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42화
재마는 어제 강산과 아주 오래간만에 진지한 대화를 나누느라 평소 마시던 술보다도 조금 더 마셨다. 그래서 아침에 부스스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으 숙취.”
숙취가 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두통이 그의 머리를 기분 나쁘게 했다.
방에서 나와 기지개를 쭉 켜는 재마는 오늘따라 평소와는 해인동의 조금 다른 공기를 느꼈다.
“음.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좀 이상한데.”
어제 탕약술이 +2나 되면서 탕약 냄새만 맡아도 효능과 재료들을 다 느끼게 되어서 그런지 이상한 기운을 느낀 재마는 자신의 코를 비벼도 보았지만, 자신의 재능 탓은 아닌 것 같았다.
“뭔가 해인동에 생기가 도는 기분이랄까.”
명의 한의원 담장 너머에는 주택들과 시장이 맞닿아 있어 유동인구가 꽤 있는 편이었지만, 이른 아침부터 들리지 않던 사람들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러다 정 실장님 출근하시지. 일단 씻기부터 하자.”
숙취에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잠시 멍 때리던 재마는 정 실장이 출근하기 전에 진료 준비를 해야 했다.
“실례합니다.”
“네. 무슨 일이시죠?”
진료 시간이 되기 전에는 대문을 닫아 놓아 웬만하면 사람들이 한의원 안쪽으로 들어올 일이 없었다.
“여기가 해인동 명의 한의원 맞죠.”
“네. 맞긴 한데.”
“아, 맞아요? 맞네. 맞네. 너튜브에서 본 한옥 한의원 맞네.”
재마에게 명의 한의원이 맞냐고 물어본 사내는 너튜브 영상에서 본 한옥 건물이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모습에 흥분을 한 모양이었다.
“저기…… 진료 보러 오셨습니까.”
너튜브에서 본 한옥이 맞는다는 소리를 계속하며 이곳저곳 살피는 사내에게 다가간 재마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었다.
“맞아요. 한의원에 진료 보러 안 오면 무슨 일로 오겠어요.”
경상도 사투리를 쏟아내는 사내의 목소리에 절로 ‘아.’ 소리를 내며 수긍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재마였다.
“그런데 환자분. 아직 저희 진료 시간이 안 돼서요. 기다리셔야 하는 데 괜찮으세요?”
“아, 아직 진료 시간이 아니에요?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저는 구경 좀 하고 있을게요.”
“아, 네. 그럼.”
명의 한의원에 오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었지만 이런 일은 또 처음이라 당황한 재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진료 준비를 위해 들어갔다.
“어어, 지금 도착했어. 서울까지 왔지 뭐. 해인동. 맞어, 맞어. 명의 한의원.”
먼 지방에서 재마를 찾아온 듯한 환자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자신이 명의 한의원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 * *
똑똑-
“원장님. 진료 시작해도 될까요?”
“네. 대기 오래 하신 분부터 들어오라고 하세요.”
9시 30분이 몇 분 앞둔 시간.
재마가 진료 준비를 다 하고 진료실에 들어서자 눈치를 보고 있던 정 실장이 노크를 하고 진료 시작을 물었다.
평소에도 9시 30분에 딱 맞춰 진료를 시작하는 일이 드물었다.
오늘은 특히나 더 기다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일찍 온 손님뿐 아니라 진료 시간을 기다리는 환자가 진갑순 환자뿐 아니라 늘어난 탓이었다.
아주 오래간만에 명의 한의원 앞마당은 시끌시끌했다.
“강태천 님,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네!”
명의 한의원 문이 열리기도 전에 대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던 태천은 오래 기다린 탓일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진료실로 들어왔다.
지방에서 온 것이 확실해 보이는 태천은 이른 시간이지만 피곤함은 보이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강태천 님 이쪽으로 앉으세요.”
“너튜브에 나오는 한의사 선생님 맞죠?”
“네. 맞습니다.”
재마도 정 실장도 예상했듯 역시나 너튜브를 보고 찾아온 환자인 모양이었다.
재마는 가볍게 태천의 손목을 진맥하며 그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동공을 인식합니다.]
이름 : 강태천
나이 : 42세
한비, 대장 안이 차가워 대장 안의 진액이 마르는 상태
아침 일찍 한의원 문을 두드리고 온 태천의 동공을 바라봤을 때 그의 상태는 썩 심각한 질환을 가지고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타고난 체질이 오장육부가 튼튼한 편인 건강 체질이라 변비 증상만 조금 있는 정도일 것 같았다.
“강태천 환자, 어디 불편하신 것이 있어서 찾아오셨습니까?”
재마는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이 모르는 질환을 갖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물었다.
“원장님이 보시기에는 어떠십니까?”
건강 체질인 사람들도 한의원에 와서 때마다 보약도 지어 먹기도 하고 자신의 건강상태를 묻기도 하니 태천이 찾아온 것이 아주 이상한 상황은 아니었다.
“제가 보기에는 강태천 환자는 건강 체질이셔서 소화도 잘하시고, 특별히 문제 되실 것은 없어 보입니다. 특히 현대인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스트레스성 빈맥이라던가 이런 것도 나타나지 않아 보이네요. 다만 약간 변비가 있으신 것 같은데 그 정도는 배를 좀 따뜻하게 하시고 따뜻한 차를 드시면 많이 호전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 맞아요. 맞아. 제가 타고난 건강 체질입니다. 하하.”
“그래도 아침 일찍 오셔서 대기 시간도 길었는데 침이라도 맞고 가시겠습니까?”
“네. 침 맞고 가겠습니다.”
호탕한 성격의 태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너튜브로 알게 된 명의 한의원을 찾아오는 것이 목적이었던 모양이었다.
“정 실장님, 강태천 환자 처치실로 안내해 주세요.”
“처치실이 1하고 2로 따로 있죠? 저는 1로 갈게요.”
마치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처치실 1을 체험하겠다는 목소리에 정 실장은 어이없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아, 네. 처치실 1로 안내해 드릴게요.”
띠링.
재마의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들어온 소리가 들렸다.
-자랑스러운 동기. 진료 잘 보고 있냐. 야, 오늘 환자 중 한 명이 명의 한의원 이야기를 다 하더라.
동기 중 강남에 있는 다이어트 전문 한의원으로 입사한 동기 녀석의 메시지였다.
-담당 한의사 앞에서 명의 한의원이 유명한 한의원이냐 묻는데 한의원 막내가 아는 체할 수도 없고 난감했다.
동기는 짧은 메시지였지만 반가움과 동시에 난감했던 상황을 재마에게 전달했다.
-하하. 미안하다 난감한 상황 만들게 해서.
본의 아니게 동기를 난감한 상황으로 빠뜨린 재마는 사과의 답장을 했다.
-사과받으려는 건 아니고, 조만간 얼굴이나 보자. 같은 서울에서 진료하는데.
짧은 메시지를 주고받은 재마는 너튜브로 인해 조금은 바뀐 상황에 얼떨떨했다. 그러고는 처치실 1로 자리를 옮긴 강태천 환자에게 침을 놓으러 갔다.
“캬, 이런 모습이었군요.”
처치실 1은 기존에 오랫동안 명의 한의원을 다니면서 베드가 없는 처치실에 익숙한 연령이 높은 분들을 위한 처치실이었다.
하지만 태천은 낯선 모습의 처치실이었지만, 다소 얇은 매트가 깔려 있는 바닥에 몸을 누이고 있는 것이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바닥은 구들장입니까?”
“네. 기존에 있던 구들장 바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와, 지방에서도 이런 한의원은 찾아보기 힘든데 얼마 만에 구들장에 누워보는지 모르겠네요.”
강태천은 예전에 구들장을 사용했던 집에 살았었다는 이야기부터, 자신이 지금까지 자잘한 병치레도 없이 40년 넘게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침을 시술받았다.
“원장님, 배가 따뜻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이. 아주 굿입니다. 굿. 앞으로 볼 일 시원하게 볼 때마다 원장님 생각날 것 같아요.”
누워서 뜸과 함께 침을 맞으며 강태천은 엄지를 치켜들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마다 재마를 떠올린다는 것이 썩 달가운 말은 아니었지만, 한의사로서는 최고의 칭찬이 아닐까 싶었다.
“멀리서 오셨는데, 감사합니다. 조심히 돌아가시고 건강하십쇼.”
먼 지방에서 올라왔다는 태천에게 재마는 되레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 * *
폭풍 같은 하루가 지나갔다.
너튜브를 올린 지 4일 만에 재마가 명의 한의원을 맡은 이후 최고 환자 수를 찍은 날이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정 실장님 오늘 신규 환자가 좀 있었죠?”
“원장님 진짜 수고하셨어요. 오늘 환자가 67명이나 됐더라고요.”
정 실장은 최근 들어 가장 많은 환자를 치르는 바람에 머리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였다.
자잘한 질병을 가지고 찾은 환자들부터 오랜 지병을 가지고 희망을 품으며 찾아온 환자들까지, 진료를 마감하면 온몸에 힘이 쫙 빠지는 기분이 드는 정 실장이었다.
“정 실장님 힘드셨겠어요. 최 실장님이랑 두 분이 하시기에는 부족해서 아무래도 인력충원을 해야 할 것 같죠?”
아무래도 처치실이 두 군데나 되고 진료실까지 안내, 접수 수납까지 대부분의 일을 정 실장이 도맡아 하는 상황이었다.
아직까지 탕약은 재마가 담당을 하고 있어 약재들이 들어오는 날이 아닐 경우는 최 실장이 많이 도와주고 있지만, 약재를 구하러 지방이라도 가는 날에는 정 실장 혼자 감당하기에는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근데 아직까지는 할 만합니다. 구 원장님 계시고 개발 전에는 종종 있던 일이라서요.”
“맞아유. 아무래도 너튜브인지 그 빨로 환자들이 느는 것 같은데 섣불리 직원 늘렸다가 운영에 차질 생기면 어쩌시려고요.”
최 실장과 정 실장은 자신들의 몸이 힘들어도 명의 한의원 운영에 차질을 빚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손사래를 쳤다.
최 실장은 오늘 하루 정 실장보다 더 바삐 움직이며 환자를 치러냈다.
“아닙니다. 한 명 정도는 충원하는 게 안쪽에서 진료 보는 저도 덜 부담스럽죠. 두 분 과다 업무로 병이라도 나면 그게 더 한의원 운영에 큰 차질이 생기니까요.”
거절하는 두 사람의 대답에 재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 신규 환자가 36명이나 되었네요.”
“기존 환자에 절반도 넘는 수네요.”
너튜브 때문에 잠깐뿐인 관심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신규 환자가 늘어 난 것은 재마에게도 명의 한의원에게도 좋은 기운이었다.
한의원은 집 앞에 가까운 곳을 찾기도 하지만, 탕약을 잘 지어주고 진맥을 잘 짚어주는 곳이 있다면 먼 곳을 자처해서 오기도 했다.
“들어올 때 여기가 ‘환자를 읽는 한의사’가 계시냐고 묻는 환자들도 더러 있었어요.”
“너튜브 덕을 톡톡히 보는구만유.”
최 실장도 정 실장도 구 원장님이 계실 때는 해본 적이 없었던 홍보 효과에 신기한 모양이었다.
“이 기운 모아서 먼 곳에서도 찾아오는 명의 한의원으로 만들어봅시다.”
“네!”
환자들이 많아져 재마는 물론 두 실장도 피곤했지만,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오늘 새로운 영상 올라가는 날이죠?”
“네. 지난번에 꿈속 요양원 다녀온 영상 올라가는 날입니다.”
“와, 그 영상은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네요. 내일 환자들이 더 늘어나는 거 아니에요?”
환자들이 더 늘어나면 분명 정 실장의 업무 강도는 늘어나겠지만, 새로운 환자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기대에 찬 얼굴이었다.
재마는 자신의 곁에 든든한 지원군 둘이 있다는 생각에 의욕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