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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39화 (39/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39화

띠링.

띠링.

띠링.

샤워를 하고 머리를 털며 방으로 들어온 재마는 계속해서 울리는 알림에 휴대 전화를 빠르게 집어 들었다.

“무슨 알림이 이렇게 많이…….”

재마는 자신이 들고 있는 휴대 전화의 알림을 확인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분명 씻으러 가기 전만 해도 구독자 수가 7명밖에 되지 않았던 구독자 수가 20명으로 늘어 있었다.

“오, 스무 명?”

거기에다 조회 수가 벌써 300회가 넘어 있었다.

강남스타일이나 BTS의 뮤직비디오로 수백억 회를 찍기도 하지만 첫 영상을 홍보도 없이 100회도 되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던 재마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의 숫자였다.

그뿐 아니라 댓글이 달리기 시작하면서 재마의 휴대 전화에 알림이 울리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오, 추억의 해인동

-해인동하면 명의 한의원이지.

-어릴 때 다리 다쳐서 엄마 손에 붙잡혀 갔던 한의원인데 원장님이 바뀌셨네

아직 구독자 수와 조회 수는 미흡하지만, 우연히 해인동의 추억이 있는 사람들이 영상을 보고 댓글을 달았다.

“역시 첫 영상을 한의원 소개를 한 것이 신의 한 수였나.”

아직까지 신의 한 수라고 부를 만큼의 수준은 아니었지만 첫술에 이 정도면 재마는 만족스러웠다.

급하게 영상의 내레이션을 구 원장에게 부탁했지만 누구보다도 명의 한의원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구 원장은 성공적으로 후시 녹음을 마쳤다.

‘환자를 읽는 한의사’ 채널의 첫 영상이었지만 마음을 편하게 하는 구 원장의 목소리와 보기 드문 한옥 한의원의 조화가 적절했다.

구 원장에게 물려받은 명의 한의원의 역사가 재마에게 와닿은 적이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명의 한의원은 구 원장의 목소리와 참 잘 어우러졌다.

-여기 곧 개발예정지 아님? 이 골목 내가 어릴 때 참 많이 뛰어다니던 곳인데. 이제 곧 사라진다니 아쉬울 뿐.

어렸을 때 추억이 담긴 곳이라고 로그인까지 해가며 댓글을 남겨준 사람에게 감사의 인사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침부터 기분 좋게 시작한 재마는 이번에는 동기들 단톡방에 우르르 대화 알림이 뜨기 시작했다.

다들 출근 준비하느라 바쁠 시간인데, 재마의 영상을 본 모양이었다.

-재마, 개인 한의원 차린 거 알았던 사람.

-뭐? 한의원 차렸다고? 난 모르는 이야기.

-지난번에 잠깐 맥주 마실 때 이야기 들었다.

전혀 소식을 못 들었던 동기들부터 지난 모임에 나왔던 정수까지 재마의 소식에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녀석들은 또 어떻게 안 거야.”

입이 근질근질하다던 강산이 동기들에게 아직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상황에서 동기들이 알 리가 없었다.

“설마 중기 녀석이?”

묘한 신경전을 부렸던 중기와의 만남이 떠오른 재마는 혹시 그가 알린 것인가 생각을 했지만, 굳이 재마가 명의 한의원을 인수했다는 이야기를 해서 그에게 득이 될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튜브에 있던데?

-너튜브? 우리 수석님 요즘 조용하게 소식도 없으시더니!

-조용히 너튜브 데뷔 준비했던 건가? 역시 한발 앞서가는 놈.

-우리는 아무리 뛰어도 재마를 따라잡을 수 없다.

동기들 중 재마의 영상을 본 사람이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도 못했는데, 그중 한 명이 출근길에 영상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너튜브? 나 좌표 좀 찍어줘라.

-나도나도. 궁금하다.

-우리도 보고 재마 뒤 좀 따라가자. 성공 길 아니냐 그게?

동기들은 6년 내내 재마가 수석을 차지한 것을 봤다. 이제 경쟁심을 느끼기보다는 항상 앞서가는 재마를 인정하고, 기억에 남겨둔 모양이다.

-경선이 너 어떻게 알았냐? 재마가 너튜브 시작하는 거.

강산도 메시지를 봤는지, 놀란 듯한 메시지를 보냈다.

-나야 정한 한방병원 구독해 놨으니까 종종 알고리즘에 뜨는데, 오늘은 해인동 오래된 한의원이 뜬금없이 뜨더라고.

-해인동? 재마가 개원했다는 곳이 해인동이야?

-개원은 아니고, 인수했나 봐.

너튜브는 알고리즘으로 비슷한 주제를 가진 영상들이 추천된다더니 올린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동기들에게 하나둘, 추천이 된 모양이었다.

우연히 재마의 너튜브 채널을 발견했다는 동기는 다른 동기들의 궁금증을 자신이 나서서 풀어줄 모양이었다.

“이 원장아. 방에 있지?”

진료 시간이 시작도 되기 전에 명인한의원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강산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단톡방 봤어?”

“응, 방금 봤어.”

“이야. 우리 영상이 의외로 관심받는 거 아니냐. 이러다?”

강산은 자신의 채널은 아니었지만 가장 친한 동기의 채널, 그리고 자신이 촬영과 편집에 참여한 영상이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아직 300뷰밖에 안 되는 데 관심은 무슨…….”

“300뷰는 무슨, 이제 동기들이 찾아보면 금방 400뷰 된다! 거기에다 아까 못 들었어? 알고리즘으로 자동으로 뜨는 게 이게 또, 너튜브의 장점 아니냐. 홍보를 안 해도 비슷한 주제의 영상을 보면 밑바닥에 있는 영상도 추천을 해주잖아.”

“그게 그렇게 되나?”

“넌 아직 그런 것도 모르면서 무슨! 앞으로 형만 믿어라.”

강산은 앞으로 ‘환자를 읽는 한의사’ 채널을 자신에게 맡기라는 듯, 자신의 가슴팍을 팍팍 쳤다.

“형은 무슨, 생일은 내가 석 달이나 빠르구만.”

“너튜브 쪽은 아무것도 모르니 너는 신생아, 나는 좀 아니까 형이지.”

“그렇게 형이 되고 싶냐. 유치하기는. 그런데 너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왜 일찍 오기는 오늘도 열심히 일하려고 왔지.”

정 실장이 출근도 하기 전에 한의원 문을 열고 들어온 강산에게 의아하다는 듯 물으니 강산은 당연하게 가방 안에서 휴대 전화용 마이크까지 꺼냈다.

“오늘 명의 한의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날인데 채널 PD가 가만히 있을 수 있냐. 영상 찍으러 와야지.”

“짜식.”

재마는 강산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하고 찔렀다.

“오늘 어머니도 오신다고 했지?”

오늘은 구 원장이 병원 외래 진료를 갔다가 명의 한의원을 둘러보기로 한 날이었다.

“오, 드디어 해인동을 꽉 잡고 계시던 구 원장님을 뵙는 건가.”

할아버지를 뵙는 것이 강산은 기대라도 되는지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일단 진료는 정상진료니까 촬영은 대기실, 그리고 진료 볼 때 자연스럽게 부탁해. 아마 환자들 동의는 정 실장님한테 부탁드리면 될 거야.”

“오케이. 나만 믿어.”

강산이 무엇을 저렇게 의욕적으로 하는 걸 처음 본 재마는 적임자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진짜 재밌구나?”

“너 방금 그렇게 생각했지? 공부를 저렇게 했으면!”

강산은 재마의 속마음을 읽었다는 듯, 물어왔다.

“그래.”

“내가 공부를 이렇게 재밌게 했으면 너는 수석 못 했어. 다 내 덕에 수석한 줄만 알아라. 그리고 생각 이상으로 재밌더라. 촬영하고, 편집하고.”

“암튼 고맙다.”

“고맙기는 나도 내 적성에 맞는 거 찾은 건데.”

재마는 진료 준비를 방을 나서서 진료실로 향했고, 재마와 대화를 마친 강산은 카메라를 설치하기 위해 대기실로 나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원장님!”

“네. 정 실장님, 안녕하세요.”

“오늘 구 원장님 오시는 날이죠?”

정 실장은 평소처럼 밝은 얼굴로 한의원 문을 활짝 열며 출근을 했다.

20년을 함께 일했던 구 원장을 오래간만에 볼 생각에 그녀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오늘 출근하면서 너튜브 영상 찾아봤는데, 댓글도 많이 달렸던 데요? 그리고 나레이션을 구 원장님이 직접 하신 건 신의 한 수였어요.”

너튜브에 대해 잘 모르던 정 실장이었지만, 출근길에 재마의 채널을 구독하고 좋아요와 알림설정까지 마쳤다.

“그리고 제 동창회 단톡방, 가족 단톡방에도 구독, 좋아요 눌러 달라고 홍보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앞으로 구독자도 늘 거예요.”

정 실장은 눈을 찡끗거리며, 이제 구독자가 늘어날 일만 남았다는 듯 장담했다.

“정 실장님,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강산은 출근을 한 정 실장에게 오늘도 촬영이 있다는 걸 알렸다.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확실히 도울게요!”

정 실장 또한 의지에 불탔다.

삐걱거리는 대문이 열리고, 구 원장과 재마의 엄마가 명의 한의원을 들어왔다.

“어머니 오셨어요!”

강산은 경옥을 알아보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강산이 와 있었구나!”

재마와 제일 친한 동기라는 걸 아는 경옥은 반가움에 강산의 손을 왈칵 잡았다.

한의대를 졸업하고 나서 정한 한방병원에 입사할 것이라고 찰떡같이 믿고 있었던 경옥은 재마의 상황이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강산이가 한의원 일 돕고 있는 거야?”

강산의 손을 잡은 경옥이, 동기인 강산이 함께 진료를 보고 있는지 물었다.

“아뇨. 그건 아니고 재마가 새롭게 시작하는 일을 제가 돕고 있어요.”

“새로운 일?”

경옥은 한의원 동기인 강산이 한의원 일이 아닌 다른 일을 돕는다는 것에 의아한 얼굴이었다.

“구 원장님 오셨어요.”

재마는 진료실에서 나와 오래간만에 명의 한의원을 찾은 철원을 부축했다.

“할아버지 밖에서 한참 서 계셨었어.”

철원과 함께 택시를 타고 온 경옥이 넌지시 재마에게 할아버지의 상황을 알렸다.

“왜요. 서운하셔서요?”

재마는 혹여 이제는 외손주에게 명의 한의원을 물려준 상황이 서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서운하지 않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고, 내 세상은 다 갔구나. 이제 내 후손의 세상이 왔구나 하는 감정이 복받치더구나.”

할아버지는 40년 진료를 맡았던 자신만 없을 뿐 명의 한의원 명성 그대로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이 평상은 무얼 하려고 뒀어. 요즘 병원에는 이런 것도 없는 데.”

재마가 젊은 녀석이니 한의원의 오래된 물건들은 다 처분할 것이라 예상했던 구 원장은 마당에 있는 평상을 바라봤다.

“무얼 하긴요. 진갑순 환자하고, 박옥숙 환자가 오시면 꼭 여기에 앉아서 한참 담소 나누시는데.”

정 실장은 오래간만에 한의원을 방문한 구 원장의 손을 잡으며 평상이 없으면 서운하다는 듯 말을 했다.

“정 실장이 고생이 많네. 내가 갑자기 떠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이 녀석까지 맡기고 가서.”

“아니에요. 구 원장님 손자가 맞는구나 싶을 정도로 잘하시는걸요?”

정 실장은 손사래를 치며 자신이 고생하는 건 없다고 대답했다.

재마의 눈앞에는 이제는 익숙한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전임자의 만족도 99%]

재마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구 원장이 서운하다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 서운함은 1%밖에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새로운 명의 한의원을 만들어보겠다 장담했던 재마를 바라보며 구 원장이 걱정했던 시간들이 무색해지는 메시지였다.

이제 구 원장까지 명의 한의원을 믿고 맡기는 상황에 다다른 재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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