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11화
“구철원 님. 보호자 분 오늘도 안 오세요?”
병실 간호사인 미정에게는 요즘 걱정을 끼치는 환자가 한 명 있었다.
데이 출근을 하자마자 가장 먼저 걱정되는 환자의 병실로 향했다.
구 원장이 누워 있는 병실 문을 노크하는 것과 동시에 간호사는 아무도 없는 병실을 둘러보았다.
듣자 하니 연세가 지긋한 한의사 환자인 모양인데 검사를 위해 입원할 때도, 암을 발견한 후 항암치료를 시작한 후에도 단 한 번도 보호자가 찾아온 적이 없었다.
“보호자 없습니다.”
구 원장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누워 간호사의 질문에 답변을 했다.
매일 똑같이 날아오는 질문에 철원도 지겨울 만도 했지만 아무런 감정 없는 대답이었다.
“보호자 있으시면 연락해서 오시라고 하세요. 내일 퇴원하셔야 하는 데 아무도 안 오시면 어떡해요. 연세도 있으신 분이…….”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에는 간호사들도 있고, 간병인도 있었지만 항암치료가 끝나고 퇴원을 하고 돌아갈 때가 문제였다.
젊은 사람이라면 택시를 타고 자택으로 귀가하는 것이 이렇게까지 마음이 쓰이지는 않을 텐데 연세가 지긋한 환자가 혼자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걱정이 되어 여러 번 물을 수밖에 없었다.
구 원장은 계속되는 간호사의 이야기에도 입술도 달싹이지 않았다.
“아유. 참. 환자 생각하는 마음 모르시지도 않으실 분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구 원장에게 안타깝다는 듯 한마디를 남긴 간호사는 애꿎은 링거 줄을 확인하고 다시 데스크로 돌아갔다.
다시 덜렁 혼자가 된 구 원장은 눈을 천천히 떠 간호사가 병실을 빠져나간 걸 확인했다.
몇 번씩 자신에게 같은 질문을 하는 간호사의 말을 이해 못 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환자라도 보호자가 없이 항암치료를 받고 홀로 퇴원하는 것을 가만두고 볼 수만은 없었을 터이니 말이다.
-구 원장님. 원장님이 절 찾으신 거잖아요. 제게 언제까지 상황을 숨길 수는 없습니다.
구 원장은 자신을 향해 이야기를 하던 손자 재마의 말을 떠올렸다.
-숨기시는 건 어머니한테도 옳은 일이 아니에요.
제 하나뿐인 딸 경옥이를 어머니라 부르는 아이.
그 아이 평생 외할아버지인 자신의 존재를 모르고 자랐으니, 자신을 위한 말이 아닐 것이었다.
어머니인 경옥을 위한 말이겠지.
그 아이가 걱정하는 제 어미의 마음에 대못을 박은 이 늙은이를 용서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에 빠졌다.
아마 지금 구 원장이 맡아 하던 한의원을 맡게 된 것은 책임감이나 의무보다는 운명적으로 다가온 능력 때문일 것이었다.
하지만 능력만으로 환자를 살피고 한의원을 운영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환자를 내 가족처럼 생각하고, 나보다 더 아껴야 진짜 한의사가 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막 한의사 면허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외손주를 찾아 그 자리에 앉히는 것은 숱한 고민의 결과였다.
5대째 구 원장의 가업으로 이어오는 한의원을 아무런 연관도 없는 한의사에게 넘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한의원의 대를 끊고 정리할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경옥이의 아들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걱정과 미안한 마음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을 하는 구 원장의 눈앞에 깜빡이던 마지막 메시지.
[운명을 받아들일 후임자를 찾아라.]
후임자라는 메시지를 보자마자 경옥의 아들을 떠올렸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처음 그 아이를 본 순간부터 구 원장은 확신했다.
이 아이는 구 원장과 끊어진 천륜을 이어줄 아이이자, 명의 한의원을 이어줄 운명적인 아이라는 것을.
구 원장은 병실 사물함에서 자신의 오래된 지갑을 꺼냈다.
신분증 칸에 신분증 뒤에 접힌 오래된 사진을 꺼냈다.
접힌 지 오래되었는지 하얗게 사진이 찢어져 올라올 정도인 접힌 사진을 힘겹게 펼친 구 원장은 사진을 눈을 찌푸리고 들여다보았다.
처음 사진을 손에 쥐었을 때는 눈을 찌푸리지 않아도 사진 속의 얼굴들이 명확히 보였지만 이제는 눈을 찌푸리고도 사진 속 얼굴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사진 속에는 사랑이 넘쳐 보이는 세 사람이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경옥이의 미소가 아이를 따라 구 원장의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감도 오지 않는 세월이 흘렀다.
정말 아주 가끔 사진을 들여다보며 이제는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은 경옥이가 제 엄마를 닮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었다.
이제 와서 용서를 바라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흘렀다.
경옥이의 아들에게 한의원을 내어 주고 병상에 누워 있기는 했지만, 이런 상황을 경옥이에게 알리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재마의 말처럼 경옥이 끔찍이도 싫어하던 명의 한의원을 자신의 아들이 물려받았다는 걸 오래 숨기지는 못할 터였다.
* * *
“이 정도면 할머니들 생각이 좀 바뀌었겠지?”
노인정에 왕진을 갈 때까지만 해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미션 메시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향했던 재마였다.
하지만 노인정을 빠져나올 때까지 그를 배웅하던 할머니들의 모습을 생각만 해도 흐뭇했다.
명의 한의원까지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만하면 보상 좀 받을 때가 되지 않았나?”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어깨를 떠밀리는 기분이었지만 그도 내심 보상을 기대하고 있었다.
“보상받으면 막 눈에 혈자리가 훤히 보이고, 진단명 빡 뜨고 그러는 거 아닌가.”
아직 받아보지도 못한 보상을 기대하는 재마는 어깨까지 으쓱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원장님!”
재마가 혼자 신이나 시장골목을 지나갈 때, 익숙한 얼굴이 그를 불러 세웠다.
재마가 자신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지나갈까 봐 가게 안에서 준비했던 검은 봉투를 들고 뛰어나오며 손을 흔들었다.
조금 전, 재마를 부르러 직접 한의원까지 뛰어 왔던 과일가게 윤 사장님이었다.
재마는 가던 길을 멈추고 뛰어오는 윤 사장 쪽으로 발을 옮겼다.
“아, 네. 사장님.”
“할머니는 좀 괜찮으세요?”
“네. 침놓고 한의원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아마 며칠은 고생하실 거예요. 연세도 있으시니까요. 그래도 사장님이 바로 와주셔서 처치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자신의 가게 문은 활짝 열어놓고 한의원까지 뛰어 왔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윤 사장의 뒤로 오늘 아침 새벽시장에서 가져 왔을 싱싱한 과일들이 가지런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감사는요, 바로 노인정까지 함께 가 주셔서 제가 감사하죠. 저야 20년을 뵈어 온 어르신이지만 원장님은 아니시잖아요. 제가 과일 몇 개 싸놨는데, 가져가서 실장님들하고 드세요.”
검은 봉투에 과일을 담았다고 건네는 윤 사장의 행동에 재마는 손사래를 쳤다.
담았을 과일들은 모두 판매 제품일 텐데 자신에게 건넨다고 받을 수는 없었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아니에요. 바쁘신 분을 제가 가서 직접 불렀으니, 제가 마음 편하려고 그래요. 맛있게 드셔 주시면 됩니다.”
윤 사장은 한달음에 노인정까지 달려가 준 재마에게 성의 표시는 꼭 해야 한다는 것처럼 재마의 손에 검은 봉투를 쥐여줬다.
무엇을 얼마나 넣은 건지 묵직한 봉투를 건네받은 재마는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제 할 일을 한 건데요. 감사합니다. 저희 선생님들하고 잘 먹겠습니다.”
오히려 재마가 윤 사장에게 감사하다고 해야 할 수도 있었다.
좀처럼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할머니들에게 자신을 한 번이라도 알릴 기회를 준 건 윤 사장이었다.
“네. 드셔보시고, 맛있는 건 언제든 말씀만 하세요.”
“어휴. 그래도 이렇게 공짜로 매번 받아먹을 수 있나요?”
검은 봉지 안에는 참외와 사과, 딸기 한 팩이 묵직하게 들어가 있었다.
오랜 시간 자취를 해온 재마는 시간 내어 제철 과일을 먹은 지 언제인지 까마득했다.
고마움과 반가움에 고개를 절로 숙였다.
“저희 골목 사람들이 구 원장님한테 도움받은 게 한두 가지인가요. 이제는 원장님이 새로 오셨으니 인사도 드릴 겸 드렸다고 생각하시고 부담 없이 드세요.”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윤 사장은 인사를 하고 다시 한의원으로 발걸음을 뗀 재마의 뒷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젊은 선생님이 생각보다 싹싹하네.”
윤 사장의 인사에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 제 갈 길을 가는 재마의 뒷모습을 보며 혼자 읊조렸다.
오랫동안 동네 어르신들의 건강을 책임졌던 구 원장의 빈자리가 단박에 채워지기는 힘들겠지만, 재마가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오랜 시간 홀로 지내는 구 원장의 상황에 혀끝을 끌끌 차던 동네 어르신들의 안타까움이 무색했다.
“저렇게 든든한 외손주가 있으셨네.”
구 원장의 외손주라는 소리가 들리더니, 정말 그와 닮은 모습이 보였다.
동네 사람들이 구 원장님의 은퇴 소식에 아쉬운 말을 한마디씩 할 때마다 그저 씁쓸한 미소만 보였던 윤 사장이었다.
자신이 이곳에서 과일 장사를 시작한 지 20년이니 그보다 더 오래 한 자리에서 진료를 본 구 원장은 자신보다 더 오래 한 곳에 메여 있던 것이었다.
손님들, 환자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만은 한 곳에서 오래도록 진료를 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남들 다 다니는 여행 한번 마음 놓고 다녀올 수 없고, 가족의 경조사 또한 쉽게 챙기지 못했다.
점점 깊어지고 가까워지는 손님들과의 거리에 책임감이 들어 몸이 아파도 가게로 몸을 끌고 나와야 했다.
“오래 고생하셨지 뭐. 구 원장님도. 이제 그만하실 때가 됐어.”
사실 새로운 원장이 오는 것도 다행이었지만, 동네에 병원이 명의 한의원뿐만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앓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구 원장님이 들으시면 얼마나 씁쓸하실지 상상이 되었다.
윤 사장은 구 원장님을 생각하니 절로 씁쓸해져 자신의 가게의 과일들을 손님들이 보기 좋게 다시 한번 이리저리 옮겼다.
다른 사람은 갑자기 은퇴해 버린 구 원장에게 아쉬운 마음만 갖고 있었지만, 자신만은 그렇지 않기로 했다.
새로운 명의 한의원의 젊은 원장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자, 더욱 구 원장을 응원하는 마음이 생겨난 윤 사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