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24화
유정의 눈물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재마는 정신을 차렸다.
환자도 자신의 상태에 혼란스러울 텐데 재마까지 당황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 오늘 치료를 설명하자면…….”
재마는 반복되는 염좌로 힘줄 손상이 되어 운동능력까지 떨어져 있는 유정의 발목을 들여다보았다.
이미 인대 손상으로 통증과 부종이 심각한 상태라 보행이 힘든 상태였다.
보통 초기에 치료를 받을 경우에 한의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이침과 전침, 고주파 온침 정도였겠지만 유정의 상태로는 봉독 치료가 필요해 보였다.
봉독은 생리학적 특이 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약리작용을 이용한 치료방법이었다.
벌의 독성분이 보익정기(補益正氣), 보신장양(補身壯陽, 거풍습(祛風濕)을 통한 부정거사(扶正去邪)의 효과가 있었다.
봉독을 인대 손상 부위 경혈에 주입하는 방법이었다.
일반 침 치료와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관절의 활동 범위에 효과적이니 봉독이 경혈 부위에서 온열 자극에 인한 통증이 있더라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봉독 치료를 해야 하는데…….’
재마는 봉독 치료가 불가피한 유정의 다리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재마는 봉독 치료를 한 경험이 드물었다.
‘맞다. 남겨뒀던 보상카드!’
지난번에는 탕약술이 나왔지만, 남겨뒀던 보상카드가 생각이 번뜩였다.
‘보상으로 봉독 침술만 나와도 자신감 있게 할 수 있어.’
재마는 보상 타임이 아닐 때 카드를 열어보는 것이 처음이었지만, 지금만큼 간절하게 바란 적이 없었다.
퉁퉁 부어버린 발목을 붙잡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유정을 보고 봉독 침술을 망설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숨을 죽이고 보상카드를 열어 본 재마는 자신도 모르게 환호를 지를 뻔했다.
[봉독침술 경험치가 생성됩니다.]
재마는 숨죽여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외쳐댔다.
‘오케이. 지금 이 순간 딱 맞는 보상이야!’
흥분한 재마는 침착하게 침을 삼킨 후, 입을 열었다.
“통증이 있더라도 봉독 약침요법을 이용할 생각입니다.”
“봉독이요?”
아직 한의원과 친할 나이가 아닌 유정에게는 생소한 치료법이었다.
하필이면 이름도 봉독이었다. 왠지 독침을 놔줄 것 같은 아픈 이름이었다.
‘아, 엄마 말 듣지 말고 정형외과나 가서 진통제나 받을 걸 그랬나.’
엄마가 한의원 가서 침 맞으면 눈에 띄게 좋아질 것이라 말을 해서 동네 한의원을 찾아왔더니, 심각한 상태라 말하며 원장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침이나 맞을 줄 알았던 유정은 생전 처음 듣는 봉독이라는 말에 눈을 찌푸렸다.
“보통은 침 치료를 하는데, 벌침에서 뽑아낸 약을 주입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특별하게 알레르기 반응이 없으면 다른 치료보다 효과가 좋을 거예요.”
벌침을 이용한 치료기에 아무래도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면 행할 수 없는 치료였다.
동공을 인식했을 때 알레르기 유무까지 알 수는 없었다.
“알러지는 딱히 없지만…….”
지금껏 약물 알레르기조차 단 한 번도 없었던 유정이었다.
“근데 벌에 쏘여본 적도 없는 데…… 알러지가 없겠죠?”
유정이 낯선 환경에 잔뜩 긴장을 한 상태라는 게 재마의 눈에도 한눈에 보였다.
“너무 걱정은 하지 마요. 알레르기가 있는지 없는지는 초반에 소량만 넣어서 확인해 보고, 치료할게요. 약침이 주입되면 보행능력도 좋아지고 발바닥에 부종에도 효과가 있으니까요.”
“네…….”
발목 염좌는 대부분 발목 관절의 인대가 손상된 상태인데 가벼운 단계인 1단계라면 봉독 약침 치료까지 들어가지 않았다.
보기만 해도 유정은 이미 인대의 손상으로 눈이 찌푸려질 정도로 피하출혈과 관절의 불안함이 눈에 띄어 봉독 약침을 피할 수 없는 상태였다.
재마가 걱정을 하지 말라며 유정을 안심시켰지만, 여전히 걱정이 되는지 목소리가 기어들어 가는 것 같았다.
“정 실장님, 약침 225μg용량 준비해 주시겠어요?”
“네.”
재마의 오더에 정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봉독은 부종과 통증에 효과적인 치료였지만, 몸무게 대비 과도하게 들어간다고 통증이 더욱 줄어든다거나 효과를 더 보지는 못했다.
몸무게 1㎏당 5 μg 정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효과를 나타내는 편이라 재마는 유정의 몸무게에 적당한 양을 결정했다.
정 실장이 생리 식염수와 유정의 몸무게에 맞는 봉독의 용량을 맞춰 왔다.
“따끔합니다. 따끔.”
재마는 긴장을 한 상태인 유정이 발목에 알콜 솜으로 가볍게 소독을 하고 봉독 약침을 놓았다.
“앗.”
따끔하다고 재마가 미리 알리기는 했지만, 약이 퍼져가는 기운이 유정에게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뻐근한 느낌과 함께 후끈하는 열감 같은 것이 퍼져가는 기분이었다.
“한 번만 맞아도 효과 있는 거죠?”
유정은 왠지 기분 나쁜 감각에 자기도 모르게 한의사를 보채는 질문을 했다.
더구나 긴장되는 이 기분, 또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침을 맞고 나면 시원하다는 옛 어른들의 말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유정은 눈을 질끈 감았다.
“봉독 치료를 적어도 격일로 세 번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심각한 상태인 유정의 발목을 봐서는 한 번의 치료로는 통증의 감소를 장담할 수 없었다.
다만 부종이나 족부 하중 비율에는 환자 스스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효과를 보일 테니 유정이 스스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과연 또 봉독을 맞겠다고 오려나…….’
재마는 아직 나이 어린 유정이 봉독침의 효과를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약침은 모두 들어갔고, 진통에 효과적인 침을 놓을 테니 타이머가 울릴 때까지 쉬고 계시면 됩니다.”
유정에게 효과가 있을 경혈에 침을 놓은 재마는 타이머를 맞추고, 처치실에서 나왔다.
띵동-
-얘들아. 정한 한방병원 공식 너튜브에 두 번째 출연이다. 가서 좋아요. 구독, 알림 설정까지 알지?
연아와 결혼 준비 중인 중기 녀석의 톡이 단톡방 확인을 하지 않아도 미리 보기로 재마의 눈에 띄었다.
동기 단톡방을 나올까 싶기도 했지만, 지금 상태에서 재마가 빠져나온다면 중기를 의식해 동기들과도 벽을 두는 것 같아 그러지 못했다.
재마는 단톡방에 들어가 알림을 꺼버렸다.
“좋아요. 알림 설정은 무슨. 단톡방 알림이라도 꺼버려야지.”
재마는 신경질적으로 휴대전화를 터치했다.
“후. 이대로 괜찮을까 모르겠네.”
단톡방 알림을 끄는 것으로 분이 다 풀리지 않았지만, 고개를 들어 명의 한의원의 상태를 보니 걱정이 앞섰다.
구 원장에게 제힘으로 한의원 구하겠다고 장담은 했지만, 방법이 딱히 있지는 않았다.
그나마 개발 대상지이니, 개발 보상금을 받아 유동인구가 많은 쪽으로 옮기는 방법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재마는 점점 명의 한의원이 5대째 한 자리에서 지역 주민들을 치료하며 명맥을 이어 왔는데,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라는 생각도 점점 들고 있었다.
‘정답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명의 한의원에 적응하랴, 갑자기 나타난 미션 고심을 하랴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재마였다.
구 원장이야 오랜 시간 이 자리에서 치료를 해왔으니 단골손님도 있었지만 지금 재마가 하고 있는 명의 한의원을 찾지 않고 있는 환자들의 발길을 다시 돌려놓는 것도, 다시 돌아와 재마의 실력을 알리는 것까지도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우리도 너튜브 채널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재마는 하늘을 보며 한숨을 푹하고 내쉬었다.
말이 너튜브지, 정한 한방병원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한방병원이었다.
정한 한방병원 정도는 되야 새 영상이 올라갈 때마다 구독자 수도 늘어나고 알람 설정을 해 둔 구독자들이 영상을 찾아볼 것이었다.
지난번 지나치듯 봤던 병원 너튜브를 찾아보았다.
개인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같았는데, 영상을 올리자마자 조회 수가 10만을 훌쩍 넘었고 댓글도 실시간으로 달리고 있었다.
재마가 있는 명의 한의원의 타이틀을 달고 영상을 올려도 찾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너튜브요?”
유정에게 맞춰진 알람이 울리기 전에 처치실로 돌아가는 정 실장은 재마의 혼잣말을 들어버렸다.
“아뇨. 그냥 혼잣말입니다.”
“하긴 요즘 너튜브야, 젊은 연령층뿐 아니라 연세 있으신 분들도 많이 보시니까요.”
명의 한의원 데스크에 앉아 가만히 있다 보면 너튜브에서 나온 정보들을 이야기하는 어르신들도 왕왕 있었다.
“너튜브는 아무나 할까요. 일단 촬영을 할 사람부터 편집도 해야 하고. 소재도 있어야 하고요.”
하루의 일상이 명의 한의원 담장 안에서만 이뤄지는 재마에게는 그저 먼 이야기였다.
젊은 한의사의 일상이 재밌기라도 하면 구독자가 생기겠지만, 의외로 재마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특히 요즘 재마의 일상은 텅 빈 환자 덕에 멍 때리기가 가장 많이 차지했다.
“하기는 그렇네요…….”
재마의 단조로운 일상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정 실장이었다.
그녀는 재마의 말도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원장님 혹시나 해서 전해드리는 건데…….”
정 실장은 주머니에서 메모를 하나 꺼냈다.
메모지에는 전화번호 적혀 있었다.
“꿈속 요양원 진 주임?”
재마는 전화번호와 함께 써 있는 진 주임이라는 직함을 소리 내 읽으며 이게 누구냐는 듯 정 실장을 바라봤다.
“홍천에 있는 요양원인데요.”
“홍천이요?”
서울 해인동에 있는 명의 한의원과 홍천과의 거리는 적어도 세 시간은 걸리는 거리였다.
“네. 사실 구 원장님이 10년 이상, 봉사 차원에서 다니시던 요양원인데 구 원장님이 그만두시면서 봉사도 그만두실 수밖에 없었거든요…….”
정 실장은 구 원장의 병환 상태를 모르니, 은퇴와 함께 봉사를 그만둔 것으로 생각했다.
“홍천에 있는 한의원 원장님을 구 원장님이 소개해 드려 주 1회 방문을 하시는 거로 알고 있었는데 요양원 어르신 한 분이, 구 원장님을 애타게 찾으신다고 하셔서요.”
“구 원장님을요?”
구 원장의 현 상태로는 그리고 앞으로 치료가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홍천까지 봉사를 다니는 것은 무리였다.
아무리 환자가 구 원장을 찾는다고 해도 세 시간의 거리는 무리였다.
“진 주임님이 아까 연락을 주셔서 새로 오신 원장님께 전해 드린다고는 했는데…….”
“제가 간다고 꿈속 요양원 어르신이 노여움이 풀리실까요?”
“지금 계신 원장님이 구 원장님 손자분이라니까 꼭 한 번 연락을 달라고 하셔서 연락처를 받아놨어요.”
재마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듯, 메모를 다시 정 실장에게 건넬 생각이었다.
삐비비빅. 삐비비비빅.
재마가 다시 메모지가 든 손을 정 실장에게 뻗었을 때, 처치실 안쪽에서 타이머 알람이 울렸다.
“잠시만요. 원장님. 저 처치실 가서 환자 침부터 빼고요.”
정 실장은 다급한 듯, 재마의 손을 뿌리치고 처치실로 빠르게 들어갔다.
“흠. 받아도, 안 받아도 찝찝한데 이건.”
재마는 제 손에 들린 메모지를 한참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