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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21화 (21/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21화

“이야. 이 정도면 정말 300년은 족히 됐을 것 같은데요?”

“300년이요?”

재마는 한옥 전문 건축업자인 유재용의 이야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여기 드라마 촬영한다고 섭외도 들어올 것 같은데……. 서울 안에서 이렇게 보존된 한옥이 드물거든요. 몇 해 전에 한창 리모델링 붐이 불어서요.”

재용은 보기 드물게 보존되어 있는 한옥의 모습에 신기한 듯 이곳저곳 뜯어 보며 둘러보았다.

해인동이 곧 개발될 거라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재마는 그 개발이 언제 진행될지 알 수 없었다. 당장 한의원을 운영하며 힘든 부분은 고쳐가며 이용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반 인테리어 업자에게 상담을 받는 것보다 한옥을 전문적으로 건설하는 전문가에게 연락을 해야겠다는 마음에 유재용을 섭외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다.

기껏해야 100년이 넘었겠지 했던 명의 한의원은 생각보다도 더 오래된 한옥이었다.

“전체가 다 300년은 아닐 것 같고요, 이쪽 건물은 아무래도 새로 짓기는 한 것 같은데……. 그래도 100년은 되지 않았을까요. 구한말쯤?”

“구한말이요?”

새로 지었다는 곳이 구한말이라니.

허허 헛웃음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근데 해인동이 곧 개발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신기한 나머지 정신없이 명의 한의원을 구경하던 유재용이 그제야 생각난 듯, 뒤를 돌아서며 아쉬운 목소리를 내었다.

“네. 그렇죠.”

동네 어귀를 운전해 왔다면 모를 리가 없는 사실이었다.

건물마다 개발을 환영하는 플랜카드와 개발을 반대하는 플랜카드가 겹겹이 걸린 지 오래였다.

“많이 아쉬우시겠어요.”

재마보다도 유재용이 더 아쉬운 얼굴을 했다.

“이 정도면 문화재 지정을 해야 할 정도인데…….”

“하하. 아무래도 저희 한의원의 오래된 모습이 변하지 않길 바라는 분들이 많습니다. 환자분들 중에서도요.”

“그렇죠? 오늘 처음 온 저도 그런 마음인데 이런 곳에서 치료를 받던 분들이라면 당연히 그대로 남아 있길 원하시겠죠.”

재마는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하하. 쉽지 않네요. 제가 한옥을 만든 지 30년은 훌쩍 넘었는데, 그동안 이렇게 까다로운 적은 처음이에요.”

유재용은 감탄을 하면서도 자신이 맡을 프로젝트가 보통이 아님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난감해하며 가지고 온 노트에 이것저것 끄적이는 유 소장에게 정 실장은 조심스럽게 다가와 쌍화탕를 건넸다.

“이것 좀 드시고 하세요. 저희 한의원에서 직접 만든 쌍화차에요.”

“감사합니다.”

“소장님, 저희 한의원 잘 부탁드립니다.”

정 실장은 쌍화탕를 건네며 진심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건넸다.

“아, 네네. 여기서 오래 근무하셨어요?”

“네. 한, 20년은 되었죠?”

“와, 근무하시기 조금 힘드셨겠네요. 구옥은 그만큼 불편한 게 많은데.”

“저희야 이제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근무하고 있어서 불편한 건 별로 없어요. 다만 환자분들이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에서 진료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정 실장은 지금도 탕약실에서 쪼그리고 앉아 탕약을 준비하면서도 불편함을 한 번도 토로한 적이 없었다.

“환자분들뿐 아니라 의료진분들께도 편한 환경이 돼야죠. 하, 제가 한옥은 전문인데…… 한의원으로 개조해서 사용 중인 한옥은 처음이라 아무래도 원장님이랑 다른 분들의 조언이 필요하겠네요.”

연필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유 소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건축을 하면서 한 번도 일을 쉽게 생각을 한 적은 없었지만, 그동안 자신이 지었던 한옥들과 리모델링을 통해 또 다른 새 보금자리를 만들어주었던 한옥들과는 차원이 다른 프로젝트였다.

“일단 오늘은 이렇게…….”

유 소장은 펜으로 대청마루 쪽에 썩어 비틀어져 보이는 나무를 툭툭 건드렸다.

이미 오래될 대로 되어 작은 충격에도 바스러지는 부분이었다.

“오래되어 교체할 부분을 중심으로 체크하겠습니다.”

“네.”

“개발 때문에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옥 전문가인 제 입장으로는 최대한 보존해야 할 곳은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재마는 자신보다 명의 한의원의 미래를 더 걱정하는 듯한 재용의 뜻에 고개를 끄덕였다.

“젊은 한의사분이 이렇게 오래된 한의원을 인수하는 게 보통 마음으로는 힘들 텐데, 어려운 결정을 하셨네요.”

제아무리 단골 환자가 많은 한의원이라 해도 환자들이 원장을 보고 한의원을 찾지, 한의원의 타이틀을 보고 올 리가 없었다.

오래된 한옥을 그대로 사용하는 한의원을 어떤 마음으로 젊은 한의사가 인수했는지 대단하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 유 소장은 슬쩍 물어보았다.

“운명 같았죠. 사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똑같게 저도 참 이상한 한의원이다 싶었는데, 들어오자마자 제 자리 같은 기분이랄까.”

“제 자리 같은 기분이라…….”

유 소장은 고개를 가로 지으며 재마와 명의 한의원을 번갈아 보았다.

“원장님이 이야기하신 부분 잘 반영해서 고쳐야 할 부분 견적 내 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소장님.”

“원장님이 저의 어떤 면을 보시고 컨택하셨는 지는 모르겠지만, 어려운 프로젝트라 해도 원장님과 같이 일하시는 분들, 그리고 환자분들이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유 소장은 아무리 어려운 프로젝트라도 자신이 맡게 되면 최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진행을 하기 때문에도 이번에도 같은 마음이었다.

“아이고, 공사 사장님 오셨나 보네.”

그때, 마침 진갑순 할머니가 자신이 시간을 딱 맞춰 왔다는 듯, 손을 흔들며 한의원 안으로 들어왔다.

“선상님, 우리 한의원 잘 고쳐주세요. 이건 노인정에서 할매들이 찐, 훈제 겨란.”

“아, 이런 거 주시지 않아도 되는데…….”

계란을 한 판이나 훈제 계란으로 만들어 온 진갑순은 유리 용기에 차곡차곡 담아 가지고 들어와 유 소장의 손에 들렸다.

“부담시려 마시고, 이거 잡숩고 한의원 100년도 끄떡없게 지어주면 되는 거요. 알았재?”

갑순은 유 소장이 거절할 수 없도록 유리 용기가 든 봉투를 손에 꼭 쥐여주었다.

동네가 개발이 된다고 떠들썩했지만 갑순은 명의 한의원만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네. 잘 먹고, 100년 끄떡없이 고쳐 보겠습니다.”

“그려그려. 그럼 되지요. 수고하셔요.”

갑순은 자신의 집을 고치는 것도 아니었지만, 건축사무소 소장이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부러 시간을 내 온 것이었다.

“진갑순 님, 안으로 들어가셔서 물리치료부터 하고 계시겠어요?”

재마는 갑순을 처치실 쪽으로 손짓을 해 안내했다.

갑순이 베드가 있는 쪽이 아닌 베드가 없는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유 소장은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정말 저 방을 처치실로 사용하시네요?”

“네. 온돌이 깔려 있는 방입니다.”

“환자들도 저 공간을 원하시는 게 맞네요.”

유 소장은 신기하고 재밌다는 듯, 노트에 처치실 두 공간의 차이를 적어두었다.

처음에 베드도 없이 처치실로 사용을 한다고 할 때, 의아했는데 제 눈으로 직접 보게 된 것이었다.

“사장님, 여기는 방도 뜨끈뜨끈해야 해요. 알재?”

“네. 할머니 알겠습니다.”

갑순이 처치실로 들어서며 한 이야기에 유 소장은 고개까지 끄덕이며 대답을 했다.

유 소장은 갑순이 처치실로 들어간 이후, 처치실 바깥쪽 마루를 둘러 보았다.

손을 쭉 뻗어 천장에 있는 고미반자와 대들보 쪽을 만져보았다.

“대들보와 고미반자, 고미가래처럼 중요한 기둥이 되는 부분은 100년 이상 된 구옥 치고는 관리가 참 잘되었네요. 윽.”

한옥에 대해 잘 모르는 재마에게 설명을 하던 유 소장은 갑자기 뻗었던 어깨가 아픈지 몸을 움츠렸다.

“소장님 괜찮으십니까?”

갑작스럽게 통증을 호소하는 유 소장의 모습에 재마가 다가와 그의 팔을 살짝 건드렸다.

“별것 아닙니다. 제가 나이도 있고, 평생 현장 일을 하니 안 아픈 게 이상하죠.”

“어디 한번, 팔 좀 뻗어보세요.”

유 소장은 당연히 자신이 오래도록 많이 써먹은 어깨이니 아픈 것도 당연하다 생각해 왔다.

더구나 이제 나이가 50을 훌쩍 넘겼으니 오십견이 오고도 남을 나이였다.

사람들이 오십견도 꼭 병원 가서 치료하라 말은 했지만, 현장 일만으로도 바빠 제 몸을 챙길 여력이 없었다.

“한의원에 오셨으니, 제 말대로 하셔야 합니다.”

괜찮다며 움츠렸던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며 끄떡없다는 듯 행동하는 유 소장의 팔을 재마는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동공을 인식합니다.]

진료까지 볼 것을 거부하는 유 소장의 행동에, 재마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동공으로 지금 상태를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름 : 유재용

-나이 : 57세

유 소장의 어깨에 검은 섬광이 뭉게뭉게 뭉쳐져 있었고, 날카로운 모습의 섬광이 목과 손가락을 찌르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눈만 보고도 유 소장의 상태를 파악한 재마는 통증이 있을 팔을 꾹꾹 눌러보았다.

오십견도 오십견이었지만, 현장 일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진행된 외상에 어혈이 뭉쳐 있었고, 그 통증이 상처 부위뿐 아니라 오른쪽, 왼쪽 옮겨 다니게 된 상황까지 이르러있었다.

“팔 들어 올릴 때마다 통증이 있으시죠? 딱히 어디가 아픈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뻐근함도 오래가고요.”

“이야. 원장님 제대로 보시네요.”

자신이 말을 하지 않아도 지금 자신의 상태를 콕 집어 말하는 재마의 말에 재용은 할 말을 잃었다.

“아무래도 무거운 것도 많이 드실 것 같고, 팔을 쭉 뻗으시는 활동도 많이 하시다 보니 외상이 생겼던 모양입니다. 제때 치료를 하셨으면 좋았겠지만…….”

한의원에서 한의사가 아픈 부위를 한번 보자 해도 내뺐던 재용의 행동을 보니 병원을 딱히 찾지도 않았을 터였다.

“가볍게 보시고 그냥 지나가셨던 통증들이 오래되고 오래되어 이쪽저쪽 옮겨 다니게 된 상황입니다.”

“통증도 옮겨 다닙니까?”

재용은 생각지도 못했던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염증이 타고 번지기도 하고요. 어혈이 뭉친 것이 컨디션에 따라 더욱 뭉칠 때도 조금 풀릴 때도 있는 데 더욱 뭉친 상황에서 무리하게 움직이면 그 통증을 참아 내느라 근육들이 더욱 피로를 느끼기도 합니다.”

“케케묵은 통증이니 치료하기도 오래 걸리겠네요.”

재용은 오래된 통증을 이미 포기한 상황이었다.

“일단 처치실 가서 침 맞아보시고 이야기하세요. 저희 한의원 공사 하시며 더 상태 악화되면 제가 그때는 책임 못 집니다.”

치료를 포기할 생각을 하는 재용에게 재마는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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