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자를 읽는 한의사-25화 (25/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25화

“안녕, 여러분. 지금 제가 어디 있는 줄 아세요?”

└우리 유둉이 안녕.

└유둉이 지금 어디야?

└병원? 어디 아파?

처치실 커튼 너머, 조금 전 봉독 약침을 맞고 15분간 침을 맞고 있는 유정은 간이벽에 등을 기대자마자 휴대전화 카메라를 켰다.

휴대전화 액정에는 처치실에 앉아 있는 유정의 모습과 함께 오른쪽에는 물밀듯 채팅이 올라갔다.

유정이 라이브를 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들어 온 구독자들이었다.

너튜브 일상 채널을 운영하는 유정에게는 혼자 있을 때는 너튜브 라이브를 할 때가 시간이 제일 잘 갔다.

어제 영상을 올렸어야 하는데, 힐을 신고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영상을 올리지 못했다.

예정된 시간에 영상을 올리지 못하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왜 아무런 소식이 없는지 궁금해하는 댓글들이 올라오는 통에 유정은 안달이 나 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침을 맞고 나니 통증이 좀 줄어드는 것 같고, 일단 자신이 다친 것에 구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으니 이만한 소재도 없었다.

└이 시간에 웬일이야? 어제 영상도 안 올렸으면서

└영상 안 올렸으니까 지금 라이브하는 거겠지.

└언니 어디 아파요ㅜㅜ

└유정이 아프지 말자!

유정의 구독자들은 아직 4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고3 수능 이후부터 7개월 가까이 영상을 올리고 있는 채널에 애정이 깊었다.

유정이 애정을 가진 만큼 팬들의 반응도 좋았다.

이렇게 자신을 걱정해 주니 아픈 기분을 공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지금 완전 쌩라이브. 라이브. 리얼이라니까요. 어제 12㎝ 힐 신고 나갔다가 넘어졌는데 이 정도로 부었어요. 완전 아파. 그래서 어제 영상도 못 올리고……. 죄송합니다.”

유정은 사과와 함께 자신의 상처 부위를 영상으로 남겼다.

울먹거리는 목소리는 구독자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으악, 보기만 해도 아파. 내 발목 날아간 기분

└주작 아님? 발목이 저렇게 될 때까지 힐을 신고 다닌다고?

└힐이 무기냐. 뭐냐.

└지난번에 산 힐? 내가 너무 높다고 댓글 달았었는데…….

커튼 너머에는 유정이 혼자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지만, 마치 다수와 함께 수다를 떠는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제 유둉이 힐 금지.

“그러니까 힐을 신지 말라고요? 내 키에 힐은 필수템 아님?”

유정의 발목을 걱정해 주는 구독자에게 유정은 뾰로통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둉이 발목 부러지면 내 마음도 찢어진다!!

└스무 살엔 모르지, 나이 먹으면 지금 덜 아픈 거 그때 아프거든! 유둉이 발목 지켜!

스무 살 유정이의 유쾌한 일상을 V로그로 소개하는 채널이라 그런지, 구독자들과 소통을 할 때마다 친구, 언니, 오빠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힐을 신지 말라는 말에는 뾰로통했지만 자신의 발목을 걱정해 주는 구독자들이 있어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지난번에도 다치지 않았냐구? 안 그래도 여기 원장님이 말하던데 X레이 이런 거 안 찍어도 다 아나 봐요. 습관적으로 몇 번 다친 것까지 알던데? 대박 아까 진짜 놀랐어요.”

└그런 게 어딨냐. 한의학 다 사기.

└내 말이, 우리 유둉이 오늘 정신승리 오지네.

└주작방송.

한의원을 첫 경험 하며 봉독이라는 낯선 약침을 맞을 때는 잔뜩 긴장을 했던 유정이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X레이조차 찍지 않고 자신의 상태를 콕 집어 말해준 원장님을 대단하게 느껴졌다.

한의사는 그저 짧은 진맥과 시선을 마주친 것밖에 없었다.

“진짜라니까 그러네. 아마 침 다 맞고 나면 뛰어다닐 수도 있을걸?”

└유둉이는 아작 난 발목을 플라시보 효과로 치료하고 있고요.

└여기는 뭐, 한의학 안 믿는 애들만 있냐. 나는 허준 선생님 믿는다. 아자! 유둉이 아자!

└나는 유둉이 믿어야지(하트)

삐비비빅. 삐비비빅.

└너네 그만 싸우랜다.

└타이밍 보소.

└유둉이 조작하는 거 아님?

라이브 채팅방이 한의학의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두 편으로 갈라졌을 정확한 타이밍에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님들, 님들이 한의학 어떻게 생각하는 줄 모르겠고. 오늘 라이브는 여기까지. 어제 못 올라간 친구들과 피크닉 다녀온 영상 저녁에 올릴 테니까, 기대 많이 해주시고요.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 알죠?”

유정은 지금 자신이 받고 있는 치료가 플라세보 효과라는 말에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제 감정을 라이브에 모두 드러낼 수는 없었다.

구독자 수가 점점 늘어나며 이미 제 기분을 컨트롤 할 줄 아는 너튜버가 된 유정이었다.

“들어가도 되죠?”

유정이 카메라를 끄자마자 커튼 너머에서 정 실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 유정의 목소리가 바깥까지 들려 알람이 울렸지만 쉽게 커튼을 걷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 죄송해요. 다 들렸나요?”

“괜찮아요. 평소에 환자들 많으면 안 되겠지만, 오늘은 유정 님밖에 안 계시니까.”

유정도 처치실에 환자가 자신뿐이라는 걸 확인하고 카메라를 켰다.

유정은 자신의 또래 같은 MZ세대에는 별스타나 너튜브를 통한 라이브방송이 익숙했지만, 어른들에게는 낯설고 이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엄마가 알았다면 등짝 스매싱 두 대는 확보된 상황이었다.

“근데 선생님.”

“네?”

“이렇게 침 맞는 거, 낫는 게 아니고 플라시보 효과에요?”

유정은 구독자들이 챗방에서 했던 말들이 머리속에 맴돌았다.

자신은 아니라고 믿고 있었지만, 다수의 의견이 그렇다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플라세보 효과라고 하기에는 한의원을 들어서기 전까지 극심한 통증을 느꼈지만, 많이 좋아진 상황이었다.

침을 빼고 나니 붓기도 많이 좋아진 모습이었다.

“유정 님 침 처음 맞아보셨구나.”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스무 살 유정이니, 침이 생경한 건 당연했다.

양방하고는 치료방법도, 치료제도 다른 한방치료였다.

“글쎄요. 플라세보 효과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미신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정 실장은 자신이 20년 동안 명의 한의원에 있으며 유정이처럼 걱정하는 환자들을 수없이 많이 만나봤다.

한때는 속상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이제 한의원 직원으로 일한 지 20년쯤 되어가니 그 정도 질문에는 단련이 되었다.

“가장 정확한 답변은 아파서 한의원 문턱을 넘으셨던 환자들도 나가실 때는 안 아프게 나가신다는 거예요.”

“정말요?”

“유정 님 발목 상태가 많이 안 좋긴 했지만, 부종이 많이 빠졌죠?”

부종에 효과를 바로 나타내는 약침 때문인지, 땡땡 부어올랐던 유정의 발목이 많이 호전된 모습이었다.

“어? 정말요.”

침을 맞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잘 몰랐던 유정이었지만 침을 빼고 나니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꽤 나아져 있었다.

“그래도 아까 원장님이 격일로 세 번 이상은 치료해야 한다고 하셨으니까 내일모레 또 오시고요.”

“우와, 진짜 신기한데요?”

유정은 요리조리 제 발목을 움직여 보였다.

“혹시 원장님은 너튜브 안 하세요?”

유정은 조심스럽게 명의 한의원의 원장이 너튜브를 하는지 물었다.

요즘은 의사 V로그도 활발하고,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의학지식을 너튜브로 알려주기도 하며 많은 의사들이 채널을 운영하고 있었다.

너튜브 채널을 운영하면 구독자 수가 늘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홍보도 되니, 그만한 것이 없었다.

“아뇨. 저희 원장님 너튜브 같은 건…… 안 하시는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단조로운 일상을 무엇을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의견으로 수렴했던 재마와 정 실장이었다.

정 실장은 어쩌면 유정이 재마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하시는구나, 아쉽다. 합방하면 좋을 텐데.”

“합방이요?”

합방이라는 단어에 정 실장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그 합방 아니고. 합동방송이요.”

유정은 요즘 단어를 이해 못 한 정 실장을 이해한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 * *

꿈속 요양원 진정준…….

종이쪽지에 적힌 연락처를 한참을 들여다보는 재마였다.

재마는 정 실장에게 연락처를 받고도 연락을 안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더구나 외할아버지인 구 원장과도 인연이 깊은 요양원이라니 마음이 쓰였다.

“전화 한번 해보는 것쯤이야.”

재마는 결국 쪽지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재마는 무엇이라 대답을 해야 할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아, 연락처 전해 받고 연락 드렸는데요. 서울 명의 한의원입니다.”

-아 네! 새로 오신 원장님이시군요! 정 실장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구 원장이 직접 전화한 것도 아닌데 명의 한의원이라는 말에 반색하는 진 주임이었다.

명의 한의원을 맡으면서 처음부터 이렇게 반색을 해 준 사람이 처음이어서 재마는 기분이 묘했다.

“네. 구 원장님께서는 사정이 있으셔서 진료를 보고 있지 않으시고요.”

-네네. 이 전에 구 원장님께 직접 들었습니다. 봉사뿐 아니라 이제 명의 한의원도 그만두실 거라고요. 근데 말씀 들으셨겠지만, 저희 어르신께서 구 원장님을 애타게 찾으셔서. 염치 불고하고 연락드렸습니다.

“네. 안타깝지만…… 말씀을 전해드리더라도 구 원장님께서 홍천까지 내려가시는 것도 무리인 상황이라서요.”

재마는 항암치료를 하면서 자신의 본가에서 요양을 하는 구 원장을 떠올렸다.

아마 치료 중에 꿈속 요양원 소식을 들으면 안타까워할 구 원장이었다.

-혹시 그럼 원장님께서 와주실 수는 없나요?

“네? 제가요?”

재마의 이야기를 들은 진정준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네. 어르신께는 제가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도 구 원장님을 찾으시는데, 제가 어떻게…….”

재마는 자신이 꿈속 요양원을 가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도 못하고 했던 전화였다.

하지만 한번 와주십사, 말을 하는 진 주임의 제안을 무 자르듯 자를 수도 없었다.

[새로운 환자를 찾아 떠나라.]

재마의 눈에 또다시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새로운 미션이 나타나는 상황이 이제는 당황스럽지 않았다.

마치 진 주임의 제안을 받아들이라는 뜻 같았다.

‘이제는 하다 하다 지방 출장 미션까지 주네…….’

재마는 미션이 생긴 이상 진 주임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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