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읽는 한의사 5화
“아이고. 아이고. 원장님.”
밖에서 들려오는 앓는 소리에 재마는 눈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을 뜨고 자신이 잠든 공간을 낯선 눈으로 둘러봤다.
딱 봐도 60년대 시대극에나 나올 것 같은 한의원 처치실의 분위기를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방이었다.
“허얼. 이런 데서 치료를 하는 건 아니겠지?”
지금껏 깔끔한 베드에 새하얀 커튼을 보름에 한 번은 갈아가며 관리 되는 처치실에서만 치료를 해봤던 재마에게 명의 한의원 처치실의 상태는 놀라 자빠질 뻔한 상태였다.
이곳에는 커튼은커녕 베드도 있지 않았다.
기지개를 쭉 켠 재마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재마를 깨웠던 앓는 소리는 한의원 진료시간이 시작도 되기 전에 한의원 문을 두드리며 찾은 환자의 소리였다.
“제가요.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일 가야 하는데, 미끄러져서 허리가 이 모양이 되었어요. 원장님 어떡하면 좋아요.”
“잠시만요. 진정하시고.”
미끄러져서 허리를 삐끗한 것처럼 보이는 중년여성은, 사고 때문에 생긴 통증과 곧 출근 시간인데 출근을 하지 못할까 걱정되는 마음에 소리를 높였다.
당황한 환자와 달리 구 원장은 이른 아침에도 당황하지 않고 흥분한 환자를 진정시켰다.
[명의 한의원에서의 첫 번째 환자.]
재마는 자신의 눈을 세게 비볐다.
아직도 눈앞에 나타나는 메시지들이 적응이 되지 않는 그였다.
‘첫 번째 환자? 내가 저 환자를 보라고? 당장?’
잠에서 깬 지 불과 5분도 되지 않는 상황인데 자신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메시지였다.
처치실에서 나와 얼떨떨한 상황을 그저 멀뚱멀뚱하게 지켜보는 재마에게 구 원장이 말을 걸었다.
“거기 그렇게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지 말고. 얼른 와. 환자 힘들어하는 게 안 보이는 거야?”
“네? 제가요?”
“그럼. 앞으로 한의원 이어 갈 사람이 넌데, 다른 사람이 치료하나?”
구 원장은 환자의 허리를 이리저리 꾹꾹 눌러 보며 재마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구 원장의 부름에 잠시 환자가 앉았던 평상까지 내려온 재마는 다가서지 못하고 쭈뼛 서 있었다.
“원장님. 저짝은 누구예요?”
이 동네 사람들의 특징인 건지, 평소에 보지 못했던 사람을 보면 대놓고 빤히 바라봤다.
“새로 올 원장님이에요.”
“새로 올 원장님이요? 원장님이 바뀌시는 거예요?”
구 원장에게 허리를 내어주었던 중년 여성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화들짝 놀랐다.
놀란 근육 때문인 건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잠시간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그녀는 당황스러운 기분을 토로했다.
“아이고. 저는 원장님 보고 아침부터 찾아왔어요. 허리가 아파서 걷는 데 얼마나 힘들었다고요. 그런데 원장님이 안 봐주시면 어째요.”
허리가 아파서 걷기도 힘들었다는 양반이, 자신을 치료할 의사를 고르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분 한의사는 맞아요? 어째…… 아직 학생 같은데…….”
“한의사 자격증 딴 한의사 맞습니다.”
비록 한의사 자격증의 잉크가 마를 새도 없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재마는 뒷말을 삼켰다.
선배들이나 교수님들에게 처음 한의원에 들어가면 환자들이 젊은 한의사를 불신한다는 소리를 익히 들어왔다.
그럴 때일수록 위축되지 말고 한의대에서 수련한 대로, 실습병원에서 실습을 한 대로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치료를 해나가라는 조언을 들었지만, 막상 직접 듣고 나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재마가 톡 쏘아붙인 한 마디에 환자는 의심스러운 시선은 거두지 않았지만,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일단 처치실로 들어가실 게요.”
재마는 평상에 힘겹게 앉아 있는 환자를 부축했다.
“구 원장님이 부축은 도와주실 수는 있으시죠?”
치료는 본인이 하더라도 부축 정도는 도와줄 수 있지 않냐는 듯, 재마가 묻자 구 원장은 환자의 다른 쪽 팔을 붙잡았다.
“아이고. 아이고. 허리야.”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명의 한의원이 떠내려가라 환자의 고통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금 전까지 술 취해서 명의 한의원으로 들어왔던 재마가 잠들었던 처치실로 환자를 부축했다.
재마는 빠르게 자신이 덮었던 이불을 치우고, 치료 매트를 깔았다.
“아이고. 원장님. 그래도 원장님이 봐주시는 게 어때요? 제가 급하게 출근을 해야 하는데…….”
역시나 못 미더워하는 환자의 목소리였다.
“나를 믿고, 이 선생 한번 믿어보세요. 젊어도 실력 있는 한의사니까.”
지금껏 재마에게 부드러운 소리 한마디 안 했던 구 원장이었지만, 환자에게는 재마를 실력 있는 한의사라 소개했다.
“일단 바로 누워보실 게요.”
재마는 앉아서 진료가 힘들다고 생각해, 누운 상태에서 환자의 진맥을 짚기 시작했다.
“제 눈 바라보시겠어요?”
한의대학에서 수련을 하면서도 팔목을 잡고 진맥을 짚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해 왔고, 환자의 홍채를 확인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진맥도 진맥이었지만 환자의 홍채를 확인하는 것이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재마는 누워 있는 환자의 눈동자를 똑똑히 바라봤다.
요 며칠 자신의 눈 앞에서 아른거리던 메시지로 환자를 바라보는 건 처음이었다.
[홍채를 인식합니다.]
환자명 : 김성자
나이 : 56세
환자의 간단한 정보와 함께 그의 허리 쪽에서 섬광이 일어났다.
특히 충격이 가해진 곳은 더욱 빛의 세기가 세게 느껴졌다.
간단하게 재마의 눈에 나타난 메시지였지만, 한의학 수련을 6년간 해온 재마의 머릿속에는 그저 섬광이라도 환자의 상태가 파악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셨어요?”
“아침은 항상 바쁘니까요. 정신없이 준비하다가 욕실에서 콱.”
성자는 자신이 넘어지던 순간을 다시금 떠올렸는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골절까지는 아니었지만, 순간적인 충격으로 혈종이 생길 정도였으니 그 고통 또한 견뎌내기 쉽지 않을 터였다.
“일단 오늘은 침 맞고 가시고요. 원장님. 접골탕 조제하겠습니다.”
“한약까지 먹어야 해요?”
“그럼 침만 맞고 나으실 줄 알았어요?”
허리가 아파 꼼짝도 못 하고 누워 있는 성자는 접골탕이라는 말에 지레 겁을 먹었다.
잠깐 아프고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인데, 비싼 한약까지 지어 먹어야 하는 건가 하는 마음에서였다.
‘동네 한의원에서는 침과 물리치료 오는 환자들만 있고 약은 먹기 꺼린다더니…….’
이 역시 수련을 하며 누누이 들었던 이야기였다.
환자들의 경제 사정까지 봐가며 치료를 할 수는 없었다.
과잉진료도 아니고, 지금 허리를 다쳐 꼼짝도 못 하는 김성자 환자에게는 딱 적절한 치료였다.
그때 뒤늦게 출근을 한 정 실장이 처치실로 들어와 침술에 필요한 침구를 챙겼다.
“실장님, 당귀. 천궁. 녹용을 중심으로 접골탕 준비 부탁드립니다. 내리는 건 제가 직접할 테니 약재 준비만 해주세요.”
“네.”
침구를 정리하던 정 실장은 얼떨결에 첫 진료를 보게 된 재마의 처방에 고개를 까딱이고 약재실로 들어갔다.
“다행히 골절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아이고 골절이면 큰일 나죠. 입원을 몇 주 이상은 해야 할 텐데.”
“대신 어혈이 형성되고 있어서 이걸 풀어주지 않으시면 꽤 오래 고생하실 거예요. 출근도 하셔야 한다면서요.”
“지금 몇 시죠? 아이고. 내가 늦으면 큰일 나는디.”
성자는 꼭 쥐고 있던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한 후, 이미 출근 시간을 놓쳐 버린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오늘은 하루 쉴 수 있나 알아보세요. 오늘 이대로 가셨다가는 허리 한참 못 쓰시니까요.”
“그 정도예요?”
그저 순간적인 실수에 허리도 쓰지 못하고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이 당황스럽다는 듯 김성자는 울상을 지었다.
누구든 사고는 예측할 수 없다.
사고는 갑작스럽게,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크게 다가온다.
당황스러워하는 환자에게 정확한 진료와 처방을 내리는 것이 한의사의 몫이었다.
“오늘은 화어활혈 (化淤活血) 어혈을 풀어주는 치료를 할 겁니다. 내일 약이 나오면 약도 꾸준히 드세요. 침도 어혈이 다 풀리고 세포가 정상화로 돌아갈 때까지 침도 맞으러 나오시고요.”
“네.”
첫인상을 보고 아직 젊은 초임 한의사라는 생각에 덜컥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던 성자는 재마의 치료에 순순히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재마의 손으로 차례대로 꽂히는 침이 들어가자마자 뭉쳐 있던 허리가 조금은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곳에서 침을 맞으면 이런 효과를 바로 볼 수 없었다.
구 원장의 침을 맞아야만 곧바로 효과를 보는 듯한 홧홧한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 딱 그 느낌이 그대로 나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믿고 찾아온 명의 한의원 구 원장이 옆에서 지켜보며 암말 하고 있지 않으니 영 잘못된 처방은 아닌 모양이었다.
“근데……. 앞으로 이 짝 원장님이 계속 진료 보시는 거예요?”
“네.”
“왜요? 이제 여기 개발 예정지라 원장님이 구 원장님에게 비싼 돈 주고 사셨어요?”
“이 한의원을요? 돈을 주고요? 비싸게요?”
비싸게 한의원을 샀냐는 말에 재마는 저도 모르게 콧방귀를 꼈다.
“아닌가…….”
성자는 괜히 민망한지 말끝을 흐렸다.
“그럼 구 원장님은요?”
“제가 명의 한의원 이어 가기로 하셨습니다. 구 원장님은 은퇴하실 거예요.”
지금까지 명의 한의원을 물려받으라는 구 원장의 제안에 딱히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재마가 드디어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구 원장이 은퇴를 할 것이라는 말에 놀란 성자는 허리를 움찔거렸고, 잠자코 듣고 있던 구 원장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반평생, 아니, 그 이상을 이곳에 바쳤으니, 저도 이제 제 인생 살렵니다.”
“그런데, 여기 원장님이 5대째 이어가고 계시다 하시지 않으셨어요?”
유명한 한의원은 아니었지만, 주변 상인들과 주민들 사이에서는 5대째 이어 오는 유서 깊은 한의원인 명의 한의원이었다.
요즘 해인동이 개발 예정지로 지정되면서 동네가 떠들썩하기도 했지만, 특히 주민들은 유서 깊은 명의 한의원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거냐며 걱정이 많았다.
“맞습니다. 이제 6대째, 제 손주 놈이 이어가겠죠.”
구 원장은 자신은 이제 걱정 하나 없다는 듯, 재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 믿을 만한 한의사라고 하시더니, 손주셨구나. 몰라봤네요. 제가.”
성자는 혈혈단신 자식도 없다는 소문을 들었던 구 원장이 재마를 손주라 칭하자 얼떨떨해했다.
슬쩍 고개를 돌려 바라본 재마와 구 원장은 닮은 구석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닮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