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자를 읽는 한의사-3화 (3/150)

환자를 읽는 한의사 3화

못마땅한 눈으로 재마를 바라보던 구 원장은 대뜸 입을 열었다.

“경옥이는. 잘 있고?”

“네? 저희 어머니를 아세요?”

이곳에 다다를 때까지 학과사무실에서 불법으로 자신의 개인정보를 알아챘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재마에게 뒤통수가 얼얼할 정도로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어머니의 이름을 이곳에서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였다.

“알지. 제 딸내미도 모르는 애비가 있을까 봐. 아직 정신은 멀쩡하니, 딸은 잊지 않았다.”

“딸이요?”

재마는 생전 처음 듣는 소리였다.

재마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가까운 친척 하나 없이 혈혈단신 재마를 어렵게 키워온 어머니셨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에게 오래되기는 했지만 번듯이 한의원을 하는 아버지가 있었다니, 믿기지 않았다.

“애미가 아직 말을 안 했구나.”

구 원장은 서서 책상에 손을 짚고 힘겹게 다리를 떼었다.

그러고는 창문 밖의 처마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뒤를 돌아 재마를 바라봤다.

“네 눈을 보니, 아직 때는 덜 되었는데.”

어느 때를 이야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재마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잠깐. 잠깐만요.”

눈앞에 있는 구 원장이 갑작스럽게 생겨 버린 외할아버지라는 생각에 재마는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혼란스러운 이야기인 건 알겠지만, 나도 시간이 없어서 본론으로 이야기하마.”

오래된 진료 차트들이 즐비해 있는 책상으로 다시 자리를 잡고 앉은 구 원장은 마주 앉은 재마를 바라봤다.

“이번에 세중대학교 한의학과 졸업했다지? 내일부터라도 이곳으로 출근해.”

“네?”

혼란스러운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연타로 맞아 버린 재마는 입을 떡 벌리고는 닫지를 못했다.

“내가 이제 더 이상 한의원을 끌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한 달 정도 일 배우고, 네가 이어가라.”

“아뇨. 구 원장님이 이 한의원을 더 이상 운영을 못 하시는 건 원장님 사정이시고요. 제가 여기를 왜 물려받아야 하죠?”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오래되어 다 쓰러져 갈 것 같은 한옥을 고쳐 한의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명의 한의원.

들어올 때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 단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돈은 절대 안 된다. 병원운영을 유지하기도 힘들다.’

세상이 좋아져 한의원 진료도 의료보험이 되는 세상이라 진료가 부담되는 환자들도 큰 부담 없이 한의원을 찾지만, 적어도 병원을 키우려면 몇 가지 조건에 부합해야 했다.

‘명의 한의원’은 그런 조건에 부합할 리가 없었다.

요즘 환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병원이라면 쾌적한 환경은 기본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유지는 되는 곳이어야 환자들도 원장을 믿고 자신의 몸을 맡긴다.

이렇게 다 쓰러져 가는 병원? 곧 죽어가도 스스로 걸어 들어올 리 없었다.

“그리고 이곳 곧 개발되는 것 같던데 그냥 보상 두둑이 받으시고 다른 좋은 곳으로 가시면 되겠네요.”

재마는 인상을 찌푸리며 한옥 그대로인 진료실을 눈으로 훑었다.

이런 자리에 몇 명의 한의사를 불렀었을지 모르겠지만 분명 몇 번 퇴짜 맞고, 경험이 없는 신출내기 한의사인 자신에게 맡기려는 이유가 다 있는 것 같았다.

“무려 5대째 이어 온 한의원이 문을 닫게 생겼다. 이곳은 이 지역 사람들과 함께 지켜온 곳이야.”

“이제 개발되면 이 동네 사람들도 다 다른 곳으로 떠날 텐데요? 원장님. 한의사 협회에 등록되어 있으실 테니, 서울에 한의원이 몇 개인 줄 아시겠죠. 당연히. 이제는 전통 이런 것 없습니다. 한의원도 서비스에요. 깔끔하고 번듯해야 해요.”

재마는 빛바랜 원장실의 벽의 사진들을 쭉 둘러보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오늘 면접을 본 정한 한방병원도 적어도 4대가 대를 이어온 한의원이다.

한 집안은 한의원에서 기업형 병원으로 성장시켰고, 명의 한의원은 리모델링도 하지 않는, 아니, 할 수 없는 한의원이었다.

“가보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가봐라. 어차피 돌아오게 되어 있으니.”

구 원장은 긴말로 그를 잡을 생각이 없다는 듯, 뒤를 돌아서서 나가는 그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생사를 알 수 없었던 외할아버지였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아버지라니 예의를 갖춰 고개를 숙였다.

‘이곳에 제가 올 일은 없을 겁니다.’

정한 한방병원에 합격만 하게 된다면 연아와의 결혼도, 그의 미래도 탄탄대로였다.

굳이 이 오래된 병원에 그가 돌아올 이유가 없었다.

“아우. 그런데 왜 눈이 이렇게 시리지.”

구 원장의 원장실을 빠져나온 재마는 아까부터 한쪽 눈이 시리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눈을 심하게 비비며 명의 한의원을 빠져나왔다.

* * *

“오빠 내 말에 집중하고 있어?”

“어? 아, 연아야. 미안. 내가 오늘 존재도 모르던 할아버지를 만나서.”

“할아버지?”

“응. 해인동에서 한의원을 5대째 하셨다네.”

한참을 자기 이야기만 하던 연아는 재마가 할아버지를 만났다는 말에도 큰 관심이 없는 모양인지 휴대전화를 들어 SNS를 하기 바빴다.

“오빠 손 좀 치워봐. 손가락 잡힌다.”

연아가 원해서 온 디저트 카페에서 디저트가 나왔다. 연아는 마주 앉아 있는 재마의 손이 프레임에 걸린다고 그의 손을 탁, 쳐냈다.

그 행동에 재마는 하고 싶던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사진 찍고 있어.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재마는 업로드용 사진을 찍느라 바쁜 연아를 뒤로하고, 계속 눈물이 나오는 것 같은 한쪽 눈을 비비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모레라도 들어갔나.”

재마는 화장실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봤다.

꺼끌꺼끌한 것도 없이 시리기만 한 상황이 이물질이 들어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위기에 빠진 명의 한의원을 구하라.]

그의 눈앞에 알 수 없는 메시지가 떴다.

재마는 다시 세게 눈을 비볐다.

[위기에 빠진 명의 한의원을 구하라.]

“이거 뭐야.”

마치 모니터에 메시지창이 뜨듯 그의 눈앞에 생전 처음 보는 메시지가 떴다.

홍채를 인식하라니. 무슨 홍채? 설마. 눈동자?

재마는 놀라 자빠질 뻔했지만, 간신히 벽을 붙잡고 놀란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한쪽 눈이 평소 자신의 눈동자 색보다 살짝 색이 바랜, 연한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는 재마의 머릿속에 딱 한 가지가 스쳐 지나갔다.

눈부시게 빛나던 금박 초대장을 연 이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차피 돌아오게 되어 있으니.

구 원장의 한 마디가 그의 귓가에 다시 울리는 것 같았다.

화장실에서 나온 재마는 디저트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는 연아에게 인사도 없이 카페를 뛰쳐나갔다.

“오빠! 오빠. 나 두고 어디가!”

자신을 두고 혼자 빠져나가는 재마를 보고는 연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지만, 재마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큰길가로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아탄 재마는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었다.

“기사님. 명의 한의원으로 가주세요.”

“명의 한의원이요?”

“해인동 시장 골목에 있는 오래된 한의원 모르세요?”

“아…….”

택시기사는 오래된 한의원이라는 말에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 차를 몰았다.

-오빠. 이게 대체 무슨 행동이야? 장난해? 날 두고 혼자가?

-연아야. 내가 급한 일이 생겨서. 나중에 전화할게.

-급한 일은 오빠 사정이고. 나를 어떻게 두고 가냐고!

연아에게 말도 없이 나왔다는 걸 그제야 깨달은 재마였다.

그 뒤로도 몇 통의 메시지가 더 왔지만, 더 이상 확인할 새가 없었다.

한참을 달려 명의 한의원 앞에 다다랐다.

한의원까지 오면서 택시기사가 명의 한의원에 대해 이야기를 몇 가지 한 것 같은데, 재마의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급하게 계산을 한 재마는 처음 한의원에 들어갈 때와는 확연히 다르게 망설임 없이 대문을 활짝 열었다.

“오늘 진료 끝났…….”

진료가 끝나고도 남을 시간이라 개량 한복을 입고 청소를 하고 있던 정 실장은 고개를 들어 환자가 아닌, 재마가 온 것을 알고는 힘든 허리를 꼿꼿이 폈다.

“원장님 만나러 오셨어요?”

정 실장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은 재마는 대청마루를 지나 구 원장이 있을 원장실로 들어갔다.

“지금 이 상황. 여기 명의 한의원이랑 관련된 일이죠?”

“조용히 하고 문이나 닫고 앉아.”

갑자기 쳐들어오듯 병원을 찾아온 재마의 모습이 놀랍지도 않다는 듯, 구 원장은 턱짓을 했다.

“5대째 이어 온 한의원이 문을 닫게 생겼어. 대를 이어 갈 사람은 너밖에 없고.”

“눈동자 색이 바뀌는 것, 눈앞에 이상한 글자 어른거리는 것. 구 원장님이 하신 일입니까?”

“이놈아. 내가 그럴 수 있으면 여기서 평생 진료나 보고 있었겠냐? 세상일은 사람의 머리로는 이해 못 할 일도 있는 거야.”

구 원장과 마주 앉은 재마.

외할아버지라고 하더니, 수십 년을 왕래하지 않은 그의 어머니 이미지가 있었다.

특히 눈매…….

[위기에 빠진 명의 한의원을 구하라.]

구 원장과 눈을 마주치자, 위기에 빠진 명의 한의원을 구하라는 이상한 메시지가 또다시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제가 히어로도 아니고 어떻게 위기에 빠진 명의 한의원을 구합니까?”

재마는 지금 일어나는 자신의 상황이 말도 되지 않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는 듯 토로했다.

한의원을 이어받으라 할 때도 어이가 없었는데, 위기에 빠진 명의 한의원을 구하라는 이 소리는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또다시 구 원장의 시선과 마주치자.

[홍채를 인식합니다.]

라는 짧은 메시지가 떴다.

조금 전까지 명의 한의원을 구하라는 말도 안 되는 메시지와는 또 다른 메시지였다.

“호…… 홍채 인식은 무슨.”

“이제야 능력이 발휘되는가 보구나.”

당황스러운 재마와 달리 구 원장은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홍채를 인식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알 수 없는 섬광이 구 원장의 복부 쪽에서 일어났다.

“이……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너에게 주어진 능력을 충분히 활용한다면 명의 한의원을 이어가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게다.”

“한의원을 이어가는 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지금 제게 펼쳐지는 상황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이야깁니다.”

“그건 차차 네가 스스로 느끼게 될 게야.”

지금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지는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감이 오지 않았지만, 구 원장의 몸 상태가 개발 예정지인 한의원을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할 상황이라는 것을 재마는 알 수 있었다.

0