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26화
[새로운 환자를 찾아 떠나라.]
환자를 찾아 떠나라고?
설마 해인동 주민들이 모자라, 홍천까지 환자를 찾아 직접 떠나라는 거야?
지금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미션을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전 유정의 봉독 침술 직전, 봉독 침술 보상을 받아 유용하게 시술을 할 수 있었던 재마는 미션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명의 한의원에 온지 한 달.
한 달간 눈에 띌 정도로 재마의 실력이 성장을 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보상 카드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진갑순 할머니를 시작으로 노인정에서 어르신들도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구 원장의 은퇴 소식에 다른 한의원으로 옮겼던 환자들도 만족하지 못하고 재마에게 찾아오기도 했다.
‘한의원만큼 위치 선정이 중요한 과목이 없다.’
이런 말이 있을 정도로 한번 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한 과가 한의학이었기에 환자를 찾아 자신이 왕진을 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재마였다.
“원장님, 환자 치료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재마는 정 실장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 실장은 재마의 손에 들린 메모를 슬쩍 바라보며, 처치실에 있는 사이 꿈속 요양원 진 주임과 전화 통화를 한 것을 알아챘다.
진 주임이 꿈속 요양원을 담당한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어르신들을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지난 담당들보다 지극했다.
은퇴한 구 원장에게 부탁을 해보겠다고 직접 연락을 한 모습만 보아도 그의 마음이 정 실장에게 전달이 되었다.
“어쩌시기로 하셨어요?”
“네?”
자신의 물음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재마에게 정 실장은 메모를 바라봤다.
미션뿐 아니라 메모를 건넨 정 실장의 무언의 압박까지 느끼는 재마였다.
“진 주임님이라는 분과 통화를 했습니다. 구 원장님을 애타게 찾는 분이 계시다고.”
“아마 김 할머니실 거예요. 보름에 한 번 오시는 구 원장님을 기다리시느라, 봉사 날이 다가오면 요양원 앞까지 나와 기다리시고는 하셨었거든요.”
정 실장은 어떤 어르신인지 안다는 듯, 이야기를 했다.
정 실장의 얼굴에 아쉬운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제가 그곳까지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처럼 들리는데요.”
재마는 제 편이 없다는 듯 대답을 했다.
“그렇게 들렸나요?”
“네. 등을 떠미시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구 원장님과 꿈속 요양원 인연이 깊으셔서 저도 모르게 그랬나 봐요.”
정 실장은 웃으며 더 이상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비켰다.
“수고하셨습니다.”
침을 다 맞고 정리를 한 유정은 재마가 있는 마당으로 나왔다.
“원장님도 수고하셨습니다.”
“어때요?”
명의 한의원에 발을 디디고 들어올 때만 해도 절뚝 거리던 유정의 발을 바라보며 재마가 물었다.
유정은 자신의 아팠던 왼쪽 발에 의식적으로 힘을 빼고 있었지만, 신발을 신을 때만은 확실히 부종이 줄어든 것을 느꼈다.
“아픈 건 여전한 것 같아요.”
“아마 심각한 단계라 통증은 오래 갈 거예요. 빼먹지 말고 격일로 세 번은 치료받아야 해요.”
보통 한두 번 치료를 받고 나아진다는 기분이 들면 병원 오는 것을 귀찮아하는 것이 사람 심리였다.
하지만 유정처럼 인대가 약해져 습관적으로 발목이 접질릴 때는 꼭 꾸준한 치료가 있어야 했다.
안쪽에서 재마와 정 실장의 이야기를 들었던 유정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재마가 너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지 않더라도 자신이 조금만 도와준다면 합방까지는 아니어도 라이브를 초대한다거나, 자신의 영상에 출연하는 정도로 너튜브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지 시작을 할 계기만 있다면 성장할 수 있는 길은 무궁무진했다.
“원장님, 저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유정은 재마가 과연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끝을 흐리며 입을 열었다.
“네?”
“너튜브에 한번 출연해 주실 수 있어요?”
“너튜브요?”
재마는 뜻밖의 소리에 당황스러운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동기인 중기도 너튜브를 한다고는 하지만, 그 녀석이야 대한민국에서 제일간다는 정한 한방병원 한의사였다. 거기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얼굴도 잘 빚어 놓은 듯 잘생긴 외모였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 말주변까지 없는 한의사의 채널에 구독자가 생길 리가 없었다.
“네. 제가 채널을 하나 운영하는데요.”
너튜브에 출연을 해달라는 말에 선뜻 오케이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거절을 하지 않는 모습에 유정은 기회를 잡을 생각이었다.
유정은 이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자신의 휴대전화로 너튜브 어플을 실행했다.
너튜브에서 ‘유둉요정’채널을 검색해 재마에게 들이밀었다.
유치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채널명이었지만, 구독자 수가 4만 명이나 되었다.
“유뎡요정?”
재마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릴 뻔했지만, 유치한 채널명이 부끄러운지 유정의 얼굴도 달아올라 있어 웃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일상 브이로그이긴 한데, 이제 제 일상 중에 최소 두 번은 더 한의원에 와야 하니까요. 발목을 다쳐서 어디 나갈 수도 없고. 선생님 목소리나 모습이 나올 수도 있는데 굳이 모자이크 처리할 필요 없이 한번 나와 주세요. 네?”
유정은 며칠은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던 재마 탓에 영상을 찍지 못한다는 듯 하소연을 했다.
어떻게든 재마를 자신의 채널에 출연을 시킬 생각인 유정이었다.
“아까 잠깐 라이브를 했는데, 구독자들 중에 한의사는 다 사기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유정은 재마의 표정을 읽어가며 어떻게 잘 구슬리면 그가 자신의 채널에 참석해 줄지 생각했다.
그녀의 간절함이 먹히지 않는 것 같아 보이자, 다소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는 유정이었다.
“사기꾼이요?”
“아무래도 외상으로 다치면 한의원보다 정형외과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전국에 있는 한의사들이 들으면 분개할 만한 이야기네요.”
솔직히 한의학은 아직도 플라세보네, 사기네, 하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한의학 수련을 6년 넘게 하고도 인정을 받기 어렵다면 앞으로 한의학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없었다.
한의학은 플라세보도 아니고, 사기도 아니라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솔직히 한의원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대부분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잖아요. 이번 기회에 너튜브에 출연하시고 제 구독자들하고 안면도 트고. 좋은 시간 만들어봐요. 원장님. 네?”
명의 한의원에 처음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침을 맞는 것이 두려워 잔뜩 긴장을 했던 유정은 어디로 갔는지, 눈웃음까지 지어가며 재마를 꼬드겼다.
유정의 말들이 모두 사실이라 거절을 하기 참 애매한 상황이었다.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학창시절이나 대학을 다니며 공부나 열심히 하고 성적이나 좋았지 말주변 없기로는 제일가던 재마는 너튜브에 출연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말주변이 없다며 그저 시선을 피하는 재마의 행동에도 유정은 굴하지 않았다.
그의 모습을 아래위로 훑으며 유정은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 라이브 방송을 할 때만큼은 코디부터 자신이 준비한다면 지금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평가였다.
“원장님, 잠깐 안경 좀 벗어 주실 수 있어요?”
“네?”
“카메라가 잘 받을지, 일단 확인을 좀.”
유정은 안경을 벗어보라며 보챘다.
명의 한의원으로 출근을 하면서부터 안경을 쓰고 있는 재마였다.
점점 오른쪽 동공의 색이 왼쪽 동공과 확연히 차이나게 변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유정에게 들킬까, 안경을 벗으며 고개를 살짝 비트는 재마였다.
‘숫기가 없기는 없네.’
조금 전 처치실에서 치료과정을 설명했던 재마의 당당함과는 확실히 차이나는 모습이었다.
유정은 풉 하고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다시 안경을 돌려줬다.
“그건 걱정 마세요. 제가 잘 이끌어 드릴 테니까.”
유정은 이제 재마가 반 이상은 넘어왔다고 생각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만 믿으라 했다.
“그럼 저도 부탁이 있습니다.”
유정의 채널에 협조를 하기로 한 재마는 큰마음을 먹고 입을 열었다.
* * *
“일주일간 통증은 어떠셨어요?”
류마티스 환자인 영원과 일주일 만에 대면을 한 재마가 그의 손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난번, 아버지의 소개로 명의 한의원을 찾아왔다던 영원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으로 한의원을 찾았다가 구 원장의 은퇴 소식에 실망을 한 것도 사실이었다.
양방으로 치료약을 찾아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며 병의 진행을 늦추려 노력을 한 것도 2년.
자신에게 맞는 약을 찾지 못했던 영원은 지쳐 있었다.
그 상황에 명의 한의원 원장인 재마는 쉬운 치료는 아니라며 딱 잘라 말하며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일단 지난주에는 어혈을 풀어주는 침을 맞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의 말처럼 침으로 어혈을 풀어서인지 당일은 피곤함에 곧장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나서는 피로 회복을 한 것처럼 활력이 돋았다.
병이 시작된 이후 처음 느끼는 활력이었다.
일상생활뿐 아니라, 병세를 늦추는 데 효과가 있다는 유산소 운동을 하면서도 체력이 오른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한 번의 치료와 몇 포의 탕약으로 이렇게 일상이 바뀔 줄은 몰랐던 영원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통증은 양약으로 다스리고 있어 눈에 띄는 차이는 없었습니다. 다만 다음 날 활력 차이는 확실히 느꼈어요.”
영원은 신기하다는 듯, 재마를 바라봤다.
아마 스스로 느끼기에 차이가 없었다면 다시 한의원을 찾는 일은 없었을지 몰랐다.
“혈액 순환이 떨어져 어혈이 뭉쳐 있는 바람에 심폐 기능이 약해진 상태라 그랬을 겁니다. 침의 효과로 어혈이 풀어지니 눈에 띄게 피곤함이 줄어든 거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간단한 침 치료만으로 효과를 봤다니 재마도 기분이 좋았다.
봉독 침술 보상도 받았으니, 지난번에 침술 치료에 봉독 침술 치료를 추가하면 더 효과를 빨리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재마도 기대가 되었다.
“오늘은 봉독 약침을 이용해서 약침까지 추가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약재는…… 건칠에서 추출한 옻나무 추출물 이용할 텐데 옻 알레르기는 없으신가요?”
“딱히 알레르기는 없었습니다.”
“옻이 알레르기 반응이 있을 수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핏물이 흐르는 고기 덩어리에 옻 물을 부어 놓으면 붉은 피가 물로 바뀔 정도로 어혈을 풀어주는 작용이 강력한 약재입니다.”
“피가 물로요?”
실제 옻의 효능을 눈으로 본 적은 없었기에 영원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네. 어혈을 풀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몸속 어혈을 생성을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니 봉독 약침으로 피를 맑게 해 기혈 순환은 원활히 하는 것을 병행할 생각입니다.”
재마는 영원에게 앞으로 자신이 행할 요법들에 대한 설명을 조곤조곤 해나갔다.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양약으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실망을 해 왔던 영원은 믿을 사람이라고는 이제 재마밖에 없었다.
영원은 변해 버린 자신의 손으로 재마의 손을 꽉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