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28화
“야, 이재마. 너 이렇게 외진 곳은 어떻게 알고 봉사를 가는 거야? 인간적으로 멀어도 너무 멀다.”
재마를 따라나선 강산의 투덜거림은 예상처럼 끊이지 않았다.
홍천 터미널에서도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40분.
한 시간에 한 번 버스가 들어오는 외진 마을에 꿈속 요양원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구 원장은 자차로 이곳까지 오기는 했겠지만, 차를 가지고 온다고 해도 해인동에서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닌 곳이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로 주 6일 진료에 틈틈이 지방 요양원 봉사까지 새삼 구 원장이 존경스러운 재마였다.
오전 진료를 부지런히 마치고 왔지만, 꿈속 요양원이 있는 마을 어귀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꿈속 요양원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진정준입니다.”
멀리서 오기도 했지만, 요양원에서 만나기 드문 젊은 두 사내이기에 반가움이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안녕하세요. 이재마입니다. 이쪽은 제 대학 동기인 강산입니다. 혼자 오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데리고 왔습니다.”
이미 진정준 주임과 몇 차례 통화를 했던 재마가 나서서 그와 인사를 했다.
진정준 주임이 재마에게 어렵게 전화를 건 이유는 구 원장을 애타게 찾는 어르신 때문이었지만, 먼 곳까지 와서 어르신 한 분만 진료하고 갈 수는 없었다.
꿈속 요양원에 채 원장이 방문 진료를 하는 주기는 2주, 그 사이 재마가 환자분들에게 침이라도 한 번씩 더 놔드리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환자들을 재마가 혼자 보기는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기에 동기인 강산과 함께하게 되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저희야 한 분이라도 더 오셔서, 어르신들 만나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젊으시네요?”
처음 한의원 원장으로 재마를 만나는 환자들, 보호자마다 첫 마디가
‘한의사 선생님이 젊으시네요’, ‘의사양반, 나이가 몇인고?’ 등의 이야기이니 이제는 이상하지도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또래보다 어려 보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한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하루빨리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연배가 되기를 바랄 정도였다.
“이 녀석이, 졸업을 하자마자 겁도 없이 한의원을 인수했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말이나 못 하면 중간이나 갈 텐데 강산은 눈치도 없이 재마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재마의 한의사 면허가 아직 마르지도 않았다는 것을 떡하니 밝혔다.
“어르신들이 불편해하실까요?”
재마는 해인동에서 처음 진료를 시작했을 때, 경험이 없는 한의사에게는 몸을 맡길 수 없다고 했던 환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먼 곳까지 왔는데 진료도 보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꽤나 힘 빠질 것 같았다.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 내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요.”
진 주임은 혹시 자신의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켰을까 봐 두 손으로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말했다.
젊은 사람이 이 먼 곳까지 와서 싫은 내색하지 않고 예의를 갖춰 자신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에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에서 한 말일 뿐이었다.
구 원장 후임으로 온 해인한의원 원장이 그의 외손주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젊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구 원장을 봐온 진 주임은 그가 외손주에게 한의원을 맡긴 만큼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으리라 믿었다.
“더구나 구 원장님을 애타게 기다리시는 어르신께 원장님 외손주분이 와주시기로 했다고 미리 일러두기까지 했습니다.”
요양원에서 김 여사로 통하는 김정순 할머니는 진 주임의 이야기를 알아들은 것인지 구 원장을 애타게 찾다가도 재마가 온다는 이야기를 해주면 뚝 그치고는 했다.
보통 떼를 쓰기 시작하면 대화가 좀처럼 이어지지 않는 그녀였지만, 떼를 그치는 것만으로도 요양원 직원들의 일을 덜어주는 상황이었다.
“어서 가보시죠.”
“네.”
재마를 김정순 할머니에게 데려갈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운 진 주임과 달리 재마와 함께 봉사할 것이 걱정부터 앞서는 강산은 재마 옆으로 바짝 붙어섰다.
“야, 너 어르신들 감당 가능해? 요양원 봉사가 보통 일이 아니야.”
“너 인마. 너는 한의사가 환자 가려서 진료 볼 생각이냐?”
홍천 터미널에서 내려, 꿈속 요양원까지 들어오는 시내버스로 갈아탄 이후로 요양원에 대해 검색을 한 강산은 그때부터 걱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강산의 할머니는 정확히 7년을 꼬박 치매로 고생을 하시다 돌아가셨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는 이야기에도 자신의 가족들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지만, 사랑하는 할머니가 점점 기억을 잃고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것은 힘들기도 힘들었지만 괴로운 날들이 더 많았다.
강산은 그때의 기억이 다시 스멀스멀 몰려오는 기분에 안색이 좋지 않았다.
“해인동에 있는 네 한의원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곳에 계신 분들은 치매라고. 치매.”
강산은 진 주임이 혹여 들을까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하면서도 치매라는 병명에는 힘을 줘 강조를 했다.
치매 환자분들이 계신 요양원이라는 것은 재마 역시 알고 왔다.
“서울에 계신 환자들이라고 쉽고, 여기는 더 어려울 것 같냐. 똑같아 인마. 싫으면 너는 영상만이라도 찍던가.”
재마도 꿈속 요양원 어르신들이 어떤 분인지 모르고 오지 않았다.
진 주임과 통화를 하면서도 몇 번이고 들었던 이야기였다.
사실 미션만 아니었다면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댔을지도 몰랐다.
아직 한의사로서의 경험도 부족했고,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명의 한의원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태였다.
그뿐 아니라 당장 개발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불안한 상태에 지방 요양원 봉사까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마음을 더욱 단단히 먹고 온 재마였다.
하루는 기억이 또렷했다가도 다음 날은 본인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시는 분이 계신가 하면, 하루 종일, 일주일, 한 달을 꼬박 찾지 않는 자식을 기다리는 어르신도 계시다고 했다.
구 원장님을 기다리시는 어르신도 구 원장이 아니라 재마가 온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었다.
문전박대를 당할 수도 있었지만, 구 원장이 어떤 마음으로 이 먼 곳까지 봉사를 다녔는지 조금이라도 알고자 찾아온 재마였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모두들 대단한 결정이라고 할 정도의 미션을 받았으니, 미션에 대한 보상도 기대하고 있기도 했다.
아무튼 이곳에 발을 디뎠으니, 뒤로 물러날 수 없는 재마였다.
재마는 심호흡을 깊게 들이쉬고는 진 주임을 따라나섰다.
걱정을 한 보따리 풀어 놓는 강산보다 한 발자국 앞서며 재마는 더 이상 투덜거리지 말라는 듯 대답했다.
“쓸 만한 영상이 나올지나 모르겠다. 나 진짜 멀찌감치에서 영상만 찍는다. 알았지?”
환자를 만나기까지 걱정부터 앞선 강산은 정순이 묵고 있는 403호실까지 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재마에게 도움은 못 주더라도 한 병실 안에서 영상은 찍어야 하는 데 그마저도 걱정이 되었다.
“여기입니다.”
걱정을 품은 두 사내의 얼굴과 달리 숙제 하나를 끝낼 생각에 진 주임의 표정이 밝아 보였다.
“김 여사니임.”
“진 주임! 아이고.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어.”
병실 문을 노크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맨발로 한달음에 다가오는 할머니의 모습이 재마와 강산의 눈에 고스란히 들어왔다.
“오늘 구 원장님 말고, 구 원장님 외손주이신 이재마 원장님 오신다고 했잖아요. 모시고 오느라 늦었죠.”
진 주임은 정순이 잘 알아듣도록 차근차근 이야기를 했다.
구 원장이 못 오는 대신 재마가 온다는 것도 미리 이야기를 해놓은 모양이었다.
“아이고. 구 원장님. 먼 곳까지 이 노인네 봐주시러 오셔서 감사합니다.”
진 주임이 차근차근 이야기를 했지만, 그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한 건지, 아니면 기억을 하지 못하는 건지 정순은 재마에게 고개를 깊이 숙이며 감사하다는 인사부터 했다.
재마와 강산은 정순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모습에 절로 허리를 숙였다.
“어르신,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재마는 정순의 손을 잡으며 굽은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아직 그녀의 상태도 보지 못한 상태였는데, 벌써부터 감사의 인사를 받을 수는 없었다.
재마의 손길에 허리와 고개를 든 정순은 재마와 그의 옆에 있는 강산을 올려다보았다.
“아이고. 정석아.”
강산을 바라본 정순은 재마에게 언제 정성껏 인사를 했냐는 듯 손길을 뿌리치고 강산의 팔과 어깨를 두드리며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놈아. 어디 갔다가 이제 와. 이 엄니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데. 밥은. 밥은 먹고 댕긴겨? 잠도 잘 자고?”
“네? 어르신. 저기…… 저는…….”
강산은 갑작스러운 정순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진 주임을 바라봤다.
진 주임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당황해했다.
“김 여사님. 무슨 소리세요. 이쪽은 오늘 어르신들 봐주시러 오신…….”
“아이고. 이놈…… 이놈…… 아이고 예쁜 놈…….”
진 주임이 강산에게서 정순을 떨어뜨려 놓으려 그녀의 팔을 잡았지만, 그럴수록 정순은 죽었던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인 양 강산을 잡는 힘이 거세졌다.
병실에 들어서기에 앞서 걱정이 많았던 강산이었지만, 뜻밖의 상황에 당황스러움을 모두 드러낼 수는 없었다.
“네…… 네. 어머니. 저 왔어요. 왜 나와 계세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했던 강산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의 옷을 세게 잡고 있던 정순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강산의 반응에 정순을 만류했던 진 주임은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엄니가 보고 싶지도 않았냐. 이눔아. 진작에 오지.”
“바빴어요. 어머니 아들 잘났잖아요.”
강산은 정말 자신이 정순할머니의 아들이라도 된 것인 양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구 원장님을 그렇게 찾으시더니, 더 반가운 분을 만나셨나 봅니다.”
진 주임은 병실 안쪽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흘러내린 안경을 끌어 올렸다.
안경에 가려보려 했지만, 그의 눈물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정순에게 오래전 세상을 떠난 아들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정순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정주임이었다.
더구나 이렇게 뜻하지 않은 손님을 아들로 착각하실 줄은 더더욱 몰랐다.
“그러게요. 절 반가워하시는 것보다 더 기분이 뭉클합니다.”
재마 또한 강산이 어떤 마음으로 정순의 손을 잡았는지, 알기에 잠자코 병실 밖에서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
병실 안에 들어간 두 사람은 오래간만에 만난 회포라도 푸는지 침대에 나란히 걸터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장님. 그럼 다른 어르신들부터 진료해 주시겠습니까?”
진 주임은 두 사람을 한참 지켜보다가 다른 병실에 계시는 어르신들에게 재마를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