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23화
병실에서 한 시간 째 어린아이처럼 울고불고하는 환자가 있다는 소리에 부리나케 달려온 정준.
병실 밖에서 이름을 확인하고, 한숨을 푹 내쉴 수밖에 없었다.
병실 밖까지 들려오는 울음소리, 그리고 환자가 부르는 이름.
자신이 들어가도 해결을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며칠째 계속되고 있는 그녀의 보챔.
그녀는 단 한 명만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이고, 나 죽네. 나 죽어.”
“김 여사님. 진정하세요. 네? 채 원장님 다녀가신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정준은 안으로 들어서며 김 여사의 양쪽 팔을 붙잡고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직원 둘에게 눈짓을 해 보였다.
여기는 내가 책임질 테니 나가서 일보라는 뜻이었다.
요양보호사가 되고 꿈속 요양원에 와서 주임을 달 때까지 6년.
6년간 수많은 환자를 돌봤고, 보내드렸다.
매일매일이 어려웠지만, 그래도 6년째 함께하고 있는 김 여사의 마음은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았다.
해결되지 않을 일에 많은 인력이 달라붙어 그녀를 달랠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마음을 제일 잘 아는 자신 혼자만 고생을 하면 되었다.
“누가 채 원장 불러달래? 구 원장님 불러달랬지! 구 원장 연락해서 나 당장 죽겠으니까 보러 오라고 해. 응? 죽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김 여사님. 여사님이 이렇게 정정하신데 죽기는 왜 죽어요. 목소리가 요양원 저 1층까지 들리거든요? 그리고 구 원장님은 이제 진료 안 보신대요…… 저희 요양원 전담은 이제 채 원장님이세요. 채 원장님도 실력 좋으시잖아요.”
꽤 오랜 시간 꿈속 요양원에서 봉사를 해오던 구 원장이 더 이상 봉사를 오지 못한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 정확히 한 달이었다.
이제 연세도 있으시니 원장님이 근무하시는 명의 한의원에서 꿈속 요양원까지 오가시는 세 시간 거리가 부담스러우셨던 모양이었다.
더구나 구 원장님이 봉사하시는 곳은 꿈속 요양원만이 아니셨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쉬움이 더 컸던 정준이었지만, 연세 지긋한 구 원장님의 건강을 위해서도 봉사하는 곳을 하나씩 정리하시는 것을 당연하다고 대답을 해드렸다.
분명 먼 길을 오던 봉사를 그만두겠다고 말씀하시던 본인의 마음도 어렵고 아쉬운 건 더 했으리라.
“실력이 좋기는. 눈만 딱 봐도 환자가 어디가 아픈지 알아야지. 그런 것도 모르고. 다 죽어가는 환자가 의사한테 말로 설명해야 해?”
“여사니임.”
구 원장이 꿈속 요양원에 더 이상 오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꿈속 요양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근무하시는 채 원장에게 전담 진료를 부탁드렸다.
구 원장님처럼 산 깊이 자리한 꿈속 요양원에 찾아올 의사는 드물었다.
다행히 채 원장님이 정준의 진심 어린 부탁을 들어줬기에 일주일에 한 번, 꿈속 요양원 환자들이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침을 맞아도 여기도 쑤시고, 여기 여기는 아주 불이 나는 것처럼 홧홧해.”
김 여사는 팔을 양쪽 걷어붙이는 것도 모자랐는지 바지까지 쓱 걷어 올렸다.
정준은 김 여사의 바지 깃을 다시 여며 내렸다.
“다음번 채 원장님 오시면 제가 직접 말씀드릴게요. 김 여사님은 다른 여사님들보다 더 잘 봐드리라고.”
“됐다니까. 난 그 돌팔이 의사한테 진료 안 받아! 구 원장님 불러줘어. 불러줘. 으아아아앙.”
결국 김 여사는 어린아이처럼 발까지 동동 구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요양보호사 정준은 막무가내인 김 여사를 달래느라 진을 쏙 뺐다.
아무리 자신이 난감한 얼굴로 이제 구 원장이 김 여사의 상태를 보러 와줄 수 없다고 설명을 해도 점점 아이처럼 변해가는 김 여사는 무조건 떼를 쓰기 시작했다.
정준의 말을 다 이해를 했다면 김 여사가 이곳에 있지 않았겠지, 라며 자신이 이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떡하죠? 진 주임님?”
“그러니까 말이다. 김 여사님 고집 아무도 못 꺾는데…….”
가끔 힘도 빠지고 난감한 일을 벌이기도 하는 환자들이었지만, 자신이 선택한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의 역할을 최대한 이행하려는 정준은 고민에 빠졌다.
김 여사님이 그토록 찾는 구 원장에게 한 번이라도 연락을 해볼까 싶었다.
김 여사는 채 원장의 치료를 원하는 것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구 원장이 발길을 단번에 뚝 끊은 것이 서운한 상태임이 분명했다.
후배 요양보호사에게 김 여사를 맡기고 복도로 나오는 정준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서울에서 이곳까지 와달라고 부탁을 하려는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던 정준은 자신의 전화를 어렵게 들었다.
산속 깊은 꿈속 요양원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연락처에는 온통 병원들의 전화번호로 가득 차 있었다.
연락처 사이에서 명의 한의원의 전화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감사합니다. 명의 한의원입니다.
어렵게 걸은 전화였지만, 반대편에서는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종종 구 원장님과 함께 봉사를 오시던 정 실장의 목소리였다.
“정 실장님, 안녕하세요. 꿈속 요양원 진정준입니다.”
* * *
퉁퉁 부은 발목을 본 재마는 자신 앞에 발목을 보이는 환자가 얼마나 통증이 심할지 가늠이 되었다.
“꽤 아프시겠네요.”
“네. 여기까지 무슨 정신으로 걸어왔는지 모르겠어요.”
명의 한의원을 들어올 때부터 발을 절뚝거리는 환자의 모습에 정 실장은 한달음에 다가가 부축을 했다.
정 실장의 부름에 바깥까지 나와 환자를 본 재마는 동공을 인식하지 않아도 외상 때문에 온 것이 분명해 보이는 환자라고 생각했다.
“이동하기 힘드실 것 같으니 바로 처치실로 안내해 주세요.”
“네. 원장님.”
재마는 바로 진료실이 아닌 처치실로 이동을 했다.
퉁퉁 부은 상태에 통증까지 있는 발목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어쩌다 이러셨어요?”
“제 주제 생각 못 하고 굽 높은 신발 신어서 그렇죠. 뭐.”
스무 살이 갓 된 유정은 높은 신발을 신고 외출을 할 때마다 엄마의 잔소리를 한 바가지 듣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걱정하지 말라고, 키가 작은 자신에게 높은 굽은 필수라고 말하며 높은 신발을 사 모았는데 이렇게 발목을 심하게 접지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어제도 아무 생각 없이 높은 굽의 운동화를 신고 친구를 만난 것이 문제였다.
20세의 친구들의 발걸음을 따라가자니, 높은 굽의 운동화를 신은 유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으악!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바닥에 주저앉은 다음에서야 친구들도, 유정도 자신의 상태를 인지할 수 있었다.
친구들은 당장에 병원을 가자고 했지만, 응급실에서 엄마를 마주할 것이 무서워 아픈 다리를 억지로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높은 굽을 신으며 이미 발목이 삐끗한 경험은 여러 번이었기에 이번에도 가볍게 파스나 붙이고 넘어가자 싶었지만 발목이 심하게 붓고 멍까지 올라오는 상황이라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자, 환부 상태는 확인했고 잠깐 제 눈 좀 봐주시겠어요?”
“네?”
“한의학은 외상도 기 흐름의 치료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한의원을 처음 찾은 유정은 발목이 삐끗한 자신에게 기의 흐름이며, 눈을 보자는 둥 말을 하는 재마를 의심스럽게 말을 했다.
‘엄마가 유명하다고 가보라고 해서 와본 건데…….’
한의원을 오면 발목에 잔뜩 침을 놓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었던 유정이었지만, 제 발목의 상태가 심각하니 억지로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의 흐름 같은 이야기만 하니 재마가 의사가 아닌 돌팔이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동공을 인식합니다.]
의심의 눈초리를 한 유정이기는 했지만, 재마는 개의치 않고 그녀의 눈동자를 똑똑히 바라봤다.
자신을 의심하는 환자더라고, 이렇게 동공 인식만으로 환자의 상태를 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일지 몰랐다.
[이름 : 김유정]
나이 : 20세
노란색 섬광이 발목부터 시작해 무릎까지 뿜어 나오고 있었다.
젊은 환자라 그런지 다행히 눈에 보이는 외상만 문제가 되는 상태였다.
다만 재마의 마음에 걸리는 건 습관성일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아직 스물 밖에 되지 않은 몸으로 높은 굽은 그녀에게 벅찼고, 통증과 염증이 있는 상태로 발목을 반복적으로 혹사했으니 습관성 염좌로 보였다.
재마는 일차적으로 동공으로 상태를 확인하고, 손을 뻗어 환부에 기를 느꼈다.
높은 굽을 신고 다쳤다는 걸 보니, 발목을 지지하고 있는 세 개의 인대 중 한두 개에 무리가 간 상태임이 분명했다.
“정형외과 가서 엑스레이 찍어보지 않아도 될까요?”
유정은 재마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걸 보고 제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추측한 건지 걱정스럽게 물었다.
정형외과로 가서 엑스레이를 찍겠다고 했더니 엄마가 엄마 말 듣고 명의 한의원으로 가라고 추천을 했지만, 아직 정말 엑스레이도 없이 제 상태를 바로 알 수 있을지 믿을 수 없었다.
“지금 환자의 상태는 발목을 접질리면서 발목에 염좌가 생긴 건데요.”
“염좌요?”
“가볍게 말하면 염증이고요. 문제는…… 유독 이쪽 발목을 자주 접질리시죠?”
재마는 오른쪽 유정의 오른쪽 발목을 확인했다.
퉁퉁 부어 있는 왼쪽 발목에 비하면 오른쪽 발목은 멀쩡했다.
유정은 골똘히 생각을 하더니, 그런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발목을 잡아주는 인대가 이렇게, 이렇게 세 개가 있는 데…….”
재마는 유정의 발목에 인대가 지나가는 방향을 세 군데 짚었다.
“으악.”
손만 스쳐도 통증이 있는지 유정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보통 인대가 늘어났다고도 표현을 하는데 인대는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조직이 아니에요. 여러 가닥 중 일부가 끊어진 거죠.”
“끊어지면 다시 연결 안 되요?”
엄마가 그렇게 높은 신발을 신지 말라는 이유가 있었다는 듯, 유정은 목소리가 벌벌 떨렸다.
“일부가 끊어지면 부분파열이고, 완전히 끊어지면 완전파열이에요. 지금까지는 부분파열인 것 같은데 습관성이 되어버리면 잘못하다가는 심각한 상태가 될 수 있죠.”
재마는 완전파열이라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어떤 원인으로 파열된 인대는 다시 붙게는 되지만 예전처럼 강하게 지지하는 능력은 떨어져요. 반복되면 더욱더 기능이 떨어지죠.”
“그럼 제 발목 어떻게 해요.”
유정은 손만 스쳐도 아프던 발목을 붙잡고 울상이 되었다.
아직 스물 밖에 되지 않았는데 발목 인대가 완전 파열이 되어 제 기능을 못 한다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뚝뚝 흘렀다.
“어…… 김유정 환자. 지금 그렇게 눈물을 흘려가면서 걱정하실 건 아니고…….”
재마는 갑작스러운 유정의 눈물에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다.
“정 실장님, 티슈 좀 주세요.”
재마가 정 실장에게 티슈를 받아 유정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흑. 선생님 제 발목 좀 고쳐주세요.”
유정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재마를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