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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읽는 한의사-13화 (13/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13화

똘망똘망한 눈을 한 설아는 노란 원피스를 입고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한의원 문을 열었다.

“설아 왔네!”

정 실장도 2주 동안 꾸준히 명의 한의원을 찾은 설아와 많이 친해져 아이를 보자마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간호사 선생님 안녕하세요.”

“설아는 오늘도 예쁘네.”

“헤헤. 감사합니다.”

예쁘다는 칭찬에 설아는 얼굴이 발그레해지며 인사를 했다.

“설아,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처음 재마가 있는 진료실로 들어섰던 설아는 울상이었지만, 이제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재마와 익숙해지기도 했지만 아이의 미소를 되찾아 준 건 아이 배를 꽉 채웠던 가스와 변이 해소되었기 때문이었다.

“설아, 엄마가 배 마사지해 주실 때 이제 안 아파요?”

“네. 선생님. 예전에는 엄마가 설아 배 이렇게 꾹꾹 누를 때 아파서 눈물도 나고, 그만하고 싶었는데…… 이제 단단했던 게 말랑말랑해져서 그런가 한 개도 안 아파요.”

“오, 한 개도 안 아파요오?”

재마는 동글동글한 새카만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설아와 시선을 마주치고 아이의 목소리를 따라 했다.

“네!”

“쓴 물약도 잘 먹었어?”

“처음에는 진짜 어~엄청 썼는데 이제는 괜찮아요. 엄마가 몸에 좋은 건 다 쓰대요. 정말이에요? 쓰지 않은 것도 많이 먹는데…….”

설아는 몸에 좋은 것만 먹으려면 맛있는 건 못 먹는다고 생각한 건지 뾰로통해진 얼굴이었다.

“엄마 말씀이 진짜 맞아. 몸에 좋은 건 쓰지. 근데 맛있는 것 중에도 몸에 좋은 게 많단다.”

“사탕은요?”

“사탕은 달고 맛있지?”

“네!”

특히 사탕을 좋아하는지, 사탕이 몸에 좋은지 안 좋은 지 묻는 설아였다.

“사탕을 너무 많이 먹으면 이가 다 썩으니까, 하루 한 개씩만 먹자. 먹고 나서 치카치카 잘하고.”

“하루 한 개는 괜찮아요?”

뾰로통해졌던 설아의 얼굴이 활짝 폈다.

“하루 한 개만 먹겠다고 선생님이랑 약속하면 하루 하나씩 줄게.”

설아의 엄마도 딸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당부했다.

“네! 저 사탕 하루 한 개씩만 먹을게요!”

설아는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얼마 만에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는 건지 모르는 재마는 설아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

“약속.”

“약속~”

“설아 그동안 쓴 물약 먹느라 고생했어. 이제 선생님 만나러 안 와도 되겠다.”

“정말요? 이제 병원 안 와도 돼요?”

설아는 입술을 쭉 내밀며 질문했다.

아무래도 이제 재마를 보러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서운한 모양이었다.

“선생님도 설아 봐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설아는 재마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어린아이라고 생각하기 놀랍게 기특한 모습이었다.

재마는 설아의 통통한 볼을 톡 하고 건드렸다.

“이제 배 아야 안 할 테니까, 맛있는 거 마음껏 먹고.”

“야채도 많이 먹고요?”

“응. 야채도 많이 먹고.”

“약속도 잘 지킬게요.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설아는 똑똑하게도 재마가 몇 번씩 강조했던 야채 먹기를 다시 한번 약속했다.

재마는 설아 뒤에 있는 설아의 엄마에게도 인사를 했다.

재마가 명의 한의원에 와서 처음으로 완치를 하고 돌아가는 환자였다.

아마 설아의 모습은 오래도록 재마의 기억에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엄마의 손을 잡고 재마에게 손을 흔드는 설아를 따라 손을 흔들었다.

“후.”

다행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설아의 모습을 이제 보지 못한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설아가 건강하면 되지 뭐.”

설아를 다시 못 본다는 아쉬움에 빠지려는 찰라, 재마는 순간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뭐지?”

[보상 스토어, 열려 있는 카드 중 하나를 선택하세요.]

“스토어?”

명의 한의원이 5대째 내려오는 한의원이라는 명맥과는 조금 이질감 느껴지는 단어였다.

처음으로 보상을 받는 재마는 어리둥절했지만, 이 또한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열려 있는 카드를 열라더니, 뭐야. 딸랑 둘밖에 없네.”

재마는 입으로 투덜거렸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두 장중 하나의 카드를 뒤집었다.

[탕약 카드를 선택하셨습니다.]

“탕약?”

카드가 딱 두 장이었으니 50프로의 확률로 선택한 것이었을 텐데 다른 카드도 궁금했다.

“다른 카드에도 탕약 있었던 것 아니야?”

재마는 호기심에 열리지 않은 카드를 선택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생전 처음 보는 빨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상은 한 번에 한 가지입니다.]

“야박하네. 누가 보상 달랬나. 저쪽 카드에는 무슨 카드인가 보고 싶어서 그랬지.”

재마의 진료실에는 재마밖에 없었지만, 재마는 누구와 대화라도 하듯 투덜거렸다.

“탕약 카드를 뽑으면 뭐하냐고요. 환자들이 탕약 짓는 것부터 내켜 하지를 않는데…….”

재마는 자신도 모르게 절로 한탄이 터져 나왔다.

재마는 보상을 받고도 씁쓸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진료실을 빠져나와 마당으로 나왔다.

재마는 낯설면서도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명의 한의원을 한 바퀴 쭉 돌았다.

오래되고 불편한 한의원이었지만 애착을 갖고 있는 동네 사람들, 그리고 최 실장.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려는 마음이었다.

한옥을 개조해서 만든 명의 한의원의 첫 이미지는 조선 시대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며칠 지내보니 매력이 있는 공간이 눈에 들어오기는 했다.

명의 한의원을 찾았던 환자들이 명의 한의원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는 이런 분위기도 있을 것 같았다.

재마가 마당을 둘러보고 있을 때, 처치실 안쪽에서 사내의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설아가 다녀간 이후 환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던 재마는 처치실 문을 활짝 열었다.

“어이쿠. 깜짝이야.”

재마의 손이 문을 활짝 열어 재끼자 화들짝 놀란 최 실장이 뒤로 나자빠졌다.

“뭐 하십니까?”

최 실장이 놀란 만큼 재마도 한 덩치하는 그가 꽈당 넘어가는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 뭐 하긴유. 환자 없어도 청소는 해야 하니까요.”

최 실장은 넘어진 것이 민망한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 걸레질하신 겁니까?”

“손만큼 깨끗하게 닦이는 것도 없어요. 바닥에서 환자들이 치료받으시려면 못해도 하루 한 번은 이렇게 닦아야죠.”

최 실장은 당연하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나 처치실에서 걸어 나왔다.

“걸레질하시는 게 힘드실 텐데 그래도 베드는 거부하시는 이유가 대체 뭡니까?”

누가 봐도 한 덩치를 하는 최 실장이 그의 몸집에 맞지 않게 쭈그려 앉아 걸레질을 한 상황이 어울리지 않으면서 답답하기까지 했다.

“불편해도 어째유. 어르신들이 좋아허시는 데.”

걸레를 들고 마당 뒤쪽으로 가는 최 실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을 했다.

띠링.

-어이, 닥치고 이재마!

재마가 최 실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사이, 메시지 알림음과 함께 재마를 찾는 톡 창이 떴다.

재마를 찾는 동기들의 부름에도 한참 동안 아무런 대답이 없는 통이라 걱정이 되었는지, 가장 친한 동기였던 강산의 개인톡이었다.

사상의학을 창시한 이제마 선생의 저서 [격치고]를 인용해 닥치고 이재마라고 부르는 강산의 메시지까지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왜, 인마.

왜 부르냐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재마도 왜 개인톡까지 보냈는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살아 있었네. 이 새끼

묵묵부답이었던 재마를 걱정했던 산은 재마의 답에 살아 있었다며 욕을 날렸다.

-그럼 죽었겠냐?

-난 또 공주님이 환승 이별하셔서 접싯물에 코 박고 뒤졌나 했지.

재마는 산이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벙쪘다.

-환승이별?

-뭐야. 몰랐어?

-뭘 몰라.

-네 여친, 너랑 헤어지고 중기랑 사귀잖아.

-뭐?

재마는 산이의 톡에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산이가 이야기하는 여친이, 자신과 헤어진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박연아를 말하는 건지 얼떨떨했다.

-몰랐구만. 이 새끼. 네 전 여친 박연아, 중기랑 만나는 데 곧 상견례 한다더라.

만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허.”

재마는 손에 휴대전화를 든 채, 어이가 없어 탄식이 터져 나왔다.

“원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약제실에서 나온 정 실장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재마를 보고 가던 길을 멈추고 물었다.

“아, 아닙니다.”

“음…….”

하얗게 질린 얼굴에, 아무 일이 아닌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한 정 실장은 더 이상 묻지 않고 탕제실로 들어갔다.

“후.”

재마는 어이가 없어 말을 잇지 못했다.

“상견례? 나랑 헤어진 지 한 달이 되었어, 두 달이 되었어.”

관계에 대해 생각을 해보자던 연아는 그 뒤로 더 이상 연락이 없었다.

그사이 재마 또한 명의 한의원에 신경을 쓰느라 연아에게 신경을 쓰지는 못했지만 헤어지더라도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다.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동기인 중기와 상견례를 한다는 것은 동기들 사이에서 안줏거리로 씹힐 떡밥을 던지고도 남는 행동이었다.

그러잖아도 아무런 빽도, 돈도 없는 재마와 한국에서 둘째라면 서러운 정한 한방병원 집안의 연아가 사귀는 것을 두고 말이 많았던 동기들이었다.

-야, 이재마! 괜찮아. 인마? 너 한강으로 뛰어드는 거 아니지?

-미친 새끼. 내가 여자 때문에 뒤질 것 같냐? 지금 할 일도 많아서 머리가 터지겠는데.

-너 정한 한방병원 입사도 안 했는데, 뭐 한다고 머리가 터져?

명의 한의원을 물려받게 된 상황을 동기들에게 알리지 않은 재마는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해인동이 개발되고 보상금이라도 두둑이 받은 다음에 이야기를 하면 모를까.

하지만 개발이 언제 될 줄 알고, 그때까지 연락하지 않으면 아마 한강 가서 자신을 찾을 위인인 강산이기에 재마는 고민에 빠졌다.

박연아에게 차인 후에도 그녀를 생각도 할 틈도 없이 바쁘다고 해줘야 조용해질 강산이었다.

-나 한의원 인수 준비 중이야.

-개원을 한다고?

-그래 인마. 형님이 좀 빠르냐.

졸업하자마자 개원을 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문 케이스였다.

더구나 빽도 돈도 없는 닥치고 이재마가?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대출 풀로 당겨서 인수할 생각이야? 요즘 개인한의원 잘 안 된다고 선배들도 앓는 소리 하는데.

재마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는 강산은 갑자기 이 새끼가 왜 이래. 차이더니 돌았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뻔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돌아봐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으니까.

그런 게 있어, 인마. 너 같은 애송이는 모르는 거.

강산이 재마가 처한 상황을 알 리가 없었다.

갑자기 27년 만에 나타난 한의사 할아버지며, 해인동에 위치한 조선 시대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한의원까지.

그뿐만 아니라

[홍채를 인식하세요.]

함께 수련을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던 능력까지.

아마 자신에게 이런 능력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하면 믿어주기는커녕 박연아와 헤어지고 충격으로 미친 게 분명하다고 정신과를 추천할 녀석이었다.

-언제 한 번 넘어와라. 해인동에 있어.

-미친 새끼. 해인동에서 무슨 한의원을 한다고.

재마는 끝까지 자신을 한심스럽게 이야기하는 강산과 메시지를 하며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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