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46화
“와, 이게 한의원 진료 보려고 선 줄이에요?”
“네.”
강지영은 자신의 관할인 해인동에 명의 한의원이라는 오래된 한의원이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처음 눈으로 확인했다.
서울이라는 도심 속에서 그곳만큼은 조선 시대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담장을 따라 줄을 쭉 서 있는 사람들을 보니 요즘 핫플은 핫플인가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시청에서 나왔는데요.”
“아이고. 네네. 어서 오세요. 시청에서는 무슨 일로?”
“아, 문화재 관리하는 부서예요.”
지영은 명의 한의원 안으로 들어가기 전 먼저 주변에 있는 상권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과일 가게로 들어섰다.
명의 한의원을 조사 나오기 전, 다른 직원에게 해인동 시장에 가면 과일 가게가 오랫동안 사장이 바뀌지 않고 운영된 곳이니 들어가서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팁 아닌 팁을 들은 탓이었다.
지영은 자신의 명함을 꺼내 사장에게 건넸다.
“문화재요?”
윤 사장은 해인동 시장 골목과는 상관이 없는 부서에서 나왔다는 생각에 허리를 펴며 명함을 받고도 의아한지 고개를 갸웃했다.
“문화재 관리 부서에 있으면서도 해인동에 이렇게 오래된 고택이 있는지 몰랐거든요.”
“아, 한의원 때문에 나오셨군요.”
“네. 아무래도 개인 의료사업을 하는 곳이라 시청에서도 관리를 하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아무래도 이쪽은 시장이고, 한의원도 개인의료사업이다 보니 그럴 수 있겠네요.”
윤 사장은 지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동네에서 장사를 오래 하셨다고요?”
“어언 20년은 넘었죠.”
“아, 혹시 한의원 원장님은 어떤 분이세요?”
지영은 아직 들어가 보지 않은 미지의 구역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 찬 얼굴이었다.
너튜브로 명의 한의원에 대해 둘러보기는 했지만, 그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의 지영은 먼저 과일 가게 사장에게 재마에 대해 물었다.
“한의원 원장님이요?”
“네.”
“젊고 대단한 분이시죠. 솔직히 말하면 좋게 봐야 이제 문화재 관리과에서도 나오시고 하는 거지. 지금까지는 그냥 동네에 있는 오래된 한의원일 뿐이었거든요. 젊은 사람이 그런 거 좋아합니까? 의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죠.”
“그렇죠.”
지영은 과일 가게 사장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솔직히 너튜브를 보며 명의 한의원의 원장이 젊은 원장이라는 것에 깜짝 놀랐다.
당연히 내레이션을 담당하고 있는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 원장님일 것이라 추측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문화재 관리과에서 나오시면 한의원은 개발 지역에서 제외되는 겁니까?”
“아뇨.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고. 저희 쪽에서 문화재 지정을 하려면 절차와 조건들이 꽤 까다롭거든요.”
“아직 확정은 아니군요.”
“네. 그래도 시장 상인분이라면 이왕이면 같이 개발되기를 바라실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요?”
문화재로 지정이 되려면 까다로운 절차와 그 이후 관리 또한 까다롭기 때문에 주변 상인들의 반발도 예상한 터였다.
더구나 개발을 앞둔 지역에서는 이왕이면 다른 사건을 만들지 않고, 깔끔하게 개발을 진행하기를 바라는 편이었다.
개발 계획에 분명히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여 명의 한의원이 문화재로 지정이 되는데 가장 변수는 아무래도 주변 주민들과 상인들의 의견 충돌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해인동에서 문화재가 나오면 저희야 자랑스럽죠. 보통 일입니까?”
시청 직원들의 예상과 달리 과일 가게 사장은 반색을 하며 반겼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더 잘 부탁드려야죠.”
자신의 일도 아닌데 잘 부탁드린다며 허리를 깊숙이 숙이는 과일 가게 사장의 모습에 지영도 절로 고개를 숙였다.
* * *
“할매. 여기 앉아요. 여기 여기.”
“어르신 오래 기다리셨나 보네요.”
밖에서 한참을 서서 기다린 어르신을 부축하며 들어 온 강태천은 명의 한의원 대기실인 평상에 어르신의 자리를 마련했다.
환자들을 관리하고 있던 정 실장은 한달음에 다가와 어르신의 상태를 살폈다.
환자 수가 늘어서 처치실 1, 2에 각각 새로운 담당 직원을 채용했지만, 그래도 일손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더구나 많은 환자들을 대기시키고 수용하기에는 명의 한의원은 역부족인 상태였다.
정 실장은 안타까운 얼굴로 환자의 오른팔에 혈압측정기를 씌우고 혈압부터 측정했다.
고령의 노인분이 밖에서 오래 계셨다면 분명 힘드신 상태일 것이었다.
“슨생님. 지난번보다 환자들이 더 늘었네요.”
“네. 그렇게 되었어요. 지난번에 오셨던 분이시죠?”
태천의 경상도 사투리에 단박에 그가 지난번에 찾아왔던 손님이라는 것을 알아챈 정 실장이었다.
“아이고. 알아보시네요. 맞습니다. 맞아요.”
“지난번에 지방에서 올라오셨던 것 같은데…….”
“네. 오늘은 멀어도 엄니 모시고 왔습니다.”
노모를 모시고 먼 길을 온 것이 뿌듯한지 태천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묻어 있었다.
“혈압은 다행히 정상범위시네요.”
“다행입니다.”
“어르신 혹시 불편하신 데 있으세요?”
정 실장은 어르신과 눈을 마주치고 혹여 불편한 곳이 있는지 물었다.
“우리 엄니,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셔요.”
“아…….”
친절한 정 실장의 물음에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어디가 아프면 아프다. 불편하면 불편하다. 말이라도 속 시원하게 해줬으면 좋겠구만. 그게 아니라서요.”
“아, 힘드시겠어요.”
지방에서 서울까지 진료 한번을 보기 위해 올라왔다는 태천의 말에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어르신이 불편함이 있으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해하게 된 정 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순서 되시면 아드님 통해서 불러드릴게요.”
태천은 자신의 어머니가 듣지도 못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정 실장은 눈을 마주치고 또박또박 이야기를 했다.
태천의 어머니는 정 실장의 말을 알아들은 건지 또 한 번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한 시간 넘게 대기를 했던 태천과 노모의 진료 순서가 되었다.
태천은 어머니의 이름이 불리자, 자리에서 부축을 해서 진료실로 들어갔다.
정 실장은 진료실로 먼저 가, 원장인 재마에게 다음 환자를 안내했다.
“원장님. 이간난 환자 오셨습니다.”
“네.”
밀려드는 환자 수에 정신이 없는 재마는 눈과 눈 사이를 꾹꾹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님. 안녕하셨죠?”
“아, 네. 강…… 태천 환자분 맞으시죠?”
단 한 번 왔던 환자였지만, 환자 수가 늘어도 환자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는 재마는 그를 알아봤다.
“한번 왔는데도 여기 선생님들은 다 기억하시네요.”
태천은 정 실장처럼 재마도 자신을 알아보는 모습에 기분이 좋은지 허허 웃었다.
“엄니, 이것 보라니까 서울 선생님들이 참 좋아.”
“어머니와 함께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어르신. 명의 한의원 원장을 맡고 있는 이재마라고 합니다.”
재마는 태천이 부축을 하고, 의자에 앉은 그의 노모에게 자신을 정식으로 소개했다.
“어디가 불편하셔서 오셨어요?”
재마는 밖에서 정 실장이 물었던 것처럼 간난에게 지금의 몸 상태를 물었다.
자신에게 환자를 읽는 재능이 있지만, 매번 환자를 진료하는 가장 첫 번째 단계였고 당연한 질문이라 생각했다.
“우리 엄니가 말을 못 하셔요. 그래서 다른 병원을 가도 항상 어려움이 있는 데…… 원장님은 진짜 환자를 읽는 것처럼 쏙쏙 알아내시길래. 거리가 멀어도 왔습니다.”
태천은 자신이 큰마음을 먹고 왔다는 듯, 재마에게 기대를 걸었다.
“아, 물론…….”
재마는 자신의 채널명인 ‘환자를 읽는 한의사’라는 타이틀을 보고 찾아왔던 환자, 강태천을 바라봤다.
환자를 읽을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을 그에게 다 보여줄 수는 없지만, 다른 의사들과 다르게 자신의 어머니의 상태를 이왕이면 정확히 알고 싶은 그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한마디에 그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아이고. 부담 갖지는 마셔요. 환자를 읽는 것처럼 진맥을 잘 보신다는 뜻이겠죠. 그쵸? 엄니? 엄니도 그 정도는 알고 왔지?”
자신이 부담을 주는 것일까, 태천은 말을 급히 바꿨다.
그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간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일단 진맥을 짚어보겠습니다.”
재마는 지금까지도 자신의 능력을 잘 활용해서 환자들의 상태를 읽었다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오늘 자신을 찾아온 이간난 환자나 환자의 보호자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 아닌가 싶었다.
‘내 능력을 믿어보자.’
지금까지 재마에게 큰 도움을 준 능력에게 더 큰 기대를 품은 재마가 간난의 눈을 마주했다.
[동공을 인식합니다.]
‘제발.’
-이름 : 이간난
나이 : 77세
자가면역질환 류마티스 관절염, 노화로 인한 비뇨 생식기 위축. 재발성 방광염. 골반 장기 탈출증.
아무래도 연세도 지긋하신 노인분이라 그런지 불편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아들인 태천이 의사소통이 불편한 어머니를 살뜰히 살피는 것처럼 보였지만 불편한 곳이 있으셔도 설명이 잘되지 않으니, 그냥 참고 넘기시는 부분도 분명히 있어 보였다.
재마는 간난의 동공을 읽고, 맥을 짚었던 손을 내려놓았다.
재마가 짚었던 간난의 손은 기존에 재마를 찾아왔던 류마티스 환자인 영원보다는 상태가 심각하지 않았지만, 꽤나 변형이 되어 있었다.
“보호자님.”
“네. 원장님.”
진맥을 짚고 난 뒤 어두운 얼굴의 재마가 태천을 부르자, 태천은 덜컥 겁이 났다.
“환자분께서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고 계시네요. 알고 계셨나요?”
“류마티스 관절염이요?”
“네.”
여기저기 몸이 쑤신다는 표현을 할 때마다 한의원을 모시고 갔지만, 평생 밭일을 하며 5남매를 키워낸 간난이 관절을 과도하게 사용했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만 들었던 그였다.
“네. 류마티스 관절염은 퇴행성 관절염과는 좀 다른데…….”
재마는 차근차근 태천이 이해할 수 있게 류마티스 관절염에 대해 설명해 나가기 시작했다.
“치료 접근 방법부터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야 변형도 늦출 수 있고 통증도 줄일 수 있고요. 아무래도 퇴행성 관절염 치료만 하셨다면 지금까지 통증이 꽤 심하셨을 수도 있었다.”
자신의 부모가 고통 속에서 자식에게 표현도 다 하지 못하고 혼자 참았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자식이 있을까.
태천은 자식에게 말도 못 한 간난의 손을 붙잡으며 어머니에게 말을 했다.
“엄니. 말은 못 해도 연필로 써서라도 말하지 그랬어. 지금까지 병원에서 주는 약으로 나아지지 않는다고. 아프다고. 나는 엄니가 일만 많이 해서 아픈 줄 알았잖아. 그래서 손도 이렇게 변하는 줄 알았고. 일만 그만하라고 했지. 제대로 된 병원을 여태 못 모셔갔네.”
태천은 노모의 손을 붙잡고 이야기를 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고, 자신의 아들이 무슨 말을 하며 눈물을 흘리는지 다 알 수 없는 노모는 당황해했다.
“상태가 심각하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 받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원장님.”
“그리고 지방에서 오셨다니까 제가 소견서도 자세히 써 드리겠습니다. 내려가셔서도 진료 받으실 때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멀리서 찾아온 환자에게 재마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