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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41화 (41/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41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지?”

맥줏집에서 마주 앉아 있는 강산은 재마를 한참 빤히 바라봤다.

재마를 바라보는 눈이 아주 매서웠다.

그가 재마를 알고 지낸 것만 해도 7년이었다.

“뭐가 그렇게 이상해?”

“네가 원래 머리가 비상하고, 그만큼 노력도 해서 수석 자리를 놓치지 않은 건 인정. 짧은 쪽지 시험까지도 너 따라올 동기들 없었던 것도 인정.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그 수 많은 약재를 꺼내 놓기만 해도 효능을 술술 읊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한의대학 2학년 때 약재학을 배우며 밤새도록 시험 범위 안에 있는 약재들을 외운 탓에 시험 기간에는 강산도 약재에 대한 효능을 술술 쏟아내었지만, 그때뿐이었다.

지금처럼 시험공부도 멀리할 때는 정말 많이 쓰는 약재에 대한 정보만 머리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이해를 하려 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강산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네 머리에는 뇌가 아니라 메모리 칩이 있는 게 분명해. 이리 와. 확인해 보자.”

요 몇 주 재마와 함께 있으며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강산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뻗었다.

강산은 재마의 머리를 열어보기라도 할 것처럼 머리를 내놓으라 이야기했다.

“왜 이래? 이제는 아주, 사람답지도 않냐?”

약재에 대해 이해했다기보다 기계적으로 말을 내뱉던 재마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던 강산은 500㏄ 잔에 담긴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이 형님만큼만 따라와. 그러면 이번 해 한의사 면허 자격증은 문제없을 테니까.”

명의 한의원을 이어받은 이유가 갑작스럽게 생겨난 미션과 보상 때문이라는 것을 강산에게 설명을 하고 싶어도 이해하기는커녕 미친놈이라고 비웃을 그였다.

강산의 한의사 면허 이야기를 꺼내면 자연스럽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그였다.

“야, 왜 술 잘 먹다가 갑자기 내 면허 시험 이야기로 빠지냐? 공부라면 아주 이제는 치가 떨려. 요즘 나는 내 적성을 찾았다니까.”

“왜 거기로 빠지기는 이제 한의원도 어느 정도 자리 잡아가고, 네 생각도 해야 하니까 그렇지.”

이야기 주제를 다른 것으로 돌리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자신을 물심양면 돕고 있는 강산을 걱정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시작인 너튜브 채널을 하겠다고 강산을 자신이 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도 6년간 재마와 똑같이 한의대학에서 한의사를 꿈꾸며 수련을 했던 한의학도였다.

잠시 방황을 하고 있을 뿐, 그의 6년간의 수련이 헛되이 묻히는 것을 친구로서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나도 생각은 많다. 한의사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수능 공부를 했던 기간, 그리고 한의대를 들어가서 밤새워 가며 시험공부에 수련에 정신없었던 6년을 생각하면 아깝지 물론. 그런데 면허 시험을 준비하다 정말 오래간만에 고향 집을 내려가니 지금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싶더라.”

“고향 집?”

경상남도 산청이 고향인 강산은 서울로 대학을 다니면서 고향 집에 내려가는 일이 손에 꼽았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쪽지 시험에, 때로 동아리까지 만들어 다니던 의료봉사.

거기에다 1박 2일로 다녀오기에는 무리인 거리에 고향이 있는 탓에 명절조차도 서울에서 홀로 지낼 때가 많았다.

“내가 서울에 올라와 한의대를 다닌다고 한참을 찾아가지 못했던 그곳에 우리 어머니랑 아버지의 시간은 그대로 멈춰 있더라고. 눈 뜨면 작고 오래된 한의원으로 출근을 해서 하루 종일 그 작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지. 동네 한의원이라고, 오래된 단골 환자라고 진료 시간 이후에 찾아오는 일은 다반사에, 쉬는 날도 여행 한 번, 서울에서 공부 중인 아들 집에 한 번 못 올라오시는 부모님을 보니. 갑자기 공부할 맛이 뚝 떨어지더라고. 그런 모습에 공부할 생각이 사라진 걸 보니 나는 한의사가 될 깜냥이 아니다 싶었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재마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며 농이나 던지던 강산은 진지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꺼내 놓았다.

오랜 친구의 속마음에 재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속이 탈 뿐이었다.

“제 몸 한 번 들여다보지 못하고 매일 똑같은 일들을 해내는 부모님을 보니 자식으로서 이러면 안 되는데, 정말 답답하더라.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냐고 하니까 힘닿는 데까지 해야지. 라는 대답을 하는 어머니의 말을 들으니 내 속이 타들어 갔다는 이야기하면 이해가 되냐? 10년 가까이 치매 시어머니 간호했지, 이제는 쉬지도 않고 아버지랑 함께 한의원에만 계셔.”

“다는 이해 할 수 없지만, 자식으로서 그 모습을 보면 존경스러운 마음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이 들겠지.”

“그러던 와중에 출셋길이 훤하던 네가 정한 한방병원 입사를 안 하고 서울에서도 다른 곳도 아니고 해인동에 있는 한의원을 인수했다는 소식에 내가 얼마나 놀란 줄 아냐?”

강산은 아무런 언질도 없다가 명의 한의원을 인수한 후에야 강산에게 이야기를 꺼냈던 재마를 바라보며 빈 잔을 툭 하고 쳐냈다.

“나도 내가 동네 한의원을 인수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나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우리 어머니와 구 원장님과의 관계에도 네가 느꼈던 비슷한 무엇인가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직 외할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어색하기만 한 재마는 구 원장이라 부르고 있었다.

재마를 홀로 키우면서도 단 한 번도 할아버지를 찾지 않았던 어머니.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지내면서도 금지옥엽처럼 대하는 것도 모자랄 판국에 찾지 않고 홀로 한의원을 운영하며 지냈던 구 원장.

두 사람 사이에 무엇인가가 있음이 분명했다.

* * *

아침 7시.

매일 아침 6시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구 원장.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 세월이 벌써 40년이었다.

불과 석 달 전까지만 해도 6시에 일어나 명의 한의원 마당을 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던 그였지만, 이제는 6시에 일어나 자신이 지내고 있는 딸네 집 동네 어귀를 산책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한 시간을 꽉 채워 동네를 돌고 돌아오면, 현관문을 열자마자 딸이 아침 일찍 일어나 구 원장을 위해 끓인 맛있는 청국장 냄새가 풍겨 나왔다.

“아버지. 오셨어요? 식사하세요.”

“아침부터 네가 고생이구나. 이렇게까지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매일같이 찌개나 국 하나에 나물 세 가지. 단백질이 들어간 반찬 한 가지를 준비하는 딸의 모습에 구 원장은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라고 세상에 둘도 아니고 한 명 있으면서 딸이 홀로 아들을 키우며 어렵게 김밥 장사를 하는 것을 찾아가 본 적도 없었다.

그런 날들이 있기 훨씬 전에도 딸 하나 있는 경옥을 신경 쓴 적이 기억에 희미할 정도인 구 원장은 자신이 이런 밥상을 받을 자격이 있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정도 가지고 뭘요. 재마가 혼자 나가서 지내기 전까지는 항상 하던 일이에요.”

힘들게 아들을 홀로 키우면서도 아침 밥상은 꼬박꼬박 챙겼던 경옥은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저도 아버지가 계셔서 좋아요. 재마가 나가 산 다음부터는 혼자 밥 먹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이제 아니잖아요. 어서 앉으세요.”

미안한 기색을 보이는 아버지가 미안해하지 않도록 먼저 식탁에 자리를 잡은 경옥은 맞은편에 구 원장의 수저를 놓았다.

경옥의 말처럼 누군가와 아침밥을 마주 앉아 먹어본 적이 오래인 구 원장도 삼시 세끼를 딸과 마주 앉아 먹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청국장을 한 수저 뜬 구 원장은 오래도록 마음에 두었던 한 마디를 꺼냈다.

“오늘 내 다녀올 데가 있는 데.”

“어디 다녀오시게요? 먼 곳이에요? 제가 운전해 드릴게요.”

“아니, 혼자 다녀오려고 하는 소리다.”

“어딘데 그러세요?”

아직 몸도 성치 않은 그가 홀로 다녀올 데가 있다는 소리에 수저를 바삐 움직이던 경옥은 수저를 내려놓았다.

구 원장은 한참 말없이 뜸을 들이다 수저도 놓은 딸에게 더 이상 말을 안 할 수는 없는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네 엄마 봉안당에 다녀오려고 해.”

“엄마…… 봉안당이요……?”

경옥의 얼굴에 균열이 일었다.

구 원장의 반려이자, 경옥의 하나뿐이었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었다.

그 사이 시간도 오래 흘렀고, 평생 한의원과 환자밖에 머리에 두지 않았던 구 원장에게도 여유라는 것이 생겼다.

조금 전 매일 아침 식사를 챙기는 것이 일도 아니라며 웃어 보이던 경옥의 얼굴에는 웃음기라는 것이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졌다.

애써 분위기를 환기하려 입꼬리를 올려볼 생각이었지만 쉽지 않았다.

다시 손에 든 수저는 부들부들 떨렸다.

“가지 마세요. 거리도 멀고.”

“지금 가지 않으면 언제 갈 수 있을지, 아니면 갈 수 없을지도 몰라서 그래. 나 혼자 다녀오마.”

“아버지.”

경옥은 딸의 도움 없이 혼자 다녀오겠다는 구 원장의 고집에 다시 한번 수저를 내려놨다.

참고 싶었지만, 뜻처럼 되지 않는 듯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지금까지 한 번도 찾아가지 않으셨었잖아요. 그냥 지금처럼 안 가고 지내셔도 되잖아요.”

“너는 아직도 나를 용서하지 않았구나.”

눈물을 흘리며 힘겹게 한 마디 한 마디 쏟아내는 경옥의 목소리에 구 원장의 목소리도 떨렸다.

“엄마도 쉽게 용서하지 못하실 거에요. 자신이 평생 뒷모습만 바라보던 사람이었지만 마지막 순간만은 함께하고 싶어 하셨으니까요. 아버지는 그 단 한 번의 순간도 엄마한테 허락하시지 않은 분이고요.”

경옥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억지로 밥을 한 수저 떠 입안으로 들이밀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눈물뿐 아니라 입 밖으로도 울음소리가 새어 나올 것 같았다.

구 원장은 더 이상 식사를 이어 갈 수 없겠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으로 옮기려던 다리는 제 뜻처럼 움직이지 않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딸 아이가 30년 동안 마음속에 묻어놓았던 진실을 듣고 있자니 온몸에 힘이 빠져 버린 탓이었다.

“아버지!”

“괜찮다.”

식탁에서 일어나 자신을 부축하려고 일어난 딸의 모습을 보지 않아도 알겠는지, 구 원장은 괜찮다고 말을 하며 힘겹게 일어났다.

딸 아이에게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또 한 번 무너질 것 같았다.

지금까지처럼 무슨 일이든 혼자 할 수 있다는 듯, 경옥을 제지한 구 원장은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떼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경옥은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다리를 붙이고 서서 앉지도 서지도 못하다가 문소리가 나자 털썩 주저앉았다.

꾹꾹 눌러 참았던 그 한 마디가 결국엔 구 원장을 향해 터져 나오고 말았다.

“흐…… 흐흐흑. 흑흑.”

고요할 줄만 알았던 방 너머에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던 구 원장의 울음소리였다.

식탁에 다시 털썩 앉아 버린 경옥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지 꺽꺽거리며 울음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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