면서 늘어난 환자들, 특히나 한의원의 특성상 환자들이 한의원 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환자들을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재마만 해도 현재 상황이 슬슬 벅차오는 상황이었다.

“물리치료사 선생님 공고를 올려놨으니까요. 며칠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물리치료사 선생님 오신 이후에도 일손이 모자라면 그때 선생님 한 분 더 모시죠.”

“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실은 자신이 어렵게 꺼낸 이야기를 그냥 넘기지 않고, 들어주는 재마의 모습에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진료실을 나섰다.

“환자가 많아도 문제구나.”

“요즘 돈쭐인지 뭔지 내주신다고 환자분들이 많잖아.”

“탕약 환자도 늘었다며.”

“어? 어. 맞다. 나 탕약 올려야 해. 따라와.”

대형 한방병원이나 입원이 가능한 한방병원에서는 아무래도 교통사고나 척추질환 치료를 위해 입원 치료를 권하는 경우가 많았다.

입원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보험에서 가능한 만큼 한약을 많이 조제할 수 있었는데, 그런 상황은 대형 한방병원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동네 한의원에서는 한약을 지으러 오는 환자는 드물었다.

한약까지 이어지려면 아무래도 환자와 한의사의 신뢰도가 오르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환자와의 신뢰도를 쌓아라]

라는 미션을 받은 지 2주가 넘어가지만 아직까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재마였다.

재마가 명의 한의원에서 근무한 지, 4개월이 넘어가면서 어느 정도 단골 환자들도 생겼고 해인동에서 오랜 명맥을 이어가는 한의원이라는 평가에 누를 끼치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신규 환자가 늘어나면서 기존 환자들과 대화를 할 여유조차 없는 상황이라 그런지 미션을 쉽게 통과할 수 없었다.

어쩌면 새로 온 직원인 진실이 환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감당을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강산. 너 이번 시험 어떡할 거야?”

“어떡하긴. 안 보는 거지.”

“정말?”

탕약실에 와서 오늘 올려야 할 탕약 약재들을 각자 맡아서 바구니에 담는 사이 강산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래도 공부한 게 아깝잖아.”

“요즘 재미있는 거 찾았잖아.”

강산이 현재 상황에 만족한다면 어쩔 수 없었지만 믿을 만한 한의사를 고르는 것도 쉽지 않다. 재마는 내심 강산이 면허시험을 잘 치러주길 바라고 있는지도 몰랐다.

“너. 꼰대 같은 소리 하지 마.”

“꼰대?”

“시간이 아깝다는 둥. 공부한 게 아깝다는 둥.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 들먹이면서……. 그런 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지게 들었어.”

“그래. 뭐, 네가 그렇다는데 어쩔 수 없지.”

아무리 아쉽다 한들 친구에게 강요를 할 수는 없었다.

그의 인생이고, 그의 미래였다.

“우리 한의원 물리치료사 선생님뿐 아니라 한의사도 한 명 더 뽑아야 할 것 같은데…….”

“뭐야. 그 정도야? 성공했네.”

강산은 한의사를 더 뽑아야 한다는 말에 강산은 피식 웃으며 재마의 어깨를 툭 쳤다.

“근데 여기 개발은 언제 되는 거야? 환자도 늘고 직원도 늘게 되면 좀 좁지 않나?”

강산은 처음 명의 한의원을 보았을 때, 해인동이 개발 예정지라는 것 외에는 호의를 가질 수 없었다. 그동안 명의 한의원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지만, 언젠가 개발될 것이라는 희망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또 뭐. 내가 모르는 게 있어?”

“시청에서 나왔더라.”

“시청? 왜. 주민 신고 많이 들어온대? 환자들이 밖에 쭉 줄지어 서 있어서? 야, 아무래도 나도 그 생각은 했어. 인터넷으로 예약을 받아야 하나.”

명의 한의원 직원도 아니면서 제 일처럼 고민을 하는 강산은 시청이라는 말에 주민 신고에 대한 대책을 진심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건 아니고. 문화재과에서 나왔었어. 명의 한의원을 문화재로 지정하도록 서류 올려보겠다고.”

“오, 그거 좋은 소식 아니야?”

어두운 표정이었던 강산은 반색을 했다.

“야, 그럼 이 건물에서 쭉 진료 봐야 하는 거야? 개발돼도 여기는 개발지에서 제외되고?”

기대에 가득 찼던 강산의 얼굴이 금세 김이 푹 빠진 얼굴로 변했다.

* * *

3일 전, 명의 한의원 물리치료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문을 꼼꼼히 확인한 효주는 고민 끝에 자신의 이력서를 보냈다.

구인구직을 하는 사이트에 명의 한의원에 대한 질문이 많이 올라오는 걸 봐서는 자신 말고도 많은 지원자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왜 하필 자신이 선택됐는지 알 수 없었다.

오늘 점심시간에 명의 한의원에서 걸려온 합격 전화를 받은 효주는 좋아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당장 내일부터 근무를 할 수 있냐는 물음에 얼떨결에 그러겠다고 대답을 한 효주는 사직서를 급하게 낼 수밖에 없었다.

-이효주. 너 갑자기 사직서를 왜 내.

-그러게. 무슨 일 있어? 우리한테는 말도 안 하고.

효주는 단톡방에 벌써 자신의 사직서 이야기가 나온 것에 얼굴이 어두웠다.

정한 한방병원 물리치료과 동기는 총 6명이었는 데 첫 입사부터 6년째 끈끈하게 서로 의지하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무 일 없는 것 같았던 효주가 말수가 적어지더니 갑자기 사직서를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사실을 동기들은 청천벽력 같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정이 좀 생겨서…….

-본가에 무슨 일 있어?

-아니면 어디 아픈 거야? 몸 안 좋은 것 같다더니 많이 안 좋아?

다른 사람들의 몸을 살피는 직업이라 몸이 재산인 그녀들이었지만, 자신의 몸은 챙기기 힘들어 서로 신경을 써줄 수밖에 없었다.

동기들이 명의 한의원까지 가서 치료를 받았던 것을 기억을 해주는 모양이었다.

-너 이상해. 명의 한의원으로 치료 다녀온 이후로 말수도 적어지고, 톡에 답장도 안 하고.

갑자기 병원을 그만둔다는 소식에 제 일처럼 걱정을 해주는 동기들의 반응에 솔직하게 말을 하지 못하는 효주는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만날 수 있겠지.

효주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단톡방을 나왔다.

동기들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단톡방에 더 있다가는 며칠 동안 혼자 속앓이하며 고민했던 것을 동기들에게 털어놓고 싶어질 것 같았다.

정한 한방병원에서 근무하며 걱정거리가 생기면 동기들에게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었다.

효주는 홍보팀 문 앞에 서서 한숨을 내쉬었다.

사직서를 내는 순간에도 홍보팀에 도착한 순간에도 자신의 결정이 맞는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똑똑.

노크를 한 효주는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 이효주 씨. 왔어요?”

효주가 고개를 내밀자, 모니터를 보고 있던 연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짓했다.

안으로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결정은 했고?”

결정을 했냐는 연아의 목소리가 효주의 귓가에 울렸지만,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응?”

“네.”

“응. 나도 효주 씨 사직서 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잘 결정했어요. 뭐 정한 한방병원보다는 한참 못하겠지만, 다른 곳에서 일해도 이쪽 병원 복지는 내가 챙겨줄 거고. 나중에 복귀도 장담해 줄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

효주는 대답은 했지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였다.

“제가 그쪽 한의원으로 가서 할 일은 무엇일까요?”

효주는 내키지 않는 결정이었지만, 방법이 없다는 걸 잘 알았다.

“응. 별거는 없어. 그냥 거기에서 근무하면서 이재마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만 잘 보고 나한테 보고해 주면 돼.”

“네?”

“아, 이재마는 거기 원장. 이제 막 면허에 잉크도 안 마른 풋내기라 어떨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튀어보려고 이것저것 많이 하는 것 같으니까 그런 거 보면서 사소한 거라도 특이한 부분 있으면 말해주고.”

“네…….”

효주는 자신은 없었지만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사직서 냈으면 언제부터 출근이지?”

“내일부터요.”

“오, 바로 출근하는구나. 잘됐네. 그래도 첫 출근인데 내가 줄 건 이것밖에 없네.”

미리 준비해 둔 것인지 효주는 서랍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팀장님,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이제 한배를 탔는데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도와줘야지. 물리치료사 월급이 얼마나 되겠어. 이걸로 새 옷이라도 사 입어. 부담 갖지 말고.”

효주를 퍽이나 신경 쓰고 있다는 듯 연아는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에 흰 봉투를 억지로 쥐어 들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니까. 앞으로 잘 부탁해.”

“네.”

정말 어렵지 않을 일일지, 앞으로 일이 어떻게 풀릴지 알 수 없었지만 힘이 없는 효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가봐. 앞으로 수고하고.”

“네.”

효주는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밖으로 나왔다.

“물리치료사 자격증 하나 있는 거로 엄청 재고 있네. 진짜.”

효주가 다녀간 문을 바라보며 연아는 입술을 삐죽이며 전화를 손에 들었다.

“이 대리. 내가 봉사 나갈 만한 요양원 알아보라는 거 어떻게 됐어? 어. 그래. 산속 깊이 있고 사람도 별로 잘 찾아오지도 않는 요양원 말이야.”

팀장인 박연아가 오더를 내린 요양원을 몇 군데 찾아 목록을 작성한 이 대리는 연락이 가능했던 요양원의 목록을 읊었다.

연아는 자신의 성에 차는 요양원을 찾지 못하는 이 대리에게 짜증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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