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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34화 (34/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34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해인동 명의 한의원으로 함께 온 강산은 한옥 그대로의 모습인 명의 한의원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너 한의원을 인수했다더니, 드라마 세트장을 인수한 거 아니야? 아니면 너 취향이 혹시…….”

“그런 거 아니야. 그럴 이유가 다 있었어.”

“이 문 열고 들어가면 허준에서 나오던 의녀 복장한 선생님 나오고 이런 거 아니지?”

“아냐. 인마. 헛소리하지 말고 들어가자.”

한의학과 6년을 함께 수련을 하는 동안 이런 한의원을 인수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며 재마를 아래위로 훑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강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재마는 아직 구 의원의 이야기도, 구 의원과의 관계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지방이었지만, 번듯하게 자리 잡은 아버지의 한의원도 마다하고 방황하고 있는 강산에게는 가업을 잇는다는 건 남의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와아우. ‘유뎡이의 하루하루’의 유뎡 님이 이 녀석 환자인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재마의 지금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고, 수차례 중얼거리던 강산은 너튜브 영상에 도움을 주기로 한 유정이 한의원에 들어오자, 그녀를 한눈에 알아본 눈치였다.

“어머. 제 채널 알고 계세요?”

“알다마다요. 구독자 1,000명도 되기 전부터 구독하고 있었는데요?”

“정말요? 대애박.”

유정은 뜻밖의 곳에서 구독자를 만나서 일지, 아니면 청바지에 셔츠만 입어도 엔터테인먼트 매니저들의 명함을 수두룩하게 받아 온 강산을 만나서 일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 이쪽은 대학 동기 강산이에요.”

“반갑습니다. 유뎡 님.”

재마의 소개에 강산이 유정에게 덥석 손을 내밀었다.

“김유정이에요. 대학 동기시면…… 강산 님도 한의사세요?”

“아, 유정이라 유뎡 님이시구나! 하하.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 중인 한의대 졸.업.생입니다.”

강산은 자신이 아직 한의사 면허가 없는 졸업생 신분이라는 것을 이야기했지만, 유정은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의대 졸업하면 다 한의사가 되는 게 아닌가요?”

한의대 동기라는 말에 강산과 재마를 번갈아 바라보는 유정은 강산도 한의사인지 물었다.

“졸업한다고 다 한의사는 못되죠. 저희도 한의사 면허 시험을 봐야 해요. 저는 떨어진 상태고. 이 녀석은 한 번에 붙고, 이렇게 번듯한…… 아니다. 번듯은 아닌가.”

유정을 귀엽게 부르는 발음인 유뎡이라는 닉네임이 부끄럽지도 않은 지, 강산은 입에 잘도 올렸다.

옆에서 듣고 있는 재마는 손가락이 없어지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하긴 ‘유뎡의 하루하루’의 찐구독자라니 저 정도 항마력은 갖추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한의대 6년 동안 강산과 함께 붙어 다니며 188㎝이 훌쩍 넘는 키의 강산과 자신의 외모가 비교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했었지만, 오늘처럼 피부에 와닿은 적은 없었다.

“하하. 저는 유정 님이 너튜버이신지도 몰라뵀는데, 비교되네요.”

재마는 유정 앞에서 무슨 소리를 더 할지 모르는 강산의 입을 막으려고 둘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재마는 자신의 환자였지만, 그녀의 직업이 너튜버인지도 몰랐다는 것에 민망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너는 인마. 눈- 썰미가 없어. 눈썰미가. 유뎡 님처럼 귀여운 외모로. 평범하실 리가 있겠니. 뭐라도 하셔야지.”

강산은 자신의 눈을 손가락 두 개로 가리켰다가 재마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자신과 비교가 된다는 뜻이었다.

뭔들 상관없었다.

“그…… 그런 거야?”

“귀엽다는 소리는 많이 듣지만, 아직 저도 갈 길이 먼 너튜버인걸요.”

“유뎡 님 앞날은 훤합니다.”

유정을 유뎡이라 부르며 강산은 양손을 쫙 펼쳤다.

“근데 유뎡 님은 어디가 아프셔서 한의원에 오셨던 거예요?”

“지난번에 라이브 잠깐 했었는데…… 발목을 삐어서요.”

유정이 다쳤던 발목을 내려다보며 이야기하자 강산은 안타깝다는 듯 울상이 되었다.

“아이고. 제때 치료받지 않으시면 습관성 염좌로 발전해요.”

“네. 그래서 봉독침 맞았는데…….”

유정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강산을 안심시키기라도 하는 듯, 지난번에 치료 받은 이야기를 하는 두 사람이었다.

“너 봉독침 처방했냐? 짜식. 잘했네. 우리 유뎡 님 치료 완벽하게 해드려라. 응?”

“너에겐 유뎡 님일지 모르겠지만, 나한테 환자시거든. 걱정 마라.”

“아니지. 너튜브(Neotuve)에 너자도 모르는 너를 도와주겠다고 나서신 유뎡 님은 천사시지. 천사.”

“천사요? 호호. 정말요?”

강산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농담이 그리 좋은지 하하 호호 웃는 유정과 강산의 모습에 재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유뎡 님, 유뎡 님 잘도 말하는 강산을 따갑게 노려보며 재마는 진료실 모니터에 ‘꿈속 요양원’을 다녀온 영상을 유정이 볼 수 있도록 연결을 했다.

“자, 한번 봐주시겠어요? 제가 찍고, 어제 편집을 좀 해봤거든요.”

재마가 브이로그를 한다고 했을 때 영상촬영과 편집을 부탁하자 온갖 생색을 부리던 강산은, 정말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영상을 열심히 편집했다.

거하게 얻어먹겠다, 일당을 두둑히 받겠다, 말하던 강산은 유정과 대화를 나누느라 일당은 잊은 듯 보였다.

“와, 여기 배경 정말 좋네요.”

일상 브이로그를 찍는 유정은 아무래도 영상의 배경이 되는 홍천의 자연경관이 맘에 드는 모양이었다.

“일상 브이로그 찍으려면 매일 똑같은 주제와 배경이라 자칫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할 때 많거든요. 여기 너무 좋은데요?”

1박 2일간의 꿈속요양원의 봉사활동의 영상을 40분가량으로 편집을 한 강산은 이미 4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유정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그녀의 평가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음…….”

“음?”

평소에 요즘 유행한다는 너튜브 브이로그에도 관심이 없을뿐더러, 스스로 너튜브나 방송을 할 생각이 일절 없었던 재마는 강산이 편집을 해준 영상으로는 감흥이 전혀 오지 않았다.

“좋긴 한데…… 사실 40분 정도 브이로그가 길기는 하거든요.”

“이것도 엄청 편집을…….”

“넌 닥치고.”

1박 2일 동안 어르신들을 진료하며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40분이 모자랐다는 이야기를 하려던 재마의 입을 틀어막은 강산은 유정의 이야기를 잠자코 들었다.

“일단 우리 유뎡 님 말씀 좀 듣자. 응?”

“내용은 좋을지라도, 구독자들은 진료 과정을 보는 것보다는 젊은 한의사의 일상, 남들과 다를 것 같으면서도 평범한, 우리 옆에 있는 가까운 사람이라고 느끼고 싶어서 브이로그를 찾아보는 거거든요?”

“그렇죠. 그렇죠.”

강산은 유정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첫 브이로그니까 40분 브이로그를 조금 더 짧게 편집하고, 봉사활동을 다녀온 후 느낀 점을 뒤풀이하는 느낌으로 두 분이 허심탄회하게 담소를 나누는 이야기를 뒷부분에 넣는 게 어떨까 싶어요.”

“그것 좋네요!”

맞장구를 치고 있던 강산뿐 아니라, 강산의 말대로 너튜브에 너, 자도 모르던 재마도 무릎을 ‘탁’ 칠 정도로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아직 구독자 수가 4만이라는 수밖에 안 된다고 겸손하게 말을 했던 유정이었지만, 구독자의 니즈(needs)를 파악하는 감각이 있는 것 같았다.

“두 분 대화하시는 영상은 제가 찍어 드릴게요. 아, 그리고 한의원 소개하는 영상도 찍었으면 좋겠어요.”

유정은 다음 영상에 대한 아이디어가 생각났는지 한의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 한의원이요?”

“이제 개발한다, 어쩐다, 동네가 들썩이잖아요.”

“그렇죠.”

“이렇게 좋은 건물이 그냥 개발 속에 묻혀 사라지는 것, 원장님은 괜찮으세요?”

“네?”

해인동에서 꽤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명의 한의원이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정은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여기 개발 예정지야?”

유정이 오기 전, 조선 시대 회귀를 한 거냐. 어떤 생각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한의원을 인수한 거냐 한숨을 푹푹 내쉬던 강산은 처음 듣는 소리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긴 한데…….”

“1구역 쪽은 이미 이주가 시작됐지만, 여기는 아직 결정 난 건 아니잖아요. 저는 오랜 시간 이 자리에 있었던 명의 한의원이 사라지는 건 좀 아니라고 봐요.”

“너, 혹시…….”

“조용히 해.”

유정의 하는 말이라면 무조건 엄지를 척 들어 올릴 태세로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강산이었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의견인 모양이었다.

안타까워하는 유정 앞에서 이제야 알겠다는 듯 음흉한 미소를 짓는 강산이 재마의 옆구리를 찔렀다.

“거기에다 지난번에 제가 제안 드린, 합방.”

“합방이요?”

이번에도 엄지를 치켜세울 준비를 하던 강산은 합방이라는 단어에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떻게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하고 합방을 하실 생각을…….”

“너 합방이 무슨 이야기인 줄은 알지?”

“알지. 그럼. 뭐 다른 뜻일 리가 있냐!”

강산은 재마가 우려하는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는 듯이 암바 자세를 취했다.

“지난번에 제가 라이브 방송을 하고 궁금해하시는 구독자분들도 계시니 나쁘지 않은 제안 같아서요. 채널 홍보도 될 것 같고요.”

“제 주변에는 이 녀석 말고도 잘나가는 한의사 동기들 많은데…… 이미 너튜브 데뷔한 선배님들도 계시고…….”

“너 누구 편이냐?”

재마의 채널을 홍보차 합방을 하자는 유정의 제안에 초를 치고 나서는 강산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찌르는 재마였다.

“너튜브 시작해서 명의 한의원이 더 유명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냥 개발지에 묶여 사라지는 건 너무 아쉬운 것 같아요.”

“네. 아무래도 명의 한의원의 역사가 있는 곳이니.”

5대째 내려오는 명의 한의원. 비록 30년 가까이 생사도 모르던 외할아버지가 한평생 몸담으시고, 구씨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가업을 이어받은 꼴이었다.

하지만 명의 한의원과 환자를 읽는 능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재마는 꿈도 꾸지 못할 터였다.

그저 이름이 번지르르한 대형 한방병원에서 페이닥터를 하며 매일 입원실 자리가 없을 정도로 밀고 들어오는 교통사고 환자들, 그리고 척추병원의 수술과 비수술 방법인 한방치료를 고민하는 환자들을 만나며 똑같은 진료와 똑같은 방법의 의술을 펼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앞으로 이곳에서 재미있는 영상 많이 만들어봐요. 제가 장담할게요. 이 채널 대박 날 것 같아요. 꼭 유명해져서. 우리 명의 한의원 지켜내요. 네?”

구독자 4만 명의 ‘유뎡의 하루하루’.

소재를 보는 그녀의 눈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재마의 채널이 성공할 것이라는 것을 장담했다.

명의 한의원을 지켜내라는 미션을 받은 재마보다도 유정이 더 적극적인 태도로 나섰다.

“그럼 두 분이 이번 의료 봉사활동 브이로그를 찍은 뒷이야기 찍으러 가보실까요?”

유정은 두 사람의 뒷이야기 또한 기대된다는 듯, 발을 동동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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