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15화
“면회 오셨어요?”
미정은 자신을 부른 목소리에 뒤를 돌았다.
“아…… 저기 면회는 아니고…….”
“면회는 아니고……?”
5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중년 여성은 미정의 물음에 무엇이라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뜸을 들이는 것 같았다.
“보…… 보호자인데요.”
“아, 보호자시구나. 어떤 환자분 보호자세요? 필요한 것 있으세요?”
미정은 입원한 환자 중 자신과 마주쳤던 적이 없었던 보호자라는 생각에 차트를 확인하려 환자 차트를 들었다.
“구…… 구철원 환자 보호자예요. 병실이 어느 쪽이죠?”
무엇이라 말을 할 줄 몰라 뜸을 들이던 경옥은 수십 년간 자신의 목소리로 내어보지 않았던 아버지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불렀다.
“구철원 환자 보호자님이세요? 어머. 잘 오셨어요. 혼자 퇴원하실까 봐 제가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미정은 처음 만나는 경옥이었지만 노년의 환자가 혼자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반가움이 앞섰다.
데스크에서 한달음에 나온 미정은 경옥의 손을 덥석 잡았다.
경옥은 뜻하지 않게 반색을 하는 간호사의 손길에 당황스러웠지만, 애써 손을 빼지는 않았다.
“첫 항암치료여서 힘드실 거예요. 혼자 택시 타고 돌아가시겠다 하셨는데, 아마 그랬다면 내내 찜찜한 채로 근무했을 텐데. 감사합니다. 호실은 912호고요. 창가 쪽 자리에 계세요.”
미정은 반가운 나머지 손을 잡은 채 정말 잘 오셨다는 말을 연달아서 했다.
“네. 감사합니다.”
살갑게 자신을 맞이한 간호사 미정에게 인사를 한 경옥은, 떨어지지 않는 발을 천천히 옮겼다.
복도 끝의 912호까지 발걸음을 옮기는 데 구정동에서 강남에 있는 병원까지 온 거리보다 더 멀게만 느껴졌다.
“아아아. 선생님 약 들어간 이후로 계속 구토랑 오심이 생겨요. 언제까지 맞아야 해요?.”
“아프셔도 조금만 참으셔야 해요. 제가 진통제 처방 가능한지 과장님께 여쭤볼게요.”
912호에는 항암제를 맞으며 괴로워하는 환자와 괴로워하는 그를 진정시키는 간호사가 있었다.
경옥은 자신의 귀에 들리는 괴로워하는 신음에 저도 모르게 절로 눈가가 찌푸려졌다.
그리고 병실 가장 안쪽에는 침대에 걸터앉은 노년의 남자가 환자복이 아닌 사복을 입은 채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가 자신이 찾아온 아버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아버지.”
오래도록 불러본 적 없는 아버지라는 단어를 어렵게 입에 올린 경옥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철원은 자신을 부르는 딸의 목소리를 알아채지 못한 듯,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아버지. 저 왔어요. 경옥이요.”
경옥은 저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제 목소리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경옥이라는 이름을 이야기하자, 창밖만 바라보고 있던 철원이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았다.
자신이 잘못 들은 줄만 알았던 목소리가, 실로 제 딸이 찾아와 자신을 불렀다는 사실에 놀란 모양이었다.
“네…… 네가 어찌 여기를 왔어.”
“어떻게 오긴요. 당연히 와야지. 왜 딸한테 아프다는 연락도 안 하세요.”
경옥이는 들고 온 손가방을 바닥에 툭 떨어뜨리고 흐르는 눈물을 양손으로 닦아 냈다.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출 줄 모르고 어린아이처럼 터져 나왔다.
“아버지는 평생을 그러시더니 결국에는…….”
쌓인 것이 많은지, 경옥은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철원을 원망했다.
“네가 이렇게 힘들어할 줄 알고 말을 하지 말랐거늘.”
“언제까지 숨기시려고요. 제 아들을 데리고 가실 거면 저한테 말이라도 하시던가요.”
경옥은 지난 30년 가까이 왕래를 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한의원을 자식인 재마가 이어간다는 소식보다도 마음속 한구석에 응어리로 남아 있던 아버지의 병환 소식이 더욱 마음에 아팠다.
하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그 티도 다 내지 못하고 재마를 언급했다.
“그래 말 잘했구나. 얼른 퇴원하고 한의원에 가봐야 하는데, 왜 수속은 안 끝나는 건지.”
자신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우는 경옥의 모습에도 안아주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구철원은 다른 환자들이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챘다.
“죄송해요. 저희가 시끄러웠네요.”
항암치료를 받으러 들어와 있는 환자들은 작은 소리에도 예민할 수밖에 없는데 경옥의 울음소리가 곱게 들릴 리 없었다.
아버지의 소리에 경옥은 그제야 민망한 듯, 소리를 억지로 참으며 숨죽여 울음을 삼켰다.
아버지를 만난 서러움에 조금 전 항암치료에 괴로워하던 환자 생각도 잊은 경옥이었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아무도 모시러 오는 분 없을 줄 알았는데 따님이 계셨네.”
옆자리에 누워 있는 환자 보호자가 잘됐다는 듯 박수까지 치며 경옥에게 눈인사를 했다.
경옥은 눈물을 훔치며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함께 병실을 쓰던 모두 병간호를 도맡아 하는 가족들이 있는데 며칠간 홀로 침대에 있었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또 한 번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연로하신데 자식한테 굽히시기도 하셔야죠.”
“맞아요. 이제 치료받으실 때는 따님하고 같이 다니세요. 노인 혼자 다니면 택시기사도 무시하는 것 같고 서러울 때가 얼마나 많은데.”
옆 환자 보호자뿐 아니라 그 옆 침대의 환자도 말을 거들었다.
모두 아픔뿐 아니라 서러움까지도 어느새 이해하며 동질감을 느끼는 동지가 되어 있었다.
“들으셨죠? 아버지. 딸 두고 다니지 마세요.”
경옥은 눈물에 젖은 손수건을 쥔 손으로 철원의 손을 잡았다.
철원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꾹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제 구 원장님은 아예 안 오시는 거여?”
오늘 처음 온 70대 남성 환자분이 재마가 자침을 하기 좋게 베드에 누워 허리를 들어내며 물었다.
구 원장의 이야기를 물어올 때마다 당황스러웠던 재마도 이제는 익숙하게 환자들에게 구 원장의 이야기를 대답할 수 있었다.
과일 가게 윤 사장에게 원장님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래도록 뵈어 왔던 분이라 하루아침에 은퇴를 하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아쉬운 마음이었다.
그래도 자택도 해인동이니 오가며 얼굴이나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얼굴 한 번을 볼 수 없었다.
구 원장의 소식을 물을 때마다 그의 투병 소식을 마음대로 전할 수 없는 재마는 구 원장이 여행을 갔다고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네. 구 원장님이 이곳에서 진료만 보신 지도 40년이 넘었다면서요. 쉬실 때도 되셨죠. 여행도 가시고.”
“이번에 그래서 여행 가셨다며. 여행을 뭐 그렇게 급하게 잡으셨대. 은퇴하셔도 한의원 돌아가는 모습도 좀 지켜보시고 하시지. 새로 온 원장은 해인동 이쪽에 사는 겨?”
책임감 하나로 한자리에서 오래 진료했던 철원이었기에 더욱 서운한 마음이 드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무조건 안 좋게 보던 환자들이 재마에 대해 궁금해하고 묻기 시작했다.
“네. 당분간은 한의원에 적응도 해야 하고 구 원장님 지내시던 방에서 지내요.”
“아쉽지만 어쩌나. 시간은 흘러가고 변하는 것은 변해야지.”
목소리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한가득 담겨 있었지만 애써 이해를 하려는 어르신이었다.
“걱정 마세요. 여행 몇 번 다녀오시고 지겨워지실 때쯤이면 한의원에 오셔서 이것저것 훈수 두실 거예요.”
“구 원장 손자라고?”
“네. 외손자예요.”
환자들에게 하도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외손자라는 말이 생소하게만 생각되었는데 이제 제법 익숙해졌다.
저도 모르게 툭 하고 대답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몇 주 사이에 이렇게 변한 모습에 재마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외손자라 그런지 실력까지 빼다 닮았네. 원장님은 진짜 눈만 마주쳐도 내가 어디 아픈지 구석구석 아시는 것 같다니까. 대단하신 양반이었지. 그걸 손자분이 닮으셔서 이렇게 한의원도 물려받으시고 대단한 집안이야.”
환자는 재마가 자침을 하는 동안에도 몇 번씩이고 구 원장에게 도움을 받아 치료를 했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허리 아프신 데 다 놔드렸고, 기 순환되라고 추가로 침 몇 대 놔드렸으니까 아마 기력회복하시는 데 도움되실 거예요.”
나이도 나이였지만, 봄에 감기를 앓은 이후 기력도 많이 쇠했다는 환자의 말에 재마는 기 회복을 위한 침까지 추가로 놓았다.
“고마우이. 이 원장. 나는 베드 생긴 게 참 좋아.”
환자는 재마의 왼쪽 가슴에 적힌 재마의 성을 붙여 감사하다는 말을 건넸다.
기존에 구들장이 있었던 처치실 1과 베드가 있는 처치실 2로 나눠 운영하며 환자들이 선호하는 처치실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아직은 익숙한 처치실 1을 선호하는 환자들이 더 많았지만, 오랜 단골들 사이에서 드물게 베드 타입을 원하시는 환자분들도 있었다.
“좋아하시니 다행이네요. 조금씩 제가 손봐가며 더 잘 운영하겠습니다. 침 다 맞고 조심히 가세요. 드시던 쌍화차는 새로 따뜻하게 준비하라고 할게요.”
말이라도 새로운 처치실이 맘에 든다는 한마디에 재마는 기분이 좋아졌다.
언제 이곳이 개발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진료를 할 재마였다.
진료를 보며 마시던 쌍화차가 이제 제법 식었을 테니, 재마는 종이 잔을 손에 들었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요. 내가 알아서 한잔 더 달라 할 테니.”
명의 한의원에 익숙한 환자는 누워 있는 상태로 손사래를 쳤다.
구 원장이 맡아서 할 때부터 원장이 바뀐 지금까지.
환자들이 익숙한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탓에 낯선 감정을 느꼈다가도 여전하구나 하는 안도감에 금세 편안해질 수 있는 명의 한의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