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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32화 (32/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32화

반짝 거리는 세 장의 카드.

아침부터 재마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보상카드를 열고 싶어서 안달이 난 재마는 혼자 강산이 씻는 틈을 타 슬쩍 열어보았다.

[동공지진]

‘동공지진?’

재마는 뜻밖의 네글자를 확인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똑똑.

“네!”

방금 전 열어 본 카드에서 어떤 보상을 주어졌는 지 파악도 하기 전에 재마의 방문을 두드리는 인기척에 벌떡 일어난 재마는 방문을 열었다.

아침 식사를 함께 하기로 한 진 주임이었다.

“아침 식사 하러 가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어제 늦은 시간까지 진료를 다 마치지 못했다면 오늘 오전까지 진료할 생각이었는데, 예상보다 빨리 끝나 오전에는 한가했다.

‘영락없이 보상은 서울 가서 환자를 만나야 알 수 있겠군.’

재마와 강산은 짐을 챙겨 진 주임을 따라나섰다.

“여기가 홍천에서는 제일가는 막국수 집입니다.”

산골에 있는 꿈속요양원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식당을 잡다 보니, 식당을 찾는 데 한계가 있었다.

“저희는 무엇이든 다 잘 먹습니다.”

“돌도 씹어먹을 때라서요.”

막국수집으로 안내한다는 것이 민망한지, 계속 변변찮은 음식을 대접해 죄송하다는 소리를 하는 진 주임에게 재마와 강산은 손사래를 쳤다.

“먼 곳까지 오셔서 어제 늦은 시간까지 고생하셨는데, 송구스럽습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아, 제가 부탁드릴 것도 있고요.”

계속해서 송구스럽다는 이야기를 하는 진 주임을 진정시킨 재마는 부탁이 있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부탁이요?”

서울에서 봉사를 온 재마에게 부탁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 한 진 주임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제 제가 진료를 하는 모습을 친구 녀석이 짧게 영상을 찍었는데요.”

강산은 자신의 휴대전화 갤러리를 열어 진 주임 앞으로 건넸다.

“이 영상을 편집해서 제가 사용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홍천에 있는 모 요양원이라고까지는 밝히고 싶고요.”

요양원의 명칭을 정확히 밝힐 수는 없어도 지역명까지는 밝히고 싶다는 의사까지 재마는 전했다.

“괜찮습니다. 괜찮고말고요. 원하신다면 저희 요양원 측에서 찍은 영상도 사용하셔도 됩니다. 천천히 보시죠.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진 주임은 어렵지 않은 부탁이라는 듯,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진료 영상을 재마에게 꺼내 보였다.

요양원 측에서도 재마의 봉사 영상을 남겨 놓은 모양이었다.

진 주임이 화장실을 간 사이 강산과 머리를 맞대고 진 주임의 영상을 확인한 재마와 강산은 반색을 했다.

“오, 이거 좋은데?”

“네가 찍은 것보다 낫다.”

“이러기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여기까지 따라와 준 동기한테?”

진 주임이 자리를 비운 사이, 강산과 재마는 친구들끼리 할 수 있는 말을 편하게 했다.

화장실을 다녀온 진 주임은 두 사내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어제만 해도 어르신들을 진료할 때는 한의사로서 역할을 다 했다. 그런데 오늘 정준 앞에 있는 두 사내는 그와 10살은 차이 나 보이는, 아직 어린 티가 확연히 났다.

“원장님한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저희는 영상 사용에 큰 문제는 없습니다. 대부분 어르신들의 모습은 뒷모습이고요. 저희 원장님께는 제가 월요일에 보고드리겠습니다.”

“가능하면 모자이크 처리 등으로 생길 문제는 최소화하겠습니다.”

화장실에서 돌아와 다시 마주 앉은 정준에게 재마는 고개를 숙여 감사하다는 표시를 했다.

강산이 찍은 짧은 영상을 사용하겠다는 허락을 받기 위해 진 주임에게 양해를 구한 것인데 본의 아니게 진 주임에게 도움을 받게 되었다.

요양원에 계시는 어르신들이지만 그들에게도 초상권은 있었다.

아직 채널을 만들지도, 재마가 올리는 영상들을 누가 봐줄지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동의도 없이 어르신들의 얼굴을 공개할 수는 없었다.

“이 영상이 너튜브에 올라가게 된다면 꼭 알려주세요. 어르신들을 자주 찾아오시지 못하시는 가족분들에게 영상으로 보여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진 주임은 자신이 찍은 영상이 순기능으로 이용될 날이 기대되는 눈치였다.

“오 그거 좋은데요?”

명의 한의원의 홍보용으로 채널을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꿈속 요양원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 좋은 영향이 될 수도 있었다.

[동공을 인식합니다.]

‘맞다. 보상이 동공…… 지진이었는 데?’

재마는 정준의 동공과 자신의 동공이 마주치자 보상에 대한 생각이 번뜩였다.

꿈속요양원에 오자마자 어르신들을 먼저 진료하느라 진 주임과 이야기를 나눌 틈이 없었던 재마는 그제야 진 주임의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름 : 진 정준

나이 : 36세

1형 당뇨 요당 수치가 높은 상태

재마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동공지진, 바로 동공으로 병을 어루만진다는 뜻이었다.

동공을 읽었을 때 섬광으로 병의 상태를 추측만 하던 능력에서 정확한 병명을 알아낼 수 있는 보상으로 진화했다.

‘대박. 이거 쏠쏠한데?’

반나절 내내 그와 함께 있던 진 주임의 생활습관에서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 있었던 터였다.

“주임님, 1형 당뇨를 앓으시나 보네요. 어릴 때부터 시작된 오랜 지병이신가요?”

“어? 어떻게 하셨습니까?”

진 주임은 자신의 병을 콕 집어 이야기하는 재마의 모습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재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 진 주임의 상태를 물었다.

진 주임과 재마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강산도 놀라운지 재마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봤다.

이번에도 재마는 진맥도 하지 않고, 정확하게 진 주임의 병명을 짚어냈다는 의심의 시선이었다.

“갈증도 잦게 느끼시고, 그만큼 화장실도 자주 가시죠?”

“네. 사실 소아 당뇨부터 함께한 병이라 오랜 친구 같기도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하하. 조금 부끄럽네요. 제가 어제도 화장실을 자주 가기는 했죠?”

재마의 물음에 정준은 부끄러운지, 얼굴을 살짝 붉혔다.

“발병 이후에 다뇨는 대표적인 증상이니, 부끄러워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2형까지는 가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 중입니다. 식단도 조절하고, 꾸준한 운동도 하고 있고.”

진 주임은 병과 오랜 친구처럼 지냈다고 긍정적인 말을 했지만, 병이 악화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활습관으로 조절하시면 체내에 쌓여 있는 독소를 해결하고 건강한 신체 환경을 만드는 데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한의학적인 치료방법도 있습니까?”

정준은 재마가 먼저 당뇨 이야기를 꺼냈으니,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병에 대해 물었다.

어릴 때부터 병원을 제집처럼 들락거렸지만, 2형 당뇨에 대한 두려움은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었다.

“한의학에서는 한약재를 이용해 장내 건강한 환경을 만드는 것을 우선으로 합니다. 노폐물을 해독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거든요.”

재마의 설명에 정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시간 투병해 왔으니,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식단 조절과 운동을 잘하셨으니 그것만 지키셔도 2형까지는 가지 않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시고 혹여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재마는 언제든 정준이 연락을 하면 도움을 주겠다는 듯 이야기를 했다.

정준은 감사하다며 재마의 손을 덜컥 잡았다.

* * *

식사를 마친 진 주임은 재마와 강산을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데려다주었다.

한 시간에 한 번 다니는 시내버스를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올 생각에 아득했던 두 사람은 감사할 따름이었다.

정준은 서울로 올라갈 두 사람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고 또 만날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조심스럽게 전했다.

두 사람이 터미널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손을 흔드는 진 주임을 뒤로하고 강산과 재마는 터미널 안으로 들어왔다.

터미널 안에 들어서자마자, 강산은 재마의 목을 팔로 휘감았다.

재마는 주머니에 있던 선글라스를 재빨리 꺼내 썼다.

“이 녀석 보게. 이제는 진맥도 짚지 않고 당뇨병도 알아내고 너, 뭐야? 신내림이라도 받았어?”

자신의 눈동자를 의심할 것이라 생각한 재마는 선글라스를 찾아 썼지만 강산은 아직 눈치를 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야말로 재마의 동공이 지금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신내림은 무슨. 한의학 수련한 녀석 입에서 나올 말이냐. 그게.”

신내림이라는 말에 재마는 자신의 목에 있는 팔을 신경질적으로 내쳤다.

“야, 수련을 해도 말이지. 눈만 마주치고도 병명까지 정확히 짚어내는 게 쉬워? 아니, 말이 돼?”

“눈만 마주치고 어떻게 병명을 맞춰? 어제 반나절이나 같이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 거지. 그게 센스야. 알겠냐. 애송아.”

“애송이이?”

강산은 다시 한번 재마의 목을 휘감았다.

“다시 한번 말해봐. 애송이? 애송이? 너 영상 못 쓰고 싶냐?”

“어쭈. 영상으로 날 협박해?”

재마와 강산은 둘만의 시간이 되자 영락없는 20대처럼 서로 가볍게 치고받았다.

“엄니. 엄니. 괜찮아유?”

“아이고. 배야. 아이고.”

그때, 터미널 간이 의자에 앉아 있는 두 모녀의 다급한 소리가 재마의 귀에 들어왔다.

“아이고. 지금이라도 택시 타고 병원에 가유. 이러고 버스 탈 수도 없을 텐게.”

“버스 놓치면 어쩔라고 그려.”

“까짓거 버스 놓치면 그만이지. 엄니 배가 아픈디. 사람 잡겄슈.”

허리를 펴지도 못한 채 앓고 있는 노모의 팔을 잡아끌며 병원으로 가자고 재촉하는 중년 여성이었다.

“저기…….”

“예. 왜유.”

“혹시 도와 드릴 일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재마와 강산은 다급해 보이는 모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젊은 사내 둘이 말을 걸어오자, 일단 경계를 하는 두 모녀는 동시에 두 사람을 아래위로 훑었다.

“괜찮아유. 그냥 엄니가 배가 좀 아파서 그러시는디, 택시 타고 병원으로 가면 되유. 엄니. 병원 가요. 네?”

“괜찮으시면 제가 좀 봐드려도 될까요?”

“그쪽이유? 그쪽이 뭔디 봐준다고.”

“아 이 녀석, 서울에서 한의원 원장이에요. 믿고 맡기셔도 돼요.”

경계를 풀지 않는 중년 여성의 시선에 강산이 재마를 가리키며 자신이 장담한다는 듯, 재마를 소개했다.

“한의원 원장이요? 진짜예유? 어려 봬는 디. 노인네들이라고 농담하면 안 돼요. 사람이 아픈디.”

말은 툴툴거려도 노모가 걱정이 되는지, 중년 여성은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농담 아닙니다.”

“못 믿으시겠으면 저희가 방금 꿈속 요양원 봉사 다녀오는 길인데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아이고. 더는 못 참겠으니 화장실이라도 다녀올 텡게. 여기 있어.”

“어르신, 잠시만요.”

배가 빵빵하게 부른 불쾌한 느낌에 앉아 있기도 힘든 어르신은 실랑이를 하는 딸에게 화장실을 가겠다 했다.

재마는 빠르게 어르신의 손을 잡아 부축을 하며 잠시 자신이 진맥을 해도 되겠냐 물었다.

“어휴. 엄니가 급하시다니까 보는 거예요.”

“네.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재마는 불편한 기색의 어르신의 동공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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