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38화
명의 한의원의 진료실.
목요일 진료가 끝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재마의 진료실로 모여들었다.
원장인 재마와 너튜브 촬영과 편집을 맡게 된 강산, 정 실장과 최 실장까지 좀처럼 이렇게 모이기도 힘든 데 진료실을 꽉 채워 모였다.
“음…….”
“…….”
“이런 영상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요?”
재마는 다른 사람들보다 유정의 표정을 빤히 바라봤다.
아무래도 유정은 이미 너튜브 채널을 이미 운영 중이니, 보는 안목이 있을 것이란 기대였다.
정 실장은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했지만, 남들이 예 할 때 아니오! 라고 당당히 말할 줄 아는 최 실장은 영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전 괜찮은데요?”
정 실장과 최 실장의 미심쩍은 반응을 들을 때와 달리 유정에게 좋을 것 같다는 대답이 들리자, 재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괜찮죠? 정말?”
“네. 제가 조금 걱정되는 건, 채널 첫 영상부터 외부로 봉사활동을 가는 젊은 한의사라는 내용이 너무 설정 같아 보일 것 같기는 한데…….”
역시나 전문가인 유정은 문제점을 콕 집어냈다.
보여주기식의 영상은 오히려 득보다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지난번에 유둉 님이 말씀하신 한의원 소개 영상도 편집 완료했습니다. 이걸 1화로 할지, 2화로 할지 제가 보기에는 둘 다 잘 나와서…….”
유정에게 한 번 칭찬을 받은 강산은 이번에도 자신만만하게 준비한 영상을 play 했다.
“오, 우리 한의원이네요.”
“이야, 역사가 깊은 한의원이라고 혼자만 자부심 느끼고 다녔었는데, 이렇게 찍어두니 좋은데요?”
조금 전 영상의 반응보다 정 실장과 최 실장은 이제는 과거가 된 20년 가까이 몸담았던 명의 한의원의 모습에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어? 저기 최 실장 뒷모습 아니에요?”
“허허. 무슨 산도적도 아니고, 제가 원래 저렇게 덩치가 큰가요?”
화면으로 보는 자신의 모습이 생소한지, 최 실장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진복순 님, 쌍화차 한 잔 드세요.
-아이고, 나는 명의 한의원 쌍화차가 제일 몸에 잘 받어. 한 잔만 마셔도 몸이 뜨끈해지는 것이.
“하하. 정 실장님하고 진복순 님도 화면 잘 받으시는데요?”
“저는 부끄러워요. 모자이크 안 되나요.”
부끄럽다며 정 실장은 양 볼을 손으로 가렸다.
“정 실장님이 어쩌면 이 원장보다 더 자주 등장하실 것 같은 데 모자이크는 절대 안 되죠! “
강산은 명의 한의원하면 빠질 수 없는 정 실장을 치켜세웠다.
-해인동 명물인 명의 한의원 다닌 지, 40년은 되었지. 암만.
-어르신이 다른 한의원 아니고 명의 한의원을 고집하시는 이유가 있으세요?
-뭐겄어. 직원들 친절하지, 원장 슨생님 잘생겼지.
진갑순 환자가 평소에는 하지 않던 재마의 칭찬에 재마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뿐이야? 아픈 곳은 말을 다 하지 않아도 콕콕 집어서 침을 을매나 잘 놔주는지.
“진갑순 환자께서 우리 한의원 홍보를 톡톡히 해주시는데요?”
“앞으로 더 잘 찍어주세요.”
“하하. 예쁘게 찍어드리고 보정도 좀 넣어드리고 그럴게요.”
“어머. 보정도 되나요?”
“분위기 화사하게?”
강산은 정 실장의 물음에 막힘없이 대답을 하며 그녀를 띄웠다.
“그리고 자, 이제 3분 45초부터는 우리 이재마 원장님이 직접 진료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편집과 자막이 있음에도 강산은 입이 근질근질한지 참지 못하고 영상을 설명했다.
그의 설명대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 모습의 명의 한의원을 잘 표현한 영상이었다.
“강 선생님 전문적으로 영상편집 배우셨어요?”
재마의 동기라고 소개를 받았는데, 촬영하고 편집을 한 영상을 보니 전문가라고 해도 믿을 만한 솜씨였다.
조용한 편인 정 실장의 칭찬에 강산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한의사 면허 떨어지고 독학으로 연습했습니다. 실전으로 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고요.”
“처음인 실력처럼 안 보이는데요?”
아직까지 자신의 영상을 직접 편집하는 유정 또한 그의 실력에 놀란 눈치였다.
“여기에다 원장님 목소리도 들어가는 건가요?”
“크. 영상 담당으로 다 된 영상에 이재마를 뿌리는 것이 썩……. 맘에 들지는 않지만, 명의 한의원, 하면 이재마가 생각나야 하는 것 맞죠?”
“사실 나도 그게 걱정이다. 다 된 영상에 코 빠뜨리는 걸까 봐.”
강산의 농담에 진지하게 대답을 한 재마는 고민에 빠진 얼굴이었다.
“구 원장님이 하시는 건 어때요?”
제 의견은 톡톡히 내는 편인 최 실장이 자신의 의견을 내뱉었다.
“구 원장님이요?”
지금까지 명의 한의원의 전 대표원장이자 재마의 외할아버지인 구 원장을 만난 적이 없는 강산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명의 한의원 역사의 산증인이시기도 하시고 진료를 보는 장면은 이 원장님이, 한의원을 소개하는 첫 영상의 내레이션은 구 원장님이 하시면 세대교체가 되는 느낌도 날 것 같은데…….”
강산은 내레이션을 담당하기로 했던 재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최 실장의 의견이 어떠냐는 뜻이었다.
아직은 너튜브 채널을 운영한다는 것에 부담이 있었던 재마는 최 실장의 의견에 솔깃했다.
특히 구 원장이 내레이션을 맡아주기만 한다면 뜻깊은 일이 될 것 같았다.
“최 실장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동의 안 하시는 분?”
재마의 동의가 떨어지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1편을 어떤 영상으로 할지만 결정하면 되는 거죠?”
명의 한의원의 전 직원들이 모인 가장 중요한 이유.
채널을 오픈하고 가장 중요한, 첫 스타트를 끊을 영상을 결정해야 했다.
“전 한의원 소개 영상이요.”
“저도요. 우리 명의 한의원을 가장 먼저 소개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정 실장과 최 실장도 적극적으로 1편으로는 명의 한의원의 모습을 소개하는 영상을 올리는 걸 원했다.
“그럼…… 유정 님은요?”
재마는 너튜버 선배 격인 유정에게 물었다.
“저도 한의원 영상이요. 구 원장님이라는 분의 내레이션도 기대가 되고요.”
재마는 유정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유정 님 의견에 무조건 따를 거고.”
“그럼 그럼.”
강산의 의견은 물어보나 마나라는 듯, 재마는 넘겼다.
“그럼 첫 영상은 명의 한의원 소개 영상으로 합시다.”
“네.”
직원들은 재마를 바라보며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채널명은 정하신 겁니까?”
최 실장은 가장 중요한 것을 듣지 못했다는 듯 물었다.
“아, 채널명은 고민하지도 않고 결정한 게 있는 데요.”
강산은 재마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대답하라고 종용했다.
재마는 채널명을 말하자니 부끄러워서 관자놀이에 소름이라도 돋는 기분이었다.
“‘환자를 읽는 한의사’로 하기로 했습니다.”
“오 좋은데요? 마치 눈으로 환자를 스캔하기만 해도 병명을 다 알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컥.”
역시 촉이 좋은 유정이 허를 찔렀다.
재마는 허를 찔렸다는 듯, 사레가 걸렸지만 재마 말고 다른 사람들은 그저 농담으로만 받아들였다.
“오, 그런 능력 좋다. 나는 그런 능력 안 생기려나. 이렇게 환자를 보면 광채가 쓰윽 나오고 이런 거 말이죠?”
강산은 마치 자신의 눈앞에 광채가 나오는 것처럼 눈을 부릅뜨고 주변 사람들을 바라봤다.
“음, 정 실장님은 위염이 좀 있으신가 보네요.”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최 실장님은…… 관절염이 있으시고…….”
마치 능력이라도 생긴 것처럼 강산이 읊었다.
‘저 녀석 뭐야?’
재마만 그의 얼굴을 의심스럽게 바라봤다.
“에이. 지금 하신 말씀들은 저희가 근무하는 모습 보고 찍으신 것 아닙니까. 진맥도 안 보고 어떻게 안 좋은 것을 알아내신다고.”
최 실장은 한의원 직원 경력 20년답게, 말도 되지 않는다며 투덜거렸다.
“그런 능력 생기면 한의원 면허 준비 다시 하시려고요?”
“그런 능력만 주어진다면 백 번도 하죠. 아니다 한 번에 붙겠구나.”
직원들 역시 그런 능력은 있을 수 없다는 듯 웃고 떠들었다.
‘나만 심각한 건가.’
재마는 혹여 자신의 능력을 들키기라도 할까 봐 안경을 고쳐 썼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도 점점 그의 변한 눈동자 색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지만, 재마는 여전히 신경이 쓰였다.
“이 녀석은 제가 장담합니다.”
강산은 재마의 목에 팔을 휘감으며 이야기했다.
“장담?”
“백 프로, 아니, 만 프로 노력형이에요. 독한 자식. 한의대에서 수석을 한 번도 안 내놓을 정도였는 데 그런 능력이 없어도 환자만 봐도 척하면 척, 착하면 착. 알아보는 거죠. 그래서 ‘환자를 읽는 한의사!’”
“채널명 좋네요.”
강산이 재마를 백 프로 만 프로 장담한다는 이야기에 모두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채널명 정해졌고, 첫 영상도 준비되었고. 내레이션은 구 원장님께 부탁하면 강산이 할 일은 끝났네.”
“내일모레 정확히 10시, 10시에 업로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영상을 채널에 올리는 데도 시간이 소요된다. 강산은 영상을 미리 올려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재마의 한의학 전문 채널, ‘환자를 읽는 한의사’에 첫 영상이 약속 시간에 정확히 올라갈 수 있도록 준비하기로 했다.
재마뿐 아니라 명의 한의원의 직원들, 그리고 너튜버인 유정이까지 첫 영상에 대한 기대에 찬 얼굴이었다.
* * *
이제는 익숙해진 명의 한의원 내 재마의 방.
지난번 한의원 손볼 곳을 공사를 하며 재마의 숙소도 고민했다. 예전처럼 한의원 내 구 원장님이 쓰시던 방을 사용할지, 따로 정할지 고민했지만, 결국에는 명의 한의원 내에서 지내기로 했다.
약간의 수리만 한 것이었지만, 도배 장판을 새로 한 덕에 처음 방에 들어왔을 때보다는 말끔해진 분위기에 재마의 스타일로 꾸며서 정이 들고 있는 방이었다.
“후.”
이제는 익숙해진 방의 천장이었지만, 잠에서 깨어 눈을 뜨니 오늘만큼은 색다른 기분이었다.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켠 재마는, 조심스럽게 휴대 전화를 들어 너튜브를 접속했다.
-원장님, 첫술에 배부를 수 없어요. 차분히.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어제 너튜브에 채널을 개설하고 첫 영상을 올라오자 연락을 했던 유정의 충고가 생생했지만,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물론 그녀의 말을 이해 못 한 건 아니었다.
어떻게 생전 처음 하는 너튜브를, 유명해서 얼굴이 알려졌거나 한번 보면 그의 영상을 찾아볼 정도로 뛰어난 외모도 아닌 데 첫 영상부터 눈에 띌 수 있으랴.
백번 이해했지만, 눈을 뜨자마자 조회 수를 확인하고자 하는 욕망은 떨칠 수 없었다.
빨간색 너튜브 어플을 누르고 빠르게 그의 첫 영상을 찾았다.
자신의 프로필 사진과 ‘환자를 읽는 한의사’라는 당당한 채널명.
구독자 수 7명
재마, 강산, 유정, 정 실장님, 최 실장님을 제외하면 두 명이 더 붙었을 뿐이었다.
“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도 모르게 기대를 했던 탓인 것 같았다.
“그래도 럭키 세븐. 첫날 7명이 구독을 했으니 행운이 오길 기대해야 하나.”
재마는 애써 희망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재마는 침대 위에 휴대 전화를 던져 놓았다. 진료 준비를 하려면 씻어야 하기에 샤워를 하러 방을 나섰다.
띠링.
띠링.
띠링.
재마가 방을 나선 뒤로 계속해서 울리는 알림음.
재마는 샤워를 마치고 방에 들어올 때까지도 너튜브 알림 설정을 켜놓은 걸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