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18화
“한의사가 데뷔는 무슨. 진료나 잘 보면 되지.”
재마는 동기들이 최중기에게 잘 보이기 위해 좋은 소리만 하는 꼴을 더 이상 보기 싫어졌다.
재마는 중기나 정한 한방병원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정한 한방병원 영상 아래로 뜨는 다음 영상들에는 눈이 가서, 커서를 내려 쭉 훑었다.
“뭐야. 요즘 너튜브 채널 하나쯤 운영하는 게 유행이라더니…….”
재마는 너튜브에 관심이 없어 잘 몰랐지만, 한의원뿐 아니라 피부과, 성형외과, 소아과 할 것 없이 의사들이 나서서 채널을 운영하고 있었다.
“다들 이런 것까지 찍을 시간이 있나…….”
재마가 운영하기 시작한 명의 한의원처럼 환자들 없이 파리만 날리는 것도 아닐 텐데 영상 하나하나에 정성이 들어가 있었다.
일반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의학 상식이라던가 환자들이 궁금해하는 의사들의 일상생활들이 주를 이뤘다.
“이런 것들이 인기가 있네.”
그중 조회 수가 높은 영상을 하나 들어가 보니 댓글의 반응들도 좋았다.
-장 원장님 정말 친절하세요. 지난주에 다녀왔는데 완전 짱 친절맨.
-장원장님 진료받고 평생 고생하던 변비 싹 나았습니다.
-우리 집 너튜브 주치의 장 원장님!
댓글에 채널을 운영 중인 병원을 직접 다녀왔다는 환자들에 간단한 진료 상담을 하는 댓글까지.
재마는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댓글들을 쭉 읽어 내려갔다.
‘얼굴로 진료하는 것도 아니고 뭐. 너튜브 데뷔? 한의사가 진료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지금까지 재마는 그렇게만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쭉 훑으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특히나 지금 명의 한의원처럼 새로운 환자는커녕 있던 환자도 돌아오기 힘든 상황에서는…….
환자가 많아서 정신이 없었다면 관심이 없었겠지만 한 시간 전, 진갑순 할머니를 진료한 이후 환자 소식이 아직도 없었다.
“어휴, 요즘은 얼굴도 능력이라니까요?”
“그러게 말이여. 정 실장 아침 방송에 나오는 한의사 봤어?”
“아침방송이요? 제가 출근을 하느라 TV는 잘 못 봐요.”
“에이. 요즘 TV 못 봐도 유명하던데? 이영기라는 한의사 말이여. 노인정 노인네들 사이에서는 거 뭐냐. 아이돌이여. 아이돌.”
밖에서 침을 맞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노인정을 가지 않고 명의 한의원에 남아 있었던 진갑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마는 진료실에서 나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슬쩍 들어보기로 했다.
쌍화차를 두 잔 따라, 정 실장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는 진갑순 할머니는 몇 주간 명의 한의원을 못 와 그간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털어놓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아! 저 알아요. 이영기 한의사. 유명하시잖아요. 너튜브에 채널도 있고.”
TV를 보지 않아 유명한 사람도 잘 모른다던 정 실장은 자신이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 반가운지 무릎을 탁하고 쳤다.
“너튜브? 난 그런 건 몰러. 그냥 아침방송 KBC에서 화요일마다 여덟 시 반에 나와서 좋은 얘기 하니까 아는 거지.”
“에이. 좋은 얘기만 해서 좋아하시는 거예요?”
이영기의 외모를 이미 잘 아는 정 실장은 진 할머니의 요점을 콕 집었다.
너튜브에서도 아침방송계 아이돌 한의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활동을 하고 있는 40대 미중년 한의사였다.
한의사가 외모로 잘 나간다는 것이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외모도 능력인 세상이니 그럴 수 있다 생각하며 종종 출퇴근길에 이영기의 너튜브를 챙겨보는 정 실장이었다.
“잘생겨서도 좋은 게 사실이지. 친절해 보이잖어.”
“에이. 저희 원장님은 안 친절하세요? 친절하신데?”
진갑순이 소리를 낮춰 친절해 보인다는 말을 하자, 정 실장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호호 웃었다.
대체 저 대목에서 손까지 가리고 웃는 이유가 뭘까.
“지…… 진갑순 환자!!!”
진료실을 나와 진 할머니와 정 실장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도 듣게 된 재마는 진 할머니의 이름을 버럭 불렀다.
“아이고. 깜짝이야. 뭔 일 있어……요? 젊은 원장?”
“원장님 나오셨어요?”
재마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두 사람은 이야기가 툭 하고 끊기고 재마를 동시에 바라봤다.
마치 재마가 들어서 안 될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두 사람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진갑순 할…… 아니, 환자. 침 맞으신 지 오래되신 것 같은데 아직도 계시네요.”
“아, 그래서 나왔어? 나야, 원래 여기 정 실장하고 친혀, 그래서 이렇게 쌍화탕도 마시고 담소도 나누다 가고. 뭐 그러는 거지. 한의원에 파리 날리는 것보다 낫자너. 왜요. 원장님한테 방해가 되는가? 그럼 가고.”
갑순은 당황한 나머지 이제 한의원을 나서겠다고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났다.
“원래 진료 보시고 이렇게 이야기도 하고 가시고는 해요. 원장님 필요한 것 있으세요?”
머쓱한지 정 실장도 진 할머니를 거들었다.
“아뇨. 필요한 건 없고요.”
재마도 자신이 버럭 진갑순 할머니의 이름을 부른 것이 민망해졌다.
영락없이 갑순을 자신이 눈치를 줘 내쫓는 모양새가 될 것 같았다.
“그…… 그, 얼굴로 진료 보는 거 아니잖아요. 잘생긴 거랑, 한의사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왜 읍써. 있지. 이왕이면 잘생긴 한의사가 침놔주면 덜 아프고, 후딱 낫지.”
“왜 요즘 너튜브 이런 거 보면 잘생긴 의사가 아니어도 채널 하나씩 하던데, 어르신들 건강 정보도 알려드리고요.”
재마는 자신의 속마음에 있었던 이야기를 혹시나 하고 말해봤다.
만약 갑순이 옳다구나 반응을 하면 자신도 용기를 내볼 생각이었다.
“너튜브? 그런 거 몰러. 그래도 봐봐. 텔레비전에 나오려면 일단 얼굴이 잘생겨야지. 안 그려? 그래야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고, 같이 찍는 연예인들도 기분이 좋고.”
진 할머니는 재마의 물음에 눈치 없이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흐흐 웃음을 흘렸다.
재마의 눈치를 보는 정 실장이 할머니의 옆구리를 쿡 하고 찔렀다.
“아, 왜 그려. 사실인디.”
“원장님 눈 좀 보세요……”
정 실장은 눈치를 보며 재마의 얼굴을 확인하라 일렀다.
벌겋게 달아오른 재마의 얼굴에 ‘나 화났소’라고 써 있었다.
“에그. 젊은 원장. 내가 잘 생겼다 소리를 안 해서 화난 겨? 뭘 그런 거로 그려. 젊은 원장은 실력이 좋잖어. 내가 인정! 노인정에 가서도 실력 하나는 끝내준다고, 소문낼 텐께. 걱정을 하덜 말어. 텔레비전에 나오는 게 대수여? 그냥 여기서 잘혀봐. 구 원장님처럼.”
“그러니까 진갑순 환자는 얼굴 잘생긴 원장님이 더 좋은데, 저는 그냥 뭐 그렇고 실력만 좋다 이 말씀이시죠?”
“그렇게 되는가?”
진 할머니는 자신이 한 이야기를 정리를 해주는 재마의 이야기에 머쓱해졌는지, 괜히 머리를 매만졌다.
“아녀아녀. 젊은 원장도 훤칠하게 잘생겼지. 그것도 할매들 헌티 가서 말할게.”
진 할머니는 그제야 손사래를 치며 무슨 이야기인 줄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억지로 옆구리를 찔러 절 받는 기분이 들었다.
“됐어요. 그냥 마음에 있는 이야기만 하세요.”
재마는 자신이 괜한 이야기를 꺼냈다는 듯, 고개를 훽 하고 돌렸다.
“아이고. 젊은 원장이 화났나 보네. 나 이제 그만 갈게. 정 실장.”
진 할머니는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리며 정 실장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 들리거든요!”
“화가 많이 났나 봐. 나 가요.”
진 할머니는 재마에게 가겠다 이야기를 하고 종종거리며 발을 옮겼다.
괜히 동기들 단톡방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진 할머니에게 불똥이 튄 것 같아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얼굴이 뭐 대수라고 할머니가 급체를 해서 사경을 헤맬 때 뛰어간 것도 자신이고, 이제는 자신을 믿고 치료까지 하겠다면서 이왕이면 얼굴도 잘생기면 놔주는 침이 덜 아플 것 같다는 소리를 하는 진 할머니의 말에 서운한 건 사실이었다.
“저…… 저기. 지…… 진료 보시죠?”
진 할머니가 명의 한의원 문을 나서려 할 때,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키가 큰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대문을 넘어왔다.
“네. 진료 봅니다.”
마당을 걸으며 화를 삭힐 생각이었던 재마는 진료를 보냐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원장님이…… 바뀌셨나 보네요?”
“네. 최근에 바뀌었습니다. 기존에 오시던 환자분이신가 보네요? 정 실장님, 차트 좀 찾아주세요.”
재마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번에도 여전히 낯선 한의사에 대해 경계를 하는 눈빛이었다.
“아, 기존에 오던 건 아니고요. 소개를 받았거든요. 아버지한테.”
“아 그럼 신규 환자네요.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진 할머니가 드시던 쌍화탕를 정리한 정 실장이 데스크로 안내했다.
명의 한의원이 한자리에 오래 있다 보니, 소개를 받고 알음알음 찾아오는 환자들이 더러 있었다.
곧 개발이 된다고 명의 한의원도 벌써 문 닫았냐는 연락도 받는데, 그럴 때마다 진료하고 있다고 친절히 안내 중이었다.
더구나 이렇게 대를 건너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더욱 반가웠다.
“여기, 여기. 신규 환자 차트 만들 때 필요한 부분이거든요. 적어주시겠어요?”
신규 환자의 진료 차트를 찾은 정 실장이 펜과 함께 환자에게 건넸다.
오래간만에 명의 한의원을 찾은 신규 환자였다.
“아, 이걸 직접 써야 하나요?”
“네. 서서 쓰시기 불편하시면 평상에 앉으셔서 쓰셔도 돼요.”
키가 훤칠해서 병원 데스크에 기대어 차트를 작성하기에는 불편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정 실장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뒤에 있는 평상을 가리켰다.
사내는 민망한지, 평상을 쓱 바라보고는 다시 차트를 바라봤다.
그리고 손을 얹어 펜을 집었다.
환자가 펜을 집는 모습을 본 정 실장은 흠칫하고 놀랄 뻔했으나, 이내 표정 관리를 했다.
‘키도 크고, 나이도 아직 30대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데…….’
놀라기도 놀랍고, 안쓰러운 마음이었지만 환자에게 티를 낼 수 없는 정 실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