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43화
└이번 영상에 눈물 쭐쭐 났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울컥.
└원장님 존경합니다. 해인동에 계신 거로 아는 데 지방까지 의료봉사하러 가시네요.
└오늘부터 내 꿈은 한의사 되어 원장님 밑으로 들어가는 거다.
└허준이 환생했다!!!!
두 번째 영상이 올라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첫 영상에 너튜브 구독자 수가 1,000명도 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알람 설정을 해둔 구독자가 많았던 모양이었다.
칭찬을 받으려고 ‘꿈속 요양원’ 영상을 올린 건 아니었지만, 반응이 좋아 재마의 기분마저 좋아졌다.
띠리리링.
늦은 시간에 영상이 올라갔지만, 영상을 확인하자마자 꿈속 요양원 정 주임이 전화를 걸어왔다.
-이 원장님 요양원 영상 아주 잘 봤습니다. 저희 원장님도 업로드 시간에 맞춰서 보셨는데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내일 어르신들 모셔다 영상회 하시겠다고 합니다.
“하하. 좋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많이 협조해 주셔서 좋은 영상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감사하죠. 다음 주에 강산 선생님이랑 동기분들 오신다는 연락 받았습니다.
“제가 가면 좋겠지만 서울에 있는 한의원도 아직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상황이라 제가 매번 갈 수는 없는 상황이네요. 죄송합니다.”
재마는 자신이 시작한 일이니 보름에 한 번 가게 된 의료봉사를 책임지고 진행하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는 뜻을 내비쳤다.
-아이고 아닙니다. 명의 한의원 운영이 먼저지요. 저희가 힘든 부탁을 드렸는데 거절하지 않고 동기분들 뜻을 모아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영상에 저희 요양원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쇼. 이 부분은 제가 확실히 책임지겠습니다.
한 번이라도 요양원 측에서 영상을 제공해 준 것이 감사했는데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도움을 주겠다는 정 주임의 말에 재마는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정 주임의 든든한 지원은 미션을 성공한 후 받은 보상보다도 든든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 * *
“자 여기가 어디인 줄 아십니까? 어제 단 두 개의 영상으로 급상승한 해인동의 명의 한의원을 제가 찾아왔습니다.”
주민들 말고는 외지인의 방문은 없던 해인동이 하루아침에 시끌시끌해졌다.
명의 한의원 대문 앞 계단 중턱에 선 사내는 한의원 전경을 찍으며 혼자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한참을 떠들었다.
카메라로 한참이나 찍는 탓에 한의원 대문을 지나치지도 못하던 갑순은 지금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얼떨떨하기만 할 뿐이었다.
“아니, 이게 뭔 일이래? 아침 댓바람부터?”
과일을 차곡차곡 쌓고 있는 과일가게 윤 사장에게 진갑순은 물었다.
과일가게 건너편에 있는 명의 한의원 앞에서 어떤 사내가 카메라를 들고 무엇인가를 계속 찍는 모양새가 여간 맘에 들지 않는 얼굴이었다.
“아, 지금 저거 몇 번 다시 찍는 거예요.”
“그려? 그럼 나 그냥 들어가도 되는 거야?”
“카메라 내리면 들어가 보세요.”
“그럴까? 이게 다 뭔 일이래.”
처음 보는 광경에 갑순은 구경이라도 난 것처럼 목을 쭉 빼고 낯선 사내를 바라봤다.
번듯하게 생겨서 남의 한의원 앞에서 무슨 할 말이 많은지 알 수 없었다.
찍고 또 찍고 반복을 하는 것이 혼자 쇼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새로 오신 원장님이 너튜브 하신다면서요.”
“너튜브? 난 그런 거 몰러.”
“요즘 노인정에서도 너튜브 많이 보시잖아요. 트로트도 들으시고, 지나간 가요무대도 보시고. 젊은 사람들은 저 사람처럼 혼자 영상을 찍어서 올리는 데 그게 요즘 유행인가 봐요. 많이들 본대요. 요즘 한의원 환자들도 좀 늘었죠?”
“그게 그거랑 연관이 있는 겨?”
“네. 이 동네에 살지 않는 환자들도 온다더라고요. 젊어서 그런지 홍보 방법이 확실히 다르네요.”
윤 사장은 생각보다 더욱 잘하고 있는 재마의 모습에 흐뭇한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얼마 버티지 못할 얼굴로 환자 수가 줄어들어 수심이 가득 찼던 재마였지만 요즘은 그 얼굴도 많이 좋아졌다.
“외지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게 좋은가 뭐. 진료 대기만 길어지지.”
요즘 진료 대기시간이 길어진 것 같다 싶었는데, 그게 다 너튜브인지 뭔지 탓이라는 생각에 갑순은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렇지 않아도 웬만해서는 외지인이 없던 해인동이 낯선 얼굴이 많이 보였다.
“개발이 되네 어쩌네 하면서 가게 앞 지나다니는 손님도 적었는데 저는 좋아요. 개발이 언제 될지 모르겠지만 되는 날까지는 여기서 버티고 있어야 하니.”
명의 한의원에 손님이 늘면서 과일가게를 지나치는 손님이 많아지면서 활기를 띠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윤 사장은 반색이었다.
개발을 앞두고 개발이 확정되기를 기대하는 주민들이나 보상이 시작되면 얼른 보상을 받아 새 점포를 알아볼 상인들에게는 활기를 띠는 해인동이 반갑지 않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상인회장을 맡고 있으니, 개발이 되어 보상이 끝날 때까지 점포를 지키고 있어야 했다.
“개발 그게 되기는 한데? 에휴. 이 늙은이는 모르것어. 되면 뭐햐 집 한 채가 전 재산인디 이사 나갔다가 다 되면 들어오고. 다 들어올 때까지 살아 있을지나 알 수 있나.”
“왜요. 어르신. 새 아파트 살아보셔야죠.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한의원 다니시는 거 아니에요?”
개발에 큰 뜻이 없어 보이는 갑순의 말에 새 아파트는 살아봐야 하지 않겠냐며 윤 사장이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주었다.
“나야 되면 되는 거고. 안 되면 안 되는 거지. 근데 저 오래된 명의 한의원도 같이 없어진다는 건 참 맘에 안 들어. 100년도 더 되었다는 것 같던디.”
“100년이 뭐예요. 200년은 되었을걸요?”
“그런 걸 싹 밀어 버리면 안 되지이.”
“요즘 젊은 사람들이 그런 마음일까요.”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씁쓸한 마음으로 갑순과 윤 사장은 명의 한의원을 바라봤다.
그렇지 않아도 명의 한의원의 존폐에 대해서는 상인회 회의 때도 종종 언급되는 내용이었다.
한의원까지 개발구역으로 묶이는 것에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한의원을 제외하면 개발에 제한이 있으니 차별을 두지 말고 한꺼번에 진행을 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랫동안 한의원을 지켜온 구 원장이 물러서고 이 원장이 처음 맡았을 때는 명의 한의원의 앞날이 어찌 될지 미궁이었지만, 지금처럼 애정을 갖게 되면 어찌 될지 기대가 될 정도였다.
“어르신. 저 청년 이제 한의원 안으로 들어갔네요.”
“뭐여? 에이. 일찍 들어갈 것을 대기 환자 한 명 더 늘었겄네.”
갑순은 한의원 앞에서 한참을 영상을 찍던 청년이 안으로 들어갔다는 윤 사장의 말에 아픈 무릎으로 발을 놀려 급하게 명의 한의원 계단을 올랐다.
“아이고. 무릎이야.”
활짝 열린 명의 한의원 안으로 들어서니, 갑순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손님들이 있었다.
요 며칠 환자가 많다 많다 했지만,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조금 전에 들어갔던 청년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한의원을 여기저기 영상으로 찍고 있었다.
“정 실장. 이게 다 뭔 일이래.”
“진갑순 님 오셨어요. 그러게요. 오늘은 어제보다 환자들이 더 많으시네요. 대기가 좀 긴데 괜찮으시겠어요?”
“아유. 어쩌겄어. 일단 왔는데 기다려야지.”
갑순은 환자가 많은 것이 못마땅했지만, 환자도 없이 파리나 날릴 때보다는 낫다는 생각도 들고 아픈 무릎에 더 서 있을 수도 없었다.
평상 가득 환자들이 앉아 있는 탓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갑순이었지만, 그 뜻을 아는 지 사람들이 조금씩 자리를 옮겨 갑순의 자리를 만들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갑순은 옆 사람들이 움직여 자신의 엉덩이 붙일 조그마한 자리가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며 평상에 앉았다.
“저기……”
갑순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옆으로 조금씩 옮겨 앉자던 사람이 갑순을 향해 입을 열었다.
“왜유.”
“어르신, 이 동네 사세요?”
“그려요. 한 40년 산 것 같은디.”
“아, 그럼 여기 한의원 잘 아시겠네요. 오래됐다고 딸이 가보라 해서 왔는데.”
갑순이 40년이나 해인동이 살았다는 말에 중년 여성은 반색을 했다.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명의 한의원에 처음 온 것 같았는데, 직원들과 인사를 하는 모습이 한의원에 대해 잘 아는 노인처럼 보였던 탓이었다.
“뭐가 궁금한데요.”
조심스럽게 입을 연 여성과 반대로 갑순은 그녀를 아래위로 훑으며 물어볼 것이 있으면 다 물어보라는 듯 대뜸 대답했다.
“여기 원장님 어떠세요? 딸이 보여준 동영상 보니까 여간 젊으신 게 아니시던데.”
중년 여성은 딸이 보여준 영상을 보고 오기는 했지만, 젊은 한의원에게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게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나마 오래된 건물하며 인터넷에 방문자 평이 나쁘지는 않아 서울 반대편에 살면서도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왔다.
“나이가 뭐가 중헌디. 일단 원장님 만나나 봐요. 그리고 침 한번 맞아보고. 약도 먹어보면 좋고.”
갑순은 틱틱 말을 내뱉었지만, 재마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여성에게 간단하게 재마의 침술과 탕약이 추천할 만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자신도 약은 먹어 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약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참이었다.
“약도 드셔보셨어요?”
“나는 약은 여기서만 먹어요. 침도 마찬가지고.”
“아이고. 용하신가 보네.”
“여기가 이 자리에서만 200년을 대대손손 이어가면서 하는 한의원이래요. 그래서 그런지 그 손도 물려받나. 원장님이 나이는 젊을지 몰라도 기술은 여느 경력 많은 원장 못지 않어.”
갑순은 자신의 말만 믿어 보라는 듯 미간을 찡긋거렸다.
오래 다닌 단골 환자다운 이야기에 중년여성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렵사리 말이라도 한번 걸어 보기를 잘한 것 같았다.
“오늘 진료받아봐야겠네요. 어떠신지.”
“그리고 이따가 침 맞을 때 저기, 저쪽 침방으로 간다고 혀요. 구들장 바닥이 뜨뜻한 게 몸이 촥 녹아.”
“구들장요?”
“구들장에 몸 지진 지 오래됐죠? 여기 오면 할 수 있다니까.”
딸이 보여준 영상을 보기는 했지만 구들장에 대한 장면은 보지 못했는지 의아한 눈을 했다.
명의 한의원 하면 구들장이라면서 갑순은 구들장에 대해 한참을 설명했다.
아무리 한의사가 바뀌어도 구들장은 뜯어내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갑순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외지에서 오는 손님들 탓에 대기가 길다며 투덜거렸지만, 누구보다도 확실한 홍보를 하고 있었다.
“아이고. 우리 한의원 홍보 실장님 홍보하고 계시네. 쌍화차 드시고 하세요.”
“고마우이. 정 실장. 이거 한 번 잡숴봐요. 싸비스로 주는 쌍화차도 아주 기가 막혀.”
갑순은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쌍화차까지 손수 건네며 권했다.
“정말 진하네요.”
“공짜로 이것만 마셔도 그게 어디여. 나는 여기 와서 침 맞고 쌍화차 마시고, 집에 가서 한의원 약 먹는 게 하루 코스여. 코스.”
자신이 명의 한의원 단골 중에 찐단골 인증이라도 하듯 갑순은 엄지를 치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